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해주려고요. 연우네 아빠 돌아가셨잖아요."

아이가 친구를 위할 때

by 나는일학년담임


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의 역할을 알아보고 시각을 읽는 공부를 하는 수학 시간. 나는 학습준비물 보관함을 열어 장난감 시계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꺼낸다. 아이들은 저마다 와서 시계를 하나씩 집어 들고 이리저리 돌려본다. 나는 칠판에 학습내용과 목표를 쓰고 수학책을 펴라고 말한다. 그러자 연우가 시계를 내밀며 말한다.

"선생님, 내 시계 빠갈(고장)났어요. 바늘이 안 돌아가요."

"아, 그래? 그럼 다른 걸로 줘야 겠네."

그러자 끝 자리에 앉은 효은이가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선생님, 제가 연우 시계 고쳐줄래요."

"그래?"

"네, 연우 아빠 돌아가셨잖아요. 우리 엄마가 연우 잘 위로해주라 그랬으니깐요."

"아, 마음은 고마운데... 지금은 공부시간이니까 우선 다른 걸로 공부하고 이따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효은이가 어느새 연우 자리로 와 시계를 낚아채 반으로 쪼갠다. 순식간에 톱니바퀴, 나사, 용수철 등의 부품들이 바닥에 어지러이 나뒹군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그걸 주우러 교실 바닥을 기어다닌다. 설명을 시작하려고 TV에 시계 그림을 띄워놓은 나는 멍하게 그 상황을 지켜본다. 아이들이 부품을 다 주울 동안 연우에게 다른 시계를 주고 자리를 정리한 다음 공부를 이어간다. 나는 한 차례 설명을 해주고 시각에 맞게 시계 바늘을 그려 넣는 퀴즈를 풀게 한다. 그러자 연우가 퀴즈 학습지를 내밀며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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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나 이거 지금 하기 싫어요. 다음에 할게요."

그러자 효은이가 또 연우에게 쪼르르 달려가 학습지를 빼앗듯 받아 풀려고 한다.

"아이고, 효은이 공부는 효은이가 하고 연우 공부는 연우가 해야 하는데."

"(효은) 제가 해주려고요. 연우네 아빠 돌아가셨잖아요."

"(연우) 효은이가 해준대잖아요. 그리고 난 수학 잘 모르는 데 어떻게 해요."

"몰라도 잘 생각해보면 할 수 있는데..."

"오늘은 하기 싫으니깐 그렇죠."

"어떡하지? 이거 해야 쉬는 시간에 그네 타러 갈 수 있는데."

내가 봐 줄 것 같지 않자 연우는 책상 위에 두 팔을 모으고 머리를 묻는다. 잠시 후 훌쩍이는 소리가 난다. 그러자 아이들이 퀴즈를 풀다 말고 연우 자리로 우르르 몰려가 어깨를 토닥이며 달랜다. 친구들의 응원 덕분일까, 연우가 더 크게 훌쩍인다. 그러자 아이들이 나를 향한다. 표정이 안 좋다. 효은이가 나서서 나를 타박한다.

"으이구, 선생님. 연우 좀 봐주지 그랬어요. 저렇게 울잖아요. 아빠도 돌아가셨잖아요. 우리 엄마가 연우 잘 위로해주라 그랬다구요."

"아니, 나는 뭐... 지금이 수학 시간이니까... 연우가 퀴즈를 풀어야..."

"헐. 선생님도 생각을 해보세요. 아빠가 돌아가셨죠? 그럼 마음이 아프겠어요. 안 아프겠어요?"

"... 아프겠지?"

"그쵸? 마음이 아프면 공부가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공부가 안 되겠지."

"거봐요. 그러니깐 연우를 봐 주라구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 그런가?"

그러자 반대 의견을 말하는 아이도 있다.

"헐. 그건 아니죠. 그래도 공부는 해야죠."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 그런가?"

"만약에 연우네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연우를 내려다 보면 뭐라 그러겠어요? 연우가 공부 안 한다고 뭐라 그러겠죠."

"그러게."

"연우 아빠는 연우가 이 담에 훌륭한 사람 되면 좋을 거잖아요. 그럴라면 공부를 해야죠."

"아, 맞아. 그럼 연우가 지금 공부를 해야 해."

내 말이 서운했는지 연우가 더 크게 운다. 그 사이에 쉬는 시간이 오고 난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고 그네도 타러가라고 말한다. 그 말에 아이들은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간다. 아이들이 나가자 연우도 울음을 멈춘다. 나는 연우 눈물을 닦아주고 화장실에 데려가 얼굴을 씻긴다. 그 사이에 기분이 좋아진 연우가 그네를 타러 나간다.

다시 수학 공부가 시작되고 이번에는 내가 제시하는 시각을 장난감 시계에 나타내는 활동을 한다. 하지만 연우는 또 안하겠다고 한다.

"아이고, 큰일 났네. 연우가 공부를 해야 느티나무 아래로 축구하러 나갈 텐데."

그러자 한 아이가 연우에게 가서 시계를 조작법을 알려주며 재촉한다.

"연우야. 빨리 해. 모르면 내 시계 보고 따라하면 되잖아."

그제야 연우는 시계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나 잠시 후,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시계를 내려놓는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아이가 가서 재촉한다.

"연우야, 이거 봐. 쉽지? 너도 빨리 하고 축구하러 가자, 응?"

연우는 아까처럼 책상에 머리를 묻고 훌쩍이기 시작한다. 난 다른 아이들 들으라는 듯 일부러 세게 말한다.

"흐음. 연우가 수학 안하면 연우는 축구 못 해. 친구들 축구할 동안에 선생님이랑 공부 해야 해."

"그럼 연우더러 집에 가서 해오라 그러면 되잖아요. 연우야, 집에서 해 올 거지?"

"아이고, 지금 여기서 해야 하는데."

"그런게 어딨어요. 집에서 한대잖아요."

"여기서 하면 되는데 집에서 하면 연우 엄마가 신경 쓰셔야하잖아. 그럼 연우 엄마가 힘드시지."

"연우가 지금 하기 싫으니깐 그렇죠."

"흐음... 그럼 이따 남아서 해야겠네."

"(연우) 남아서요? 나 이따가 시간 없어요. 엄마랑 어디 가야돼서."

"아이고, 그럼 지금 해야겠네. 지금 하면 선생님이 도와줄 거고, 안 하면 그네 못 타."

연우가 다시 책상에 얼굴을 묻는다. 이번엔 더 크게 울기 시작한다. 그러자 효은이가 또 나를 타박한다.

"헐. 연우 아빠 돌아가셨는데 자꾸 공부를 하라그러면 어떡해요. 선생님은 연우 위로 안 해줄라 그래요?"

"맞아요. 선생님도 연우처럼 여덟 살 때 아빠 돌아가셨다면서요. 그때 선생님도 슬펐을 거면서. 공부 했어요, 안 했어요?"

"슬펐으니까... 공부 안 했겠지..."

"으이구, 거봐요. 선생님은 공부 안 했으면서 왜 연우더라 하라그래요. 치사하게."

그러자 아까 내 편을 들던 아이가 또 끼어든다.

"야, 너 왜 선생님한테 싸가지 없이 말할라 그래. 선생님이 니 친구냐?'

"야, 선생님이 연우더러 공부 하라고 막 뭐라그러니깐 그렇지. 아빠 돌아가셨는데 공부를 해야되냐?"

"야,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맞죠, 선생님?"

"야, 오늘은 아빠 보고 싶으니깐 공부 하지 말고 아빠 안 보고 싶을 때 공부하라그러면 되는데 선생님 자꾸 오늘 하라그러잖아. (나를 보며) 선생님은 공부가 그렇게 좋냐구요! 공부 밖에 모르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 수학... 이거... 공부를..."

"그니깐요. 연우가 아빠 안 보고 싶어지면 공부 하면 되잖아요. (연우를 향해) 연우야, 너 아빠 안 보고 싶어지면 공부 할 거지?"

그러자 연우도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도 봤죠? 연우가 공부 할거래잖아요. 그니깐 오늘은 좀 봐줘요."

"그래도... 지금... 수학..."

"아, 진짜! 선생님은 공부가 그렇게 좋아요?"

"아니, 뭐... 선생님도 공부는 싫지만... 선생님이 하는 일이 너네 공부시키는 일이거든. (주간학습안내표를 보여주며) 여기 봐. '시계를 공부해 봅시다' 라고 나와있잖아. 그럼 이 시간에는 시계를 공부해야 되잖아. 그리도 다음 시간엔 '즐겁게 축구를 합시다' 니까 축구를 해야하고... 근데 연우가 안 하니까 걱정이지..."

내가 주간학습표까지 보여주며 완강하자 아이들은 더 말을 못하고 자리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한다. 친구들이 더이상 편을 들어주지 않자 연우의 훌쩍임도 멈춘다. 잠시 후, 나는 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풀었는지 확인한 뒤 연 다음 시간엔 축구를 할 예정이지만 연우는 수학 공부를 할 거라고 말한다.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으로 나가고 연우는 다시 훌쩍거린다.

나는 연우 공부에 쓸 모형시계를 가지러 교무실에 간다. 하지만 돌아와 보니 연우가 보이 않았다. 창을 내다보니 효은이가 연우의 수학책과 학습지를 든 채 연우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가고 있다. 나도 모형 시계를 들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그러자 효은이가 뛰어 온다.

"선생님, 그 시계 좀 빌려주세요. 연우한테 보여줄라고요."

"연우한테?"

"네, 연우가 지금 수학 한대잖아요. 글쎄."

"와, 잘됐네."

"그니깐요."

"근데 연우 생각이 왜 바뀌었을까?"

"제가 연우더러 빨리 하고 같이 축구하자, 그러면 니 몸이 튼튼해져서 니네 엄마 기분 좋다 그랬거든요. 그랬더니 한대요."

"오, 효은이가 연우를 공부하게 만들었네!"

"그니깐요. 난 그냥 위로를 할라 그랬는데. 히힛."

연우는 효은이가 시키는대로 모형시계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학습지에 시계 바늘을 그려넣는다. 그럴 때마다 효은이는 연우 어깨를 토닥이며 칭찬을 한다. 내가 아이들을 불러 모아 편을 나누는 사이에 두 아이는 수학을 다 마치고 준비운동에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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