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는 힘, 엄마
우리 교실은 아침에 학교 와서 어제 치 그림일기를 그린다. 일기가 처음인 1학년 아이들은 막상 그리려고 해도 어제 뭘 했는지 생각이 안 나는 경우가 많은데, 학교에서 어제 한 일을 서로 나누다보면 쉽게 소재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아이가 일기를 집에서 미리 써 왔다며 자랑하듯 말한다. 왜 미리 썼느냐고 물으니 일기장을 활짝 펴 보인다.
"우리 엄마가 왔으니깐요. 엄청 좋았겠죠?"
엄마 얼굴을 아주 예쁘게, 빨간 입술연지에 치마(턱 아래 검정색 세모 모양)까지 야무지게 그려 넣었다. 엄마를 그리면서 좋았을 걸 생각하니 그림이 다시 보인다. 아이의 마음이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건 '우리' 라는 글씨 위에 진하게 그려 넣은 멋진 별이다.
우리 엄마가 오셨어요.
좋았어요.
아이 엄마는 얼마 전부터 도시에 일하러 가 있다. 보름, 또는 한 달 만에 온다. 아이가 엄마와 떨어진 채 할머니와 사는 현실의 이면에는 도시 위주로 편중된 일자리 사정과 지속가능한 수익 창출이 어려운 농촌 현실이 있다. 농촌에서 먹고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쏟아지는 별빛과 초록의 전원 뒤에 가려진 황페함을 모른다.
"와, 그림 참 잘 그렸네. 니네 엄마 엄청 이쁘시다."
"네. 우리 엄마 엄청 이뻐요. 원래는 주름치마 입은 거 그릴라 그랬는데 몰르고 얼굴을 너무 크게 그렸잖아요. (치마를 가리키며) 쪼끔 작게 그렸죠."
"그래? 근데 별은 왜 그렸어?"
"우리 엄마 보여줄라고요."
"니네 엄마는 참 좋겠네. 선생님도 엄마한테 그림 그려 드려야겠다. 너처럼."
"왜요? 선생님네 엄마도 일 갔어요? 서울에?"
"응. 근데, 지금은 아니고 예전에 갔었어."
"그럼 선생님도 엄마 보고 싶었겠네. 쪼끔. 맞죠?"
"많이 보고 싶었어."
"난 쪼끔 보고 싶은데. 어떨 땐 쪼끔 많이 보고 싶은 때도 있지만요."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여덟살 아이의 얼굴이 더없이 밝고 여유롭다. 어딘가 모르게 자신감이 다져진 목소리에서 광채도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아이의 기쁜 표정에서, 나는 아이가 지금 견디고 있는 시간을 읽는다. 견디다 견디다 엄마가 오는 날, 일기장을 집에 가져가 엄마 얼굴을 그리는 걸로 참았던 그리움을 푸는 시간을.
엄마가 오기 며칠 전부터, 아이는 내게 와 자랑을 했다.
"선생님, 두 밤만 자면 우리 엄마 온다요."
"두 밤? 와, 그럼 얼마 안 남은 거잖아."
"그니깐요. 엄청 부럽죠?"
"아이구, 부러워라. 선생님도 엄마 보고 싶은데. 근데 아직 한 참 있어야 보는데."
"선생님도 진득허니(할머니가 자주 쓰시는 표현) 기달려 보세요. 엄마 보고 싶다고 애기처럼 자꾸 울지 말고요."
엄마가 보고 싶어 울어 본 경험 때문일까, 나를 걱정하는 말투에 아이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 오는 날이 가까워오면 아이는 평소보다 더 너그러워진다. 글씨도 더 잘 써보려 하고 친구에게 양보도 잘하는 것 같다. 심지어 싫어하는 버섯도 먹어보려 애쓴다. 안간힘을 쓰며 참았던 외로움을 일기장에 쏟아내면서도, 정작 자기를 두고 일하러 간 엄마에 대한 원망을 견뎌보려는 어른스러움이, 내겐 오히려 애잔하다.
아이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실은 엄마와 함께 있는 거라고, 다음에 가면 맛있는 것도 먹고 꽃도 보러 가자고, 엄마와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약속을 했을 것이다. 겨우 1학년이 된 아이를 떼어 놓고 돈을 벌러 가는 엄마 가슴은 얼마나 옭죄었을까. 전화기 너머로 아이의 칭얼거림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달려가고 싶었을까. 아이를 옆에 끼고 기르는 소박한 소망이 일을 해야하는 엄마들에겐 더 혹독하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육아에서 돈이 뭐라고, 그 돈 때문에 떨어져야 한다.
아이의 부모는 한때 특용작물 재배를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막 보급되던 작물이어서 수익이 제법 좋았다. 그래서 대출을 얻어 규모를 늘리고 농기계도 구매했는데, 재배농가가 갑자기 늘면서 가격이 폭락했다. 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그나마 있던 농토 마저 잃을 위기에 처하자 결국 도시로 나가야 했다. 짧은 기간 동안 바짝 돈을 모으려다보니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없었다. 눈 딱 감고 몇 년만 고생하자고,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모진 마음을 먹었다. 내내 아이가 눈에 밟혔지만, 모질게 결심했다.
사정을 모르는 아이는 엄마에게 툭하면 전화한다. 친구와 다투거나 할머니께 야단이라도 맞은 날은 더 오래 전화를 잡고 늘어진다. 밥을 안 먹기도 하고 이유 없는 떼를 쓰기도 한다. 아이가 울면서 전화하면 엄마도 울면서 내게 전화한다. 아이가 친구와 불화하거나 또래에 비해 투정이 많은 이유가 이 시기에 마땅히 있어야 할 부모가 옆에 없어서는 아닌지, 풍족하지 못한 자신의 형편을 탓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풍족한 집안의 아이는 그 나름의 성장을 할 것이나, 결핍이 있는 아이 또한 결핍의 힘으로 성장하게 마련이니 괴로워하지 마시라고 한다. 아이가 자기 삶을 감당하는 과정이니 너무 걱정 마시라고, 모든 아이들은 다들 그렇게 성장한다고, 조금 넉넉하게 말한다. 친구와 불화하고 할머니께 아기짓을 하는 것 또한 엄마가 없어가 아니라 부모와 같이 사는 아이에게도 늘 있는 일이며 아이들은 원래 엄마를 보면 칭얼거린다고. 그것만 해도 아이가 건강하다는 의미라고. 오히려 엄마 보고 싶은 마음을 감추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감정을 누르고 위장하는 게 더 걱정스러운 거라고. 그에 비하면 얼마나 대견하냐고.
하지만 내가 어떤 위로를 해도 엄마에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낳았으니 길러야 하고, 기르자니 더 잘 기르고 싶은데 현실이 그렇지 못한 것이 자기 잘못인 것 같다. 자식 키우다 보면 뜻하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행복과 불행은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 고르게 놓여 있을 텐데 지금, 아이의 부모에게는 세상 그 어떤 형벌보다 무겁게 느껴져 아이도, 엄마도 눈물이 많다.
친구와 다툴 때 아이는 정 안되겠다 싶으면 비장의 필살기를 꺼낸다.
"우리 엄마 오면 너 다 일러줄거야."
그렇게 말하고 돌아설 때, 아이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러면 아이는 눈을 꼭 눌러 감으며 눈물을 참으려 한다. 그래도 안 되면 재빨리 손등으로 눈물을 슥 닦는다. 눈물 덕분일까, 그럴 땐 아이들도 그 아이 편이 된다. 모두들 1학년. 엄마에 대해 느끼는 마음은 다들 비슷할 테다.
"(토닥이며) 야, 으이구, 울지 마. 니네 엄마 쫌만 있으면 온다며."
"(다른 아이도 맞장구 치며) 맞아. 뚝 그쳐. 얼른. (다툰 아이를 향해) 야, 너 빨리 미안하다 그래. 얘네 엄마 지금 없잖어. 불쌍하지도 않냐?"
" 나도 엄마 없을 때 언니가 때렸는데 더 울었어."
"(내가 모른 척 끼어들며) 왜?" 엄마 없다고 언니가 더 때렸어? 그럴 땐 칼라파워로 막으면 되는데. (손을 휙휙 돌리다 앞으로 쭉쭉 뻗으며) 칼라 파워! 칼라 칼라...!"
"(어이없는 표정으로) 헐. 엄마가 보고싶으니깐 그렇죠. 선생님은 그것도 몰라요?"
다른 아이들이 무심코 엄마 이야기를 하면 나도 모르게 그 아이의 눈치를 본다. 1학년 아이에게 엄마는 보호자인 동시에 만만한 심술 상대다. 아이는 엄마가 오기를 기다려 맘껏 떼를 쓴다. 평소 안하던 아기짓을 하고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 엄마를 붙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어떤 땐 엄마가 직장으로 제때 돌아가지 못하고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출발하기도 한다. 그럴 때, 아이의 일기는 평소 그토록 참았던 눈물일 것이다.
엄마의 휴가가 끝나가면 차마 아이 얼굴을 보기가 괴롭다. 엄마에 대한 아이의 애증은 숨겨지지 않는다. 안쓰러운 마음에 위로해라도 해 줄까 싶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너무 편을 들면 아이의 칭얼거림이 오래 갈까 봐, 그렇다고 모른 척하자니 아이가 좌절할까 봐 끙끙거린다. 그러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뭐라고 한 마디 해 주고 싶어 다가가면 아이는 오히려 먼저 밝은 척하기도 한다.
"선생님, 우리 엄마 담달에 또 온다요. 그땐 엄청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참 좋겠죠?"
그 말에 값싼 동정이 일던 내 마음이 멈칫. 난 두 손으로 아이의 양볼을 감싸주며 그저 부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이고, 정말 좋겠네. 아유, 부러워라."
"어쩌면... 이번엔 더 일찍 올 수도 있어요. 어쩌면요."
"그래? 와, 좋겠다. 선생님도 우리 엄마 보고 싶은데."
"선생님 엄마도 일찍 온 대요? 어쩌면?"
"아니, 선생님이 보러 가야 해. 엄마가 버스를 못 타시거든."
"왜요?"
"버스 타면 멀미를 하셔."
"헐. 우리 엄마는 멀미 안 하는데."
"너는 좋겠다. 엄마가 멀미 안 해서."
"네, 좋겠죠? 우리 엄마는 운전도 잘하는데. 백이십 킬로로 막 달리는데."
"와, 엄마가 운전 박사님이신가 보네."
"그니깐요. 선생님도 엄마가 오면 좋은데. 그쵸?"
"아, 맞아."
"근데 왜 엄마가 돈 벌러 가냐군요. 차라리 할머니가 가고 엄마는 있으면 좋은데."
"맞아. 근데... 우리 엄마도 그랬어."
"아, 선생님 엄마도 그랬어요? 그럼 진득허니 기달려야겠네. 애기처럼 울지 말고. 그쵸?"
어떤 1학년 짜리가 엄마를 기다리며 "어쩌면"이라는 어휘를 쓰는가. 아이는 엄마가 다음에도 빨리 오지 못할 거라는 걸 아는 건 아닐까. 그래서 그날은 책을 펴 놓고도 멍하고, 글씨를 쓰다가도 멍했다. 그렇게 욕심내던 그네도 안 타고 먼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친구와 늘 하던 작은 시비에 목 놓아 울기도 했다. 엄마를 보낸 마음이 까끌까끌해진 것이다.
당면한 삶을 고스란히 겪어내는 아이 앞에서, 선생인 나는 이럴 때 무얼 해줘야 하나. 엄마가 일터로 돌아간 뒤 하루나 이틀, 길 땐 사나흘 동안은 아이에게 힘든 시간이다. 난 아이 스스로 기운을 차리고 피어오를 때까지 그저 미련하게 기다린다. 심한 날은 아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한 숨 재우시라고 말씀드린다. 시간의 힘일까, 그래도 3월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아이 마음 속 생채기에 굳은 살이 박혔는지 요즘은 눈물도 많이 줄었다. 처음엔 엄마가 멀리 가 있는 것도 숨겼는데 이젠 제법 스스럼 없이 엄마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 엄마 보고 싶어요."
"그래? (전화기를 꺼내며)선생님이 엄마한테 문자 보내줄까?"
"네."
"뭐라고 보낼까?"
"엄마가... 일... 잘하라고요. 안전하게..."
"(문자를 입력한 뒤 보여주며) 이렇게?"
"네. 아, 그리고 '행복하게'도요."
"알았어. 근데 왜 '안전하고 행복하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물어봐도 될까?"
"할머니가 할아버지랑 하는 말 들었는데... 엄마가 고생한다 그랬으니깐요."
"엄마가 어떤 일 하시는데?"
"(머뭇거리며) 음... 잘 모르는데 밤 10시 넘어도 일하거든요."
이 시기 아이들은 어른의 말을 근거로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것도 일부러 나쁜 상황을 상상한다. 엄마에 대한 애정을 걱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할머니가 말하는 '고생'이 아이에게는 '위험하고 고되다'로 해석되고 있다. 엄마가 하는 일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되, 아이가 걱정할 만한 부분은 각색을 해서라도 안심시키는게 좋겠다고 엄마에게 전했다.
아이 엄마 : (웃으며) 아, 어쩐지... 그래서 ㅇㅇ이가 저한테 툭하면 안전하게 일하냐고 물었나 봐요. 전 왜 자꾸 안전, 안전, 그럴까 이상했거든요. 제 일은 사무직이라 위험하지 않아요. 10시요? 그렇게 까지 늦게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아마 그 시각에 전화 못 받은 적이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나 봐요.
아이 엄마가 답장을 보내 오면 바로 말했다.
"엄마가 뭐라 그랬는데요?"
"엄마가 일 잘하고 계신대. 안전하고 행복하게."
신기하기도 하지. 문자 어디 좀 봐요, 하지도 않고 기분이 좋아서 놀러 나간다. 엄마가 답장을 미처 못하는 날에도 문자 왔다고 말한다. 아이는 자기 마음이 엄마에게 갔다는 것만으로 족한가 보다. 어쩌면 아이가 운 건 엄마가 보고 싶어서라기보다 엄마의 안전과 행복을 걱정해서가 아니었을까. 이 엄마, 든든하시겠네.
부디 시간이 앞으로 아이 삶에 드리울 외로움과 절망을 무디게 해 주었으면. 그래서 언젠가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엄마와의 시간을 어서 앞당겨 주었으면. 아이와 떨어지면서 엄마가 얼마나 야무진 당부를 했는지, 요즘은 속상한 일을 만나도 혼자 눈물 슥 닦고 돌아설 뿐 어지간해선 엄마를 부르며 울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저 아이, 잘 크고 있구나 생각이 든다.
정치가들아, 더이상 아이와 엄마가 떨어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들라. 그것이 그대들이 그토록 떠드는 진짜 복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