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Oct 07. 2021

"선생님, 우리 학교는 참 이상해요."

노천명 시인의 '사슴'에 대한 여덟 살의 해석


나는 일학년 담임 - 11



아이가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




우리 학교는 교실마다 탄력적으로 수업시간을 운영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지 않는다.(요즘 대부분의 학교가 이렇다) 그렇다보니 아이들이 수시로 내게 시간을 물어 온다. 아직 시계를 읽을 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건 '노는 시간이 언제냐'는 것이다. 이럴 때마다 나는 글씨를 다 쓰면, 또는 선생님이 내는 문제를 다 풀면 놀 거라고 말해준다. 그러다 얼마 전부터는 모형 시계에 쉬는 시간을 나타내 보여주며 교실 뒤편에 걸려 있는 진짜 시계의 바늘이 모형시계의 그것과 같은 모양이 될 때 논다고 알려준다. 2학기 때 공부할 시각 읽기(1학년은 정시, 30분에 대해 공부한다)를 앞두고 시계와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아이들은 공부시간 틈틈이 모형시계와 벽시계를 번갈아 보며 노는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제 아침이었다.


"선생님, 우리 학교는 이상해요."


"뭐가?"


"시계요. 칠판에 붙이지 왜 교실 뒤에 붙여요? 그거 볼라면 고개를 돌려야되는데 그럴 때마다 모가지가 아프잖아요."


"아, 선생님이 그 생각을 못했네. 미안해. 당장 앞으로 옮겨 줄게."


나는 교실 뒷편의 시계를 떼어다 위 칠판 위 태극기 옆에 걸었다. 그걸 본 아이가 흡족한 듯 말했다.


"으이구, 진작 해주지. 모가지 뿌러지는 줄 알았네."


"미안해. 선생님 보기 편하려고 뒤에 달았는데 너네 생각을 못했어. 이제라도 말 해줘서 고마워."


그랬더니 다른 아이가 그 아이를 타박하듯 말했다.


"야, '모가지'가 뭐냐? '목'이라 그래야지. 선생님 '목'이 맞죠?"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 그런가?"


"모가지가 뭐 어쨌다고? (자기 목을 가리키며) 목이나 모가지나 같은 말인데."


"야, 니 목이 모가지냐?"


"우리 할머니는 모가지라 그런단 말이야."


같은 부분이라도 동물(모가지)을 대할 때와 사람(목)을 대할 때 쓰는 낱말이 다르지만 지방이나 사용습관에 따라 방언으로 섞여 사용된다. 일학년 아이들에게 어려운 부분이고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지만 낱말의 쓰임에 대해 알 기회일 것 같다.


"오, 모가지? 선생님도 그 말 오랜만에 듣는 걸. 모가지랑 목이랑 같은 말인가?"


"모가지가 모가지지 뭐예요."


"응. 선생님이 예전에 본 말이라서."


"예전에 어디서 봤는데요?"


"어떤 시를 읽었는데 거기에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는 말이 나왔거든."


"헐. 모가지가 길면 좋지 왜 슬퍼요? 으이구, 엄청 웃긴 시를 읽으셨네요."


"야, 너 왜 선생님한테 웃기다고 비웃어. 싸가지 없이. 엉?"


"야, 선생님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니깐 그렇지."


"우리 선생님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어떤 시에 나왔대잖아."


"목이 길면 좋잖아요. 키가 클 거니깐요."


"맞아요. 기린이 높은 곳에 매달린 잎사귀 따 먹을라면 목이 길어야죠."


"아니죠. 슬프다면서요. 기린이 아니고 다른 동물이니까 슬프겠죠. 강아지라든가. (자기 목을 길게 빼며) 멍멍!"(그걸 본 아이들이 각자 자기 목을 쭉 빼고 강아지 흉내를 내며 돌아다닌다.)


"맞아. 선생님이 읽은 시에 나오는 동물은 기린은 아니었어."


"헐. 기린 아니면 뭔데요?"


"아, 그게... 선생님이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으이구, 선생님. 똑바로 읽지 그랬어요. 그런 게 기억 안 나면 어떡해요."


"야, 너 또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이 말할래? 선생님이 오래 전에 읽어서 그렇대잖아."


"미안해. 선생님이 똑바로 읽었으면 너희들이 안 싸웠을 텐데."


"으이구, 선생님이 자꾸 미안하다 그러니깐 애들이 버릇이 없는 거라구요. 몰라도 그냥 아는 것처럼 말하세요."


"아, 그런가? 선생님 때문에 싸우는 것 같아서..."


"괜찮아요. 다음에는 똑바로 읽으세요."


"혹시 송아지 아닐까요? 우리 송아지가 목이 길면 엄마 젖 못 먹을 걸요. 엄마 젖이 밑으로 엄청 늘어져 있거든요. 송아지가 젖을 못 먹으면 슬프겠죠."


"야, 그건 아니지. 송아지가 목이 길면 슬픈 게 아니라 웃기지 않냐?" (아이들이 목을 쭉 빼고 엄마 젖 먹는 송아지 흉내를 내며 웃긴 표정을 한다.)


"(옆 아이가) 송아지 말고 눈이 더 슬프게 생긴 동물일 수도 있어. 고양이처럼."


"야, 고양이보다 송아지가 더 슬퍼. 얼마나 슬픈데. 내가 봤어. 우리 아빠가 엄마소를 끌고 어디로 갔을 때 송아지가 막 울었단 말이야."


"헐. 엄마소를 왜 끌고 가. 송아지랑 살게 놔두지. 니네 아빠 나빴다."


"송아지가 엄마 소 젖 그만 먹으라고 떼어 놓는 거야."


"젖 좀 먹으라 그러지. 그럼 안 울잖아."


"엄마 젖만 먹으면 잘 안 큰대. 우리 아빠가 그랬어."


"송아지가 너무 불쌍하니깐 그렇지."


"차라리그럼 다른 소랑 같이 있으라 그래. 이모처럼."


"야, 엄마랑 이모랑 똑같냐? 으이구. 엄마가 더 좋지."


"그럼 제일 슬픈 건 송아지네. 선생님이 읽은 시에 나오는 동물이 송아지 맞죠?"


아이들은 송아지에서 다른 동물로 더 나아가지 않았다. 송아지만큼 가까이에 있으면서 잘 아는 동물이 없어서다. 나는 책꽂이에서 원작이 나오는 곳을 펴 시를 읽어주었다.



시를 읽어 준 다음 사슴 사진을 검색해서 보여줬다.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에이, 사슴은 아니네. 사슴이 왜 슬퍼요. 멋있기만 하구만."


"아, 그런가?"


"네, 사슴은 뿔이 있잖아요. 목까지 길면 더 멋진데 왜 슬퍼요?"


"맞아요. 사슴이 먼 데 산을 바라보면 슬픈게 아니라 멋있는 거죠."


"야,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산을 봤다고 써 있잖아."


"야, 그러니깐 시인이 잘 몰랐겠지. 먼 산을 보는 사슴이 왜 슬프냐? 멋있지."


"시인이 어른인데 뭘 잘못 생각하냐? 니가 시인보다 더 똑똑하냐? 잘난 척하지 마."


"먼 산에 엄마 사슴을 두고 왔나보지. 그럼 엄마가 보고 싶잖아. 송아지처럼."


"그럼 빨리 뛰어가서 보면 되잖아. 사슴이 얼마나 빠른데. (네 발로 교실 바닥을 뛰는 흉내를 내며) 따그닥 따그닥!"(아이들이 저마다 교실을 네 발로 기어다닌다)


전설 속 고향에 대한 사슴의 노스탤지어는 일학년 아이들에게 어려운 주제일까. 내가 조금 더 능숙하게 유도했으면 어땠을까.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사슴의 긴 모가지에 스민 슬픔을 익숙한 송아지의 슬픔으로 치환해 읽어낸 아이들의 감성이 대견하다. 아이들이 송아지와 같이 자라는 한, 사슴이 송아지의 슬픔을 이기기는 힘든 운명인가 보다. 노천명 시인. 의문의 일패하셨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 이제부터 할아버지랑 학교 안 올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