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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01. 2021

1학년 아이들의 이상화는 어떻게 시작될까?

과테말라, 과테말라...

1학년 아이들의 이상화는 어떻게 이뤄질까?

아침 공부시간... 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노는 시간.


1학년 아이들이 교실 뒤편 놀이 카페트에 앉아 놀고 있다. 잠시 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라 이름을 말하며 논다. 그 중 한 아이가 누가 나라 이름을 더 많이 아는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두 명은 아직 친구들과의 놀이가 쑥스러운지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다. 자리에 앉아도 딱히 할 게 없는지 노는 아이들 쪽을 바라본다. 바라본다는 건 같이 어울리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테다. 지금은 나름 놀이 분위기를 파악하는 중인가 본데, 곧 그 아이들도 거리낌없이 친구들과 어울리게 만드는 건 담임의 책임이다.


1학년 아이들은 자기가 아주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거의 듣지 않은 영향이다. 서고, 걷고, 말하는 성장을 이어오면서 가족들이 아이들에게 지상 최고의 찬사를 해 온 결과다.(찬사가 지적과 잔소리로 바뀌면서부터 아이의 학습의욕도 낮아진다) 아직 1학년 때는 아이들에게 놀이를 빙자(?)한 공부를 제안하면 온 몸을 던져 열심히 참여한다. 나라 이름대기 놀이는 그 중 하나다.


아이들이 동시에 '시이~작'을 외치더니 한 아이가 재빨리제일 먼저 한국! 이라고 외친다.

엄마가 베트남에서 오신 아이가 이어서 베트남! 이라고 외친다.

그러자 다른 아이가 중국을 외친다. 이어서 일본, 북한, 미국처럼 익숙한 나라 이름으로 이어지더니 한 아이가 갑자기 과테말라! 라고 외친다.

그 말에 나머지 아이들이 이의를 제기한다. 과테말라? 야, 그런 나라가 어딨냐. 너 뻥치는 거지?

그러자 아이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과테말라 진짜 있어. 뻥 아냐.

아이의 말을 못 믿겠는지 다른 아이가 내 쪽을 향해 소리 지른다. 선생님, 과테말라라는 나라 진짜 있어요?

난 자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답한다. 응. 있어. 내가 먹어봤거든. 과테... 그거 과자 잖아.  속에 잼도 들어 있고. 얼마나 맛있는데. 냠냠.

그러자 과테말라라고 말한 아이가 어이 없다는 표정을 한다. 헐. 과테말라요. 과자가 아니라 나라 이름이라니깐요?

그 말에 난 약간 자신 없는 듯한, 그러나 여전히 뻔뻔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라? 그럼 그 나라에서 과테말라 과자먹나? 그거 많이 먹으면 이 썩을텐데.

내가 엉뚱하게 과자 이야기를 계속 하자 아이들도 저마다 맛있게 먹은 과자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자 한 아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게 성큼성큼 다가와  묻는다. 그니깐요. 선생님. 과테말라라는 나라 있어요, 없어요. 딱 그것만 말해보라니깐요. 없죠?

난 멍청한 표정으로 콧구멍을 파며 말한다. 나야 모르지. 너네는 꼭 내가 모르는 것만 물어보더라.

다른 아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외친다. 아, 속터져. 야, 니네 앞으로 선생님한테 물어보지 마. 선생님도 모르잖아. 내가 우리 언니한테 물어보고 올게.


3학년에 언니가 있는 그 아이. 내가 말릴 틈도 없이 복도로 내뛴다. 4학년에 형아가 있는 아이도 내뛴다. 둘이 나가자 나머지 아이들도 구경거리가 난 듯 우르르 따라간다. 놀이에 끼지 않고 있던 두 아이만 남았다. 난 그 아이들에게 말한다. 너네도 가 봐. 형아들이 과테말라 아나, 모르나. 그러자 두 아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 간다. 콩콩콩. 토끼발로 북 치는 소리같다.


아이들이 복도를 지나 교무실 옆 계단으로 막 올라가려다 교감 선생님과 딱 마주친다.

다른 학년 아이들 같으면 무서워서라도 조용해지련만, 교감선생님을 모르는 하룻 강아지 1학년 아이들은 그런 거 없다. 교감 선생님께 다짜고짜 묻는다. 아줌마, 과테말라라는 나라 있어요, 없어요? 빨랑 말해요. 빨랑요!

영문을 모르는 교감 선생님은 멀찍이 서 있는 나를 보자 상황파악을 하신 듯 답을 미룬다 과테말라? 그건 왜?

한 아이가 이르듯 말한다. 우리가 나라이름 대기 놀이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근데 과테말라가 나라인지 아닌지 빨리 알아야 되거든요. 우리 선생님도 모른다잖아요. 글쎄.

그러자 한 아이가 내 편을 든다. 야, 너 왜 우리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을라 그래. 선생님이 모를 수도 있지. 근데 왜 아줌마한테 일르냐? 우리 선생님 창피하게!

그러자 그 아이, 억울한듯 말한다. 우리 선생님이 몰라서 우리가 개고생하니깐 그렇지.


두 아이가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나머지 아이들은 교감 선생님을 휙 지나 쌩, 2층으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한 아이가 3학년 언니를 붙잡고 물어보는 동안 나머지는 눈을 반짝거리며 언니의 입을 쳐다본다. 언니가 잘 모르는 것 같자 이번엔 재빨리 다른 형아에게 묻는다. 몇 번의 형아들을 거쳐, 드디어 아이들은 과테말라라는 나라가 있다는 걸 알아낸 뒤 교실로 달려온다. 쿵쿵쿵. 이번엔 승리의 말발굽 소리같다.


교실에 들어오면서 한 아이가 자랑스럽게 말한다.


"거 봐요. 선생님이 모르는 과테말라가요. 진짜 나라 이름 맞아요. 우리가 2층까지 올라가서 형아들한테 물어봤잖아요. 숨차서 디지는 줄 알았네."


"헐. 진짜? 그걸 아는 형아가 있었어?


"6학년 성렬이 형아요."


"와, 그 형아, 엄청 똑똑한가 보네."


"그 형아 공부 잘해요. 우리 입학식 할 때 봤잖아요. 그 형아가 맨 앞에서 편지도 읽었잖아요."


"아하, 그 형아가 성렬이 형아구나."


"(학원을 2개나 다니는 아이가)네, 선생님보다 똑똑하잖아요. 선생님 인제 클났죠. 과테말라도 모르고. 그 형아보다 공부 못한다고 소문나면 창피해서 어떡할라그래요."


"그러게... 큰일 났네."


"그래도 다행인게 있어요."


"뭔데?"


"우리가 형아들한테 선생님이 과테말라 모른다고 아무도 말 안했으니깐요. 선생님 창피할까 봐."


"아, 고마워. 선생님 창피하지 않게 해 줘서."


"(스마트폰에 빠져 부모님이 걱정하시는 아이가)그러니깐 선생님도 책을 보란말이에요. 스마트폰만 보지 말고. 중독될라 그래요?"


"헉. 선생님이 스마트폰 보는 거 어떻게 알았어?"


"척하면 알죠.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요. 책은 안 보고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면 중독돼서 머리 나빠진대요. 그럼 공부 못해지겠죠? 대학교도 못 가고 돈도 못 벌죠."


"아, 그렇구나. 선생님도 책을 봐야겠네. 알려줘서 고마워."


책 이야기가 나와서일까, 아이들이 갑자기 책꽂이로 몰려가서 책을 하나씩 꺼내 읽기 시작한다.

똑똑한 성렬이 형아를 보고 오더니 공부가 하고 싶어진 모양이다.

그 모습이 대견해서 나도 아무 그림책이나 꺼내 들고 아이들 틈에 앉는다.

그러자 한 아이가 지청구를 한다. 아이고, 선생님이 애들 책을 보면 어떡해요. 선생님은 과테말라책을 봐야죠.

난 아차, 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 맞어. 알려줘서 고마워... 과테말라, 과테말라...

다른 아이가 그 아이를 쏘아보며 말한다. 야, 너 왜 선생님한테 잔소리 해. 싸가지 없이. 엉? 으이구, 자얼 한다. 빨리 잘못했습니다, 그래. 빨랑!

난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선생님이 미안해. 과테말라를 알았으면 너네가 안 싸울텐데.

그러자 다른 아이가 내 편을 들며 말한다. 괜찮아요. 이제 과테말라 아셨죠? 그럼 됐어요. 야, 니네도 선생님이 과테말라 아는 거 봤지? 그러니깐 형아들한테 우리 선생님이 과테말라 몰랐다는 말 하지 마. 알았지?

아이들은 굳은 맹세라도 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그러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10여 분. 1학년 아이의 집중력은 금세 한계에 다다른다.

아이들이 읽던 책을 교실 바닥에 슬쩍 내려놓고 장난감을 꺼내 놀기 시작한다.

나는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해보려고 다시 말을 건다. 근데 성렬이 형은 뭘 해서 그렇게 똑똑하대?

성렬이와 이웃에 사는 아이가 말한다.


"그 형 책 엄청 읽어요. 집에 책이 디따 많아요. 그래서 전교회장 됐잖아요."


"아, 그랬구나."


(다른 아이가) "야, 책 많이 읽으면 전교회장 되는 거 아니야. 언니들이 뽑아줬으니깐 된 거지."


"야, 똑똑하니깐 뽑아줬지. 바보 같으면 뽑아 주냐?"


"아니야, 성렬이 형아가 앞에 나가서 말을 잘해서 뽑아 준 거야."


"야, 말을 잘 할라면 똑똑해야지. 맞죠, 선생님?"


"아, 그런가? 선생님도 말 잘하고 싶은데..."


"그니깐요. 책을 보세요. 아셨죠?"


책 이야기가 나오자 아이들이 이번에는 장난감을 슬그머니 내려두고 다시 책을 집어 든다. 더듬더듬. 아이들의 책읽는 소리가 들린다.



*

그날 점심시간.

밥을 먹고 1학년 교실 앞을 지나가는 성렬이를 불러 1학년 아이들이 궁금한 것이 있으니 대답 좀 해 주고 가라고 부탁해 보았다.


아이1 : 형아, 형아는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해졌어?


성렬 : 나? (머리를 긁적이며) 나 안 똑똑한데...


아이1 : 과테말라도 알잖아.


성렬 : 6학년에 과테말라 아는 형아들 많아.


아이2 : 헉. 진짜? 야, 6학년에 과테말라 아는 형아들이 많대. 와, 쩐다!


성렬 : (으스대며) 뭐, 우리가 좀 똑똑하지!


아이들 : (성렬이의 으스대는 모습을 재미있어 하며 웃는다.)


아이3 : 형아도 책 많이 읽었어? 윤수가 그러는데 형아네 집에 책 디따 많다 그랬는데. 백권도 넘는다며?


성렬 : 응. 거의 다 읽었어.


아이들 : (놀라며) 헐. 그걸 다 읽었어? 와, 쩐다!


성렬 : (으스대며) 뭐, 내가 좀 짱이긴 하지!


아이1 : 형아, 진짜 똑똑하다. 과테말라도 한 번에 알았잖아. 우리 선생님은 몰르는데...(갑자기 한 아이가 입을 막으며) 야, 너 그 말 하지 말라니깐! 으이구, 자알 한다.


성렬 : (아이들 다툼을 말리며) 근데 걱정 마. 너네가 6학년 되면 형아보다 더 똑똑해니까.


아이2 : 헐. 우리가 어떻게 똑똑해져. 우린 책 백권도 없는데.


성렬 : 형아도 1학년땐 책 안읽었어. 너네랑 똑같았어.


아이3 : 그래? 난 벌써 열 권은 더 읽었는데.


아이 1 : 야, 나도 열 권 더 읽었어. 맞죠, 선생님?


나는 성렬이 들으라는 듯 말한다. 그럼, 그럼. 우리 1학년 아이들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데. 오늘 아침에도 읽는 거 내가 봤어.

그러자 아이들이 아까 내려 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어 읽는다. 그 모습을 보고 성렬이가 칭찬을 한다. 와, 1학년 책 엄청 잘 읽네. 6학년 되면 진짜 똑똑해지겠다.

그러자 아이들이 뿌듯해한다. 한 아이가 성렬이에게 말한다. 우리가 몰르는 거 있으면 형아한테 물으러 가도 돼? 우리 선생님은 몰르는 게 너무 많...(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말을 바꿔서) 아니, 우리 선생님이 만약에 말이야, 만약에 몰르는게 있다 그러면, 그러면 형아한테 물으러 가도 돼?

성렬이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그러엄, 하고 말하며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날 이후, 아이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복도를 콩콩콩 뛰어 2층 6학년 교실로 간다.

더하기 빼기를 몰라도 달려가고, 모르는 글자가 나와도 달려간다. 6학년 아이들이 받아주며 귀여워하자 아이들이 더 자주 간다. 친구랑 다툼이 생겨도 가고 놀이하다 규칙을 몰라도 달려간다. 어떤 날은 언니들에게 사탕을 얻었다며 자랑을 하기도 한다. 가끔 6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공부하다가도 교실 창가로 달려가 형아들을 부르며 손을 흔든다.


이러는 동안 6학년 아이들은 1학년 아이들의 롤모델이 되고 1학년 아이들은 6학년 아이들을 이상화(Idealization)한다. 더 나아가 어느 형아가 친절하고 어느 언니가 아는 게 많다고 품평도 한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멋진 선배로 자라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스로 책을 읽고 친절한 말투를 쓰려고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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