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연우네 아빠 죽으셨잖아요. 글쎄!”

너무 일찍... 아빠를 잃은 아이를 보며

by 나는일학년담임

여름방학 중에 연우(가명)가 아빠를 잃었다. 개학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방학 직전, 연우가 발표한 <방학때 하고싶은 일> 중에는 아빠가 어서 나아 수영장에 같이 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아빠는 그걸 아셨을까. 이제 겨우 일학년짜리 아이를 두고 눈을 감으면서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아빠 없이 아이와 남게 된 엄마의 절망은 얼마나 깊을까.


아이가 아빠의 장례를 치르느라 학교에 오지 않는 동안 개학이 되었다. (출석 인정 결석. 보통은 일주일이다.)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들 아는 시골이다 보니 소문은 금세 퍼져 아이들도 앞다퉈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연우네 아빠 죽었잖아요. 글쎄!”


“(옆 아이가) 야, 근데 너 왜 싸가지 없게 말해. ‘죽었다’가 아니라 ‘죽으셨다’그래야지. 맞죠, 선생님?”


“(다른 아이가) 야, '죽으셨다'가 뭐냐? '돌아가셨다’ 그래야지. 그쵸? 선생님?”


“그런가? 아이고, 연우 지금 엄청 슬프겠네.”


“근데 연우 까만 옷 입겠죠? (자기 팔을 가리키며) 여기에 까만 줄 간 것도 달고(굴건제복을 말하는 듯).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우리 아빠랑 삼촌이랑도 까만 옷 입었잖아요.”


“맞아요. 제가 봤어요. 연우 까만 옷 입은 거.”


“(옆 아이가) 헐. 뻥치시네. 니가 어떻게 보냐?”


“뻥 아냐. 내가 장례식장에 갔으니깐 봤지.”


“니가 거기 어떻게 가냐?”


“우리 아빠 차 타고 갔지. 엄마도 가고. 우리 아빠랑 연우네 아빠랑 친구였으니깐.”


“연우도 봤니?”


“네.”


“연우랑 얘기도 했어?”


“같이 놀았죠. 우리 아빠가 연우랑 놀아주라 해서. 근데 사실은 쫌 밖에 못 놀았잖아요.”


“왜?”


“장례식장이 원래 2층이란 말이에요. 근데 우리가 1충 주차장에서 놀았단 말이에요. 근데 쫌 이따 연우네 아줌마가 연우를 불렀으니깐요.”


“아, 그랬구나.”


“근데 전 연우가 혼나는 줄 알았잖아요.”


“혼나?”


“연우가 안 울었으니깐요. 죽으면 사람들이 막 울잖아요. 우리 엄마도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막 울었다요. 근데 연우는 안 울더라고요.”


"안 울었어?"


“네. 아빠 돌아가셨으면 울어야 하는데. 자식이니깐요.”


“아, 그런가?”


"근데 연우네 엄마는 안 혼내더라고요. 우리 엄마도 연우 막 안아주고."


"안아 줬어?"


"네. 그러다가 연우네 할머니가 연우 안고 막 울더라고요. 그때는 연우도 쪼끔 울었어요. 하마터면 나도 울 뻔 했네."


"너도 울 뻔 했어?"


“네. 우리 외할아버지 생각이 났으니깐요. 지금은 돌아가셨으니깐 다시 못 보잖아요. 이 담에 천국에 가면 볼 수 있지만.”


“(옆 아이가 아는 척하며) 야, 천국에 가도 못 볼 걸. 시체가 땅 속에서 썩거든. 맞죠, 선생님?”


“(그 아이가) 야, 니가 어떻게 아냐? 우리 엄마가 이담에 천국에서 만난다그랬다니깐.”


“(옆 아이가) 야, 사람은 죽으면 다 썩어. 시체가 됐으니깐 당연히 썩지. 근데 어떻게 보냐?”


“야, 너 왜 우리 할아버지 썩는다그래. 선생님, 얘 패드립(가족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것) 해요. 패드립 나쁜 거잖아요.”


“야, 나 패드립하는 거 아냐. 사람은 원래 죽으면 썩는 거야. 그쵸, 선생님?”


“야,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 썩는다 그러지 마. 기분 나쁘니깐.”


그 말을 하면서 표정이 일그러진 아이가 자기 책상으로 가 엎드려 훌쩍거린다. 그러자 아이들의 반은 그 아이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하고 반은 썩는다고 말한 친구를 나무란다.


“야, 너 빨리 미안하다 그래. 니가 시체 썩는다그래서 쟤가 울잖아.”


“내가 울렸냐? 지가 우는 거지.”


“니가 쟤네 할아버지 시체 썩는다 그러니깐 울지.”


“죽으면 진짜 시체 썩어. 내가 책에서 봤다니깐.”


“야, 그래도 시체 썩는다고 그러면 안 되지. 니네 할아버지 시체 썩는다 그러면 넌 좋냐?”


“야, 우리 할아버지가 왜 썩냐? 당연히 안 썩지. 아직 안 돌아가셨으니깐.”


“야, 니네 할아버지도 언젠간 죽어. 사람은 다 죽으니깐. 그때 누가 너더러 니네 할아버지 시체 썩는다 그럼 좋겠냐? 으이구!”


자기네 할아버지도 언젠간 죽는다는 말을 들어서일까, 아니면 친구들의 공세에 민망했을까. 아이가 비쭉비쭉 입을 움직이더니 책상에 엎드린다. 그러더니 뭐가 억울한지 고개를 번쩍들고 잠시 아이를 노려보더니 울면서 내게 말한다.


"선생님, 쟤네들 좀 봐요. 우리 할아버지 안 돌아가셨는데 우리 할아버지한테 패드립해요!"


"아이고, 안그래도 연우 아빠가 돌아가셔서 슬픈데 너네까지 울어서 큰 일이네. 방학동안 무슨 일 있었는지 친구들에게 얘기도 해야하고 공부도 해야하는데..."


"헐. 그건 아니죠. 이렇게 슬픈 날 공부를 하면 어떡해요? 으이구, 선생님은 공부가 그렇게 좋아요?"


"아니, 뭐... 오늘이 개학날이라서... 원래 개학날엔 그런 거 하는 건데..."


"그니깐요. 선생님은 연우네 아빠 돌아가신 것 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냐구요? 야, 우리 선생님은 정이 없어, 정이!"


"아니, 뭐. 연우네 아빠 돌아가신 게 더 중요..."


"(내 말을 끊으며) 그렇죠? 그러니깐 오늘은 공부하지 말고 연우네 아빠 돌아가신 거 생각해야죠."


"연우네 아빠 돌아가신 생각?"


"네, 연우가 얼마나 슬프겠냐구요. 그거 생각해야죠."


"그러게. 연우가 엄청 슬플 테니까.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니깐 선생님이 공부 얘기 하면 안 되죠."


연우 아빠 돌아가신 일이 더 마음에 걸리는 건 나 역시 일학년 여름방학 때 아버지를 잃어서다. 아버지가 병원에 간 건 이미 몇 년 동안 위암을 키워 더이상 걷지도 못할 정도로 나빠졌을 때였다. 아버지를 진단한 의사가 어머니더러 이제야 왔느냐고 야단쳤다고 한다. 아프면 병원에 가기 보다 무당 불러 굿을 하던 시골이었다. 1975년. 옛날이라고는 해도 지방 소도시 병원에서는 수술이 가능했다는데, 병원에 데려갈 생각을 한 어른이 아무도 없었을까. 서른 여섯. 백일 된 아기부터 열 네 살 맏이까지 다섯을 두고 죽기엔 너무 이른 가장의 나이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이제 와서 생각할 때 그렇고, 당시 여덟 살이던 나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은 아니었다. 지금 기억나는 장면도 몇 안 된다. 갑자기 친척들이 집에 많이 오고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았던 기억과 장례 끝나고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어깨를 토닥이면서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던 일 정도. '용기'를 잃지 말라고 했던 까닭도 생각해보면 우습다. '용기'의 의미를 내가 몰랐던 것이다. 당시 내가 '나는 아무것도 안 잃어버렸는데 선생님이 자꾸 나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해서 이상하다'는 내용의 일기를 쓴 것이다. 잃어버려서 혼날까 봐 걱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내가 뭘 잃어버렸는지, 잃어버렸다면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하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그렇게 겪었는데 연우는 어떨까.


아이가 더 대거리를 못 하고 머뭇거리자 아이들이 우는 아이에게 몰려가 위로한다.


“야, 너도 울지 마. 니네 할아버지 생각 그만하고. 이담에 천국에서 만나면 되니깐.”


“(다른 아이가) 그래. 울지 마. 야, 사람은 원래 다 언젠간 죽게 돼 있다니깐? 맞죠, 선생님?”


아이가 울음을 멈추자 나머지 아이들은 더 놀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각자 자리로 돌아가 앉는다. 아직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는 일학년이지만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보며 슬픔의 정서를 알아간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친구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편을 들어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의 성장을 이끈다. 성장하는 동안 나에게도 가까운 사람들과 언젠가는 죽음으로 이별하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한 오늘의 위로는 어쩌면, 미래의 자신들을 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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