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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04. 2016

맞벌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까요?

엄마도 꿈이 있다고 말해 주세요.

질문 : 


3학년 남자아이를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제가 일을 시작해서 지금은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희 아이는 매일 아침마다 저에게 직장에 가지 말라고 떼를 씁니다. 엄마가 왜 일을 하는지, 일을 하기 때문에 어떤 점이 좋은 지를 설명하는데도 잘 안 통합니다. 전에는 안 그러다가 갑자기 떼를 써서 저도 힘들고 아이도 힘드네요. 엄마도 힘들게 일하고 있으니 좀 도와달라고 하면, '힘들면 일을 안 하면 되잖아.'이렇게 나옵니다. 출근하려고 하면 자기도 학교 안 가겠다고 버텨서 출근이 늦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떤 날은 제가 퇴근하자마자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합니다. 이러는 건 뭔지 모르겠네요. 일을 하던 초기에 비해 지금은 퇴근 시간도 앞당겨졌고 일정해져서 아이와 보낼 시간도 좀 늘었는데 아이의 반대가 여전해서 걱정입니다.


1, 2학년 때는 학교 돌봄 교실에서 5시까지 있었고요. 3학년부터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조금 놀다가 피아노 학원에 들러 집에 옵니다. 미안한 마음에 사 달라는 것도 비교적 잘 해주는 편이고,  생일파티도 친구들보다 더 성대하게 해 줬는데도 그때뿐이네요. 3학년이면 부모의 직장생활을 이해해 줄 것 같은데 아이는 왜 점점 더 어려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맞벌이로 부모의 애정을 충분히 못 받아서 그럴까요? 그렇다면 제가 당장이라도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사실 제가 시작한 일도 오랫동안 고전하다가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 지금 그만두면 손해가 너무 커서 그럴 여건도 못됩니다. 원래 가난하게 시작한 결혼이라 부부가 다 일을 해서라도 잘 살아보려고 하는데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어떻게 저를 이해시킬 수 있을까요? 이 상황에서 제가 직장을 접고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할까요? 친정 엄마가 같은 아파트에 사시면서 아이를 돌봐주십니다.(아이 맡기려고 집을 마련해 드렸어요) 그런데 올 들어 친정 엄마가 취미 활동을 시작하셔서 일주일에 3일은 오후에 안 계셔서 다른 돌보미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 상황이 이런데... 외할머니의 취미 활동을 참아 달라고 부탁드리는 게 나을까요? 아빠도 퇴근이 늦어서 아이 챙기기와 집안 살림은 외할머니가 주로 하시고 아이 교육은 학교와 학원에서 해결하고요. 아빠는 주말에 쉬고 저는 평일에 쉬는데 제가 쉬는 날은 가끔 학교와 학원을 빼고 체험여행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가 저와 함께 하는 여행(한 달에 한 번 정도)을 좋아해서 피곤해도 어지간하면 가는 편인데 이것도 언제까지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답 :


맞벌이하시랴, 아이 키우시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아이고, 참 장한 엄마네요.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그냥 일 계속하세요. 지금처럼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남의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도 열심히 준비해 오셨고, 요즘엔 사업도 슬슬 번창하는 중이라면서요? 이런 기회를 징징이 아들 녀석 때문에 놓칠 순 없지요. 그 녀석은... 그러려니 하세요. 엄마랑 떨어지기 싫어서 제 딴엔 떼를 좀 쓰나 보네요. 그래 봐야 그놈이 평생 징징대겠어요? 그러다 말겠죠. 지금이야 아이가 어려서 엄마 눈에 밟히겠지만, 아이는 그래도 다 크게 되어있으니 엄려 마세요. 맞벌이에 대한 죄책감도 갖지 마세요. 지금 엄마가 일하는 게 엄마 혼자 잘 살자고 그러는 건가요? 다 자식 잘 키우려고 하는 거잖아요. 칭찬받을 일이네요. 오히려 아이가 엄마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이고요. 아이도 그런 마음일 겁니다. 3학년이면 이런 거 이미 다 알아요. 학교에서 이런 걸 얼마나 많이 다루는데요. 지금까지 아이는 어버이 날에 엄마에게 감사 편지도 이미 여러 번 써 봤을 겁니다. 쓸 때 그냥 쓰나요? 아니에요. 쓰기 전에 한 명 씩 앞에 나가서 엄마에게 뭐가 고마운지 이미 발표도 여러 번 했을걸요. 근데 요노무시키가 지 엄마 앞에서는 어린 척, 떼를 쓰는 거죠. 징징대면 엄마가 자기에게 약한 모습을 보니이까요. 또 잘 하면 엄마가 직장 안 가고 자기랑 놀아줄 수도 있으니까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거죠. 그 정도 머리 되면 이담에 커서도 엄마 힘들게 지 밥벌이 잘 할 아이입니다. 네, 압니다. 제가 아무리 이런 식으로 위로를 드려도 님의 마음속에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여전할 거라는 걸요. 그래도 내려놓으세요. 아이 삶입니다. 아이가 받아들여야 해요. 그럴 나이 됐고요. 아이 밥은 안 굶기고 있으니 충분히 엄마 노릇 잘 하고 계세요.


아이 입장에서 엄마가 일을 한다는 건 재앙입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엄마와 함께 있고 싶어 하니까요. 아니, 함께 있어야 합니다. 가장 강력한 조력자면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대상이고, 항상 내 편을 들어주는 엄마.

그래서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온몸으로 드러냅니다. 제가 1학년 담임일 때 이런 풍경을 글로 써 놓은 게 몇 있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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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이의 꿈


나의 꿈 말하기.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 글자의 짜임을 배우는 국어시간에 나의 꿈에 대해 쓰라니 얼핏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요즘 아이들의 모든 교과에는 진로교육이 깊이 녹아 있다. 축구선수, 소방관, 선생님... 아이들이 각자 자기 희망을 쓰는데 한 아이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엄마가 되고 싶다고 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핀잔을 준다. 야, 넌 남잔데 어떻게 엄마가 되냐. 그 옆 아이도 거든다. 야, 너는 아빠라고 써야지. 다른 아이도 거든다. 으이구, 엄마는 어른 되면 그냥 되는 거야. 딴 걸 써. 아이가 나와 눈이 닿았다. 엄마가 너무 좋아서 썼어? 그러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선뜻 말한다. 사실은 나도 엄마가 되고 싶은데.  결국 모두 같은 마음인 것이다.




태어난 지 겨우 6년. 아직 엄마와 더 있고 싶을 나이인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오면서 엄마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나 보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일부는 학교 돌봄 교실로 가고, 나머지는 지역 아동센터에 간다. 집에는 저녁 무렵에 간다. 학교 돌봄 교실이나 아동센터에서는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체험도 있고 만들기도 있고, 부족한 학교 공부를 하거나 숙제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들이지만, 결국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 종일 엄마와 떨어져 뭔가를 배우기 위해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아이들 삶의 이면에는 일을 해야 하는 부모님들의 사정이 있다. 언제부턴가 엄마, 아빠 모두 일을 하는 사회가 되면서 아이들은 가정으로부터 떨어지게 되었고 국가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대신 맡아 줄 곳을 마련했다. 하지만 학교든 어디든 아이들을 부모 대신 맡아 주는 곳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가졌다 해도, 그곳에서 먹는 간식이 유기농, 친환경에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 해도, 마음껏 안기고 매달리고 떼쓸 수 있는 엄마의 품보다 더 나은 복지가 어디 있을까.


학교든 어디든, 아이를 맡아 돌보는 곳에서 아이들은 교육을 해야 할 대상이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하면 안 되는지를 아이가 이해하고 실천할 때까지 가르치는 곳이다. 이런 잔소리와 규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없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들으며 지내야 한다. 교사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교사는 엄마가 아니다. 그저 남인 것이다. 뭘 해도 내 새끼가 예뻐 보이는 엄마와, 가르치는 사람일 뿐인 교사라는 존재. 따뜻함에 있어 전혀 다르다.


아이들이 가끔 말한다. 아,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난 그럴 때, 엄마에게 연락해서 아이를 데려다 꼭 안아 재워주시라 하고 싶지만, 한참 밖에서 일하고 있을 아이의 엄마를 떠올리면 그렇게 못한다. 대신 돌봄 교실에 가서, 아이가 힘들어하니 이따가 한 잠재우면 어떻겠느냐고 말해 준다. 절대 엄마가 될 수 없는, 그저 교사일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면 모든 엄마들이 아이들을 맞아 줄 그런 세상은 언제쯤 올까. 학교가 끝나 집에 가면 항상 엄마가 밭에 있던 농촌에서 자란 나는 엄마와 떨어진 채 종일 집 밖에 머물며 자라야 하는 저 아이들의 성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난 학교에서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집에 가면 만날 테니까. 책가방 던져 놓고 마당 끝에 서서 엄마를 부르면 집 근처 밭에서 일하던 엄마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나를 보고 웃을 테니까. 결핍이 일상이던 과거에, 그것도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내가, 요즘 아이들보다 오히려 더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는 역설이, 요즘 아이들을 더 가엽게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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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이 정도면 이 아이의 엄마 마음은 어떨까요? 아이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듭니다. 아이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일하는 엄마와 떨어져 학교에 머무는 일 말입니다.


<저학년>

- 난 유치원 끊으면(졸업하면) 인제부터 집에서 엄마랑 있는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런데 쫌 이따 또 (초등)학교를 가라 그래서 깜짝 놀랬죠.

- 쫌 있으면 운동회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가 그날 어디 출장을 간다 그랬단 말이에요. 대신 할머니랑 고모랑 온다 그랬단 말이에요. 헐! (옆에 있던 아이가) 야, 대신 치킨이랑 니가 맛있는 거 다 사달라 그래.

- 지난번에 우리 엄마가 8시까지 (직장에) 갔단 말이에요. 그러니깐 나를 7시 반에 학교에 내려줬죠. 그때 쫌 무서웠죠. 학교에 아무도 안 왔으니깐요.

- 내가 센터(지역 아동 돌봄 센터) 끝나고 집에 가면 엄마가 집에 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엄마가 회식하고 오는 날엔 마크(마인크래프트, 게임) 해도 돼요.

- 우리 엄마가 늦게 왔을 때 아빠가 막 뭐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럼 나도 엄마한테 뭐라 그러죠. (뭐라고 하는데?) 으이구, 엄마. 때려쳐! 이러죠.


<고학년>

- 엄마가 일찍 끝나면 학교로 와서 같이 집에 가는 날이 있어요.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요. (왜?) 엄마랑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어서요.

- 우리 엄마가 ㅇㅇ회사 부장님으로 승진하셔서 옷을 샀는데, 헐! ㅇㅇ만 원짜리예요. 엄마가 딱 입었는데 엄청 멋지더라고요!

- 엄마가 상담 선생님이라서 저랑 말할 때 좀 친절하고 부드러워요. 저도 심리학과 가려고요.

- 엄마가 회식하고 술 먹으면 다음 날 아침에 못 일어나시거든요. 제가 우유에 선식 타 놓고 깨우면 엄마가 되게 좋아하세요.

- 우리 엄마 가게에 진상 손님이 있어요. 근데 요즘 따라 그 사람이 자주 온대요. 돈 벌어서 좋긴 한데 엄마가 힘들까 봐 걱정돼요.


저학년, 고학년 아이의 생각이 제법 다르지요? 저학년 아이들은 엄마와 떨어지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요. 심지어는 엄마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있습니다. 또 엄마가 무조건 집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이제 엄마의 직장생활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의 맞벌이는 기정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그 사이에 직장인으로서 엄마를 대하는 아이들의 인식이 자란 겁니다. 심지어 직장생활을 하는 엄마를 멋지다고 생각하는군요. 힘든 엄마에 대해 걱정할 줄도 알고(엄마 가게에 오는 진상 손님을 걱정하는), 잠이 부족한 엄마를 돕습니다.(엄마의 아침 식사를 챙기는) 한편, 엄마들은 저와 상담할 때 주로 어떤 말을 할까요?


<저학년>

- 제가 바빠서 아이들 준비물 챙기는 것도 어떤 땐 시간이 없어서 벅차요. 문자로 일주일 전에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 아이가 자꾸 제 일하는데 오려고 그래요. 전화도 몇 번씩 하는지 몰라요.

- 아이가 너무 어린 데 일을 시작했나 봐요. 이러다 아이 망가지는 건 아닌지...

- 직장 때문에 공개수업이랑 운동회, 학예회 참석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아이가 기죽을까 봐 걱정돼요.

- 아이가 아픈데도 집에서 보살필 수 없어 학교에 보내야 되는 상황이 엄마로서 힘들어요. 정말 그땐 별생각 다 하게 돼요.


<고학년>

- 제가 일하느라 돌보지 못해서 그런지 아이가 자꾸 겉도는 것 같아요. 예민한 시기(6학년)인데 저고 고민입니다.

- 아이가 저 몰래 화장을 했길래 뭐라 그랬더니 엄마도 하고 싶은 거 다 하잖냐고 대들어요. 제가 일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서 속상해요.

- 애들이 엄마 없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항상 불안해요. 요즘 사회가 험하잖아요.

- 제가 진상 손님 얘기를 했더니 아들(6학년)이 아빠 점퍼를 입고 가게까지 엄마 데리러 왔더라고요. (왜 아빠 점퍼를 입었을까요?) 그러면 어른처럼 보이니까 진상 손님이 겁먹을 줄 알았대요. 그날 감동했네요. 얘를 다 키웠구나, 생각했어요.

- 딸아이가 제 출근 옷 입은 사진을 찍어서 자기 페북에 올렸더라고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일하는 엄마들 마음에 깊이 깔려 있는 죄책감이 느껴지시나요? 일을 하기 위해서든, 다른 이유로든 엄마가 아이 옆에 있지 못하는 상황을 미안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님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어떤 아이는 엄마가 일하는 사이에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일찍 철이 들어서 엄마를 감동시키는군요.(고학년 엄마의 말) 이걸 보면 엄마가 아이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철이 들게 할 수도 있고 징징이가 되게 할 수도 있나 봅니다. 님은 어차피 일을 계속하실 거지요? 그렇다면 아이에게 엄마의 '죄책감'을 드러내며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자제하세요. 아이는 그럴 불안해하거든요.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문의하신 내용 중 이 문장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제가 퇴근하자마자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어깨를 주물러 주는 아이가 또 정 반대로 이러는 건 뭔지 모르겠네요."


아이는 지금 엄마가 일하는 걸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그것도 엄마가 '아주 힘든'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3학년은 아직 어린 나이잖아요. 그래서 아직 구체적으로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는 엄마의 일(노동)에 대한 상상을 안 좋은 쪽으로 부풀려 걱정합니다. 님의 아이도 그런 건 아닐까요? 아이들 상담하다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 우리 엄마가 ㅇㅇ생명 애푸피(FP, 보험설계사)인데요. 오늘 고객님 상담해주러 수원에 가야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엄마 차가 지난번에 고쳤는데 또 뭐를 교환해야 된대요. 수원이 머니까, 갔다 오다가 차가 망가질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제가 아빠한테 엄마 차 고쳐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깐 아빠가 엄마더러, 돈 쪼금 밖에 못 벌어도 되니깐 수원에 가지 말구 오늘 교환하라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엄마한테 그러라 그랬는데 엄마가 그건 다음에 교환하더라도 오늘은 무조건 수원 가야 된다 그러는 거예요. 

실제상황 : 아이 엄마에게 문의해 보니, 지난번에 엄마 차 내비게이션 수리를 했고, 이번에는 엔진 오일 교환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이 혼자 나쁜 상상을 함.


- 선생님, 저 오늘 일찍 가면 안 돼요? (왜?) 우리 엄마 가게(마트 정육 코너)에 고기 써는 기계가 수리 들어가서 손으로 고기를 썰거든요. 그래서 엄마가 손목이 시큰시큰 하대요. 파스 사러 가려고요. (확인 결과, 기계는 당일에 수리 완료. 엄마는 자기가 시큰 거린다는 말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함)


정작 어른들에겐 아무 일도 아닌 일을, 이 아이들은 왜 이렇게 크게 상상해서 걱정을 사서 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 엄마의 일에 대해 아이에게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가 불안을 사서 하고 있어요.

아이는 엄마가 지난번에 고친 내비게이션, 그리고 이번의 엔진오일 때문에 엄마가 큰 사고가 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에 대해 잘 모르는 아이로선 당연한 걱정이지요. 엄마 아빠가 차에 대해 대화하는 걸 아이가 들은 겁니다. 아이는 그 상황에서 엄마에게 '오늘 교환 안 하면 위험한 거 아니야?'라고 물어도 될 텐데 그럴 여유가 없었나 봐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아이가 이 정도로 크게 걱정하는 상황이면 분명히 몇 번이고 확인을 시도했을 겁니다. 그런데 엄마, 아빠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거지요. 아이로서는 우리 엄마가 차를 완벽하게 고친 다음에 수원을 가면 안심(?)이 되겠는데, 너무 태평해 보이는 엄마가 답답한 겁니다. 그걸 신경 쓰느라 그날은 공부고 뭐고 아예 혼이 절반은 나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죠. 오히려 엄마는 아이가 엄마 차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더군요. 아이에게 차 얘기를 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 엄마의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하지 않아서 아이는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겁니다.


3학년은 아이의 자의식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엔 그래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해요. 막상 고민은 하는데 그 고민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모를 나이다 보니 때론 황당한 고민을 하곤 합니다. 뜬금없이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우리가 다 죽나요?(뉴스를 보고), 뱀이 내 방에 들어오면 어떡하죠?(영화를 보고) 수선을 떨지요. 얼마나 귀엽습니까? 님의 아이 또한 엄마가 너무 힘들까 봐 어깨를 주물러 주었을 겁니다. 그러면 엄마가 덜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또 그런 행동이 아이 본인으로 하여금 걱정을 조금 더는 행동(엄마 어깨를 주물러 드렸으니 내일은 기운이 나겠지!)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아이의 걱정이 해소되지 않았던 거지요. 그래서 아이는 걱정이 완전히 해소되는 방법을 생각했을 겁니다. 엄마가 아예 일을 나가지 않으면 되는 상황을요. 그러니 떼를 써서라도 막을 밖에요. 이게 엄마 보시기에 걱정스러웠던 건 아닐까요?


* 엄마에 대한 아이의 애정 표현입니다. 

아이들이 엄마 걱정하는 마음을 들여다보면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른 친구네 엄마는 집에서 편하게 살림하면서 힘든 일을 안 하는데 자기 엄마는 매일 고생하는 게 안타까운 겁니다. 이쯤 되면 아이가 성숙한 거라고 봐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철드는 건 아이에게 장기적으로 좋지 않아요. 건강한 성숙함이 아니거든요. 지금 아이를 성숙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 죄책감이거든요. 이 죄책감은 누가 주었을까요? 엄마입니다. 엄마가 평소에 이런 말을 했을 겁니다.


"내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다 너 잘 키워보려고 그러는 거야."


우리는 자식들에게 알게 모르게 이런 말을 하곤 하지요?


너 때문에 (이혼을) 참고 사는 거야. 너 때문에 (안 죽고) 사는 거야. 너 때문에 이 고생하는 거야...


제 어머니께서도 가끔 그러시거든요. 자식들 아니면 도망을 열두 번씩 갔을 거라고요. 그럼 이런 말을 들으면서 자라는 아이는 어떨까요? 자기 때문에 부모가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겠지요. 내가 사랑하고 의지하는 엄마가 나 때문에 일부러 고생을 해야 하다니. 그럼 해결 방법은 딱 한 가지겠군요. 내가 없어지는 것 말입니다. 나 없으면 엄마가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저도 어릴 때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거든요.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이런 쪽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아이를 낳은 건 엄마잖아요. 아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이에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죠? 아이는 잘못이 없잖아요.


"나만 없어지면 되죠. 그럼 엄마 아빠도 나 땜에 돈 안 벌어도 되니깐 안 싸우겠죠."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말을 하는 아이가 가끔 있습니다. 아이의 표현 중에서 '없어진다'는 말의 의미를 아시겠지요? 아이는 엄마의 이런 말을 계기로 자기가 죽거나 멀리 떠나가는 상상을 합니다. 그러면서 슬퍼하지요. 이런 생각을 하는 아이가 어떻게 자존감을 키우겠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겠지요. 자기 존재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싶어 하는 아이는 정서적으로 성장할 동력을 못 갖춥니다. 그래서 아이가 어릴 땐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적어도 저학년일 때에는요. 그럼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나아질까요? 네, 나아집니다. 몸이 커 가면서 자의식도 생기고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새롭게 생겨나거든요. 이때부터는 이기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로는 좌절하지 않아요. 그래서 똑같은 상황에서도 저학년 때와는 다른 생각을 합니다. '나만 없어지면 되겠구나'에서 에서 '우리 엄마는 불쌍하기도 하지. 왜 나을 낳아서 이 고생을 하실까'로 바뀌는 거지요. 자기가 없어지거나 죽으면 해결되겠다는 내용은 더 이상 없습니다. 고학년 아이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요? 죽으면 해결된다는 건 결국 아이 본인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걸 의미하잖아요. 고학년이면 자기 존재에 대해 스스로 보호하려는 생각이 형성됩니다. 엄마가 불쌍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죽어 없어짐으로써 엄마의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위해 없어져 주기엔 아이 삶이 너무 소중해진 겁니다. 또 나를 낳은 건 엄마니까 엄마도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엄마가 불쌍하긴 하지만, 할 수 없다는 거지요.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건 엄마 책임이죠. 엄마가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했고, 나를 낳았잖아요. 내가 원했나요? 엄마가 원해서 낳았잖아요. 그러니 할 말 없죠."


요즘 아이들 말, 참 냉정하지요? 그런데 속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자기 엄마가 오늘도 일터에 나가서 고생하는 걸 생각하면 마음 아파합니다. 그렇다고 그 마음을 일일이 엄마에게 표현할 만큼 용기를 내지도 못 해요. 대신 마음속에 쌓아 놓지요. 그게 '죄책감'입니다. 저학년 때에는 님의 아이처럼 어깨를 주물러 주면서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함으로써 자기 죄책감도 해소하지만, 사춘기가 되면 쑥스러워서 그걸 표현 못 합니다. 엄마한테 그냥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면 되지 왜 못 하냐고 물으면 이런 대답들을 해요.


- 우리 엄마는 잘 때 끙끙 소리를 내고 코도 엄청 골아요. 그걸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요.

- 엄마가 가게 문 닫고 들어오면서 항상 장을 봐 오거든요.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다 얼른 내려가서 받아오니까 엄마가 고맙대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 우리 아빠가 두 번 말아먹었대요. 아빠가 돈을 잘 벌었으면 엄마도 고생을 안 할 텐데. 우리 아빠는 사업을 하면 안 돼요.


엄마가 고생하는 걸 보면 저절로 목이 메어 오는 아이들. 이런 속마음은 쉽게 열기 힘들다는 걸 벌써 아는 겁니다. 대신 죄책감으로 쌓아 놓겠지요. 고학년 아이 중에는 도덕 수업시간에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짓는 아이도 있습니다. 특히 부모님이 일 때문에 힘들어하시거나 몸이 아팠던 얘기를 할 때는 더 하지요. 이런 아이들이 정작 엄마 앞에서는 안 그런 척합니다. 교실에서 한 것처럼 엄마에게도 해 보라고 하면, 못하겠다 그래요. 이럴 때 엄마가 먼저 말문을 터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엄마에게 자기의 죄책감(엄마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을 털어놓겠지요. 그러면 아이 마음도 후련해질 테고요. 죄책감을 지니고 사는 사람의 삶은 어둡고 외롭고 가엽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예를 많이 보잖아요. 고부갈등에서 남자가 중재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이유가 남자(아들)가 어머니에 대해 지니고 있는 죄책감 때문인 것처럼요. 부모 자식 사이가 한쪽에게 죄책감을 지니게 하는 사이가 되면 양쪽 모두에게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혹시 님의 아이가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풀어주세요. 그래서 아이 마음을 가볍게 해 주세요. 아이의 삶에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이제는 죄책감을 줄여주는 방법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간단합니다. 죄책감을 준 방법의 반대로 하면 되거든요. 그냥 솔직하게 님의 지금 생각을 말해주면 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정리하자면, 님이 일하는 건 아이 때문이 아니잖아요. 아이 때문이라면 당장 일을 그만둬야 하지만 계속하고자 하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네요. 님이 하시는 사업이 힘들었지만 그걸 유지해 온 이유가 있어요. 그 일로 성공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돈도 벌고요. 그럼 님이 그 일을 하는 게 아이 때문이 아니라, 님이 그걸 하고 싶어서 하는 거라고 말해 주세요.


"ㅇㅇ이는 엄마가 일하는 게 싫었구나? 음... 그런데 사실 엄마가 지금 일을 하는 이유는 엄마의 꿈 때문이야. 어릴 때부터 엄마는 헤어 디자인하는 걸 좋아했어. 그런데 형편이 어려워서 그걸 배우지 못했어. 그래도 항상 꿈을 간직하고 있었단다. 다행히 ㅇㅇ이가 건강하게 커 주고 씩씩하게 학교도 잘 다녀줘서 지금은 엄마가 이 일을 다 배웠어. 앞으로는 예전처럼 힘들지 않을 거야. 엄마 가게에 일 도와주는 이모도 두 명이나 있는걸. ㅇㅇ이도 나중에 커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지? 엄마가 번 돈으로 소훈이 피아노를 사 줄 수 있어서 정말 기뻤어.

소훈이도 엄마처럼 언젠가 꼭 꿈을 이루면 참 좋겠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지 못하는 건 미안한 일이지만, 다행히도 지금 아이의 도움(이해) 덕분에 엄마가 열심히 일하고 있고, 그래서 사는 게 즐겁다는 걸 알려 주세요. 또 엄마가 일을 함으로써 돈을 벌어 오고, 그로 인해 우리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설명해 주세요. 힘들 때도 있지만, 엄마는 일하는 게 재미있고 보람도 느끼는 것도 알려주시고요. 그 말을 듣고 아이는 자기가 그동안 힘들게 참아 온 것들이 결국 엄마에게 이로운 일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에게 이로운 일은 결국 아이 본인에게도 행복한 일이지요. 또 엄마가 꿈을 이루는데 자기도 큰 기여 했다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합니다. 보람도 자존감도 강해지는 계기가 되겠지요. 어쩌면 아이는 그걸 기다리는지 몰라요.


사 달라는 것도 비교적 잘 해주는 편이고, 생일파티도 성대하게 해 줬는데도 그때뿐이었다 하셨지요? 저학년 때는 이런 것으로 아이의 환심을 살 수 있지만 3학년이 되면 이런 임시처방으로는 아이를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이제는 아이와 진지하게 의논하셔야 합니다. 맞벌이로 부모의 애정을 충분히 못 받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맞벌이 부모가 그렇지 않은 부모에 비해 아이와 시간을 보낼 여유는 부족하겠지만, 그렇다고 맞벌이가 애정결핍의 원인은 아닙니다.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야 애정이 교류되는 건 아닙니다. 3학년이면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도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을 충분히 받는 아이가 얼마나 많은데요.

질문에서 볼 때, 아이는 님에게 애정을 더 달라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이의 담임교사는 아이를 어떻게 보느냐고 제가 따로 질문드렸었지요? 만약 아이가 또래(3학년)에 비해 정서적으로 발달이 느리거나 엄마와의 관계에서 피해 의식을 갖고 있다면 일을 접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에게 집중하시라고 답해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님의 아이는 지금 전형적인 3학년 아이의 정서적, 인지적 발달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교우관계도 괜찮고요. 그렇다면 제 판단에 아이는 지금 단지 '징징'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엄마랑 더 있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그 시기 애들 마음이 그래요. 그러니 일을 계속하셔도 좋겠습니다. 아이는 곧 징징이의 가면을 벗을 겁니다. 징징이를 모른 척하시면 아이는 더 빨리 가면을 벗을 겁니다만, 님의 마음은 아프시겠지요? 염려 마세요. 지금처럼 해도 일 년 안에 징징이 습관은 사라집니다.


아이의 외할머니의 취미 활동 또한 잘 선택하신 일입니다. 아이 하나 보려고 자기 삶을 모두 포기하고 사시는 할머니들에 비하면 얼마나 멋진 할머니입니까. 어차피 외할머니는 아이에게 모든 사랑을 주시는 분이시잖아요. 일주일에 3일 정도 안 보신다고 해서 아이에 대한 애정이 식을 관계가 아닙니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거의 십 년간 아이에게 매달려 오셨을 텐데, 이제 취미 활동하시면서 활력을 찾으실만하지요. 그래서 기운이 나시면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실 거고요. 아이도 할머니가 자기 정체성(취미)을 지닌 사람이고 그걸 즐길 줄 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우겠군요. 아이가 함께 하는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하시는 정도(한 달에 한 번 정도)도 나쁘지 않지만, 더 줄여도 됩니다. 뭐, 길어야 한두 해 정도 더 하시면 아이가 이제 엄마랑 그만 가고 싶어 할 테니 저절로 줄어들긴 하겠지만요.(아들인 게 다행일 수도 있겠군요?) 지금은 엄마가 아이를 위해 여행을 가지요? 곧 머잖아 아이가 엄마를 위해 따라가 주는(?) 상황이 옵니다. 생각보다 빨리요. 그때가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고 싶어 하는 시기겠지요. 엄마 입장에서도 뿌듯하실 겁니다. 평일에 체험학습을 이유로 결석이 잦은 것이 아이의 교우관계에 나쁘지 않을까 하는 문제는 크게 고민하지 마세요. 엄마와 여행을 즐겁게 하면서 자기를 잘 드러내는 아이는 교우관계도 좋을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작은 기념품을 사다가 아이 친구들에게 선물해도 좋겠고요. 아이가 그런 걸 좋아한다면 말입니다.


2014년 현재 10가구 중 4가구가 맞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이 중 40대 맞벌이 비율이 가장 높아요. 40대면 님처럼 아이가 초등학생인 시기지요? 왜 30대가 아니라 40대일까요? 30대에는 아이가 너무 어려서 차마 두고 일하러 나갈 엄두를 못 내니까 그렇겠지요. 2014년 기준, 214만 9천 명은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가지만, 가정 양육도 101만 2천 명이나 됩니다. 그만큼 양육 때문에 일을 못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뜻이지요. (2014년 7만 3,412명이 아이 돌보기 위해 휴직하지만 남자가 육아 휴직하는 경우는 3,421명) 결국 아주 소수의 아빠 육아휴직자를 제외한 대다수, 그러니까 기혼여성의 20.7%가 임신·출산·육아 등으로 일 중단했습니다. 일을 중단하면 당연히 경력단절이 오겠지요? (이상, 2015 통계청 자료) 더 이상 육아를 엄마 책임으로 미루면 안 된다는 뜻이지요. 국가 차원에서의 인력 손해도 크니까요. 님처럼 맞벌이하면서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이 사회를 위해 이미 최선을 다하고 계신 겁니다. 사회 또한 엄마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합니다. 엄마들이 불안해하는 요소를 찾아 개선해 줄 의무가 있어요. 안전한 육아 체계를 만들고 엄마가 마음껏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걸 국가에 요구할 권리는 당연히 부모에게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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