6학년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10살 위 아들을 키울 땐 몰랐는데 둘째는 너무 키우기 힘드네요.ㅠ 제 아이는 공부도 싫어하고 책도 당연히 싫어하고요. 학원 선생님한테도 수업태도가 나빠 야단을 맞았는데 반성은 커녕 대들었어요. 창피해서 학원을 끊었고요.ㅠ 틈만 나면 친구들하고 시내 노래방, 옷 가게에 쏘다니고요. 가방에 몰래 비비크림도 넣어 가지고 다니고요. 다른 학교 아이들하고 시비가 붙어서 싸움이 날 뻔한 적도 있어요.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가정에서 신경을 써 달라고요. 아이가 학교에서 하지 말라는 건 다 하고 다닙니다. 앉혀 놓고 잔소리를 하는데도 애교로 때우면서 대충 넘어가려고 해요. 야단쳐도 그때뿐입니다. 얼마 전에는 저 몰래 인터넷에서 짧은 치마와 몸에 붙는 옷을 사서 친구 집에 숨겨 놨더라고요. 그러면서 학교 끝난 뒤 입고 시내를 돌아다닌 겁니다.
마침 친구 엄마가 그걸 보고 저에게 알려주더라고요. 그 엄마들이 저보다 한참 젊은데 제가 얼굴을 못 들겠더라고요. 혼을 내도 효과가 없고 지 잘못했단 말은 죽어도 안 해요. 오히려 다른 애들은 자기보다 더 한대요. 세상에! 요즘 애들 왜 그런대요? 아는 언니가 아빠한테 혼났는데 그래서 가출도 했대요. 그래도 자기는 엄마 아빠 불쌍해서 가출은 안 한대요. 이렇게 철없는 말을 해요. 제 어릴 땐 아버지 무서워서 꿈도 못 꿨던 일들을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화장한 얼굴 사진을 페북에 올리기도 하고요. 친구들과 주고받은 대화를 보니 욕이 한가득입니다.(씨 x 년, 미 x 년) 왜 그렇게 욕을 하냐고 야단을 치니 그냥 하는 거래요. 그러면서 엄마는 예전에 얼마나 모범생이었냐고 따져요. 댄스 가수가 되겠다고 가수 동영상만 보더니 요즘은 또 그것도 싫대요.
저나 아이 아빠는 조용한 성격입니다. 집안 분위기와 전혀 다른 아이의 모습에 당황스럽습니다. 아빠는 딸을 엄청 귀여워해요. 늦게 본 딸이어서 그런지 혼낼 생각은 전혀 안 하는 것 같아요. 혼을 내다가도 어이가 없는지 그냥 웃고 말아요. 제가 뭐라고 하면 다 그러면서 큰다고 오히려 아이 편을 들어요. 따끔하게 혼을 내라고 해도 아빠는 그냥 허허 웃습니다. 답답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딸이 엄마인 저를 우습게 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속이 뒤집어집니다. 제가 자꾸 야단을 치니까 요즘은 아빠랑만 카톡을 하는데 애견 미용사가 되겠다고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라요. 이럴 때 아빠가 엄격하게 훈육을 하면 좋겠는데 아빠는 강아지를 사 주려고 하네요. ㅠ 방학이 되면 염색도 시켜 달래요. 이러다 아이가 망가질까 봐 잠이 안 옵니다. 사춘기 딸... 완전 개 싸가지... 이거 죽여요, 말아요?ㅠㅠ
아, 6학년... 세상 모든 엄마들이 고민하지만 정답이 없는 걸 물어오셨네요. 중2병은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은 초6병이라는 말 들어보셨지요?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교사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우주 최강의 희한한 놈들이 가진 병이지요. 북한이 우리나라를 못 쳐들어 오는 이유가 우리 중학생들이 너무 무서워서래요.ㅋ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값싸 보이는 화장을 하고도 무슨 화가 났는지 항상 인상 쓰는 얼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내용은 완전 초딩 수준이고요. 책임감도 없고 미래에 대한 꿈도 없고 그냥 '날 죽여 잡숴~'하는 놈들요. 공부 좀 하라고 하면 '그깟 공부 해 봐야 인생에 별 도움 안 돼'라고 거들먹거리지요. 하다못해 책이라도 좀 읽으라고 할라치면 제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만 좀 해!"라고 퉁명스럽게 내쏘고는 방문을 꽝 닫고 숨지요. 방에서는 또 종일 폰을 붙들고 혼자 킬킬거리다가 조용하다 싶으면 여드름 짠다고 거울 앞에 붙어 있고요. 몇 년 전까지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1, 2 학년 아이였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지요. 님의 아이는 지금 그런 애들 중 한 명이예요. 아이고, 이걸 축하드려야 하나, 위로드려야 하나... 초장에 기운 빼지 마시고 속 편하게 생각하세요. 그냥 그놈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어디서 강아지 한 마리 데려다 키운다 생각하세요.ㅋ 녀석은 앞으로도 몇 번은 엄마 속을 뒤집어 놓을 텐데요, 뭘. 님도 이제 사춘기 아이의 부모들이 겪는 헬춘맘월드(헬+사춘기=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지옥)에 입장하셨어요. 딸 가진 부모는 누구나(정말 누구나!!!) 한 번은 이런 시기를 겪습니다. 몰래 화장을 하고 미니스커트 입고 어른 흉내 내며 쏘다니는 건 애교 수준입니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면서 항상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따라다니던 귀여운 아이는 잊으세요. 다시 안 돌아옵니다.
제 딸 아이 경험담을 또 꺼내야겠군요.(이거 보면 날 잡아먹을라고 텐데ㅋ) 스마트폰을 아예 끼고 있는 것도 모자라 충전할 시간도 아깝다면서 보조배터리 사 내라고 생떼를 부리고 이왕이면 더 좋은 걸 입히려고 쓸만한 옷을 권하려고 하면 뭔 놈의 '취향'이 안 맞는다며 바로 퇴짜를 놓고요. 공부 좀 하라고 하면 인생의 정답이 공부에 있는 줄 아냐고, 인생 한 방이라고, 자기는 로또나 살 거라고 저를 훈계하려고 덤비죠. 지가 최고인 줄 알고 온갖 똥폼은 다 잡고 다니는데,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꼭 미친x 같아 보이고요. 너 그러다 나중에 뭐 해서 먹고 살 거냐고 따지면 이렇게 말하고요. "나? 엄마 아빠 등에 빨대 꽂을 거야. ㅋㅋ" 저야 말로 이걸 죽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원, 참.ㅠㅠ
* 아이의 성장을 되돌릴 수는 없어요.
어릴 땐 안아주고 젖 주면 좋아서 방긋방긋 웃어주던 우리 아이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그때 평생 할 효도를 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우릴 힘들게 하는지 몰라요. 근데 생각해 보면 아이들이 평생 아기로 살 수는 없지요. 어른이 되려면 아기로 살았던 몸과 마음을 벗어던져야 하잖아요. 지금 님의 아이가 그 과정에 있다고, 좋게 봐주세요. 슬프지만, 아이가 다시 귀엽던 아가로 돌아가 우릴 행복하게 해 주지는 않아요. 그리고 더 이상 우리 마음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는 지금 세상 모든 것이 삐딱한 시기입니다. 오죽하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할까요? 그래서 미련스러울 만큼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겁니다. 근데 사실 이게 아이의 인식 능력이 자라는 증거예요.
- 우리 부모님이 최고고 우리 집도 부자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네. 난 왜 이런 '보통' 가정에 태어났을까?('나'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 인식하는 능력)
- 난 지금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는데 앞으로 뭘 해 먹고 어떻게 살아야 하지?(부모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하고 독자적 인격체로 세계를 인식하는 능력)
- 내 친구들은 다들 얼굴도 몸매도 장난 아닌데 난 왜 외모가 장난일까?(타인과 다른 '나'의 존재감을 인식하는 능력)
- 내 친구들은 다들 뭔가 잘 하는데 난 왜 공부도 못할까?('나'를 규정하고 평가하는 가치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함)
- 나 같은 여자애도 남친을 사귈 수 있을까?('어린이'의 시기를 벗어나 성적 주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
이 시기의 아이들은 말도 안 되는 것에 의문을 품고, 현실 가능성이 없는 것을 꿈꾸기도 하지요. 그래서 연예인(아이돌)이나 드라마, 판타지 소설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른이 보면 유치해보이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는 자기가 현재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현실을 아이 나름대로 받아들입니다. 엄마들과 상담하다 보면 아이를 키우면서 흔히 겪는 시기가 있다더군요. 농담 삼아 한 번 말씀드려 볼까요?
- 미운 네 살살(떼쓰고 울고 고집 피우는 시기 - 아이의 생각이 나름대로 자라 자의식을 구성하는 시기)
- 죽이고 싶은 일곱 살(분명히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자기 고집대로 하는 시기 - 아이의 주관이 만들어지는 시기)
- 차라리 엄마인 내가 죽고 싶은 열네 살(미친x의 시기 - 어른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시기, 사춘기)
이 시기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키우는 사람이 힘들어져요. 반면 아이는 점점 자기만의 생각(정체성)이 공고해집니다. 아이는 엄마의 의도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수동의 삶을 벗어나 특별한 자기가 되려고 합니다. 엄마는 그걸 받아들이고 놓아줘야 하는데 그러기엔 좀 불안해요. 그래서 힘듭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이 과정을 거쳐서 어른이 됩니다. 저와 님도 그랬고요. 사람뿐인가요?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과정이나 뱀이 허물을 벗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기존에 익숙하던 자기를 벗어 버려야 새로운 내가 되지요. 부모 입장에서야 녀석들이 허물을 얌전히 벗어주면 좋겠지요. 하지만 그건 부모 생각일 뿐이고, 벗는 아이 마음이니 냉정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 믿거나 말거나. '지랄 총량의 법칙'은 정말 있는지도 몰라요.
사람이 평생 동안 하는 지랄은 사람마다 거의 비슷하다는 말이 요즘 유행이지요? 전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람마다 그 지랄을 언제 하느냐가 문제겠지요. 제 제자 녀석 이야기를 해 드려야겠군요(이놈도 자기 얘기한 줄 알면 가만 안 있겠네요.ㅋ) 어릴 때 그렇게 부모 속 썩이면서 큰 제자 녀석이 있어요. 녀석 부모님이 식당을 하셨는데 지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 꺼내다 하드 사 먹고 저한테도 참 많이 혼났죠. 혼내도 안 되더라고요. 중학교 가서는 서점에서 책 훔치다 걸리고(그것도 공부 책이라면 또 몰라요, 가수 브로마이드를 훔치다가) 수학여행 때는 몰래 술, 담배 넣어 가서 또 걸리고 혼나고요. 밤에는 폭주족 오토바이 뒤에 타고 돌아다니고요. 정말이지 그때는 저놈이 커서 뭐가 되려고 저 지랄인가, 그랬거든요. 그랬던 그 녀석이 요즘은 아주 번듯하게 일도 잘 하고 가정 잘 꾸리며 살거든요.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어떤 일이 있었길래 전혀 다른 사람이 됐느냐고 제가 궁금해서 물을 때마다 '선생님, 옛날의 저는 잊어주세용', 하면서 웃어요. 성숙한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소였죠. 멋있어 보였습니다. 반면 어릴 때 속 한 번 안 썩이고 얌전히 컸는데 갑자기 나이 마흔 가까이 돼서 지랄을 시작한 제자 녀석도 있어요. 공부도 곧잘 해서 대학도 잘 갔고 좋은 회사 들어가 장가도 가고 애도 낳아 키우던 놈이 글쎄, 어느 날 갑자기 직장 때려치우고 문학을 하겠다고... 인생의 회의를 느꼈다나요? 아니, 무슨 회의를 나이 마흔 가까이에 느낀대요, 글쎄? 녀석의 선언에 부모님 뒤로 넘어가고 아주 난리 났었지요. 문학이 나쁜 게 아니라 갑작스러운 선언이 가족을 충격받게 했을 겁니다. 어찌어찌 무마되기는 했지만 철렁한 얘기지요.
* 애들이 왜 사춘기만 되면 이러는 걸까요?
미쳤으니 그렇죠. 호르몬이 미치게 한대요.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 에스트라디올(estradiol) 뭐 이런 얘기 들어 보셨죠? 몸은 갑자기 막 커지지요, 공부해야 할 건 많지요. 눈에 보이는 건 많아져서 머릿속은 복잡하지요. 아이도 제정신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자기도 자기가 왜 그러는지 잘 몰라요. 어느 날 갑자기 확 돌아버리죠. 그래서 부모도 미치게 만들고요. 여기서 그 녀석들 편을 들자면,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아 미쳐 날뛰는 부모를 열 받게 하려고 그러는 건 아닙니다. 그놈들은 그런 생각할 정신도 없어요. 그냥 뇌가 시키는 대로 지랄하는 거예요. 이럴 때 아이를 상대로 화를 내거나 야단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아시잖아요. 아이가 일부러 엄마 돌게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거요. 그걸 알면서 화를 내면 아이랑 수준이 똑같아 지시는 거예요. 책임 회피도 되고요. 아이랑 맞서 싸우시겠어요? 싸워봤자 힘만 들고 이길 수도 없어요. 아이에게 강하게 나가는 엄마에 대해이 시기 아이들은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힘으로 밀어붙인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 반복되면 엄마에 대한 신뢰를 거둬요.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엄마로서 치명적입니다. 아이에게 신뢰 잃은 엄마는 바로 그날부터 아이 머릿속에 '지질한 어른'으로 기록되거든요. 엄마를 자기 삶의 멘토에서 제쳐두는 거지요. 생각해 보세요. 엄마들이 딸 키우면서 뭘 바라는지. 평생 딸과 친구 같은 모녀 사이로 가까이 지내는 거잖아요. 그럴 기회를 이번에 날려 버릴 수도 있어요. 신중하셔야 합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바라는 건 예전에 자기에게 보여줬던 엄마의 모습입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어떤 엄마셨나요? 엉뚱한 행동을 해도 혼내지 않고 깔깔 웃으면서 귀엽고 대견하게 받아들여 주셨잖아요. 아이는 아직 그런 엄마에게 익숙해 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안 그렇지요?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머리를 달고 저 지랄을 하고 있으니까요. 엄마로선 받아들이기 힘들밖에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어른의 행동은 뭐든 한 번 씩 해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어른이 된 자기를 상상해 보는 거지요. 시뮬레이션 말입니다.
근데 정작 아이들은 어른으로 안 살아 봤잖아요. 그래서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가 어색하다는 걸 잘 몰라요. 자긴 완벽한 어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이없게도요. 그래서 이런 행동 특성을 보입니다.
- 말이 없어진다. 무뚝뚝해 지거나 거친 표현을 쓴다.(아, 몰라! 짜증 나. 말 걸지 마.)
-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이성 앞에서 얼굴이 빨개진다. 멜로드라마에 빠진다.)
- 평소 안 하던 외모 꾸미기를 한다.(화장, 염색, 노출 있는 어른 옷을 입고 돌아다닌다.)
- 이유 없이 비뚤어진다.(자주 욱하는 모습을 보인다. 주변 어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이유 없는 반항을 한다.)
- 짜증이 잦다.(무슨 말 좀 걸어보려 하면 일단 짜증으로 회피함.)
- 부모들이 바라는 직업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나 돈 잘 버는 직업, 또는 안정적인 직업 - 에 대해 폄하한다.(엄마 위해서 내가 왜 의사가 되어야 돼? 왜 그래야 하는데?)
- 어른들의 문화를 부정적으로 본다. 가부장 문화에 대해 존경심이 없어진다.(아빠가 하는 게 뭐 있어. 만날 술이나 먹잖아. 지질하게.)
- 몸에 신경 쓴다.(남자아이들은 운동을 시작하고 여자아이들은 다이어트를 한다. 외모가 깔끔해진다.)
- 자기가 생각하는 '고급문화'를 동경한다.(갑자기 미국 백인 남자랑 결혼하러 미국 가겠다고 한다. 철학 책을 보려고 한다. 성인용 TV 프로그램에 빠진다. 락이나 힙합 음악에 빠진다.)
- 허세를 부린다.(공부 그까짓 거 1등 못 할 줄 알어? 필요 없어서 안 하는 거야. 공부 잘하는 애들 다 지질이야.)
- 어떤 일이든 시작은 창대한데 끝이 매우 미약하다.(기타를 배우겠다고 해서 사 주면 며칠 하다 손가락 아프다고 그만둔다. 참고서 몇 쪽 보다가 처박아 둔다.)
-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났다고 생각한다.(자기는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근거는 없이 생각한다. 단, 공부만 빼고!)
- 자기만의 멘토를 찾고 싶어 한다.(동네 형이나 교회 오빠를 좋아하는 심리,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을 특히 좋아하는 심리, 형이상학에 관심 갖는 심리)
읽는 것만으로도 숨이 콱 막히시죠? 어떤 학부모는 이런 말씀도 하시더군요. "우리 애는 다행이네요. 몇 가지 안 하는 걸 보면." 하지만 좋아하시기에 아직 이릅니다.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언제 겪느냐의 시간문제일 뿐, 다 겪게 마련입니다. 제 아이들 키우면서 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디 내가 키울 동안에는 얌전히 커라. 나중에 시집가서 사춘기 오든가 말든가 니 남편이 알아서 하겠지. 지금은 일단 나 좀 살고 보자.' 고맙게도 제 딸아이의 지랄 총량은 제 걱정보다 작았습니다. 한 2-3년 지랄하더니 말더라고요. 다행스러웠죠. 다시 돌아온 딸아이는 예전보다 더 귀엽고 달콤해져 있습니다. 물론 성숙해진 건 당연하고요. 그 녀석에게 아직 남은 지랄이 더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은 지랄이야 제가 알게 뭡니까? 미래의 사위 놈... 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고작해야 제 제자 녀석처럼 직장 때려치우고 딴 거 하겠다는 수준이겠지요. 아, 어떤 지랄이면 대수겠습니까. 지금만 안 그러면 저야 고맙죠. 사위 놈이 전부 알아서 하겠죠.ㅋ 네, 이미 눈치채셨을 겁니다. 아이의 이상한 행동을 '그러려니'하는 순간 부모 마음은 편해진다는 겁니다. 저처럼요.
* 완전 개 싸가지... 이거 죽여요, 말아요?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셨네요. '개 싸가지'라는 말은 자기중심적이라는 뜻입니다. 사춘기 아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다만 그런 녀석을 죽여, 말어 부분에서는 엄마로서 지금 꽤 힘들어하고 계신다는 게 느껴지네요. 여기서 짚고 넘어갈 일이 있습니다. 사춘기 자녀를 둔 엄마들이 겪는 고통 말입니다. 이거 누가 시킨 건가요? 아이가, 엄마 오늘부터 내가 사춘기니까 고생 좀 해주세요, 뭐 이렇게 시킨 건 아니잖아요. 이놈들은 요즘 지가 일 저지르기에도 바쁜데 엄마 신경 써 줄 리 없고요. 결과적으로 엄마 본인이 고통을 만들어서 힘들어하고 계시는 거네요. 근데 왜 그러시나요? 꼭 그러실 필요가 있나요? 아이가 약간의 성장통을 겪고 완전한 어른이 되겠다는데 싫으신가요? 절대 아니라고 하실 겁니다. 근데 지금 그걸 싫어하고 계세요. 공부를 싫어하고 선생님한테 대들고 노래방에 몰래 가고 입지 말라는 옷을 굳이 감춰두고 입고 참을성 없어서 툭하면 싸우고 학교에서 문제아 취급을 받는 아이가 내 딸이라니는게 싫으신 겁니다. 아이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순한 아이로, 오로지 엄마 품 안에서, 엄마가 원하는 딸의 모습으로만 자라기만 바라시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엄마의 욕망을 거부하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니까 불안하신 거고요. 엄마로선 당연해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아이는 엄마가 아니잖아요. 아이도 자기만의 욕망을 지닌 하나의 인간이지요. 아이의 욕망이 엄마와 같을 수는 없어요. 님과 친정엄마가 어떻게 다른 지 생각해 보세요. 어차피 자식은 부모와 다른 욕망을 지닌 인간으로 살아갑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거친 세상에서 아무 일 없이 살아나게 하려면 뭐든 일단 부딪혀 봐야 하잖아요. 지금 아이는 자기가 어떤 욕망을 지닌 인간인지를 시험해 보는 중입니다. 아이가 엄마 몰래 화장을 했어요. 화장을 해 보니 자기가 한결 더 예뻐 보여요. 꾸미는 걸 더 해보고 싶겠지요? 그게 그 아이의 욕망입니다. 자기를 꾸미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마음 말이죠. 어릴 땐 엄마가 머리도 묶어주고 꾸며줬지만 이젠 자기가 혼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꾸며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짧은 치마도 입고요. 호르몬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겁니다. 아이는 무죄예요. 지금까지는 그냥 '어린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왔지만 호르몬이 '여자'로 살아가는 걸 배우라고 시키잖아요. 호르몬이 엉덩이와 가슴을 키웠어요. 여자 흉내도 내고 싶어요. 예뻐져서 남자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예요. 남자 애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어린이'는 '남자', '여자'로 삶의 방향을 바꿔요.
어떤 아이는 화장하는데 흥미가 없기도 해요. 짧은 치마는 아예 민망해서 꿈도 못 꾸고요. 그런 아이는 화장할 기회가 와도 잘 안 합니다. 치마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그 아이의 욕망인 거예요. 어른 중에도 색조화장까지 하는가 하면 스킨, 로션만 바르는 사람도 있잖아요. 마찬가집니다. 딸아이 입장에서 자기가 어떤 아이인지 알려면 일단 해 봐야지요. 좋은지, 싫은지요. 그런데 님은 딸아이에게 그걸 하지 말라고 하시잖아요. 딸아이 입장에선 황당하게도 말이죠. 아이는 하고 싶어 죽겠는데 엄마가 싫어하는 걸 아니 어쩌겠어요. 포기해야 할까요? 아님 몰래라도 해야 할까요? 욕망이 건강한 아이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어떻게든 하려고 노력하는 게 정상이지요. 이 시기 아이에게 옳고 그른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님의 딸이 엄마 무서워서 끝내 화장도 못해 보고 사춘기를 지나 성인 아가씨가 되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언젠간 화장을 하게 되잖아요. 하지만 화장을 하면서 무의식에 저장되어 있는 죄책감을 만납니다. 예전에 엄마 몰래 화장하면서 느꼈던 죄책감이지요. 이게 문제예요. 왜냐하면 아이 입장에서 굳이 느낄 필요가 없는 죄책감이거든요. 님이 만약에 이렇게 말해주는 엄마라면요.
" 우리 딸, 요즘 화장품에 관심 가지는 것 같네? 주말에 엄마랑 같이 화장품 구경하러 나가 볼까? 피부에 좋은 화장품에 대해 알려 줄게."
화장은 어찌어찌 참겠는데 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는 건 걱정되신다는 엄마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못 입게 하시고요. 이 방법도 바꿔보세요. 그냥 아이에게 솔직해지세요. 딸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어서 화나는 게 아니잖아요.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다가 혹시 불쾌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시잖아요. 그럼 걱정되는 그 마음을 직접 얘기하세요.
"우리 딸이 짧은 치마 입으면 미스코리아보다 예쁜 건 엄마도 잘 알겠는데... 혹시라도 그것 때문에 엄마 없는 데서 나쁜 일이 일어날까 봐 걱정돼..."
만약에 이럴 때 화를 내시면 아이는 '엄마는 내가 예뻐지는 게 싫은가 봐. 내가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거지.'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걱정을 하시면 '내가 짧은 치마를 입으면 예뻐 보일 수도 있지만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욕망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면서 엄마의 걱정을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과 상담하다 보면 아이들이 하나같이 이런 말을 해요.
"아, 그런데 엄마들은 왜 말을 꼭 그렇게 꼰대같이 하냐구욧!"
애고, 아이들이 이렇게 철이 없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건 이 시기 아이들에게 중요합니다. 아직 어리니까요. 이놈들이 무슨 생각이 있는 애들인가요. 강아지랑 수준이 똑같은걸요. 아시잖아요. 잘 해주면 졸졸 따르다가도 한 번 야단치면 저 구석에 혼자 가서 주인 신발 물어뜯는 강아지요.
* 아이는 엄마가 관리하며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세요.
그 이전이라면 몰라도 일단 사춘기가 되면 아이는 키우는 사람 의도대로 안 돼요. 절대로요. 님은 누군가의 '관리'대로 고분고분 크셨나요? 원래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지 않아요. 이걸 받아들이는 순간 부모는 큰 짐을 덜 수 있습니다. 아이의 사춘기 행동들은 부모 잘못이 아니거든요. 다 지들이 그럴만하니까 지랄들 하는 거니까요. 아이가 어릴 땐 엄마 말에 고분고분해하지요? 엄마가 좋아서가 아닙니다. 말 안 들으면 생존에 지장이 있으니까 할 수 없이 듣는 거죠. 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갑자기 없던 배짱이 막 생겨요. 호르몬 때문에요. 대책도 없이 대들고 반항하고 어깃장을 놓아요. 엄마 속 뒤집어지든 말든요. 하지만 이게 다 아이가 '어린이' 껍질을 벗는 과정입니다. 엄마도 아이와 함께 껍질을 벗고 성장하세요. '어린이'를 키워 온 엄마의 가면을 벗고 '사춘기'소녀 엄마의 가면을 쓰는 거지요. 아이가 짧은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다 다른 아이 엄마 눈에 띄었을 때 부끄러우셨다고 하셨어요.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 마음이어서 그래요. 하지만 '어른 되기 직전'인 사춘기 아이의 엄마의 가면으로 바꿔 쓰면 시각이 달라집니다. 아이더러 짧은 치마 입고 돌아다니라고 님이 일부러 시키신 거 아니잖아요. 그런 아이로 키우려고 작정하신 것도 아니고요. 아이가 스스로 자기 욕망을 알아보려고 용기 있게 나선 겁니다. 엄마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얼마나 대견합니까? 다음에 또 아이의 치마에 대해 말하는 엄마가 있다면 이렇게 대응해 보세요.
"우리 딸이 패션 디자이너가 되려나 봐요. 패션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님 이런 얘기를 하신다면 그 이야기는 돌고 돌아서 결국 딸아이 귀에도 들어갑니다. 아이는 감동할 겁니다. 자긴 엄마에게 혼날 줄 알았는데 엄마가 자기편이라는 게 또 고맙기도 하고요. 그래서 다음엔 역시 짧은 치마를 입더라도 엄마 입장을 한 번 더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심하게 나가면 우리 엄마에게 부담이겠구나, 생각하겠죠. 자연스럽게 행동도 달라질 겁니다. 그전까지는 엄마에게 들키지 않는 게 목적이었잖아요. 그래서 옷을 감춰야 했고요. 말 한마디로 이렇게 반전이 일어납니다. 좋은 직장 걷어차고 문학하겠다는 제자 녀석도 만약 그 아이가 사춘기 때 자기가 문학을 할지, 말지를 고민할 기회가 있었더라면,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서 어떤 결론을 내렸다면, 뒤늦게 여러 사람 놀라게 하진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 아이에게 그런 '허튼짓'을 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오로지 안전한 길로만 이끈 부모님의 '관리'가 책임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내가 낳은 내 아이를 끝까지 '관리하고야' 말겠다는 부모님이 정말 계십니다. 이런 분들과 상담하면 이런 이런 말씀을 하세요.
"아이가 성숙할 때까지는 엄마가 어느 정도 이끌어 줘야 해요. 엄마는 이미 사춘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잘 아니까요. 엄마가 도와주면 아이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어요."
네, 맞는 말씀입니다. 어른이 이끌어주면 좋지요. 문제는 '언제까지'를 아이가 성숙할 때라고 볼 건지, 그리고 '어느 정도'가 적당한 정도인지를 엄마가 일방적으로 판단한다는 겁니다. 아이는 엄마의 이 기준을 받아들일까요? 그래서 이런 엄마는 끝없이 아이와 싸웁니다. 정확히 말하면 싸우는 게 아니라 엄마가 아이를 괴롭히는 거지요. 아이가 성숙해져도 엄마가 보기에는 아직 성에 안 찰 거거든요. 엄마 눈에 자식은 평생 미성숙한 존재니까요. 그러니 평생 부모는 자식의 부족함을 한탄하고 자식은 부모의 집요함에 눌려 살지요. 아이는 엄마의 간섭과 통제를 힘들어합니다. 참고 참으며 엄마 말에 순응하면 좋겠지만, 요즘 그런 아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는 엄마를 속이기 시작합니다. 화장해 놓고 안 한 척하거나 짧은 치마를 엄마 모르게 숨겨놓는 거지요. 어때요, 님의 딸아이와 비슷하지요? 님이 아이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님은 아이를 이끄는 게 아니라 마마걸을 만들고 싶은지 모릅니다. 마마 걸은 키우기가 쉽습니다. 엄마가 강력하게 아이를 장악하고 있으니까요. 마마걸은 처음에는 엄마의 통제를 거부하는 듯 보여도 오래 못 버티고 굴복합니다. 버티면 자기가 힘들어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거든요.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순응하면서 자기 욕망을 조금만 감추면 의외로 편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엄마가 다 알아서 결정해주니까요. 진로나 대학입시처럼 자기 삶의 큰 국면을 만나도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어른인 엄마가 정해주는 대로 하면 되니까요. 이렇게만 되면 엄마는 편해요. 하지만 아이 인생은 어떨까요? 엄마는 아이 곁에 평생 있을 수 없잖아요.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갈 때쯤이면 문제가 생깁니다. 성인이 되면 데이트도 하고 직장생활도 하잖아요. 문제는 그때가 되어도 아이는 자기가 혼자 결정하는 걸 불안해합니다. 멋진 남성에게 데이트 신청이 들어와도 이걸 받아들여야 할지 말아야 할지, 첫 데이트에 어떤 옷을 입고 나가 어떤 이야기를 해서 상대의 호감을 얻을지에 대한 확신을 못 가집니다. 정말 이런 아이가 있을까 싶지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몸이 안 좋아 결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엄마가 대신 회사에 전화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교사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가 1학년 아이들을 싫어하니까 6학년 담임 주라고 학교에 전화합니다. 만약 어떤 교사의 엄마가 그런 전화를 걸어온 걸 교사들이 안다면, 그 교사는 각오해야 합니다. 앞으로 교사로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를 요. 이 정도면 엄마도 병이라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그 엄마는 자기가 심각하다고 생각할까요? 아마 자기가 아이를 잘 관리해 키워서 교사 만들었다고, 역시 아이는 관리를 해서 키워야 한다고 주변에 자랑하겠지요. 심지어 이런 걸 엮은 책도 꽤 많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책을 비법 인 양 사고요.
마마보이, 마마걸의 비극은 사회성이 떨어져서 성인기를 불안하게 산다는 겁니다. 그것까지 엄마가 대신해 줄 수는 없으니까요. 더 큰 비극은 자식의 불안한 성인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관리'를 해 주던 부모는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교실에는 마마보이, 마마걸이 꽤 있습니다. 당연히 그 수만큼의 부모도 있겠지요? 상담하다 보면 이런 주장을 듣습니다.
"일단 지금은 마마 걸이란 놀림을 듣더라도... 그냥 두면 아이가 이도 저도 안 되니까... 일단 엄마가 끌어줘서 키우고... 아이가 성인이 되면 그때부터 혼자 하게 하면 되지요."
될 것 같지요? 근데 그게 참 어려워요. 독립심은 사춘기 때 완성되거든요. 때를 놓치면 체화가 잘 안됩니다. 어릴 때 부모가 오냐오냐 키운 자녀가 성인이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거 주변에서 많이 보시죠? 그 자녀들도 독립하려고 애쓰는데 안 되니 그러는 겁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식이 부족해 보이니 자꾸 나서서 챙기게 되고 자식 입장에서는 한 번 의지하게 되니 자꾸 의지하게 되고...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에 보면 도대체 저 집안은 부모가 잘 못 키워서 자식이 저 모양인지 자식이 모자라서인지 부모가 저 극성인지 애매한 상황이 되는 거지요. 마마 걸을 키우는 엄마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자기 아이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습니다. 내 아이가 사춘기를 잘 극복하고 좋은 어른으로 자랄 거라는 확신이 없어요. 그래서 엄마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러면 뭐 합니까. 아이가 엄마를 벌써 거부하고 속이잖아요. 이대로 나가면 사이만 나빠질 겁니다. 엄마가 아무리 매의 눈으로 아이를 감시해도 아이의 사생활을 다 감시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엄마는 아이와 갈등하면서 아이를 피곤하게 하고 아이는 엄마를 피하게 됩니다. 흔히들 '우리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그런지 말이 없다.'라고 하지요? 부모를 피하는 걸 말이 없다고 해석하니 안타까울 밖에요. 아이 입장에서는 자기 내면의 불안과 호기심을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어 합니다. 특히, 자기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는 부모에게요. 그런데 부모가 화만 내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외로워도 입을 다물밖에요. 엄마 입장에서 어떤 점이 걱정되시는지 솔직하게 이야기하세요. 예를 들면 이렇게요.
"이년아, 니가 그렇게 잘났냐? 그따위로 살 거면 니 맘대로 해. 나중에 징징대기만 해, 아주 그냥."
하지만 님의 아이는 아직 어린 6학년. 조금 순화시켜 볼까요?
"네가 선생님한테 대들고 노래방에 다니고 짧은 치마 입고 친구와 싸우고 화장한다는 말 들었어. 네가 엄마 몰래 그런 걸 해서 놀랐어. 널 믿었기 때문에 속상했고. 그래서 너에게 화를 냈어... 미안해. 솔직히 엄마도 네 시기를 겪어 봤기 때문에... 너희 때는 그럴 수 있다는 것도 알아. 그런데 엄마는 지금 그러는 너를 보는 게 너무 힘들어. 네가 학교에서 문제아가 되고 공부에서 멀어지는 것도 두려워. 네가 잘 자라지 못할까 봐. 그 원인이 엄마 때문일까 봐."
이쯤이면 아이의 표정이 좀 풀릴 겁니다. 아이들도 자기들의 그런 행동들이 엄마 때문이 아니라는 건 알거든요.
그런데 엄마가 부드럽고 진지하게 나가니 녀석도 가책을 느끼겠지요. 그때 이 말씀을 바로 이어서 하세요. 분위기 좋으면 눈물도 한 방울 흘리세요. 아주 쐐기를 박는 거죠.ㅋ
"너를 낳고 키워오면서 엄마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 힘든 일을 해도 신이 나고 속상한 일이 생겨도 힘이 나는 거야, 글쎄. 모두 너 때문이었어. 우리 딸 키우는 게 너무 재미있고 좋아서. 너를 보기만 해도 막 좋았어. 내가 무슨 복을 받아서 너 같은 이쁜 딸을 낳았을까? 사실은 지금도 그래. 엄마는 너랑 사이좋은 엄마-딸로 살고 싶어. 우리 딸이 잘 커서 되고 싶은 꿈을 이루며 사는 걸 보면서 엄마는 늙어가고 싶어. 그러기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어. 널 위해 내 모든 걸 바쳐도 하나도 안 아까워. 엄마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엄마는 그동안 우리 딸이 아직도 초등학교 1학년 입학할 때처럼 어리다고 생각했나 봐. 그때처럼 엄마 말에 고분고분한 아이로 커 줄 거라고 생각했나 봐. 벌써 이렇게 커서 멋진 아가씨가 됐는데도 말야. 앞으로 우리 딸이 중고등학교에 가고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꿈도 이루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이 세상 그 어떤 사람보다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엄마도 무조건 못하게 하지 않고 네가 하고 싶은 걸 네가 당당하게 해 보게 네 편에서 도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