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힘
한 아이가 등교하자마자 가방을 책상 위에 털썩, 소리나게 놓는다. 늘 하던 인사를 안 하는 걸 보니 무슨 일이 났나 보다. 친구들도 놀라 쳐다보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창가로 터벅터벅 걸어가 창문을 확 열어젖힌다. 운동장에는 아이의 할아버지가 한 쪽 손에 지팡이를 잡고 서계신다.
"나 이제부터 할아버지랑 학교 안 올 거야. 이따 데릴러 오지도 마!"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간다. 나도 어정쩡하게 일어나 운동장 쪽을 본다. 아이 할아버지가 웃으며 손을 흔드신다. 그래도 아이는 여전하다. 그걸 보고 다른 아이가 나무란다.
"으이구, 자알 헌다. 너 왜 할아버지한테 소리질러. 싸가지 없이. 니네 엄마 아빠가 그렇게 가르쳤냐?"
그러자 아이도 맞받아친다.
"넌 상관쓰지 마. 니네 할아버지도 아니면서."
여느 때 같으면 투닥거림이 이어질 텐데 오늘은 아니다. 아이의 눈에 눈물이 꽉 차 있어서다. 나무라던 아이도 멋적은지 입을 다문다. 아이는 의자에 털썩 앉아 그림일기를 꺼낸다. 교실은 이내 평온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평소와 다른 모습이다. 창밖을 보니 아직 할아버지가 계신다.
엄마 아빠가 시내로 출근하면 아이는 할아버지와 지낸다. 학교가 끝날 즈음이면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교문에서 기다리신다. 공부를 마치면 아이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며 할아버지를 부른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양팔을 벌리고 기다렸다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 내려놓는다. 아이가 귀한 물건을 하사하듯 가방을 할아버지에게 건넬 때도 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가방을 어깨에 척 걸치고,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간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 앞에 가방을 내동댕이치기도 한다. 그럼 할아버지는 놀란 얼굴을 하시고 아이 얼굴에 귀를 바짝 대고 투정을 들어주신다. 그런 다음 가방을 집어 들고 정성스레 흙을 터신다. 아이가 누그러지면 가게에 데려가 아이스크림을 사 주신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림일기를 그리라고 시키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나를 보자 할아버지가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이신다. 민망하신 표정이다.
"아, 글쎄. 과자 안 사줬다고 저렇게... 하이고, 참..."
"과자요?"
"나야 사 주고 싶지유. 근데 아침부터 과자를 먹어버릇해서 그런가 밥을 통 안 먹으니 어떡해유. 오늘부터 안 사준다 그랬더니 골이 나서(화가 나서) 저렇게..."
교실로 와보니 아이는 일기를 안 쓰고 그냥 앉아 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아예 팔짱을 끼고 돌아 앉는다.
"아이고, 그림 일기를 안 썼네? 할아버지한테 아직 화났어?"
"왜 할아버지랑 말하냐구요... 나 학교 끊을 거야!"
"아이고, 큰일 났네. 니가 학교 끊으면 우리반에 재밌는 아이 하나가 없어지는데... 그래도 오늘 그림 일기는 쓸 거지?"
"안 써요."
"아이고, 그럼 이따 친구들 집에 간 다음에 남아서 써야하는데."
"(돌아 앉으며) 싫어요!"
다른 아이가 또 나무란다.
"야, 너 왜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이 말해. 엉?"
"(신경질적으로) 야, 너는 상관쓰지 마."
다른 아이가 달래듯 말한다.
"우리 집에 가면 너 혼자 나머지 공부 할라 그러냐? 지금 그냥 쓰지. 으이구."
"너도 상관쓰지 마!"
아이가 교실 구석에 가서 털썩 앉는다. 팔짱을 단단히 낀 걸 보니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나는 교실 칠판 구석에 '오늘 남아서 일기 쓸 사람'이라고 쓰고 아이 이름을 써 넣는다. 그걸 본 아이는 책상을 주먹으로 꽝 치고 엎드려 소리내어 운다. 몇 몇 아이가 달래보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잠시 후 내가 일기 다 쓴 사람은 그네를 타러 나가도 된다고 말한다. 그 말에 아이도 눈물을 슥슥 닦고 그림일기를 쓴다. 나는 칠판에서 아이의 이름을 지운다.
아이들은 대체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습게 안다. 당연히 말도 잘 안 듣는다. 잘못하면 훈육하는 엄마 아빠와 달리 아이 편을 많이 들어주시니 만만해서일 테다. 1학년 아이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온갖 떼를 받아주는 존재다. 야단맞을 때에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따뜻한 다독거림이 준비된 피난처가 된다. 강요와 금지가 많은 훈육의 세계에서 오로지 존재 그 자체만으로 끝없이 기뻐해주고 환대해주는 사람. 한없이 포근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의 행복한 관계. 돈을 주고 만들 수 없는 사랑의 끈. 할아버지 할머니를 가진 아이의 복이다.
하지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할아버지의 복인가에 대하여 난 섣불리 긍정하지 못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손자를 돌보는 노년의 삶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기쁨은 잠시, 육아의 책임이 자기에게 떨어질까 봐 걱정하는 분들이 주변에 있다. 조부모의 역할은 부모의 부족한 노동력 메꾸기인 경우가 많다. 평생 자식을 키워내고 이제 좀 쉬려는데 손주마저 돌봐야 하는 처지가 고되다. 조부모가 집안의 어른으로 인정받는 사회에서 조부모의 양육 참여는 성장과 연륜의 지혜를 전수한다는 자부심이 되었지만, 핵가족 중심인 요즘 사회에서 조부모의 양육법은 지혜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전설과 신화를 들으며 꿈과 상상력을 키우던 과거 대신 낯선 사람에게 글자나 영어를 먼저 배워야하는 아이의 고충도 마찬가지다.
잠시 뒤 쉬는 시간이 지나고 공부시간이 된다. 나는 칠판에 '국어책 130쪽 펴세요'라고 쓴다. 그걸 보고 아이들이 책을 편다. 하지만 그 아이는 책을 펴지 않는다. 이번에도 몇 몇 아이가 설득을 해 보지만 요지부동이다. 한 아이가 내게 와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선생님, 얘 좀 어떻게 하세요. 이렇게 놔둘라그래요?"
난 멍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거린다.
나 : 아니, 공부는 해야하는데... 준수가 지금 할아버지땜에 화가 나서...
효림 : (준수를 편들며) 선생님, 화났을 때 공부하면 안 돼요. 기분이 나쁘잖아요.
나 : 그래도 공부를 해야하는데...
효림 : 으이구, 선생님은 공부, 공부. 공부밖에 몰라요? 화나면 머리에 공부가 안 들어간다구요.
나 : 아, 그런가?
우빈 : 헐. 그래도 그건 아니죠. 공부는 해야죠. 지가 애기도 아니면서. 누군 할아버지 땜에 화난 적 없는 줄 아냐구요.
나 : 헉. 그럼 너도 할아버지 땜에 화난 적 있어?
우빈 : 네. 우리 할아버지가 나만 오도바이 뒤에 타라 그러니깐요. 동생만 앞에 태워주고.
나 : 근데... 오도바이 앞에 타면 더 좋아?
우빈 : 당연히 더 좋죠. 앞이 보이잖아요. 바람도 시원하고. 원래 나도 앞에 탔었단 말이에요. 근데 요즘은 동생 앞에 태우느라 난 뒤에만 타라 그러잖아요.
나 : 아이고, 화날만 했네. 준수도 그래서 화났니?
준수 : 아뇨...
우빈 : 쟤네 할아버지가 과자 안 사줘서 떼부리는 거예요.
준수 : (화 내며)야, 너도 과자 얻어 먹었잖아. 그거 다 내놔!
나 :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과자 먹으면 밥 잘 안 먹을까 봐 걱정하시던데?
준수 : 내일부터 밥 잘 먹을라 그랬는데...
우빈 : (빈정거리며) 헐. 니가 참 잘도 먹겠다. 급식도 매일 남기는 주제에.
준수 : 미역국을 줬으니깐 그렇지. 나 미역국 먹으면 토한단 말이야.
우빈 : 매운탕도 남겼잖아.
준수 : 매우니깐 그렇지.
효림 : 으이구, 미역국도 안 먹고 매운 것도 안 먹고. 까다롭네, 까다로워.
우빈 : 니네 할아버지가 너 밥 잘 먹고 키 크라고 그러는걱잖아.
준수 : 나 밥 잘 먹을 거라니깐.
우빈 : 그럼 할아버지한테 밥 잘먹을게요, 편지 쓰면 되지 왜 소리 질렀냐?
준수 : (팔짱을 풀고 일어나 자리로 오며) 선생님, 저 종이좀 빌려줘요. 편지 쓰게.
나 : (종이를 주며) 뭐라고 쓸 건데?
준수 : 할아버지한테 미안하다고.
나 : 뭐가 미안한데?
준수 : 때려서요. 심부름도 안 하고.
우빈 : 헐. 할아버지를 때렸어? 와, 쩐다. 저 녀석 완전 패드립이구만.
준수 : 패드립 아니거든!
우빈 : 너, 우리 할아버지 같음 벌써 디졌을지도 몰라.
나 : 헉. 왜?
우빈 : 우리 엄마한테 맞아 죽죠. 싸가지 없다고.
아이가 쓴 편지를 보니 정작 화내서 미안하다는 말이나 밥 잘 먹겠다는 말은 빠져 있길래 까닭을 물어보았다.
"때렸으니깐요. 안 때릴라 그랬는데 과자를 안 사준다 그러잖아요. 지팡이 가져오라는 심부름도 안 했죠."
"아이고, 할아버지가 힘드셨겠네."
"그러니깐요..."
"다리도 아프셨겠네."
"그러니깐요..."
"그랬구나. 근데 아까 할아버지한테 데리러 오시지 말라고 했잖아. 그럼 이 편지 어떻게 전해드리지?"
"그러니깐요..."
옆에서 듣고 있던 우빈이가 답답하다는 듯 말한다.
우빈 : 으이구, 다시 오라그러면 되죠. 야, 선생님한테 죄송한데 폰 좀 써도 되까요, 물어보고 빌려서 전화해. 빨랑.
효림 : 야, 준수가 쑥스러우니깐 그렇지. 아침에 할아버지한테 화 내서.
우빈 : 야, 뭐가 쑥스럽냐? 그냥 해도 돼. 할아버지들은 원래 그런 거 안 따져. 선생님, 빨리 준수한테 전화 빌려줘요. 네?
전화를 받아 든 아이가 교실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한다.
"할아버지... 응. 밥 먹었어? 아니... 그냥... 선생님이 전화해도 된다 그랬어... 진짜야... 근데 할아버지, 이따 노인회관 갈 거야? 안 가면 나 좀 데리러 오지... 할아버지랑 같이 가고 싶으니깐 그렇지. 아, 알았어. 화 안 낼게. 아, 밥도 잘 먹지... 진짜라니깐. 사람을 왜 못 믿어. 응? 지팡이 잘 짚구 와. 움푹 들어간 데 잘못 짚지 말구... 할아버지가 또 자빠질까 봐 그러지..."
전화 목소리가 나긋나긋하다. 아침에 소리지르던 녀석은 어디갔지?
점심시간. 후식으로 나온 딸기 요거트를 먹지 않고 몰래 주머니에 넣는다. 그걸 본 친구가 시비를 건다.
"야, 너 왜 요거트 꼬불쳐. 급식실에서 받은 건 급식실에서 다 먹으라고 선생님이 그랬잖아."
"야, 나 이거 안 먹을 거란 말이야."
"뻥치시네. 지난 번에는 잘만 먹었으면서."
"아니, 먹긴 먹는데 집에서 먹을라그러지."
"급식실에서 먹어야지 왜 집에 가서 먹냐?"
"넌 상관쓰지 마."
그러자 아이들이 내게 와서 이른다.
"선생님, 준수가 요거트 꼬불쳐요."
"꼬불? 그게 뭔데."
"안 먹고 집으로 훔쳐가잖아요."
준수도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훔쳐가는 거 아니에요. 집에 가져갈라 그러는 거지."
"집에? 가져가서 뭐 할 건데?"
"할아버지 줄라 그러죠."
다른 아이가 따진다.
"선생님이 급식실에서 받은 건 여기서 다 먹고 가라 그랬잖아요."
"맞아. 급식실 음식은 나중에 먹으면 안 돼. 상하면 식중독에 걸릴 수 있거든."
"그럼 할아버지한테 어떻게 줘요. 우리 할아버지 이거 좋아하는데."
"그래도 안 돼. 그건 여기서 먹어야 해."
혼자 먹느니 차라리 안 먹겠다는 건지 아이는 요거트를 꼭 쥐고 버틴다. 아이들이 다 먹고 그네를 타러 나가자 그제야 먹기 시작한다. 눈물이 뚝 떨어진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할아버지한테 선생님 다 일러줄 거예요. 못 가져가게 했다고."
"헉. 혹시 너네 할아버지 무서우셔?"
"화나면 엄청 무서워요. 지난 번에 삽도 막 던지고 욕도 엄청 크게 했어요."
"아이고, 선생님 큰일 났네..."
이걸 지켜보던 영양교사가 웃으며 말한다.
"1학년 선생님 큰일 나셨네요. 준수네 할아버지 엄청 무서우시다는데 어떡해. 준수야, 선생님이 딸기 요거트 남은 거 냉장고 넣었다가 집에 갈 때 줄 테니까 이거는 지금 먹어. 그리고 이따 할아버지한테 선생님 혼내지 말라고 말씀드려줄래?"
아이는 요거트 꼭 줘야한다고 거듭 다짐을 받더니 이르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제야 흡족한 표정으로 요거트를 먹는다.
학교가 끝나자 아이는 급식실에서 요거트를 받아 운동장으로 내달린다. 할아버지는 늘 그러셨듯 환하게 웃으며 아이를 맞는다. 또래보다 성장이 늦어 보이는 아이를, 공교롭게도 조부모가 키우는 경우, 상담을 하다보면 조부모의 허용적인 양육태도에서 원인을 찾는 학부모가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너무 오냐오냐 하니까 아이 버릇이 나빠지고 아기짓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더 엄격한 훈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관점의 이면에는 조부모의 양육방식을 낮춰보는 시선이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 할만 한 연구 근거는 없다. 대신 조부모의 무조건적인 허용이 아이의 스트레스 해소 창구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 많다. 조부모에게 칭얼대는 다른 양육자에게도 칭얼댈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자기 감정을 마음껏 투사할 대상을 가져 본 아이는 타인의 감정을 더 잘 수용한다. 세상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시여. 만수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