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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l 06. 2017

친구와의 갈등 상황에서 자존감을 지키게 하는 글쓰기

갈등 상황에서 느낀 감정에 대한 글쓰기



글자판에서 낱글자를 조합 낱말을 만드는 게임.

차례대로 하나씩 맞추면 바둑알을 하나씩 가져갑니다.

이 게임은 응용 범위가 넓습니다.

자기가 모은 바둑알을 글자판 밖에서 손가락으로 튕겨서 글자 위에 올라가게 하는 게임(멀리 갈수록 점수가 높습니다)도 할 수 있고,

바둑알이 올라 간 글자로 시작하는 낱말 말하기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첫 단계만 합니다. 이 게임이 글자 공부에만 목적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 게임 그다음 상황이 진짜 공부입니다.


글자판의 글자를 조합해서 아이들이 만들 수 있는 낱말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하고 약 15분 정도 지나면 아이들이 만들 낱말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엉뚱한 낱말을 말하는 아이가 나오게 마련이지요. 그러면 다른 아이가 클레임(이의 제기)을 걸게 됩니다.

클레임이 몇 차례 나오면 아이들은 규칙을 바꿀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지요.

(보통은 글자판에 안 나오는 낱말을 말해도 인정해주기로 하자는 규칙을 추가하고 싶어 합니다)


진짜 공부는 이 부분입니다. 어떤 규칙을 만들든 아이들 모두에게 서로 공정한 규칙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아이들 수준에서 '공정한' 규칙이란 어른의 개념의 '공정함'이 아니라 아이가 생각할 때 '내가 손해 보지 않는'규칙을 의미합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각자 자기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상대가 손해 보지 않게 보장할 규칙을 놓고 논쟁(이라 쓰고 말싸움이라 읽는)을 벌입니다.

아이들로선 가치 갈등 상황인 셈이지요. 이 과정에서 1학년 아이들은 두 부류로 나뉩니다.

자기가 유리한 규칙만 무리하게 주장하는 아이와 반대로 자기에게 불리한 규칙인데도 비판 없이 순순히 받아들이는 아이입니다.

그 중간에 규칙에 대한 의견은 내지 않고 다른 친구를 지적하는 데 집중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세 경우 다 걱정스러운 아이들로 뭔가 교육적인 처치가 필요하지요. 그러려면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야지요.

아이들의 논쟁을 멈추게 하고 아이와 대화를 해보았습니다. 이런 마음이더군요.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만 하는 아이의 마음

 - 나의 유리함을 양보하면 내가 질 거야.(피해 의식)

 - 친구들이 나보다 더 잘 하니까 이기려면 나에게 유리한 규칙을 정해야 해.(열등감)

 - 내 이익을 내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손해야.(이기심)

 - 지면 창피하잖아. 난 지는 거 싫어.(낮은 자존감)


자기에게 불리한 주장인데 비판 없이 수용하는 아이의 마음

 - 난 이기지 않아도 돼. 이기면 뭐 해? 어차피 선생님이 우리 공부 시키려고 이 게임하는 건데.(낮은 학습 동기)

 - 내 몫을 챙기지 못한다.(낮은 자아 존중감)

 - 해 봐야 난 질 텐데 뭐. 그럴 바엔 내 친구가 이기게 도와줄래. 그 친구가 나랑 놀아줄 거니까.(의존)

 - 지면 어때. 이긴 다고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패배감)


규칙에 대한 의견은 안 내고 다른 친구를 지적하거나 간섭하는 아이

 - 애들이 잘 하는지 볼 거야. 난 놀이 안 해도 돼.(학습에 대한 무관심 대신 친구에 대한 관심)

 - 내가 규칙을 얘기해 봐야 친구들이 무시할 거야.(피해 의식, 낮은 자존감)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처음부터 이렇게 태어나는 아이는 없을 텐데 말입니다.

성장환경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어른들의 태도 말입니다.

짐작건대, 이런 아이들은 평소 어른들에게 이런 암시, 또는 가르침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주장만 하는 아이가 주로 들었을 말

 - 너 그러다 학교 들어가면 꼴찌 할 거야. 그래도 좋아?(엄마는 내가 꼴찌 할까 봐 걱정하시나 봐.)

 - 친구가 널 때리면 너도 때려. 맞고 다니지 말고.(내가 맞으면(지면) 엄마가 실망할 거야.)

 - 친구들 하는 것만 쳐다보지 말고 너도 발표 좀 해. 니가 아는 건데 왜 못 해?(내가 친구들 보다 못 나서 엄마가 속상한가 봐.)

 - 우리 딸이 잘 하면 엄만 너무 행복해.(내가 잘 못하면 엄마가 불행하실 거야.)


이런 아이는 항상 쫓기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이겨서 부모님을 행복하게 해 드려야 마음이 편해지지요.

이 아이가 생각하는 '이기는 일'은 내가 친구보다 무조건 잘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하는 겁니다.



자기에게 불리한 주장인데 비판 없이 수용하는 아이의 마음

 - 내 그럴 줄 알았어. 넌 원래 못 하는 아이니까.

 - 넌 가만있어. 엄마가 해 줄게.

 - 필요한 거 말만 해 엄마가 다 해 줄게.

 - 하기 싫으면 관둬. 담에 또 하겠다 그러기만 해 봐!


알게 모르게 아이를 의존성 인격으로 만든 경우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굳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친구와 논쟁할 필요를 안 느낍니다.

나서서 논쟁하다가 자기만 상처 입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냥 모르는 척 가만있으면 엄마가 해 줄 텐데 굳이 위험한 도전을 할 리 없습니다.


규칙에 대한 의견은 안 내고 다른 친구를 지적하거나 간섭하는 아이

 - 친구들이 너랑 안 놀아 줘? 엄마랑 놀자.

 - 또 접시 깼어? 괜히 부엌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저리 가.


이런 부류의 아이들은 항상 부모의 평가에 시달려 온 아이입니다. 여기서 평가라 함은 지적 받는 걸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지적 받는 걸 싫어하지요. 특히 아이들은 더 합니다. 그러니 학교에서라도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 합니다.

자기는 늘 평가받으며 살기 때문에 학교에서라도 평가받는 대상의 자리에서 벗어나 남을 평가하고 싶어 합니다.





규칙을 두고 논쟁하던 아이들이 지쳤군요. 결국 아이들끼리 규칙을 만들어 새로운 놀이를 하는 건 실패했나 봅니다. 저학년에서 이런 결과는 이상한 게 아닙니다.

원래 규칙을 정하기 위해 필요한 논리력, 상대의 동의를 구하는 설득력, 나에게 이로운 규칙이 상대에게는 불리할 수 있음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아직 이 나이 아이들에게 완성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곧 아이들은 이런 능력을 갖게 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빠르게 자라니까요.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을 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 그렇다고 싸우기만 하는 것 또한 괴로운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하는 겁니다.

그 마음을 글로 써 보게 했습니다. 오늘 진짜 하려던 글쓰기를 시작하는 거지요.

1학년 아이들에게 무작정 글을 쓰라고 하면 못 씁니다. 오히려 이런 기분인데 글쓰기를 하냐고 저에게 따집니다.

그래서 아이 하나하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나 : 아까 게임할 때 기분이 어땠어?

아이 : 슬펐어요.

나 : 왜?

아이 : ㅇㅇㅇ가 놀렸으니깐요. 근데 나 보고 뭐라 그래요.

나 : 어이구, 슬플만하네. 근데 어떻게 하면 너의 슬픈 마음이 풀릴까?

아이 : ㅇㅇㅇ가 사과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온 글이 이 글입니다.


게임할 때 ㅇㅇㅇ이 놀려서 슬펐다.

ㅇㅇㅇ이 사과했으면 좋겠다.



어떤 아이는 자기 때문에 다른 친구가 속상했을까 봐 걱정하기도 합니다.






기분이 슬펐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나 때문에 상처받았을까 봐.


그래서 어떻게 하면 친구의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사과하고 싶다.


'사과하고'라는 낱말과 '싶다'라는 낱말이 꽤 멀리 떨어져 있군요.

이 아이는 이 글을 쓰면서 사과를 꼭 해야 할까, 스스로에게 물어봤나 봅니다. 근데 사과하기 싫은 마음도 꽤 있었나 보군요.

결국 사과하겠다고 스스로 결정을 합니다. 사과하면 무엇을 얻을 지 알고 있어야 나올 수 있는 글이지요. 아이의 강한 내면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나는 괴로웠다.

왜냐하면 재미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아이도 이 상황을 괴롭게 받아들이는군요. 상황에 대한 인식을 잘 한 아이입니다.

저는 이 아이에게도 마찬가지로 물었습니다.


나 : 왜 재미없었어?

아이 : 괜히 게임을 해서 애들끼리 싸우기만 하잖아요.

나 : 그럼 어떻게 하면 싸우지 않게 될까?

아이 : 선생님이 놀게 해 주면 되죠. 우린 놀면 금방 친해지니깐요.


저와 대화가 끝나자 아이는 이 문장을 덧붙입니다.


그래서 놀게 하면 좋겠다








나는 슬펐다.

ㅇㅇ가 울었다.

힘들다.

놀고 싶다

ㅇㅇ이가 나랑 절교했다

그래서 ㅇㅇ이가 저랑 다시 단짝 했으면 좋겠다


이 아이 역시 3장의 종이에 나눠 썼습니다. 저랑 대화를 하면서 한 장씩 추가해서 썼거든요.


나 : 아까 그 놀이 어땠어?

아이 : 슬펐어요.

나 : 왜?

아이 : ㅇㅇ가 울었으니깐요.

나 : 아이구, 저런. ㅇㅇ가 울어서 기분이 어땠어?

아이 : 힘들죠. 친구가 우니깐요. 난 ㅇㅇ가 울라고 그런 말한 게 아닌데 우니깐요.

나 : 그럼 ㅇㅇ 어떡하지?

아이 : ㅇㅇ랑 놀고 싶어요. 근데 ㅇㅇ가 나랑 절교 한대요.

나 : 헉. 절교하면 큰일이네.

아이 : ㅇㅇ가 저랑 다시 단짝 했으면 좋겠어요.




기분이 안 좋다.

힘들었다.

애들이 짜증 내서

사이좋게 놀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아이들은 모두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게 되었고(힘들다, 괴롭다, 슬프다, 미안하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실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크고 작은 갈등 상황과 만납니다.

이럴 때마다 그냥 덮고 가거나 참으라고 하면 아이들은 자기감정을 제대로 읽는 연습을 할 기회를 놓칩니다.

이런 식으로 그냥 두면 아이들은 갈등 상황이 생길 때마다 피하려고 합니다. 차라리 외면하는 거지요.

이런 아이들은 무조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하며 우는 아이, 슬픈데도 안 슬픈 척, 화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자기 기분을 왜곡하고 속이는 거지요.

이렇게 성장해서 어른이 되면 남에게 이용당하거나 불공정한 대우를 받아도 항의하지 못하는 삶, 다시 말해 자존감 낮은 삶을 살게 됩니다.

내 아이가 그렇게 성장하게 할 수는 없지요.


아이들은 일상에서 어떤 일로든 화가 나거나 억울해 하거나 슬퍼하거나 우울해합니다.

아이들이 갈등 상황을 만났을 때 자기 기분이 어떤지 자신에게 물어보게 하는 방법으로 글쓰기는 꽤 효과적입니다.

글쓰기는 그냥 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인 어휘를 생각해내야 하기 때문에 자기 기분을 좀 더 꼼꼼하게 들여다보게 합니다.

그렇게 자기 마음을 읽기만 하면 그걸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바로 생각이 납니다.

자기 기분을 자기 기준으로 들여다 보는 일, 그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어떤 걸 원하는지 표현하게 하는 일. 이게 자존감의 시작입니다.


글쓰기, 특히 이렇게 괴롭고 슬픈 마음에 관한 글쓰기를 하고 나면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놀게 해줍니다.

놀면서 아이들도 뭔가 해소를 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잠깐 놀면서 아이들은 언제 서로 불편했냐는 듯 다시 깔깔대며 놉니다. 아이들 특유의 치유력이 발휘되는 거지요.

아이들이 글로 썼다고 해서 마음이 단번에 풀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서로 좋은 사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생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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