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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Oct 06. 2021

우리 엄마 오늘 학교 오죠?

상담? 그런거 왜 하냐구요!

보통 4월이면 상담이 시작된다. 학교에서는 가정에 신청서를 보내 원하는 날짜와 시각, 상담 방법(방문, 전화, 메일 등)을 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담임은 회신서를 기초로 상담일정을 짠다. 상담날이 다가오자 아이들도 떨리는지 관심을 보였다.


준수 : 선생님, 우리 엄마 오늘 학교 오죠?


나 : 오늘? 너네 엄마 학교 오신대?


준수 : 으이구, 상담주간이잖아요! 선생님, 또 까먹었어요?


나 : 아!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까먹을 뻔 했네.


준수 : 근데 그런거 왜 하냐구요!


나 : (당황하는 척하며) 아, 그게... 상담을 왜 하냐면...


우빈 : 우리가 공부 잘 하는지 못하는지 엄마한테 말하는 거죠? 다 알아요.


나 : 그렇긴 한데... 너네가 학교에 잘 오고 공부도 열심히 하잖아. 근데 너네 엄마는 집에 계시니까 잘 모르시잖아. 그래서 선생님한테 들으러 오시는 거야. 또 너네가 집에서 엄마 말 엄청 잘 들을 거잖아. 얼마나 잘 듣는지도 말해주러 오시는 거야.


준수 : 우리 엄마는 내가 집에서 동생이랑 싸우는 것만 말할 거니까 그렇죠.


우빈 : (끼어들며) 야, 니가 맨날 동생이랑 싸우니깐 그렇지. 니네 동생 어제도 울렸잖아. 내가 다 봤어.


준수 : (말을 자르며) 야, 넌 상관쓰지 마! 아침에 내가 이 닦아야 하는데 동생이 화장실에서 안 나오잖아요. 그래서 제가 빨리 나오라 그랬는데 엄마가 너 자꾸 그러면 이따 학교에 가서 다 선생님한테 말한다 그러잖아요.


나 : 엄마가 선생님한테 뭐라고 하실 것 같니?


준수 : 내가 화장실 문 발로 찬 거 다 일르겠죠. 근데 동생이 먼저 잘못했어요. 걔네 유치원 차는 내가 학교 간 다음에 오니깐 화장실에 더 늦게 가도 된다구요.


나 : 아하... 그럼 선생님이 엄마한테 대신 말씀드려 줄까?


우빈 : (갑자기 나서며) 근데 엄마들이 선생님 말을 안 믿을 수도 있어요. 선생님이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할라 그래요.


나 : 아,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러면 큰일인데.


우빈 :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제가 공부 잘 한다 그랬더니 선생님한테 물어봐야 믿을 수 있다고.


효림 : (끼어들며) 야, 우리 엄마는 선생님말 다 믿는대. 니네 엄마랑 똑같은 줄 아냐?


우빈 : 야, 그건 니네 엄마가 뻥치는 거야. 보지도 않고 어떻게 믿냐?


나 :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선생님이 지난 번에 엄마들 다 만났잖아. 그때 엄마들이 그러셨어. 선생님 말 믿을 거라고. 대신 선생님도 거짓말 안 할 거야.


준수 : 헉. 선생님은 거짓말 쪼끔 해야죠. 우리가 교실에서 공부 안 한 거 다 말할라그래요?


나 : ('1학년 아이들은 공부 잘하고 있습니다' 라고 메모지에 쓰며) 그럼 이렇게 써서 보여드려겠다.


준수 : 근데 우리 엄마한테는 더 잘 말해야돼요. 진짜 안 믿을 지도 모르니깐요.


나 : (다시 펜과 메모지를 꺼내며) 그래? 알았어. 선생님이 엄청 더 잘 말씀드려서 꼭 믿으시게 할 게.


준수 : 우리 엄마한테 동생 말만 믿지 말라고 말해주세요. 동생도 거짓말 엄청 많이 한단 말이에요.


나 : 알았어. ('동생 말만 믿지 마세요'라고 쓴 메모를 보여주며) 알았어. 이렇게 꼭 말씀드릴게.


준수는 내가 쓴 메모를 꼼꼼히 읽고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자기 자리에 가서 앉는다. 하지만 잠시 뒤, 다시 오더니 쭈뼛거리며 말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 알아서 바람직한 어린이로 가르쳐 줄 거라는 믿음과 기대가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학부모는 학교를 믿었고, 학교는 학부모의 마음으로 교육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일하기 바빠 아이 학교에 방문할 시간이 없던 때이기도 했다. 이제 더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교육 행위 하나하나는 학부모에게 알리고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교사가 임의로 아이를 판단해 야단치는 것도 안 된다. 다만 합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 상담은 꼭 필요하다.



준수 : 근데... 어제 엄마가 나한테 책 보라고 했을 때 죄송하다고 말해주세요.


나 : 죄송하다고?


준수 : 네, 엄마가 어제 나한테 책 보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만화 쫌만 더 보고 책 본다고 그랬는데 엄마가 테레비를 팍! 껐단 말이에요.


나 : 아이고, 그랬어?


준수 : 엄마한테 죄송하다고 그럴라그랬는데.


나 : 화가 나서 말하기가 어색했구나? 선생님도 그런 적 있는데.


준수 : 네. 제가 개빡쳐가지고요.


나 : 헉. 왜?


나 : 만화가 거의 다 끝났는데 아직 노래가 남았단말이에요. 노래만 끝나면 책 볼거였다구요.


나 : 근데 엄마가 테레비를 팍! 끄셨구나?


준수 : (울먹이며) 근데 나 그 노래 엄청 좋아한단 말이에요.


나 : 헉. 엄청 좋아하는 노래를 다 못 봤는데 테레비가 꺼지다니!


준수 : 그러니깐요. (눈물을 닦는다)


나 : 아하, 그럼 선생님이 엄마한테 이렇게 말씀드리면 되겠다. "엄청 좋아하는 노래를 다 못 봤는데 테레비를 끄셔서 죄송했대요."


우빈 : (옆에서 듣다가) 헐. 그게 아니죠. 좋아하는 노래를 꺼서 슬펐어요, 그래야죠.


나 : 아, 그런가?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선생님이 실수할 뻔 했네.


준수 : 근데 테레비 팍! 끈 건 괜찮아요.


나 : 아하, (메모하는 척하며) 그럼 테레비 끈 건 괜찮다고 말씀드릴게. 그럼 죄송한 건 왜 그럴까?


준수 : 엄마가 책 보라고 할 때 말 안 듣고 테레비 본다고 고집 펴서요.


우빈 : (아이 편을 들며) 그래도 노래만 듣고 책 보라 그러면 되는데 팍! 껐잖아요. 그건 아니죠. 우리도 테레비 볼 권리가 있는데. 그럴 거면 테레비를 왜 샀냐구요.


효림 : 야, 엄마가 책 보라면 책을 봐야지. 까불다가 테레비 금지되면 어떡할라그래. 노래는 나중에 유튜브에 쳐서 보면 되잖아.


나 : 노래는 나중에 들어도 되는데 테레비 안 끄고 고집 피워서 죄송하다는 거구나?


준수 : 네.


나 : 그건 선생님이 대신 말하는 것보다 네가 직접 엄마한테 말하면 어떨까? 엄마가 엄청 감동받으실 거 같은데.


준수 : 싫어요. 선생님이 대신 말해주세요, 네?


나 : 알았어. 근데 왜 싫은지 이유를 알아야 대신 말해주지.


준수 :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러면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에서 뜨거운 게 생긴단 말이에요.


나 : 뜨거운 거?


준수 : 화가 나서요. 화나면 여기가 뜨거워져요. (울먹이며) 난 노래만 듣고 바로 끌라 그랬단 말이에요. 진짜예요.


부당하다고 느끼는 상황을 억울해 할 줄 아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다. 자신의 감정을 배반하지 않는 아이다. 어떻게 키우면 이런 아이로 클까.


나 : 엄마가 조금만 늦게 껐으면 좋았겠다. 그랬음 네가 알아서 껐을텐데. 그치?


우빈 : (아이1을 위로하며) 그러니깐요. 야, 니네 엄마 승질 엄청 급하지?


준수 : 동생이 엄마 말을 안 들어서 그래. 그래서 엄마가 빡쳐가지구 나한테까지 그랬잖아.


나 : 아하, 엄마가 동생 때문에 힘들어하셨구나? 그래서 홧김에 테레비를 팍! 끄셨겠어. 선생님도 그런 적 있는데.


우빈 : 그니깐요. 동생이 문제라니깐요. 저도 우리 동생 땜에 개빡친 적 많다요.


나 : 알았어. 선생님이 꼭 말씀드릴게.



이 말을 듣던 다른 아이들도 엄마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나선다. 나는 종이를 하나씩 나눠준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하트를 그리고 분홍색을 야무지게 칠했다. 그것도 모자라 테두리를 돌아가며 별을 그렸다. 세상 어떤 여덟살 짜리 아이가 이렇게 달달한 편지를 쓰나. 아이고, 이런 편지를 받는 엄마 아빠는 참 좋겠네.






꾹꾹 눌러 편지를 쓴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색 테이프를 잘라 아랫부분에 붙였다. 나는 그냥 누런 종이를 준 것 뿐인데 아이는 예쁜 편지지로 변신시켰다.


     





엄마 아빠, 빨리 와요.

아홉시에 오지 마세요.

일곱시에 오세요.


아이의 부모님은 채소 가게를 하신다. 그래서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빨리 팔리면 일곱시에, 늦게 팔리면 아홉시가 되어야 퇴근한다. 엄마 아빠의 장사가 잘 되어 일찍 퇴근해서 쉬기를 바라는 아이의 간절함이, 정성껏 잘라 붙인 색테이프에 녹아 있다.


나 : 와, 편지 참 잘 썼다. 선생님 어릴 때보다 엄청 잘 썼네.


준수 : 으이구, 선생님도 1학년때 잘 쓰지 그랬어요.


우빈 : (준수를 나무라며) 야, 너 왜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이 말해. 선생님이 니 친구냐? 선생님, 글씨 몰라서 못 썼죠? 선생님 2학년 때 글씨 알았다면서요.


나 : 응. 그랬어.


우빈 : 그럼 2학년 때 썼겠네. 맞죠?


나 : 그랬어야 됐는데. 2학년 때에도 생각을 못했어.


우빈 : 헐. 왜 생각을 못해요. 2학년이. 우리도 생각을 하는데.


나 : 그러게... 너네는 부모님의 고마움을 잘 아는데. 난 엄마한테 떼만 썼나 봐.


효림 : 으이구, 그럼 오늘 쓰면 되죠. 엄마한테.


나 : 아, 그럼 되겠네. 말해줘서 고마워. 아이고, 너네 부모님은 참 좋겠네. 이렇게 멋진 편지를 받아서.


예성 : 내가 쓴 거 꼭 전해줘야해요. 알았죠? 까먹음 절대 안돼요.


나 : 알았어. 꼭 전해드릴게.


아이들은 그래도 나를 못 믿겠는지 자기가 써 준 걸 엄마에게 꼭 전하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난 꼭 그럴게, 라고 말하고 아이들이 준 종이를 고이 받아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날 오후, 상담을 오신 학부모님들께 아이가 앉는 의자에 앉아보시길 권했다. 그들은 장난감 처럼 작은 책상을 어루만지며 벅차했고 아이들이 쓰거나 그린 것들을 보며 안도했으며 아이들의 편지를 보고 뭉클해했다. 준수 부모님께는 특별히 준수가 부탁한 내용을 전달했다. 그분들은 준수의 말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 웃다가 녀석이 어느새 마음의 심지가 생긴 것을 대견해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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