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인류
며칠 전(4월 5일)이었나 보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으면서 자기들끼리 수군수군 하더니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4월 9일 될라면 몇 밤 자야 돼요?"
난 건성으로,
"너넨 꼭 어려운 것만 선생님한테 물어보더라. 그거 알려면 오늘이 5일이니까 9 빼기 5를 해야 되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어."
했더니, 두 아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아, 그러게 2학년 형님들한테 가서 물어보자니까!"
그것과 동시에 한 여자아이가,
"야, 9 빼기 5는 4니까 네 밤만 더 자면 되지, 니넨 그것도 모르냐, 으이구."
타박을 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화를 내면서,
"야, 잘난 척하지마. 니가 그렇게 빼기를 잘하면 2학년 교실로 가면 될 거 아냐!"
어이쿠, 이 놈들 또 싸우네. 내가 화제를 돌리며 말했다.
"근데 4월 9일은 왜? 노는 날일가?"
그랬더니 티격 거리던 아이들이 한 편으로 날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날 치킨이 나온다구요!"
우리 학교는 급식실 입구 잘 보이는 곳에 월요일마다 일주일 치 식단표를 붙여 놓는다. 1학년 아이들은 특히 그 메뉴에 관심이 많다. 나란히 줄을 서서 급식실을 가다가도 메뉴판 앞을 지날 때에는 어떻게든 천천히 가려고 목을 뒤로 빼며 메뉴를 읽는다. 아직 글씨를 읽기가 벅찬 아이들이어서 메뉴를 한 번에 읽지 못하고 하루에 몇 개씩 깨우치는 모양인데 그중 글씨를 잘 읽는 아이가 9일에 양념통닭이 나온다고 말을 해 버린 모양이다. 그 뒤, 아이들은 온통 치킨에 매료되었다. 치킨을 그토록 좋아하지만 건강식 위주의 학교 식단에서 보기 드문데 드디어 이번에 나오는 것이다. 그날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은 아이들은 점점 기대가 되는지 날짜를 세어 가며 말하곤 했다.
"선생님, 9일날 치킨이 나온대잖아요, 글쎄. 참. 맛있겠네. 그쵸?"
"그러게. 우리 9일에는 결석하지 말고 학교에 꼭 오자. 치킨 먹어야 되니까."
나 또한 아이들에게 호응하며 부추겼다.
*
시골 아이들에게 치킨은 도시 아이들의 그것과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배달도 안 오고, 한 번 먹으려면 시내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외식을 나가려면 무슨 특별한 날이어야 한다. 어쩌다 아이들이 시내에 나가 외식을 하고 온 날이면 아침부터 내게 와서 자랑을 한다.
"선생님, 어제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셨어요? 못 먹으셨어요?"
"나? 못 먹었는데?"
"으이구, 먹으시지. 나는 어제 먹었는데. 할아버지 생신이었잖아요."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 앞에서 일부러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부러운 표정으로 약간의 호들갑을 동원해 자세히 길게 물어준다. 그러면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거만한 귀공자의 표정으로 뭘 먹었는지 손을 꼽아가며 말한다.
"뭘 먹긴요. 닭갈비 먹었잖아요."
"헉. 닭갈비? 야, 그거 엄청 맛있는 거잖아. 혹시 거기 고구마도 있었어? 선생님은 고구마가 좋던데."
"(으쓱해 하며) 아이고, 당연히 고구마 있죠. 닭갈비잖아요."
"(침을 꿀꺽 삼키며) 아오, 맛있었겠네. 볶음밥은? 설마 그것까지 먹진 않았겠지?"
"먹었죠. 두 개. 우동 사리도 추가해서 먹었죠."
"아이고, 부러워라. 진짜 엄청 맛있었겠네. 선생님은 어제 그냥 밥만 먹었는데."
아이의 표정에서 뿌듯함과 고마움, 행복감이 스치더니, 자기만 맛있는 걸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내 어깨를 살짝 토닥이며 말한다.
"괜찮아요. 선생님도 이담에 맛있는 닭갈비 먹으세요."
시골 아이들에게 치킨이나 피자를 먹는다는 건 단순한 자랑을 넘어서기도 한다. 치킨이나 피자를 먹었다는 아이가 나오면 주변 아이들이 입맛을 다시며 부러워한다. 그 부러움은 손쉽게 주문 해서 먹을 수 있는 도시 아이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 그래서 치킨 메뉴를 더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놀다가도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이 치킨 이야기를 꺼냈다. 나도 아이들의 이야기에 살을 보태려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여러 가지 치킨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더 간절하게 9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이1 : (부러운 표정으로 치킨 사진을 보며) 선생님, 서울에는 치킨 집이 엄청 많겠죠?"
나 : (치킨집이 표시된 지도를 보여주며) 그러게. 많은가 봐.
아이2 : 그니깐요. 서울엔 많은데 왜 우리 동네는 없냐구요.
아이1 : 야, 우리 동네는 시골이니깐 그렇지. 꾸졌잖아.(후졌잖아)
아이3 : 야, 너 왜 우리 동네 무시해. 경로당도 있고 마을회관도 있잖아.
아이1 : 야, 넌 경로당이 치킨집 보다 좋냐?
아이3 : 경로당 없으면 니네 할아버지 어쩔건데. 니네 할아버지 배신하지 마!
아이2 : 치킨집이 없으니깐 그렇지. 배달도 안 되고.
아이1 : 아, 치킨 빨리 먹고 싶다!
아이2 : 선생님, 근데 9일에 진짜로 치킨 나올까요?
나 : 메뉴에 있으니까 나오겠지?
아이1 : 급식 선생님이 까먹으실 수도 있잖아요.
나 :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아, 그런가? 그러면 큰일인데?
아이2 : 이따가 점심 먹으러 가서 급식 선생님한테 까먹지 말라고 말하려고요.
급식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영양교사에게 두 손 모아 인사를 한 뒤 공손한 표정으로 치킨을 까먹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영양교사는 그걸 보며 귀엽다며 호호 웃는다. 그걸로도 모자란지 한 아이가 내게 와서 노란 색종이를 얻어가더니 영양교사에게 편지를 쓴다. 앞으로 급식 잘 먹고 말도 잘 들을 테니 9일에 치킨 까먹지 말아달라는 내용이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저마다 색종이를 얻어다 편지를 쓴다. 나도 아이들 분위기에 편승해보고 싶어졌다.
나 : 얘들아, 치킨 엄청 먹고 싶지? 선생님이 해줄까?
아이1 : 네, 해 줘요. 빨랑요.
나 : 알았어. (창가로 걸어가며) 음하하, 기대하시라~
아이2 : 근데 치킨을 뭘로 만들라 그래요. 닭도 없으면서.
나 : (운동장을 가리키며) 그래서 지금 기다리고 있잖아. 새가 날아오면 딱 잡으려고.
아이2 : 헐. 선생님이 새를 어떻게 잡아요! 새총도 없으면서.
나 : (추릅, 입맛을 다시며) 아깝다. 새만 잡으면 치킨을 먹을 수 있는데. (갑자기 생각난 듯이) 아, 좋은 생각이 있다. 계란 하나만 있으면 돼.
아이1 : 헐. 계란으로 어떻게 치킨을 만들어요.
나 : 계란이 병아리가 될 거 아냐? 그 병아리가 크면 되지.
아이2 : 그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6학년 끝날 때까지 못 먹겠네.
아이3 : 아니거든. 닭이 엄청 빨리 자라. 몇 개월만 크면 될 걸.
아이2 : 니가 어떻게 아냐?
아이3 : 우리 집 닭이 작년에 병아리였단 말야. 근데 올해 장닭이 됐잖아. (나를 보며) 근데 계란 살 거면 꼭 유정란인지 봐야돼요. 그래야 병아리가 되거든요.
치킨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이용해 지적인 대화를 좀 더 확산해보고 싶었다.
나 : 아하, 유정란! 알려줘서 고마워. 근데 급식 선생님은 치킨 어떻게 만드실까?
아이1 : 사오겠죠. 치킨 집에서.
아이4 : 장에서 사올걸요. 그날이 장날(4일,9일이 장날이다)이거든요.
아이2 : 헐. 안돼요! 장에서 사는 건 크기만 하고 맛이 없다고요.
아이4 : 야, 아니거든! 엄청 맛있어. 우리 할아버지가 오도바이 타고 사와서 먹었는데 엄청 맛있더라.
아이2 : 야, 장에서 파는 건 전기통닭이잖아. 양념치킨이랑 같냐?
아이5 : 너네 교촌치킨 못 먹어 봤지? 난 먹어 봤단 말이야. 엄청 맛있어. 근데 어떤 건 엄청 매울 수도 있어. 먹다가 매워서 디질 뻔 했네.
아이1 : 야, 비비큐가 더 맛있어. 그거 시키면 콜라도 줘.
아이5 : 야, 교촌이 더 맛있어.
아이1. 뭐래냐? 비비큐가 더 맛있다니깐?
아이5 : 내기 할래? 야, 니네 교촌이 더 맛있는 사람 손 들어.
아이1 : (더 큰 목소리로) 야, 그럼 비비큐가 맛있는 사람 손!
아이6 : 야, 난 교촌치킨 못 먹어봤는데 어떡해?
아이3 : 야, 그럼 아무데나 손 들어.
공교롭게도 8명이 4대4로 나뉜다. 그러자 아이들이 갑자기 나를 쳐다본다.
아이5 : 선생님, 교촌이랑 비비큐 어느 쪽이에요? 빨랑요.
나 : 아니, 난... 아직 못 먹어봤는데...
아이1 : 헐. 쩐다. 치킨도 못 먹어봤어요? 할머니 생신날 고모랑 작은 아빠 오면 먹잖아요. 설마 선생님은 미역국이랑 케익만 먹은 건 아니죠?
나 : 미역국...이랑 케익...만 먹었는데?
아이들 : 헐. 선생님이 치킨을 못 먹다니!
아이4 : 야, 니네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이 말하지 마. 못 '먹다니'가 아니고 못 '잡수시다니' 그래야지. (나를 토닥이며) 선생님, 실망하지 마세요. 9일에 치킨 나오니깐요.
나 : 응. 고마워. 9일. 선생님도 그날 꼭 학교 와야지.
아이1 : 아, 9일이 빨리 왔음 좋겠다. 치킨 먹게. 나 엄청 많이 달라그래야지.
아이2 : 야, 우리가 많이 달라 그러면 나중에 형님들은 뭐 먹냐? 으이구, 양심도 없어.
아이1 : 야, 맛있으니깐 그렇지. 너도 먹어 봤으면서. 난 치킨 먹다 배터져도 돼.
아이2 : 배터지면 죽지. 으이구. 치킨이 그렇게 좋은가 보구나?
*
어릴 적, 해마다 늦가을이면 산골 우리 동네 집집마다 호박이 넘쳐났다. 주황색의 늙은 호박 껍질을 벗겨 조각내어 푹 삶다가 찹쌀을 넣고 간을 하면 샛노란 호박죽이 되었다. 엄마가 부엌에서 호박죽을 쑤는 날이면 너무 좋아서 마당을 겅중겅중 뛰어다니곤 했다. 수시로 부엌을 드나들면서 얼마나 익었는지 솥 뚜껑을 열어 보고 부지깽이로 아궁이 불을 살리곤 했다. 호박이 익으면서 달착지근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하면 숨이 막히도록 좋았다. 호박죽 보다 더 나를 흥분시키는 것이 있었는데, 호박 시루떡이었다. 시루떡은 어머니가 여간해서 하지 않는 메뉴였는데 마침 그때 손님이 온 날이었이다. 쌀가루를 켜켜이 체 쳐놓는 틈에 말린 호박이며 대추를 넣고 찐 시루떡. 몇 년에 한 번 먹어볼 까 말까 한 그 떡이 익어가는 동안 기꺼이 아궁이 불을 지키던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그 시루떡만 먹을 수 있다면 세상의 무서운 악마에게도 기꺼이 영혼을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푹 쪄서 한 뜸 식힌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시루떡 속의 호박과 대추를 한 입 베어 물 때의 그 달달한 행복감. 어떤 말로 표현이 가능할까. 또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떡 맛이 연해지면서 끝내 시큼하게 쉬어버릴 때의 그 안타까움은,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루떡이 오래 되어 쉬어 곰팡이가 슬면 물에 씻어 설탕을 섞은 다음 다시 쪄 주시곤 했다. 그 시절 나는 부자 어른이 되어 시루떡을 맘껏 먹다가 배 터져 죽었음 좋겠다는 일기를 쓰곤 했다. 얼마나 먹고 싶으면 배가 터진다고 썼을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간절한 문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도 치킨을 배가 터져 죽도록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직 구사할 수 있는 어휘가 적은 1학년 아이들은 죽겠다는 표현으로 더 센 느낌을 표현한다.
선생님, 글씨 쓰느라 팔 아퍼 죽겠어요.
우리 엄마 보고 싶어 죽겠어요.
빨리 급식 먹고 싶어 죽겠어요.
드디어 치킨이 나오기 하루 전 날인 8일이었다. 수업을 거의 마쳐가는데 한 아이가 책상을 엎었다. 의자를 책상에 바짝 끌어다 놓고 발끝을 곧추세워 무릎을 올리는 바람에 책상이 앞으로 밀려 넘어간 것이다. 책상이 제법 무거워서 만약 그 앞에 다른 아이가 있었다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학년 아이들은 뭔가 재미있다 싶은 걸 하면 금세 전체가 따라 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분명히 알려주려고 엄격한 표정으로 잔소리를 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내게 슬쩍 오더니 그런다.
"선생님, 화 푸세요. 내일 뭐 먹는 날인 거 알죠? 아프지 말고 학교 꼭 오세요."
그렇게 좋아하는 치킨이 나오는 날, 야단을 맞는 와중에도 선생님 걱정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아, 맞어. 알려줘서 고마워. 선생님도 내일 치킨 먹으러 학교에 꼭 올게. 그랬더니 그 아이, 전체를 향해 다시 말한다.
"야, 니네도 내일 아프지 말고 와. 아까 내가 급식 선생님한테 또 물어봤는데 내일 치킨 나오는거 맞대."
그 말에 아이들이 야단 맞던 표정을 풀고 기대 섞인 미소를 교환 한다. 마치 좋은 일을 앞두고 서로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원시의 축제처럼 아이들 얼굴에 행복감이 퍼진다. 태어나 겨우 6년을 살았는데, 학교에 던져서 팔이 떨어지도록 글씨 연습을 하고 혼나고 울기도하면서 1학년을 보내는데, 그래도 내일 맛보게 될 달콤한 풍요를 위해 넉넉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 와중에 책상 속 정리해라, 사물함 문 꽝 닫지 마라, 잠바 챙겨라 잔소리하는 나만 열등한 시민이다. 비록 치킨 몇 조각이겠지만, 그걸로 그간의 고통을 견뎌내는 아이들. 그래서 저 아이들이 참고 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