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 효은이 이야기
연우는 9시가 거의 다 되어야 학교에 온다. 엄마가 출근길에 내려주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대체로 8시 50분쯤 오는 것에 비하면 연우는 조금 늦게 오는 것이지만, 아이들에게 10분은 길다. 특히 연우를 살뜰히 챙기고 있는 효은이에게는 더욱. 효은이는 학교에 오자마자 가방을 교실에 던져 놓고 교문 쪽 그네에 가서 기다린다. 그래도 안 온다 싶으면 내게 묻는다.
“선생님, 연우 오늘 학교 오죠? 설마 안 오는 거 아니겠죠?”
“글쎄. 만약 안 오면 연우 엄마께서 연락하실 텐데 아무 말 없으니 오늘 학교 오겠지?”
“근데 왜 아직 안 오냐고요. 빨리 오면 좋았잖아요.”
“빨리?”
“네, 제가 그네를 한참 탔는데도 아직 안 오잖아요.”
“아이고, 그러게. 연우는 좋겠네. 자기를 기다려 주는 친구가 있어서.”
“연우네 아빠가 돌아가셨잖아요. 우리 엄마가 연우 불쌍하다고 잘 해주라 그랬으니깐요.”
“엄마가 그러셨어?”
“네. 불쌍한 친구 도와주라고.”
“아, 그랬구나.”
“선생님이 연우네 엄마한테 전화 좀 해보세요. 왜 아직도 안 오는지.”
“아, 그럴까? 근데 연우 엄마 운전하고 오시는 중이면 어쩌지?”
“아, 그럼 제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서 오나 볼게요.”
잠시 후, 연우 엄마의 빨간 차가 교문 앞에 선다. 효은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가고 동시에 연우도 튕기듯 나온다. 둘은 환하게 웃고 있다. 효은이가 연우 가방을 덥석 받아든다. 그러자 연우는 조금 싫은 기색을 하며 어서 가방을 달라고 한다. 효은이는 듣지 않고 앞서 뛰어간다. 연우는 피식 웃으며 애써 기분 나쁜 표정을 감춘다.
한차례 공부가 끝나고 쉬는 시간. 효은이가 놀고 있는 연우에게 다가가 뭐라 말을 건다. 하지만 연우는 귀찮은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자 효은이의 목소리가 커진다. 싫다는데도 효은이가 자꾸 말을 하자 참다 못한 연우가 내게 온다.
“아휴, 선생님. 효은이 좀 저한테 그만 말하라고 그러세요. 지겨워 죽겠네.”
“아이고, 두 친구가 무슨 일이신가?”
“효은이가 자꾸 화장실 가라고 조르잖아요. 놀지도 못하게.”
“화장실?”
내가 효은이를 보자 효은이도 억울한지 벌건 표정으로 말한다.
“화장실 같이 가 줄라 그랬죠. 손 씻는 것도 알려주고.”
“헐. 근데 나 오줌 안 마렵단 말이에요.”
“야, 너 그럼 이따 공부 시간에 오줌 마려울라 그러냐. 선생님, 공부 시간에 화장실 가면 안 되죠?”
“야, 나야 그러든지 말든지. 나한테 조르지 좀 마!”
연우가 다시 자리에 가 앉아 놀던 걸 계속한다. 그런 연우를 노려보던 효은이가 갑자기 주먹으로 연우 등을 살짝, 툭, 친다. 그러자 연우가 벌떡 일어나 왜 때리냐고 소리치며 효은이를 떠민다. 엉덩방아를 찧은 효은이가 울면서 연우 팔을 꼬집는다. 그러자 연우도 효은이 팔을 꼬집는다. 아이들이 놀이를 멈추고 두 아이 주변으로 몰린다. 나는 놀이 시간 끝을 선포하고 두 아이를 앞으로 부른다. 연우는 여전히 화 난 표정이고 효은이는 눈에 눈물이 가득하다.
나 : 아이고, 우리 반에서 제일 친한 두 친구가 무슨 일로 싸우셨나?
연우 : 효은이가 찐따 붙잖아요. 짜증 나게.
효은 : 야, 난 너 도와 줄라 그랬지. 너는 내 은혜도 모르냐?
나 : 아하, 효은이가 연우 기다리는 거 선생님도 봤는데.
연우 : 이제 그만 도와주라구요. 안 도와줘도 되니깐.
효은 : 야, 나는 뭐 도와주고 싶어 도와주는 줄 아냐? 니네 아빠 돌아가셨으니깐 그렇지.
연우 : 야, 우리 아빠 돌아가신 거 상관 쓰지(상관 하지) 마. 누가 상관 쓰래?
효은 : 우리 엄마가 너 도와주라 그랬으니깐 그렇지.
연우 : 그니깐. 이제 도와주지 말라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깐.
효은 : (울음 소리가 커지며) 선생님, 연우가 제 은혜도 모르고 저한테 막 뭐라 그래요.
점심시간. 평소라면 연우와 효은이가 같이 그네를 타고 있을 시간이지만 연우는 2학년 형님들과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효은이 혼자 교실에 남아 있다.
“아이고, 우리 효은이 혼자 교실에서 뭐 하시나?”
“연우랑 안 놀라고요. 지 혼자 놀겠죠, 뭐.”
“연우랑 놀아주려고 했는데 연우가 싫다고 해서 화났어?”
“네. 이제는 연우랑 안 놀려고요. 엄마가 나쁜 친구랑 놀지 말랬으니깐요.”
“나쁜 친구?”
“네, 은혜도 모르면 나쁜 친구니깐요.”
“연우가 은혜를 모르는 거 같아?”
“네. 제가 연우 기다려 주고 화장실도 같이 갔잖아요. 근데 은혜를 모르잖아요. 고맙다고도 안 하고.”
“연우가 어떻게 하면 좋았을까?”
“저한테 은혜를 갚아야죠.”
“은혜를?”
“네, 제가 잘해줬잖아요. 그럼 저한테 갚아야죠.”
“아이고, 근데 연우는 네가 너무 도와주려고 해서 힘들었다던데?”
“그니깐요. 그게 왜 힘드냐고요. 제가 도와줬잖아요.”
“그러게. 근데 연우는 힘든가 봐.”
“그니깐요. 우리 엄마는 친구를 도와주라 그랬는데. 연우가 이상한 거죠.”
“아이고, 그러게. 근데 연우는 싫은가 봐. 어떤 사람은 도와주는 거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귀찮은 생각을 하거든.”
“그니깐요. 왜 그러냐구요. 도와주면 좋아해야죠. 아니면 첨부터 도와주지 말라그러지. 왜 배신을 때려요.”
“배신?”
“배신이죠. 그니깐 선생님이 연우한테 배신하지 말라고 말해주면 되잖아요.”
“너는 배신이라고 생각하는데 연우는 생각이 다른가 봐. 또 연우 생각은 연우 꺼라서 선생님이 바꾸라고 말할 수 없어.”
“그럼 난 어떡하냐구요. 놀 사람이 없는데.”
“연우랑 놀면 되지?”
“연우가 배신을 했는데도요?”
“연우한테 앞으로 귀찮게 안 할 테니 나랑 놀자, 그러면 되지.”
“그냥 선생님이 연우한테 가서 효은이랑 놀아라, 그러면 되잖아요.”
“누구랑 놀지는 연우가 정하는 거야. 네가 연우랑 놀고 싶으면 연우 마음을 따라줘야 해.”
내가 자기 편을 안 들어준다고 생각했는지 효은이가 울기 시작한다. 책상을 땅땅 치면서 그럼 자기는 누구랑 노냐고 소리도 친다. 나는 효은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닦아준 뒤 연우가 놀고 있는 운동장으로 데리고 나간다.
“선생님이 연우더러 너랑 놀라고 시킬 수는 없지만, 너의 마음은 전해줄 수 있어. 선생님이 대신 말해줄까?”
“그랬다가 연우가 싫다 그러면요?”
“흐음... 그럴 수도 있어. 만약 싫다 그러면... 다른 친구에게 말해줄까?”
“싫어요. 다른 친구들은 자기들 맘대로 하니깐요.”
“아이고, 큰일이네. 그럼 어떡하지?”
“그니깐 선생님이 연우한테 저랑 놀라고 말해주라니깐요.”
“너랑 놀지는 연우가 정하는 거라서... 선생님이 너랑 놀라고 시킬 수는 없어.”
“(다시 울기 시작하며) 아, 그럼 어떡하냐구요. 나만 친구가 없는데!”
나는 효은이더러 오늘은 선생님이랑 놀자고 말하며 손을 잡고 그네 쪽으로 간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뛰어와 묻는다.
“선생님, 그네 타실라구요?”
“응. 효은이가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 나라도 좀 놀아주려고. 근데 내가 타도 끊어지지 않겠지?”
“선생님 몸무게 땜에 그네가 뚝 끊어질 수도 있죠. 그치만 걱정 마세요. 우리가 받아 드릴 테니깐요.”
그 말이 재미있는지 아이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그러자 효은이가 아이들을 향해 소리를 빽 지른다.
“야, 니들 빨리 저리 가! 선생님이랑 나랑만 그네 탈 거야. 맞죠, 선생님?”
“헐. 뭐래? 선생님이 니꺼냐?”
“선생님이 나랑만 놀아준다 그랬단 말이야. 맞죠, 선생님? 쟤네들 저 멀리 가라 그러세요. 방해하잖아요.”
효은이는 친구 사귀는 걸 어려워한다. 뭉뚱그려 ‘사회성’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또래보다 느리다. 자기중심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 상대 마음을 읽는 건 잘 안 된다.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친구를 사귈 줄 모르니 하루하루가 고된 나날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