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아이를 위한 변호
질문 : 2학년 아들과 6학년 딸을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2학년 아들 때문에 고민인데 하소연할 곳이 없어 여쭙니다. 얼마 전, 학교에 상담 갔다가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ADHD 진단을 받아 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 되어 수업 진행이 안된대요.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일부러 필통을 떨어트려 쏟아진 연필을 줍는다는 구실로 책상 밑에 들어가 안 나온 적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다툼이 많고 놀 때에도 과격한 행동(교실 문을 세게 닫아 친구를 다치게하거나 복도에서 뛰다가 다치는 등)을 해서 위험해 보인대요. 평소 아이가 급하고 정리가 잘 안 된다는 생각은 했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아빠 성격을 닮아 그런가 보다 했어요. 다른 아이들보다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은 듭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정리가 잘 안 되고 엘리베이터를 타도 안전 손잡이 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식당에 가면 가만 앉아 있지 않았고 뛰어다니고요. 뜨거운 음식이 있는 곳에 넘어져서 응급실을 간 적도 있습니다. 그나마 스마트폰을 들려주면 가만 앉아 있습니다. 아이가 아빠를 무서워해서 아빠 말은 잘 듣는데 아빠가 없으면 저나 시부모님이 아이를 통제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놀이터에서 그네나 시소를 탈 때에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 위험하게 탑니다. 높은 곳에 매달리거나 과격한 놀이를 합니다. 눈을 뗄 수가 없네요.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아이가 어느새 나무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흙을 뿌리거나 돌을 던지며 놀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자주 야단치게 됩니다. 사실 예전 담임 선생님도 지나가는 말로 ADHD가 의심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번에 또 그 말을 듣고 보니 소아정신과 진료를 받아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시부모님과 남편이 반대를 해서 못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ADHD 검사를 받아봐야 할까요? 시부모님께서는 아이가 어려서 그런 거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라고 하십니다. 아빠도 어릴 때 개구졌지만 크고 나서 좋아졌다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
그 정도면 ADHD 맞겠네요. ADHD라는 게 별거 아닙니다. 집중이 잘 안 되고(AD-주의력이 모자람) 행동이 또래에 비해 좀 과격하면(HD- 과잉행동을 함) ADHD라고 판단합니다. ADHD가 뇌를 검사해서 이상 유무를 따져서 알아낸다기보다는 아이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거든요. 저에게까지 문의를 주시기까지 많은 생각을 하셨을 텐데, 처음부터 바로 ADHD라고 단정하듯 말씀드려서 서운하신지요? 하나마나 한 위로를 굳이 드리자면 ADHD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같은 사과나무라도 품종이 부사, 홍옥, 홍로 등 여럿인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키 큰 사람, 작은 사람, 운동신경 좋은 사람, 아닌 사람처럼요. ADHD도 심한 아이, 가벼운 아이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ADHD인 사람과 아닌 사람이 딱히 구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 중간에 있는 사람도 많아요. 실은 저도 그런 말 가끔 듣습니다. 도무지 정리가 안 되고 산만하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그런 성향을 한 두 가지는 가지고 있습니다. 정도가 심하면 치료를 하면 됩니다. 남편과 시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못 하고 계신다고요? 이번 한 번만, 눈 딱 감고 하세요. 진료 결과 ADHD면 치료하면 됩니다. 그분들 말씀대로 ADHD가 아니라면 다행인 거니까요. 만약에 ADHD가 아니라면 양육환경과 기질에 의한 거니까 또 그쪽의 해법을 찾으면 됩니다. 방법은 많으니 염려 마세요.
제가 블로그를 열고 상담을 해 드리다 보니 ADHD에 관한 질문을 제법 받습니다. ADHD가 아닌 아이를 굳이 ADHD인지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질문이 주로 많은데 님처럼 이런 질문을 하시는 용기가 훌륭하시네요. 용기 내셨으니 아이 문제도 잘 해결될 겁니다. 제가 ADHD라고 생각한 결정적인 근거는 저와 통화할 때 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서, 아이가 어릴 때도 키우기 힘드셨다는 말입니다. 아이가 너무 예민했다고 하셨죠? 큰 아이와 달리 젖을 잘 먹지 않았던 점, 낮밤이 심하게 바뀌어 종일 업고 있던 날이 많았던 점, 유난히 칭얼거려서 돌보시는 시부모님께서 힘드셨던 점, 놀다가 다치는 일이 잦았던 점, 떼를 많이 쓰고 뭔가 불안한 아이처럼 이랬다 저랬다 하고, 심지어 틱 현상(지금도 손톱을 물어뜯는)까지 있었던 점 말입니다. 유아기 때 이랬던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신체 성장을 하면서 과잉행동 양상도 유아기 때보다 확대되고 있고요. 이 상황에서 지금 2학년인 아이는 몇 년 후 고학년이 되면 '고학년스러운' 문제행동(학교 폭력, 스마트폰 중독, 게임 중독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참고로, 제가 담임했던 고학년 ADHD 아이가 보인 모습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 친구들과 관계 부적응, 폭력 문제 발생(사회성 부족 문제로 겉돌거나 또래들에게 배제됨)
- SNS 활동 과다(친구들의 글에 심한 댓글을 달아 분쟁에 휘말림)
- 게임에 빠짐(여럿이 팀을 이루는 게임보다 혼자 하는 폭력성 게임에 몰두하는 경향)
- 성격이 급함(과제를 빨리 하다 보니 충실도가 낮음)
- 승부욕이 너무 강함(이기는 것에 집착해 규칙을 자기 맘대로 바꾸려 하거나 질 것 같으면 중간에 빠져버려서 친구들이 싫어함)
- 학습 부진(집중력 부족으로 이해력, 집중력이 요하는 도구 교과(국, 수, 사, 과)에 약함)
이 아이가 어떤 치료도 받지 않은 채 20년이 흐르면 어떻게 될까요? 성인 ADHD의 경우 이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위험한 행동으로 다치는 경우가 많아 병원에 자주 감
- 충동적(쇼핑중독, 무모한 일에 도전)이고 폭력적인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음. 아동학대를 하는 부모가 될 가능성이 높음.
- 이성의 호감을 얻기 힘들어 이성교제가 어려움. 결혼 생활의 유지가 어려움.
- 직장을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 직장에 들어가도 오래 버티지 못함. 집중력 저하로 작업에 어려움을 겪음.
- 자극적인 것들에 잘 빠짐(도박, 약물, 게임, 음주 등)
- 범죄에 빠질 가능성이 높음.
우울한 전망을 드려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여러 연구 결과가 이렇습니다. 지금은 아이가 어리고 부모님이나 교사의 힘으로 어느 정도 통제 가능하기 때문에 증상이 덜 드러나지만, 자라면서 힘이 세 지고 머리(자의식)가 커지면 어른의 말을 잘 안 듣기 때문에 부모님이 힘들어집니다. 지금부터 아이의 성장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나빠지지 않도록 이끌어 주시면 아이는 시행착오를 안 겪어도 됩니다. 전문가의 안내가 필요하고 부모님과 누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효과는 분명히 있으니 포기하지 마세요.
* 아이가 ADHD라고 해서 기죽지 마세요.
당연합니다. 님이 일부러 그런 아이 낳은 게 아니잖아요. 조심, 또 조심해 가며 태교하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낳으셨잖아요. 그런데 그런 아이가 태어난 겁니다. 어떤 엄마에게나 그런 아이는 태어날 수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님에게 아이의 가정교육 운운하며 손가락질합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그들이 잘나서 그들의 아이가 ADHD 아닐까요? 단지 그들이 그런 아이를 낳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찌 보면 운 좋은 엄마인지 몰라요. 님에게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런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운이 나빠서 ADHD 아이의 엄마가 된 게 아닙니다. 가끔 상담 와서 저에게 아이 자랑하듯 말하는 부모들을 봅니다. 자기 아이가 차분하게 공부 잘하는 게 부모인 자기를 '닮아서'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런 말을 합니다. 당신이 차분하고 공부 잘하는 아이를 낳고 싶었다면 '운이 좋은 엄마일 뿐'이라고요. 부모를 닮아서 잘 한다기보다, 인간의 능력에서 정상분포 안에 있는 아이들은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습니다. 선생으로 오래 먹고 살수록 제가 느끼는 건, '자식에 관한 한 영원히 자랑할 것도, 영원히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라는 겁니다. 사람의 생은 길기 때문에 아이의 삶이 언제 전화위복이 될지 알 수 없거든요. 우리 삶을 보세요. 우리가 살아온 길 자체가 그걸 증명하지요?
ADHD가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고(ADHD 아이의 부모와 상담하다 아이와 비슷한 성향의 부모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는 하지만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아이가 ADHD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부모가 과잉행동이나 충동조절 안 된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가 그걸 모방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친가, 외가 쪽 여러 세대의 부모를 거쳐 유전적으로 영향받은 결과지 엄마, 아빠에게 갑자기 어떤 일이 일어나서 그리된 게 아닙니다. 또 어느 쪽 유전이라고 해도, 이제 와서 그게 뭐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건 지금 님의 아이가 ADHD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만이 중요합니다.
전문가의 안내를 받아보시라고 했지요? 병원에 빨리 가셔야 하는 이유는 부모님이 이미 아이를 통제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통제 안 되는 아이를 키우는 건 부모 입장에서도 힘드신 일이지요. 이래저래 손이 많이 가니까요.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도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주변에서 너무 많은 제재가 들어오니 감당하기 힘들어요. 부모님만 힘든 게 아닙니다. 저는 이번 대답에서 부모님 입장보다 아이의 입장에 대한 편을 더 들어 보려고 합니다.
* ADHD는 아이 잘못이 아닙니다. 아이에게 덮어 씌우지 마세요.
검색해 보셨겠지만, ADHD는 원인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뇌의 문제로요. 아이가 정신이 없다는 건 산만하다는 뜻이니까 신경회로 쪽이 문제겠지요. 행동이 급하고 과격한 건 차분히 생각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거니까 전두엽 쪽 문제일 겁니다. 위험한 놀이를 주저 없이 한다는 건 충동조절이 잘 안 된다는 거니까 또 뇌의 문제겠네요. ADHD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긴 너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아이가 그렇게 변하고 싶어 그렇게 된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런 아이였잖아요. 다시 말해, ADHD 아이는 ADHD가 아닌 아이로 태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ADHD 아닌 아이의 상황을 모릅니다. 아이 처지에서는 다른 아이들이 이상한 거예요. 남자로 태어난 아이가 여자 아이의 마음을 다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났으니까요. ADHD는 장애일까요? 대부분은 장애가 아닙니다만 어떤 아이에게는 장애일 수도 있습니다. 장애라는 게 별거 아닙니다. ADHD 특성 때문에 아이가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면 장애입니다. 그런데 다른 장애에 비해 유독 ADHD 아이는 야단을 더 많이 맞습니다. 어릴 때부터요. 멀쩡해 보이거든요. 이런 아이가 자꾸 일을 저지르니 혼날 밖에요. 더구나 이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들은 대부분 부모로서 참기 힘든 것들이거든요. 우리가 시력이 약한 아이를 야단치지는 않지요? 대신 안경을 씌워주잖아요. 그런데 ADHD 아이는 야단을 맞습니다. 그 아이들에게도 야단치는 것 대신 안경에 해당하는 뭔가를 해 줘야 하는데 말이지요.
* 아이에 대한 담임 교사의 의견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교사들은 매일 수십 명의 아이들을 보고 해마다 새로운 아이들을 받아한 해를 가르쳐 다음 학년으로 올려 보내며 먹고삽니다. 오랜 농부가 농사를 잘 짓 듯 교사들 만큼 아이들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겉으로 그 증상이 확연하게 드러나게 마련인 ADHD 아이는 교사들이 금세 알아봅니다. 3월 첫날, 하루만 지켜보면 거의 알아요. ADHD 아이는 자기 행동을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거든요. 그럼 왜 교사들은 학기 첫날 바로 학부모에게 '당신 아이가 ADHD인 것 같으니 병원을 방문해 검사해 보시라'고 하지 않을까요? 교사 나름대로 ADHD인지 아닌지,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학급에 ADHD 성향의 아이가 들어오면 교사는 그 아이가 타고난 ADHD인지 아닌지를 파악합니다. 타고나지 않은 ADHD가 있다니, 무슨 뜻일까요? 똑같이 수업시간에 자리에 안 앉고 돌아다니거나 주변이 어지럽고 정신이 없는 아이라도 원래 그런 아이가 있는가 하면(이 경우 ADHD입니다.) 원래 태어날 땐 그렇지 않았는데 양육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는 아이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차가운 양육태도를 보이면, 그래서 공부를 못하면 야단을 맞아야 하는 경우, 뭘 잘 해도 칭찬 대신 무시와 멸시를 받은 아이는 일부러 공부와 동떨어진 행동을 하거든요. 공부를 잘하면 더 잘 해야 하는 아이인 거지요. 성적이 비슷하거나 떨어지면 매를 맞는다고 가정해 볼게요. 아이는 아예 자기가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되는 방법을 선택하겠지요? 반대로, 부모가 아이를 너무 방임해서 아이로 하여금 엄마 정을 너무 그립게 만들 경우,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에 ADHD 흉내를 냅니다. 아이 나름으로는 다 살아남기 위한 안간힘입니다. 멀쩡한 아이가 이런 연기를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사실 아이는 ADHD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 '공부 못하는 아이' 흉내를 낼 뿐인데 우리가 ADHD라고 혐의를 씌우지요. 이게 반복되면 후천적으로 ADHD 성향을 띕니다. 슬픈 일이지요. 이런 지경까지 아이를 몰고 가는 '어리석은' 부모가 정말 있을까 싶지요?
제가 굳이 증거를 대지 않아도 가끔 언론에서 소개해 주더군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TV 프로그램에도 가끔 소개가 되었고요. 이런 아이는 치료를 할 게 아니라 양육환경을 바꿔주면 고쳐집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ADHD인지, 그냥 ADHD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건지는 어떻게 알까요? 교사가 관찰하면 파악이 됩니다. 혼나지 않으려고 연기하더라도 아이는 아이거든요. 몇 가지 유도질문을 하면 금세 알아요. ADHD 아이들은 이런 경우 논리적인 대화가 잘 안 되거나 폭이 좁은 대화만 가능합니다. (ADHD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와 '대화'가 잘 안 통한다고 답답해하는데 근거 있는 말입니다.) 이런 경우 담임은 ADHD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알려줍니다.
학교에는 ADHD 아이 중 심한 아이와 덜한 아이가 섞여 있습니다. 정도가 심한 아이도 있고 그런 성향이 짐작은 되지만 아직 문제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아이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보통 한 반에 2-3명은 ADHD 성향이 있습니다. 대략 열대여섯 명 중 한 명 꼴이지요. ADHD는 정도가 다양해서 심한 아이부터 증상이 가벼운 아이까지 천차만별입니다. 학교는 이 중에서 정도가 심하다고 판단되는 아이에 한해 부모님께 알려드립니다. 이건 법으로 정해진 건 아니고, 담임교사가 판단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한 번 더 주춤합니다. 안 좋은 경험 때문입니다.
지금은 저도 나이가 들어 학부모님이 싫어하시거나 말거나 제가 그렇다고 생각하면 말을 할 만큼 능글능글(?) 해 졌습니다만, 지금보다 젊은 교사였을 때 ADHD 검사를 권유했다가 크게 힘든 적이 있거든요. 당시에는 ADHD라는 개념이 교육학 책에만 있을 뿐, 대중화되기 이전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대에 제가 부모님을 오시라 해놓고, 댁의 아이가 이러이러하니 한번 정신과 진단... 이랬으니 저도 참 어리석었지요ㅠㅠ . 제 이야기를 들은 부모님 표정이 굳어지시더군요. 곧바로 멀쩡한 아이를 '병신(?)' 취급하는 교사가 되어 민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교장실에 불려 가고 소명자료도 내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경우 부모님이 주장하는 내용은 주로 이러합니다.
- 애들은 다 이렇게 큰다. 나도 그렇게 컸는데 멀쩡히 애 낳아 키우는데 교사가 뭘 안다고 병신 취급이냐?
- 지금까지 키운 내가 보면 아무 이상 없는 아이다. 무슨 근거로 남의 자식을 ADHD니 뭐니 낙인찍느냐?
- 우리 애가 좀 개구져서 그렇지 집에 오면 심부름도 잘 하고 말을 잘 듣는 아이다. ADHD가 아니다.
- 선생이 문제다. 우리 아이를 삐딱하게 보는데 학교 가고 싶겠느냐?
- 이런 아이 잘 가르쳐 달라고 학교 보내는 거다. 선생이 애를 잘 구슬려서 가르칠 생각을 해야지 왜 병신 취급이냐.
- 아이를 ADHD다, 아니다로 구별하는 건 차별 아니냐. 내 자식 차별하지 마라.
이런 부모님을 만나면 힘듭니다. 학급에서는 일 년 내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데, 주로 ADHD 아이가 문제의 핵심에 있게 마련이지요. ADHD 아이들은 주로 싸움을 걸거나 집중이 어렵거나 주변 정리가 안 되거나(자기 방, 책상 정리가 어려움) 산만하거나 수업을 방해하거나 하니까요. 이럴 때 아이 부모님을 의식하다 보면 아이에게 잘못을 알려 주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고쳐야 할지를 알려주는 게 부담이 됩니다. 멀쩡한 자기 아이를 ADHD로 의심하는 담임이니 그 담임의 교육행위가 좋게 보일 리 없겠지요? 같은 말이라도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사사건건 학교에, 교육청에 민원을 넣는 걸로 자기 마음을 표현합니다. 문제는 저에게 적의를 갖고 있는 부모의 태도를 아이가 그대로 보며 자란다는 겁니다. 부모님이 선생을 나쁘게 보시니 아이 또한 제 훈육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겁니다. 그 아이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피해 아이가 여럿인데도 자기는 안 그랬다고 하면서 부모님께는 선생님이 자기만 야단친다고 호소합니다. 저 또한 아이 앞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이면 더 기고만장할까 봐 견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 그러면 담임의 통제력을 벗어난 그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힘들게 할 테니까요.
이럴 때 교사들은 아이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기록합니다.(행동 관찰 기록부) 그러다 부모님의 민원이 발생하면 그 기록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담임으로서도 꽤나 피곤한 일입니다. 저를 담임으로 만난 아이 또한 힘들긴 마찬가지였겠지요. 그러니 부모님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아이고, 거의 십 년도 훨씬 넘은 얘기네요. 그 녀석, 지금 어떻게 사느냐고요? 군대 다녀오고 잘 산다더군요. 이제 와서 보면, 제가 그때 너무 앞서갔지 싶습니다. 선생이 무슨 벼슬이라고, 제가 아이에 대해 정말 많이 아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런 이유로 아이의 ADHD 진단 권유를 망설이는 교사가 학교에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핑계로 교사도 학부모도 아이의 진단을 미룬다면 아이가 힘들어집니다.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도요. 교사는 일 년 가르치고 상급학년으로 올려 보내면 책임을 다 하지만, 부모야 어디 그런가요? 평생 책임이잖아요. 그래서 교사는 학부모에게 욕을 먹더라도 아이에 대한 의견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부모는 교사의 권유가 황당하고 믿어지지 않더라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치료하면 아이에게 일단 큰 도움이 되거든요. 학부모에게 '당신 아이가 ADHD인 것 같다', 고 말하는 상황이라면 담임 입장에서도 그럴만한 증거자료가 이미 있을 겁니다. 학급에서 관찰한 결과를 제시하겠지요. 그 증상이 가정에서도 비슷한지 물어 올 겁니다. 보시고 따져보시면 됩니다. ADHD가 주의력 결핍 - 과잉행동 증후군이니까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으로 나눠보면 되겠지요. 이럴 때 제가 주로 제시하는 증상은 이런 것들입니다. 하나씩 체크해 보고 절반이 넘으면 일단 의심을 해보세요.
* 또래에 비해 주의력 결핍이 의심되는 경우
- 학교에서 친구나 교사가 말을 할 때 잘 안 듣는다.
- 순서나 절차가 필요한 공부(국, 수, 사, 과)에 약하다. 체계적으로 분류하거나 나열하는 걸 어려워한다.
- 섬세한 작업이 어렵다.(예를 들어 미술시간에 오리기, 칠하기 같은 정교한 작업이 안 되거나 실수를 한다.)
- 친구들과 놀이를 할 때 오래 못 간다. 놀이를 재미없어한다.
- 연필이나 장난감을 자주 잃어버린다.
- 주어진 과제를 잘 못한다.
- 집에서 엄마의 잔소리를 자주 듣는다. 듣고도 잊는다.
- 뭘 하다가도 주변에 어떤 일이 생기면 금세 집중을 잃고 산만해진다.
- 가정에서 숙제하기를 싫어한다. 그것 때문에 부모와 갈등이 있다.
* 또래에 비해 과잉행동이 의심되는 경우
- 자기 차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급하게 나선다.
- 손발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
- 수업시간에 의자에 잘 안 앉고, 앉아도 꼼지락거린다. 선생님 허락 없이 자리를 뜬다.
- 조용히 침착하게 뭔가를 하는 게 어렵다.
- 교실이나 집에서 뛰거나 기어오른다. 못하게 해도 또 한다.
- 어른들이나 친구들의 대화에 참견을 하거나 끼어들어 방해한다.
- 정신이 없는 아이 같다. 마치 시동 걸린 자동차 같다. 실수가 많다.
- 말이 너무 많다. 수다스럽다.
- 엄마 말이 채 끝나기 전에 급하게 대답한다.
와, 기준이 어마어마하지요? 어떤 부모님은 이 항목에 모두 해당하는 아이가 정말 있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ADHD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부모는 ADHD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고통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 ADHD 아이들은 있습니다. 이런 아이도 자라면서 점점 좋아질까요? 네, 아이가 성장하는 기간 동안 조금은 좋아집니다. 잔인한 말씀을 드려서 마음 아픕니다만, ADHD는 시간이 지나면 좋아지지만, 완치가 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위 항목 중에서 지금 7개가 해당되는 아이가 어른이 되면 3~4개 정도로 줄어듭니다. 이걸 성인 ADHD라고 부릅니다. 주변 어른들 중에도 성격이 급해서 일을 그르치거나 실수를 하는 사람, 일을 할 때 집중이 잘 안 되거나 산만한 사람이 있지요? 성인 ADHD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제가 부모님께 ADHD를 설명드리면서 예로 드는 그림입니다. 아이의 머릿속에 여러 색깔의 화살표가 가득 들어 있지요? 방향도 제각각으로 마치 폭발하듯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나는 건 아이의 정신(관심사)입니다. 이렇게 관심 가는 게 많으니 집중이 어려워지지요. 어쩌다 집중을 해도 오래갈 수가 없습니다. 감도 높은 안테나를 수 천 개 지닌 아이 같다고나 할까요? 주변 곳곳에서 몰려오는 새로운 자극들은 아이로 하여금 어서 집중을 그만하고 자기에게 신경 쓰라고 자극합니다. 이런 아이가 집중해서 공부를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어른들은 이런 아이에게 끝없이 잔소리를 합니다. 어떤 잔소리일까요? 위에서 말씀드린 그런 증상의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고 하겠지요. 하지만 이건 아이 입장에서 너무 힘든 일입니다. ADHD 아이 입장에서는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지 않고 집중을 아주 조금만 하는 게 정상이지, 자리에 얌전히 앉아 오래도록 선생님을 향해 집중하는 건 너무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정 반대로 살라고 하니, 어린아이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ADHD 아이들은 그래서 한 번에 바뀌는 게 불가능합니다. 달리기가 잘 안 되는 아이더러 1주일 줄 테니 우사인 볼트처럼 달리라고 하는 것과 같잖아요. 이런 아이에게는 부모가 꾸준히 행동 안내를 해 줘야 합니다. 아이가 엘리베이터 손잡이 위에 매달리는 걸 좋아하면 그때마다 아이에게 그러면 왜 안 되는지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ADHD 아이들은 한번 못하게 해도 또 한다고 했지요? 백 번 천 번이라도 설명하고 또 해야 합니다. 손잡이는 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거기에 올라가면 떨어질 수도 있고 떨어져 네가 다치면 '돈이 드는 게 아니라' 엄마 '마음이 아프니까' 올라가지 말라고 말이지요. 왜 돈이 드는 게 아깝다고 하면 안 되는지 아시지요? 아이는 그걸 자기를 '싫어해서' 혼내는 걸로 듣거든요. 엄마 마음이 아프다고 들으면 자기가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엄마 걱정을 안 끼치려고 더 조심합니다. 우리는 아이의 그런 순수하고 예쁜 마음을 이용하는 거지요. 의외로 야단치는 것보다 효과가 높습니다. 그런데 질문을 보면 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식당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들려주시는 걸로 아이를 앉히려고 하시는군요. ADHD 아이들은 자극적인 걸 좋아합니다. 놀이도 더 자극적인 것(그러다 보니 위험한 놀이를 좋아해요), 게임도 자극적인 걸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자극적인 게임은 끝없이 아이를 빠져들게 합니다. 중독인 거지요. 식당에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마세요. 대신 아이와 아이가 좋아할 만한 대화를 나누세요. 식당에 가는 까닭이 좋은 사람과 만나 즐거운 대화를 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잖아요. 아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자기를 두고 어른들끼리만 즐거우니 아이가 어떻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재미있는 게 없는지 식당 안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 거지요. 식당에서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잘 보면 아이가 문제라기보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관심을 안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더러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말처럼 힘든 요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 돌아다닐 밖에요. 돌아다니다 보니 ADHD 아이들이 좋아하는 자극적인 놀이(뜨거운 불, 손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니며 놀기)가 눈에 보이네요? 아이는 그걸 그냥 즐기는 것뿐입니다. 그 상황에서 아이는 자기가 식당이라는 공공장소에 와 있다는 걸 잠시 잊어요. 대신 놀이터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ADHD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런 아이를 혼내잖아요.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무서워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 있는데서 야단맞는 걸 말이지요. ADHD 아이들은 혼날 행동을 더 자주 합니다. 그래서 늘 혼나지요. 하지만 ADHD 아이의 생각으로는 그게 부당한 일입니다. 비슷한 사례에서 아이가 담임인 저에게 했던 말은 이러했습니다.
아이의 말 : 어제 닭갈비 먹으러 갔단 말이에요. 근데 짜증 났어요. (왜?) 제가 닭갈비를 먹을라 그랬는데 무릎에 떨어져갖고요. (뭐가 떨어졌어?) 닭갈비요. 그런데 아빠가 내 머리를 때리고 팔을 잡아당겼어요. 눈물이 났어요. 또 먹을라 그랬는데 물을 뿌렸어요. 엄마랑 동생은 닭갈비를 먹는데 아빠가 저를 강제로 끌고 밖에 나가서 하나도 못 먹었어요.
(실제 상황 : 식당에서 아이가 뜨거운 닭갈비를 주걱(닭갈비 뒤집는 쇠로 만든 주걱)으로 뒤집음.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함. 그러다 아이가 쇠 주걱을 무릎에 떨어뜨림. 아이가 화상 입었을까 봐 아빠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겨 찬물로 열을 식히고 응급실에 감.)
ADHD 아이가 같은 상황을 두고 어른과 얼마나 다르게 인식하는지 느껴지시지요? 아이는 자기가 해도 되는 줄 알고(하면 안 된다는 걸 까먹고) 했을 뿐인데 자기는 닭갈비도 못 먹고 호되게 야단만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야단맞은 까닭은 자기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아빠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런 거고요. 이해가 안 가시고 답답하시지요? 이런 아이는 ADHD 아니어도 종종 있습니다. ADHD 아이들은 더 많고요. ADHD 아이는 집중이 잘 안 되기 때문에 상황의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아이의 말 어디에도 자기가 주걱을 흘렸다는 말이 없잖아요. 자기가 다쳐서 아빠가 급히 병원에 데려갔다는 말도 없고요. 이 아이 입장에서는 주걱 흘린 일, 병원 간 일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던 겁니다. ADHD 아이들은 종종 이렇게 맥락을 빼먹습니다. 제가 뭐가 떨어졌느냐고 묻는데도 아이는 쇠 주걱 대신 닭갈비라고 말합니다.(야단맞을까 봐 나름 방어하는 건지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아이가 ADHD라는 걸 이해하는 상황이었으면 아빠가 아마 이렇게 대처했을 겁니다.
- 아이가 쇠 주걱을 만지지 못하게 처음부터 차단(이건 뜨거운 거야. 우리가 만지는 다칠 수도 있어. 이따 식당 이모님이 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자. 대신 우리가 지난번에 먹었던 닭갈비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 화상 난 곳을 찬물로 식히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그 까닭을 설명해 줌(아이고, 저런! 아빠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우리 아들이 다쳤네. 아빠가 금방 치료해 줄게. 아파도 씩씩하게 조금만 참아!)
- 음식을 다 먹고 나서 아이의 기분을 살펴 들어주고 공감 줌(오늘 맛있는 닭갈비도 제대로 못 먹어서 슬펐지? 우리 아들 다쳤을까 봐 아빠도 가슴이 떨려서 제대로 못 먹었어. 우리 병원 가서 치료하자. 대신 치료 끝나면 우리 둘이 맛있는 거 먹자!)
아이가 ADHD라는 걸 안다면, 야단칠 상황에서 대신 설명을 해 주게 되겠지요. 이런 게 반복되면 아이도 자기 안전을 위해 조금씩 더 생각하게 되고, 자연히 사고가 줄어듭니다. 그걸 위해서라도 님이 아이의 진단을 받아서 시아버지나 남편께 아이의 상황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ADHD 아이들은 어른들에게만 이해를 못 받는 게 아닙니다. 또래집단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의 친구관계라는 게 자기와 비슷하거나 뭔가 통해야 만들어지는데 ADHD 아이들은 친구들과 소통이 자연스럽지 않아서 따돌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이 ADHD 아이를 따돌린다기보다는 알아서 그런 아이를 피하는 경우입니다. 같이 어울려 보려고 해도 놀이가 잘 안 되니까요. 님의 아이처럼 2학년이면 교실에서 알까기 놀이를 많이 할 텐데요. 이거 하나도 쉽지 않습니다. 두 아이가 알까기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봅시다. 한 아이가 먼저 바둑알을 손으로 튕겨서 상대방 알 하나를 떨어뜨립니다. 상대편 아이도 알 하나를 튕겨 반대쪽 알을 떨어뜨릴 차례지요? 이런 경우 ADHD 아이들은 있는 힘껏 알을 튕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근육 조절 능력이 떨어져서 일수도 있겠고, 급한 성격 때문이겠지요. (정확하게는 급한 성격 때문이 아니라 적당한 힘으로 바둑알을 튕길 만큼 침착한 상태가 되지 못해서)
있는 힘껏 알을 튕기면 그 알은 분명히 교실 어느 구석으로 빠져 들어가 버립니다. 상대 아이는 잃어버린 바둑알을 찾아오라고 화를 낼 겁니다. 놀이는 멈추겠지요. 이럴 때. '아, 미안해. 내가 당장 찾아올게. 그리고 다음엔 살살 한 테니 한 번 만 다시 하게 해주면 안 될까?'라고 말하는 ADHD는 많지 않아요. 대부분 같이 화를 냅니다. 자연스럽게 이 아이와 놀고 싶은 아이들이 줄어듭니다. 가위바위보를 해도, 어떤 놀이를 해도 ADHD 아이들은 성격이 급해서 놀이의 흐름 유지를 잘 못 합니다. 그래도 2학년이면 아직 그런 아이를 포용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사실은 포용하는 게 아니라 그 아이처럼 속도가 느린 아이가 놀이 상대가 되어주는 거지요.)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 눈에 띄게 주변에 아이가 없어집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ADHD 아이에 비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때문에 격차가 생기거든요. 이런 경우 부모님은 학급 친구들이 자기 아이를 따돌린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ADHD 아이 부모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그럴만합니다. 위에서 제가 언급한 예전 제 학부모님도 그러시더라고요.
모든 ADHD 아이들이 다 위의 예처럼 무시무시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기회에 꼭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보시라는 의미에서 제가 경험한 아이들 중 증세가 꽤 심한 아이를 예로 들었습니다. 일찍 진단을 받으면(18세 이전) 건강보험 적용도 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꾸준히 치료해 보세요. 아이도 편안해지는 길입니다. 보약을 먹으면 낫는다더라, 어떤 민간요법이 특효라더라, 이런 말은 믿지 마세요. 세상에 그런 법은 없습니다. 그런 걸로 바뀐다면 문제 아이가 왜 있겠습니까?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버는 나쁜 사람들 얘기에 넘어가지 마세요. 검증된 전문가만 신뢰하세요.
ADHD인 동생의 바른 누나인 6학년 큰 아이의 역할도 부모님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누나 입장에서 보면 동생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 부모님 손이 많이 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대신 자기에게 그만큼 관심이 덜 온다는 것도요. 6학년 여자 아이는 ADHD 아이만큼이나 격변이 큰 시기입니다. 큰 아이에게 동생 일과 관련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신경 써 주세요. 오누이 관계가 어릴 때 건강하게 형성되지 않으면 나중에 부모님이 늙고 두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동생이 누나의 짐이 됩니다. 누나가 동생을 가엽게 여기고 잘 돌봐 주면 좋지만, 보통은 동생과 거리를 두려 하거나 아예 부모님과 함께 동생을 야단치는 관계가 될 수 있어요. 이러면 동생은 세상에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자랄 때도 남들과 달라서 힘들었는데 커서도 동기간의 배척을 받는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우애를 잃고 서로 반목하며 살아는 가는 걸 보는 일도 괴롭고요. ADHD 진단을 받으면 의사가 부모님과 누나에게 알맞은 역할을 안내할 겁니다. 그런데 역시 '어린' 누나 입장에서 그걸 잘 지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누나를 나무라지 마시고 설득하세요.
시부모님께서 아이의 검진을 반대하시는 건 아이가 ADHD가 아닐 거라는 믿음 때문일 겁니다. 또는 그러길 바라고 계시거나요. 하지만 ADHD는 말을 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님이 ADHD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시부모님께서,
'말이 씨가 된다는데, 넌 애 엄마가 되어 가지고 그런 무서운 말을 하느냐'고 야단치셨다고 하셨지요?
그래도 병원에 가 보세요. 님은 엄마잖아요. 아이 양육에 관한 한, 엄마의 판단이 가장 우선입니다. 지금 아이 입장에서 자기를 가장 끝까지 책임질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니잖아요. 시부모님께서 엄마인 님의 양육 방식에 대한 개입(참견)이 많으시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셨지요? 통화하는 내내 님이 아이 양육 관련해서 전면에 나서거나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전 그 부분이 걱정스럽습니다. 보통은 젊은 엄마, 아빠가 주도해서 자기 아이를 키우고 시부모님은 영향력이 작은 경우가 많은데 님은 그 반대거든요. 어떤 사정인지 제가 다 알 수는 없지만, 기본 전제는 '아이는 엄마가 키운다'라는 겁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는 대부분의 일을 부모님께서 해 주시지만, 교육이나 양육에 관한 주 결정은 엄마, 아빠가 하도록 바꿔 보세요. 아이가 어릴 때 하셔야 합니다. 눈 딱 감고 한 번 야단맞을 각오 하세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으니까요. 이 기회에 아이의 온전한 양육 주도권을 얻으세요.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는 직장맘의 경우, 아이에 양육에 대해 제대로 의견을 못 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아이 맡긴 죄인'이라고 어떤 엄마는 표현하시더군요. 부모님께 아이를 부탁드렸으니 감히 이러시라 저러시라 못하겠다는 겁니다. 물론 무리한 부탁은 하시면 안 되겠지요. 또 시부모님의 양육방식도 존중하셔야 하고요. 하지만 이런 경우까지 양보하시면 안 됩니다. 심지어는 상담주간에 조부모님이 오시는 경우도 봤어요. 엄마를 배제하고 말이지요. 아이는 조부모가 키우고 있으니 엄마는 굳이 상담할 필요가 없다는 분도 봤습니다. 세상에! 자기 아이에 대해 상담할 필요가 없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요? 조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사랑해도 엄마만 하겠습니까? 그 조부모님이 아무리 아이 키우기 선수라고 해도 아이한테는 엄마가 따로 있잖아요. 엄마. 세상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 말입니다.
만약 아이가 ADHD로 진단이 나오면 전문가가 치료를 시작할 겁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아이의 행동을 조절하는 약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지요. 약을 먹으면 아이가 바로 효과가 나타납니다. 우리 반 아이의 경우, 어쩌다 약을 안 먹고 오는 날은 제가 알아볼 수 있었을 정도로 행동의 차이가 컸습니다. 약을 먹으면 아이의 행동이 절제가 늘고 학습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집니다. 약을 안 먹으면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 아이는 평소 친구 책상 위에 장난감이 있으면 허락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친구가 항의하면 바로 싸움이 되곤 했지요.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니까 아이들도 담임인 저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오는 날이면 행동이 달라지더라고요. 친구 책상 위에 있는 장난감을 함부로 가져가지 않아요. 친구가 놀자고 권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도대체 약을 뭘로 만들었길래 그런지 모르지만, 아이의 어떤 행동을 정지시키거나 또는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판단하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약의 종류나 기능, 부작용 등에 관한 건 전문의가 판단하고 설명해 줄 겁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ADHD라는 용어가 생소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과거엔 ADHD 아이가 없었을까요? 생각해 보니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도 ADHD에 해당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축구 골대에 막 올라가고(그러다 떨어져 무릎이 까지기도 하고) 공부시간에 자주 떠들고, 말썽도 잦아서 선생님께 늘 혼나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런 아이가 ADHD라는 이름으로 구별되어 약을 먹거나 따로 관리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아이들은 으레 그렇게 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부산하고 정신없어서 그렇지, 사지 멀쩡하고 말 알아들으니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요. 이웃들 사이에도 ADHD 아이는 '조금 개구진 아이' 정도 지 이상한 아이라는 의식은 없었습니다. ADHD 아이들은 그렇게 가족과 동네에서 긍정적으로 인정받으며 자랐습니다. 집집마다 아이가 많다 보면 어떤 아이는 부산하고 어떤 아이는 아니기도 하잖아요. 부모 역시 먹고살기 바쁘니 아이에 대해 자세히 관찰할 여유가 없었던 겁니다. 이런 정서가 ADHD에게는 오히려 좋은 시절이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정마다 아이가 한두 명인 사회가 되고, 아이들에게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ADHD는 서서히 드러나게 됩니다. 아이가 적다 보니 그 아이에게 부모는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경제적인 여유도 생기다 보니 자식 교육에 모든 걸 겁니다. 아이들은 경쟁구도로 내몰리게 되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내 아이가 이웃 아이와 조금만 달라도 부모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ADHD로 진단받는 아이가 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건 아이들에게 잘 된 일일까요, 그 반대일까요?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판단하겠지요.
제가 어릴 때 아버지 없이 다섯 자식을 키워내신 제 어머니는 자식들이 공부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셨습니다. 새벽에 나가 밤에 퇴근하실 때까지 하루 종일 일만 하셨으니까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어느 날 장학금을 받아 온 적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 들으니, 그때 제가 공부를 좀 한다고 생각하셨대요. (그래서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돈 버는 대신 대학 간다고 할까 봐 무척 고민을 하셨다더군요.) 사실 제가 공부를 잘 해 장학금을 받은 게 아니라 형편이 어려워서 받은 거였는데 어머닌 모르셨어요. 만약 제가 ADHD였어도 제 어머닌 모르셨을 겁니다. 그냥 아이가 좀 정신없네, 그러셨겠지요. 님의 시부모님 역시 제 어머니 세대 시잖아요. 그분들이 ADHD를 모르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님은 요즘 엄마니까, 아이를 진단해 보셔야 합니다.
아이 키우는 문화를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들이 학교만 다녀오면 학원 대신 온 동네 골목을 뛰어다니며 놀던 그 시절, 툭탁거리며 다퉈도 어른들이 눈물 쓱 닦아 주며 등 두드려 주면 쉽게 화해하던 그 시절, 온 동네 어른들이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다 알고, 이웃 아이도 내 자식처럼 챙겨주던 그 시절. 바로 저나 님이 어리던 그 시절 말입니다. 생각만으로도 따뜻해지는군요.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 생각하니 더 간절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전과 비슷하던 시절을 구현할 수는 있습니다. 교육제도를 바꾸면 가능하지요. 아이들을 경쟁으로 내 모는 교육 대신 많이 놀게 하는 교육을 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뽑으면 됩니다. 그들은 국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아이들을 서열화시키는 걸 멈추겠지요. 그리고 더 놀게 할 거고요. 또 아래층, 위층 앞집 옆집 어른들이 서로 문을 열어 만나고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하면 됩니다. 그중에 좀 별난 녀석이 있더라도 아이들끼리 포용하고 잘 어울리게 해 주면 ADHD 아이도 훨씬 더 빨리 좋아집니다. 결국 ADHD 아이가 치료되지 않고 성인이 되어 부담하게 될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겠지요. 이런 교육을 반대하는 이들도 많을 겁니다. 내 아이가 이미 다른 아이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하는, 그래서 내 아이가 경쟁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노는 것보다 공부를 더 많이 시켜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아이들을 놀리거나 자유롭게 풀어주려는 지도자 대신 시험을 더 자주 보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어떤 사회를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아이가 사회에서 받을 대접이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