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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20. 2020

가난이 너를 속일지라도

수학여행비의 힘

공주 수학여행에서 공산성 오르는 길. 아이들의 삶에는 서로 다른 꽃이 배어있다.  어떤 아이에겐 거름이 넉넉한 환경에서 자란 크고 화려한 장미가, 어떤 아이에겐  황무지에 겨우 뿌리내린 꽃다지가. 장미와 꽃다지 모두 귀하고 아름다운 꽃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직 어려 자기 삶에 배어 있는 꽃에 무심한 듯 보이지만, 아이들도 다 안다. 꽃다지는 장미가 팔리는 시장에 나갈 수 없음을.



평소엔 다들 비슷해 보이는 아이들이만, 수학여행을 데리고 가 보면 아이가 평소 어떤 경제교육을 받았는지 보인다. 넉넉하면서 특별히 경제 개념이 없는 아이들은 용돈 액수부터 다르다. 수학여행비보다 큰돈을 쓰는 아이도 있다. 여행 전에 '용돈은 적당히 보내'시라고 사전에 안내하지만 이런 가정은 거의 안 지킨다. 부모 또한 아이에게 돈 줄 형편이 되어서 주는 거니까 걱정 말라는 태도다. 용돈 수준이라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몇 십만 원을 가져오는 아이도 있다. '너희 위해 주신 돈이니 여행에서 다 쓰지 말고 아꼈다가 학용품 사는데 쓰라'고 하면 아이들 표정이 안 좋아진다. 학용품 살 돈은 나중에 또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날 안심시킨다. 이 돈은 자기 돈이고, 선생님이 주는 것도 아니면서 왜 간섭하냐고 따지는 아이도 있다.



논쟁에서 내가 이겨도 그뿐, 이런 아이들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복잡한 여행지에서 교사가 일일이 아이의 씀씀이를 통제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유적지 대신 주변의 난전이나 기념품 가게에 더 오래 머문다. 물건을 살 때 고민을 별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물건을 두 번 사기도 한다. 보통 아이 같으면 환불을 하겠지만, 이런 아이는 아무 아이에게나 줘 버린다. 교사가 못 보는 사이에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 먹고 배앓이를 하거나 식사로 제공되는 음식은 남기면서 몰래 숙소를 빠져나가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기도 한다. 갑자기 큰돈을 가지고 다니다 보니 잃어버리기도 한다. 어디에서, 얼마나 잃어버렸냐고 물으면 잘 모른다. 처음부터 얼마가 있었는지 세어 보지 않아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반해 이 아이들은 뭘 샀고, 뭘 먹었는지, 어떻게 선생님한테 들키지 않고 숙소를 빠져나갔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수학(修學)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반면에 용돈을 조금, 또는 거의 가져오지 않는 아이도 있다. 부모가 경제교육 차원에서 결정한 경우거나, 용돈을 못 받았지만 자존감이 강해 스스로 돈을 쓰지 않기로 결정한 아이다. 돈이 없어서 그런지 처음에 이 아이들은 돈 잘 쓰는 아이를 부러워한다. 심지어 돈 잘 쓰는 아이를 따라다니며 얻어먹기도 한다. 한편, 용돈을 많이 주지 않는 부모를 원망하거나 자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곧 돈 잘 쓰는 아이들의 소비행태가 자기가 배운 것과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된다. 뭔가 지나치고 꺼림칙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결국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런 아이들은 뭘 하나 사면서도 더 신중하게 고민한다. 처음부터 덥석 사지 않고 기다리면  값이 더 싸지는 것도 알고 친구 여럿이 한 번에 여러 개를 사면 값을 깎을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관광지라 그런지 동네 마트보다 더 비싼 반면, 품질은 조악하다는 둥 어른스러운 말을 하는 아이도 있다. 한계효용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드물게 정말 돈이 없어서 용돈을 못 가져온 데다 자존감까지 낮은 아이도 있다. 돈을 잘 쓰는 아이 주변에 머무르면서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이다. 가끔 얻어먹을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 두 종류의 아이들은 같이 다니기 때문에 얼핏 보면 친한 사이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보면 돈 쓰는 아이와 심부름을 하는 아이로 나뉘어 있다. 돈 있는 아이가 돈을 꺼내 주면서 뭘 사 오라고 하면 쪼르르 달려가 사다 바치고 자기도 얻어먹는다. 어떤 아이는 돈은 있지만 판단이 흐린 친구에게 어떤 걸 사라고 시키기도 한다. 조종하는 것이다. 자칫 갈취로 발전할 경우 학교폭력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부모가 돈이 많아 자식 또한 돈을 쓰게 하겠다는 걸 교사가 막을 방법이 없으니 그런 아이들은 그렇게 살게 두면 되고 경제 교육이 잘 된 아이는 더할 나위 없으니 걱정이 없는데, 유독 돈 있는 아이에게 빌붙으려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아이들의 몸에 밴 꽃다지 꽃 그림자에서 낯익은 내 모습이 보여서인지도 모른다.



*


몇 년 전, 수학여행을 얼마 앞두고, 아이들 일기를 봐 줄 때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기다리는 설렘으로 일기장을 채우는데 유난히 눈에 띄는 일기가 있었다.




<오늘 아침, 엄마가 동생더러 이번 달에는 태권도를 끊으라고 하셨다.



"ㅇㅇ야, 너는 아직 1학년이니까 태권도는 몇 달 쉬었다가 겨울부터 다녀. 대신 집에서 오빠랑 놀아."



그러자 동생이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싫어, 태권도 재미있단 말야."



나도 우리 집에서 노는 것보다 태권도가 더 재미있는 걸 알지만 동생한테 말하지 않았다.


대신 후식으로 나온 요구르트랑 딸기를 안 먹고 동생에게 줬다.>



자기 수학여행비를 내야 해서 동생의 학원비를 낼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한 달에 몇 만원 하는 학원비를 오빠의 수학여행비와 바꿔야 하는 아이가 설마 있을까 싶지만, 이 풍요의 시대에도 끼니 마저 위협받는 아이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아이의 선생 노릇으로 받는 월급 덕분에 자식의 수학여행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나는, 이럴 때 민망하다.



며칠 전, 저 아이는 다른 말을 했었다.



아이 : 쌤, 저 수학여행 안 가요.


나 : 수학여행을 안 가?


아이 : 할머니 생신이라서요.


나 : 그렇구나. 수학여행 보다 할머니 생신이 더 중요하지. 알았어.


아이 : 네, 그래서 진짜 안 가려고요.



'진짜'라는 말에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지만, 스스로 여행을 포기하면서 할머니를 아끼는 마음도 기특해서 그래, 세상의 손자들이 다 너 같다면 세상의 할머니들이 얼마나 행복하시겠냐고, 사실 선생님도 할머니가 계시지만 한 번도 너 같은 손자가 못되어 부끄럽단다, 칭찬까지 해 주었는데 사실은 그게 돈이 없어 꾸민 이야기였다니. 그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는 얼마나 참담했을까.


공교육, 무상교육이라는 말이 기본권의 꽃인 양 회자되는 요즘 세상이지만,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면 돈이 든다. 학교에서 책을 주거나 공부는 시켜줘도 여행까지 공짜로 보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 아이가 수학여행을 2박 3일 가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관광버스비, 숙식비, 그리고 입장료와 용돈을 생각하면 10만 원은 있어야 한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많으면 수학여행을 없애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과, 가족단위로는 여행 갈 형편이 못 되니 학교에서라도 데려가 달라는 주장 모두 애잔하게 들린다.


*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때에도 수학여행이 있었다. 전세 버스를 타고 서울 구경을 다녀오는 하루짜리 여행이었다. 3300원. 내가 이 액수를 잊지 못하는 건 이 돈을 못 내 수학여행을 못 간 세 명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멀미약을 먹고 새 옷을 입은 친구들이 여행의 떨림을 막 즐기던 그날 아침, 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복잡한 마음까지는 어쩌지 못했는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먹었나 보다. 후딱 먹고 학교 안 가냐고 엄마 야단을 들었으니. 수학여행 가는 날인 걸 모르셨던 것이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밥을 먹자 동생이 대신 말했다. 수학여행 안 가는 사람은 학교 오지 말랬어. 엄마도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누나와 동생들이 학교로 가고 텅 빈 마루에 앉았다. 가을 햇살이 마냥 따뜻한 날이었다. 한 잠자고 싶었다. 자고 나면 쓸쓸한 마음도 좀 달래지지 않을까. 그런데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고추를 따러 가자고 했다. 고추밭은 마을을 관통하는 신작로 근처에 있었다. 아, 곧 수학여행 버스가 지나갈지도 모르는데. 고추 따는 거 말고 다른 걸 하면 안 되나? 내가 머뭇거리자 엄마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핑곗거리도 떠오르지 않아 엄마를 따라나섰다. 비료포대를 받아 들고 고추를 따기 시작하는데 마음이 복잡해서인지 늘 하던 일인데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쯤, 아이들은 버스에 탔겠지. 뽀드득 소리가 나는 버스 의자에 앉으면 푹신할 거야. 선생님이 과자 가져와도 된다고 하셨으니 벌써 과자 봉지를 뜯은 아이도 있을까. 그 과자를 입에 한 움큼 넣고 우적우적 먹는 친구들 표정이 그려졌다. 그거였다, 내가 부러워했던 건. 서울에 있다는 창경원이나 유리온실 안에 바나나가 자란다는 식물원 같은 건 안 봐도 되었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타보고 그 안에서 과자를 아낌없이 나눠먹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난 오늘 수학여행을 못 가는걸. 잡생각에 고추를 건성으로 따는 게 보였는지 엄마가 한 마디 하셨다.



"빨갛게 잘 익은 놈으로 골라서 따라. 덜 익은 거 따 봐야 잘 마르지도 않고 한 근에 몇 백원 받지도 못해."



이미 못 가게 된 수학여행. 자꾸 생각하면 뭐 하나 싶어 속도를 올려 두 고랑쯤 돌았는데 학교 쪽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수학여행 버스였다. 꽁무니에 매달린 뿌연 흙먼지도 그날따라 찬란하게 보였다. 버스가 가까이 오자 고춧대 아래로 몸을 숙였다. 하지만 버스 창이 높아 아이들에게 보일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길과 멀리 떨어진 고랑으로 숨을 걸. 늦었다. 버스가 바로 옆에 다가왔을 때, 나도 모르게 고랑에 납작 엎드렸다. 고랑엔 병들어 떨어진 고추와 흙이 어지러이 있었다. 버스가 지나가자 흙먼지가 훅 덮쳐왔다.



버스가 마을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휴, 이제 됐다. 주섬주섬 일어나 앞 섶에 묻은 흙을 터는데 그만, 눈물이 툭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엄마 쪽을 보니 고랑 끝 쪽에 안 보였다. 팔뚝으로 재빨리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또 툭. 엄마가 볼까 봐 바닥에 떨어진 고추를 줍는 척 고개를 고춧대 아래로 숙이고 잠시 있기로 했다. 그런데도 계속 눈물이 났다. 난데없이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추고 뭐고 다 미운 생각이 들었다. 고추가 반 넘게 찬 비료포대를 고랑에 털썩 내 던졌다. 빨간 고추가 고랑에 쏟아져 나왔다. 순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나 싶은 마음에 고추를 다시 주우려다가 주저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저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여행이 내겐 왜 이리 가혹한가. 왜 아버지는 그깟 3300원을 척 내주지 못하고 일찍 죽어버렸나. 왜 엄마는 이런 날까지 고추를 따라고 시키나. 훌쩍이다 보니 앞서가던 엄마가 고랑을 돌아 다시 내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뚝으로 눈물을 슥슥 닦고 쏟아진 고추를 주워 담았다.



<서울의 어느 식물원 앞에서 찍은 수학여행 단체사진. 이 사진을 자꾸 보게 되는 건 내가 나오지 않아서가 아닐까.>



다음 날, 교실은 온통 수학여행 이야기였다. 난 가만히 앉아 책을 보는 척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들은 나와 달리 풍요의 나라에 사는 친구들이잖아. 나와 무슨 상관이겠어? 그런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귀는 오히려 아이들의 모든 이야기를 향해 촉수를 뻗고 있었다. 그러느라 힘든 하루였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선생님이 수학여행 못 간 아이들을 남으라고 하시더니 엽서를 하나씩 주셨다. 우리 동네 개울과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강이 있고 그 위로 차들이 지나는 큰 다리가 있는 풍경 뒤로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는 엽서. 그 뒤엔 선생님께서 쓰신 짧은 글이 있었다. 비록 이번엔 엽서로 서울 구경을 하지만, 실망하지 말고 나중에 돈 벌어서 더 좋은 버스 타고 여행하라고. 선생님이 나를 알아주시는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일기장 사이에 엽서를 끼워두고 매일 봤다.



며칠 뒤 수학여행 사진이 나왔다. 그날도 선생님은 여행 못 간 아이들을 먼저 집에 보내셨다. 우리가 실망할 까봐 선생님께서 배려하신 것이다. 친구들에게도 여행 못 간 친구에게 사진 자랑을 하지 말 것을 엄히 명하셨다고 한다. 덕분에 난 조금 덜 좌절했었는지 모른다.


*


가난한 집 아이의 부모를 거론하며, 기를 능력도 안 되면서 무턱대고 아이를 낳느냐고 비아냥대는 사람이 있다. 그런 부모에게 태어나는 아이는 무슨 죄냐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아 길러 보면, 그 긴 과정이 돈으로 계량될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요즘 TV 드라마를 보면 돈이 있어야 아이를 잘 키우는 줄 아는 것 같다. 그걸 만드는 사람은 정말 그렇게 믿는 걸까. 아니, 아이를 키워 보기는 했을까. 그런 드라마가 거리낌 없이 회자되는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부모는 오늘도 운다.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보기로 했다. 아이의 수학여행을 포기시키는 마음이 오죽할까. 전화를 걸면 부모 마음은 더 아플 것이다. 하지만 간혹 아이가 여행비를 받아서 다른 곳에 쓰는 경우가 있어 확인해야 했다. 통화 결과 아이의 말처럼 형편이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다행히 숙박업소 측에서 형편 어려운 아이 몇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숙박비를 면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시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일부 보조는 가능할 것 같으니 보내시는 걸로 하자고 말씀을 드렸다. 나머지 비용은 정 안되면 나라도...라고 생각하던 며칠 뒤, 아이가 상기된 표정으로 왔다.



아이 : 선생님, 저 수학여행 가요. 진짜요.


나 : 아, 그래?


아이 : 원래는 할머니 생신이어서 못 간다 그랬잖아요.


나 : 아, 맞아. 그랬지?


아이 : 근데 가요. 오늘 엄마가 입금한대요.


나 : 아하...


아이 : 원래는 못 가는 거였는데요. 근데 엄마가 할아버지한테 갔단 말이에요. 근데 할아버지가 돈을 주셨대요.


나 : 아, 그랬어?


아이 : 근데 그 돈은 제가 갚아야 돼요. 이담에 크면요.


나 : 그래? 맞아. 갚아야지.


아이 : 그래서 축구선수가 되든지 그래야 돼요. 돈 갚으려면요.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끼어들며) 야, 축구 선수 아무나 되냐?


아이 : 아무튼 난 뭐든 되어야 돼. 돈 갚으려면. 뭐든 될 거야.


옆 아이 : 야, 그럼 시래기 밥집 해. 우리 삼촌네 식당 대박 났어. 한 달에 이천만 원도 더 벌어.


아이 : 그래? 그럼 난 요리사가 될 거야. 선생님, 저 요리사 한 번 해 볼라고요.



평소 장래희망에 대해 말하는 본 적 없는 아이였다. 공부든 친구든 어느 것에도 열정을 내지 않던 아이였다. '무기력'이나 '의욕 없음'으로 상징되던 그 아이가 수학여행비 덕분에 미래를 생각하다니. 누구에게는 별것 아닌 액수의 돈이 아이의 성장 속도를 바꾸기도 한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왔다. 등에 멘 배낭엔 과자가 가득 들어 있었다. 풍요의 과자가. 잠시 후 저 아이 입에도 사르르 녹는 과자가 한 움큼 들어차겠지. 뽀드득 소리가 나는 버스 의자에 몸도 기댈 거야. 그리고 풍요로운 달콤함을 맛보겠지. 내가 먼저 앞서 흐뭇해하는데 아이가 불쑥 말을 꺼냈다.


아이 : 선생님, 근데요, 우리 집 엄청 가난해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나 : 아, 엄마가 그러셨어?


아이 : 아빠가 병원에서 돈을 다 썼으니깐요.


나 : 아, 그랬구나.


아이 : 근데 사실은 아빠 안 아플 때도 가난했대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엄마더러 결혼하지 말라 그런 거래요.


나 : 아, 그러셨대?


아이 : 그래도 엄마랑 아빠랑 결혼했잖아요. 그래서 할아버지랑 사이 안 좋았잖아요. 그런데 저 수학여행비 얻으러 간 거죠.


나 : 와, 엄마가 받으러 가셨어?


아이 : 네. 좀 쪽팔렸겠죠. 근데 돈 얻어야 되니까 참았겠죠. 안 그러면 제가 수학여행 못 갈까 봐.


나 : 아, 그런 일이 있으셨구나...


아이 : 그래서 제가 갚아준다 그랬죠. 엄마한테.


나 : 네가 갚아?


아이 : 제가 갚으면 엄마가 안 쪽팔리잖아요. 꼭 갚을라고요.


아이는 수학여행 내내 꽤 즐거워 보였다. 열두 살. 며칠 사이에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맞 본 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저 아이가 가난 때문에 겪을 좌절과 희망은 저 아이의 성장에 득일까, 독일까. 아이는 기념품 가게에서 한참을 고민하더니 엄마 선물로 이천 원 짜리 효자손을, 동생 선물로 천 원짜리 플라스틱 노리개를 샀다. 가난에 한 발 더 당당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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