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선생님. 우리 연우 잘 부탁드려요."

여덟 살 아이가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

by 나는일학년담임

아빠의 장례식 때문에 개학때 못 나오던 연우(가명)가 드디어 나왔다. 여덟 살에 아빠를 잃다니. 그 불쌍한 얼굴을 어떻게 볼지 미리 걱정되었다. 운동장으로 걸어들어가다가 연우를 교실에 넣고 나오는 연우 엄마와 마주쳤다. 연우 엄마 머리엔 하얀색 핀이 얹혀 있었다.


"아이고, 연우 엄마... 애 많이 쓰셨죠?"


"네, 선생님... 괜찮아요."


"아이고, 고생 정말 많으셨네. 연우 아빠도 잘 모셨죠?"


"네, 잘 갔을 거에요. 이젠 오래 아팠으니..."


"아이고, 그러게... 연우 아빠 오래 고생하셨죠?"


"네, 연우 다섯 살 때부터 아팠어요. 그래서 연우는 아빠 누워있는 모습 밖에 기억 안 난대요."


"아이고, 그러게... 연우가 아빠 그림 그릴 때 마다 누워있는 모습을 그리더니..."


"근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연우는 아빠 돌아가셨는데도 별 생각 없나보더라고요. 걱정했는데... 다행인 것 같기도 해요."


"네, 아직 여덟 살이니까요. 여덟 살 수준으로 아빠 돌아가신 걸 받아들일 거예요. 사실 저도 아버지가 연우처럼 일학년 여름방학에 돌아가셨어요. 아이고, 그러고 보니 저도 아버지가 방에 누워 계시던 것 밖에 생각이 안 나네요."


"아,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여덟 살 때? 어떠셨어요?"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아버지 돌아가시니까 좋더라고요. 아버지가 방에서 앓는 소리도 무섭고... 약 냄새가 항상 나서 좀 무서웠거든요. 돌아가시고 나서 싹 치우니까 좋았던 느낌만 기억나요."


"그 뒤로... 아버지가 그립거나 없어서 슬프다, 이런 생각은 안 드셨어요?"


"철이 없어 그런가 그런 생각 안 나더라고요. 아이 입장에서야 배 안 고프고 무서운 거 없으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다 5학년 쯤 어느 날, 우리 집은 아버지가 없구나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엄마가 혼자 농사지으면서 고생하는 거 보고 문득 떠올랐던 것 같아요. 근데 좀 더 지나니 그 생각도 안하게 되더라고. 생각한다고 달라지나 뭐,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네... 우리 연우도 그러겠죠...?"


"네, 아이들은 대체로 비슷하대요. 그러니까 지금은 연우 걱정하느라 엄마가 기운 너무 쓰실 필요 없어요. 연우 나이땐 아빠가 계시는지 안 계시는지 문득문득 잊는 나이라... 혹시 연우가 무슨 일로 울어도, 아빠가 보고 싶어 우나보다, 이런 식으로 넘겨 짚고 괜히 혼자 슬퍼하시면 안 돼요. 일학년은 원래 자주 우는 나이라서 우는 것 뿐일 수 있거든요."


"연우보다 제가 울어서 탈이에요. 선생님..."


"아이고, 그럼요. 사람을 보냈는데 어떻게 안 울어? 그래도 가능하면 연우 안 보는데서 우시는 게 좋겠어요. 연우가 불안해 할 수 있거든요. 연우 할머니께서도 연우 앞에서는 평소처럼 하시면 좋고요."


"아, 그 생각을 미처 못했어요. 친정 엄마가 연우 불쌍하다고 요즘 매일 우시거든요..."


"네, 어느 정도는 괜찮은데... 너무 심하거나 오래 그러시면 연우 입장에선 무서울 수 있어요. 자기 땜에 우는 줄 알거든요. 사실 우리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엄마가 오래 우셨거든요. 근데 저는 좀 무섭더라고요. 엄마한테 무슨 일 생기나? 혹시 엄마도 죽나? 아니면 나 버리고 어디 가나? 뭐 이런 생각이 막 나더라고. 그래서 엄마한테 유난히 징징댔던 기억도 나요. 그래도 연우는 밝은 기질을 갖고 태어났으니 얼마나 좋아. 잘 이겨낼 테니 연우 엄마도 기운내세요."


"연우가 일부러 밝은 척하나 싶을때도 있더라고요. 근데 몰라서 그러는 거면 다행이네요."


"시간이 좀 지나서 연우가 아빠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내는 날이 오면 그때 연우 마음을 받아주세요. 연우 나름 아빠에 대한 애도를 하는 방식일 테니까요. 아빠와 같이 찍은 사진이라든가 연우가 아빠를 추억할 물건들 정리하시게 되더라도 연우의견을 물어주시고요... 좀 더 커서 지금보다 성숙한 방법으로 아빠의 부재를 받아들일 겁니다. 연우 나름대로 아빠와 이별할 시간을 주는 게 좋겠어요."


"네, 선생님. 우리 연우 잘 부탁드려요."


교실에 들어섰을 때, 내 눈은 다른 아이들보다 연우를 먼저 찾았다. 근데 연우가 보이지 않았다.


"연우 어딨어?"


"그네 타러 갔어요. 불러 올게요."


아이가 창을 열고 그네를 향해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잠시후 쿵쿵쿵. 복도를 울리며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아이들 표정이 꽤 밝아 보였는데 특히 연우가 더 그랬다.


"연우 안녕! 학교 오랜 만이지?"


"네. 학교 빨리 올라 그랬는데 아빠 장례식 땜에 못왔잖아요. 아휴, 빨리 왔어야 되는데."


"빨리?"


"네. 그네 탈라고요. 근데 이모가 장례식 끝나고 가라그래서 못 왔잖아요."


"아, 맞아, 아빠 장례식에 갔었지?"


"네, 근데 이제라도 왔으니깐 다행이죠. 그네 타고 싶어서 디지는 줄 알았네. 히힛. 근데 그네 누가 노란색으로 칠했어요? 유치원 그넨 줄 알았잖아요. 히힛."


"아, 방학 때 그네 수리했거든. 끊어지지 않고 녹슬지 말라고."


"에이. 나 학교 왔을때 칠하지. 그랬음 좋았잖아요. 히힛."


"아, 그랬어?"


"네. 칠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아, 그랬구나."


"우리 아빠도 페인트 칠 잘했거든요. 엄청 빨리. 샥샥! 우리 아빠가 그네 칠했는 줄 알았죠. 나도 모르게. 히힛."


"아, 그래? 선생님도 노란 그네 한 번 타봐야 겠네."


"타보세요. 그네가 잘 나가는 느낌이니깐요. 글쎄. 히힛."


아이고, 이 녀석. 그새 아빠를 잊은 거야? 그런데 이 순간은, 적어도 이 순간만은 밝은 표정의 연우가 철 없는 아이로 보이지 않는다.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연우가 건강해 보인다. 돌아가신 아빠 생각에 시무룩할 거라는 생각은 어른인 나의 윤리일 뿐, 연우는 여덟 살 아이 특유의 밝음으로 힘듦을 이겨내는 중이다. 묘하게 안도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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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01화“선생님, 연우네 아빠 죽으셨잖아요.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