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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Dec 14. 2021

우리 동네 신씨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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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열 살도 되기 전에 부모를 잃었다.

오갈 데 없는 그를 불쌍히 여긴 동네 아저씨가 데려다 키웠다.

학교에 가는 아이들이 부러웠지만, 아저씨 눈치가 보여 말을 못했다.

열 일곱이 되었을 때, 주인 아저씨가 사고로 죽었다.

또다시 오갈 데 없어진 그를 어떤 아줌마가 장터 주막에 소개해주었다.

거친 장꾼들이 손님과 시비가 생기면 그가 나서서 쫓아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장꾼들은 아직 어린 그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숫기 없는 그가 얻어 맞는 일이 잦았다.


장꾼에게 시달리고 울던 어느 날, 덩치가 큰 손님이 그를 불러

자기를 따라다니면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가 보니 일수꾼 일자리였다.

어느 집에 가서 돈 받아 오라고 하면 가서 받아오는 일인데

수금하는 금액의 일부를 수고비로 준다는 말을 듣고 당장 취직을 했다.

하지만 돈을 순순히 주는 사람보다 강짜를 부리며 버티는 사람이 많았다.

어떻게든 수금을 해야 돈을 받으니 그냥 둘 수도 없었다.

알고 지내던 친구를 몇 불러 함께 가서 으름장을 놓으면 수금이 쉬웠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채무자를 협박하던 친구 하나가 채무자를 폭행하는 일이 생긴다.

그 일로 깡패라고 소문이 나서 일을 구하지 못한다.


여기 아니면 못 벌어 먹을까 싶어 가래침을 퉤, 내뱉고는 동네를 떠난다.

두 해 동안 여기저기 떠돌다 평창으로 가 화전 일구는 일을 얻는다.

어느 날, 동네 사람들과 화전을 일구려고 산에 불을 놓다가 산림관에게 걸린다.

동네 사람들이 벌벌 떨면서 그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먹고 살겠다고 산에 불 좀 지른 게 무슨 죄가 될까 싶어 자원해서 경찰서로 찾아간다.

며칠 구류를 살다가 돌아가보니 동네에서는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때 그는 사람은 역시 깡다구가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그 뒤로 무슨 일은 하든 목소리를 높이고 주먹을 쥐고 덤벼든다.

그런 그를 어떤 이는 좋아하고 어떤 이는 무서워했지만

그가 나서면 안 될 일도 해결이 되니 주변에 사람도 모이고 돈도 모였다.

동네 처녀에게 장가도 들었다.


그러던 중 화전의 경계를 정하는 문제로 동네 사람들과 다툼이 생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았다.

이것들이 내가 외지에서 왔다고 괄시하나 싶어 동네 사람들과 주먹다짐을 하다가 지서에 잡혀간다.

며칠 구류 살다 나와보니 이번엔 동네 사람들 눈빛이 싸늘해져 있었다.

드러워서 정말. 내 여기 아니면 내 살 곳 없을까 보냐 싶어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간다.

화전도 하고 약초도 캐고 버섯도 따고 숯을 굽는다.

하다보니 재미도 생기고 돈도 벌게 되어 제법 큰 소리도 치게 되었다.


첫 아이가 태어나던 해, 옆 마을에 무장공비가 나타난다.

산 속에 살던 사람들 대상으로 정부의 소개령이 내린다.

그동안 일궈 놓은 걸 그냥 두고 어딜 가라는 말이냐고 군인들에게 대들다 매를 맞는다.

원통한 마음을 부여잡고 산 아랫마을로 이사 내려와

땅도 없고 화전도 못하니 농사품이나 팔며 살아야 하는데

땅 있는 놈들 우세 떠는 거 꼴보기 싫어 툭하면 싸움이 난다.

여기 아니면 내 살 곳 없을까 보냐 싶어 처자식을 내버려 두고 산판 사업을 떠난다.

아름드리 나무를 잘라 토막내어 여러개를 뗏목으로 묶어 강에 띄워 서울로 보내는 일이 고되었지만

남 눈치 안 보고 일한 만큼 돈을 버는 것도 성미에 맞았다.


일도 재미있고 돈도 모여 이대로만 가면 좋겠다 싶은데

그러던 중 부리던 사람이 나무에 끼어 죽는 일이 생긴다.

유가족과 합의를 못해 감옥에 갔다가 나와보니 사람들은 모두 가버리고 쫄딱 망해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품을 파는데

생각할 수록 자기 인생이 꼬이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든다.

특히 술을 마시면 모든 게 귀찮고 짜증이 난다.

이럴 때 분풀이를 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술 먹고 처자식을 때리는 일이 잦아진다.

자식들은 고등학교도 못 마치고 쫓기듯 가출해 나간다.


그러던 중 아내가 일 마치고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난다. 회갑이 되던 해였다.

사내가 되어 마누라 건사 하나 못한 자신이 부끄러워 술을 마신다.

또 내 팔자는 왜 이리 더러운가 싶어 술을 마신다.

동네 사람들도 자기 처지를 비웃는 것 같아 술을 마신다.

싸움이 잦아지고 그럴 때마다 경찰이 출동하고 자식들이 달려온다.

폭력형 치매 진단을 받는다.

마침 동네에 생긴 요양원에 갇힌다.

폭력형 치매다 보니 침대에 묶여 있는 날들이 많아진다.

무서운 아버지로 살아서 그런가, 자식들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가끔 정신이 돌아오는 날이면 막둥이가 보고 싶어진다.


그의 막둥이 아들이 마침 직장에서 조기퇴직을 당한다. 그는 내친구다.

고향으로 돌아온 막둥이가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간다.

아버지가 욕하고 물건을 집어 던질 때마다 막둥이가 껴안고 운다.

그 장면을 본 막내 며느리가 기겁을 하고 도시로 달아난다.

그는 다시 요양원에 갇힌다.

막둥이가 그를 보러 다녀오는 날마다 운다.

몇 번을 울더니 기어이 그를 다시 집으로 모셔온다.

얼마 전, 새벽에 변소 가던 그가 쓰러져 일어나지 못한다.

아버지 젊을 땐 그렇게 무섭고 미웠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허전하다고 막둥이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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