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효은이랑 그네타면 짜증만 난다고요.”

“맞아. 누구랑 놀지는 너네가 결정하는 거야.”

by 나는일학년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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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간. 아이들은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일학년 교실 쪽 현관을 향해 내달린다. 일학년 교실은 일층 맨 끝에 있다. 현관을 열면 바로 신발장이 있어서 여기서 신을 바꿔 신고 교실로 들어가야 하지만, 뭐가 그리 급한지 일단 신을 휙 벗어 던지고 교실로 난 복도로 쿵쿵쿵 뛰어 교실 앞문에 도달한다. 그런 다음 교실 앞문을 휙 열고 가방을 자기 책상 쪽으로 조준해서 던진다. 그런 다음 다시 쿵쿵쿵 복도를 뛰어 현관에 벗어 놓은 신을 신고 운동장으로 내 달린다. 그네, 미끄럼틀, 늑목, 정글짐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신을 벗지도 않은 채 운동화를 신고 복도를 뛰어 문 앞에 가방을 놓고 달아나기도 한다.


복도에서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매일 하지만 그때뿐이다. 설득도 하고 애원도 하고 때론 놀이 금지라는 강수를 쓰기도 하지만 길어야 하루, 이틀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아직 단체생활에 익숙지 않은 데다 학교는 노는 곳이라는 생각이 더 강한 시기라 딱히 대책이 없지만, 만약 사고가 나면 아이가 다칠 수 있어서 교사 회의에서 늘 중요한 안건이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 시내의 큰 학교에서 주로 하는 건 아예 운동장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서면 자리에 앉아 책을 읽게 하거나 종이접기를 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교실에 가둔다. 이런 방법이 아니면 현실적으로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할 방법이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시골에 있지 않은가. 전교생 오십 명에 끝이 안 보이는 운동장을 지닌 꿈의 학교에서, 단지 안전을 위해 아이들을 교실에 가둘 수는 없다. 일학년 아이들에게는 사회성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중요한데 독서와 종이접기로 그걸 가르칠 수 있나. 친구와 어울리게 하고 갈등이 생기면 타협하고 규칙에 적응하는 걸 가르치려면 일단 어울려 노는 상황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마음껏놀게 해야 한다. 결국 고민 끝에 교사들이 아이들보다 먼저 학교에 와서 위험할 것 같은 곳에 미리 가 있기로 했다. 아무래도 일학년 담임인 내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와서 현관에서 기다린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달려오다 나를 보더니 멈칫한다. 얌전히 신을 갈아신고 사뿐사뿐 걸어 가방을 자기 의자에 단정히 걸고 살금살금 운동장으로 나간다. 하지만 제일 먼저 등교한 효은이는 예외다. 신을 갈아 신지도 않은 채 가방을 나에게 던진다.


“선생님, 내 가방 좀 맡아 주세요. 알겠죠?”


“가방?”


“네. 이거 내 의자에 갖다 걸어요. 빨리요.”


“내가?”


“네. 빨랑요. 나 지금 그네 맡으러 가야 된다구요.”


“그네?”


“네. 지금 아무도 없으니깐요. 먼저 가서 맡을라구요.”


“네가 제일 먼저 왔어.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래도요. 빨리 맡아야 해요.”


“흐음. 그래도 자기 가방은 자기가 직접 걸...”


“(내 말을 끊으며) 아, 진짜! 나 급하다고요. 2학년 형님들이 먼저 맡으면 조땐다니깐요.”


“조땐다...는 게 뭔데?”


“형아들이 맡으면 우리 일학년 애들이 못 타니깐요. 빨리 가야 돼요.”


“그래도 네 가방은 네가...”


“아, 진짜! 선생님 땜에 일학년 친구들이 그네 못 타면 어떡할라 그래요?”


“아, 그런가? 그래도 가방을 먼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 됐구요. 이따가요. 알았죠?”


내게 가방을 맡긴 효은이가 바람처럼 사라지고 다른 아이들이 온다. 곧이어 다른 아이들이 온다. 나는 효은이가 그네 맡아 놓으러 갔으니 너네도 가서 같이 타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개를 젓는다.


“싫어요. 효은이랑 그네타면 짜증만 난다고요.”


“짜증?”


“효은이가 또 그네가 지꺼라고 우길게 뻔하니깐요.”


“우겨?”


“우리가 그네를 타러 가죠? 그럼 효은이가 줄을 서라 그런다니깐요, 글쎄.”


“맞아요. 그네가 지껀 줄 안다구요. 자기 말 잘 들으면 타게 해주고 안 들으면 타지 말라 그러잖아요. 우리가 지 부하인 줄 아나.”


“그니깐요. 우리 엄마도 자기 맘대로 하는 친구랑 놀지 말래요. 그러니깐 선생님도 효은이랑 놀라고 시키면 안 되죠. 선생님이 누구랑 놀지는 우리가 결정하는 거라 그랬잖아요.”


“맞아. 누구랑 놀지는 너네가 결정하는 거야.”


아이들이 밖으로 나자 효은이가 한 손에 그네를 잡은 채 아이들은 부른다.


“야, 그네 탈 사람 일루 와. 줄 서면 내가 태워줄게.”


“야, 니가 뭔데 우리 더러 줄을 서래. 선생님도 아니면서.”


“이 그네 내가 맡았으깐 그렇지. 싫음 관둬라.”


“야, 그네가 니꺼냐? 학교 꺼지. 선생님이 그네 맡아 놓고 친구들 못 타게 하면 안 된다 그랬잖아.”


“야, 내가 니네보다 먼저 와서 맡았단 말이야. 그럼 내가 제일 먼저 타야지.”


“그럼 니가 먼저 타고 우리 한테 양보해야지.”


“그럼 내가 먼저 백번 타고 양보할 테니까 너네는 거기서 기다려.”


“헐. 야, 백번이나 타냐? 그럼 우리 들어갈 시간이야.”


“맞아. 너 또 욕심부릴라 그러냐? 선생님이 사이좋게 타라 그랬잖아.”


“내가 먼저 맡았으니깐 내가 백번 타는 거지. 어쩌라구. 그럼 니들도 일찍 오든지.”


효은이가 약올리듯 말하자 아이들은 그네 옆에 있는 미끄럼틀로 올라간다. 거기서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술래잡기 놀이를 한다. 놀이가 재미있는지 꺅꺅 웃음이 퍼진다. 효은이가 그네를 멈추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쓸쓸한 표정이다. 효은이는 그네에서 내려와 아이들에게 가서 그네 탈 사람 오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듣지 않는다. 효은이가 한 번 더 말하자 한 아이가 저리 가, 라고 소리 지른다. 그러자 효은이는 울면서 교실로 들어온다.


“아이고, 효은이가 왜 우시나? 그네는 잘 탔어?”


“못 탔어요.”


“아이고, 왜?”


“애들이 저만 왕따 시키잖아요. 왕따도 학교폭력이죠?”


“아이고, 따돌리면 안 되지. 학교는 같이 노는 곳이니까.”


“근데 애들이 저만 왕따 시키잖아요. (창문을 가리키며) 일루 와서 저기 좀 보세요.”


“(놀이터 쪽을 보며) 친구들이 재미있게 노네. 아이고, 재미있겠다.”


“그니깐요. 근데 지들끼리만 놀잖아요. 저거 학교폭력 맞죠?”


“너도 같이 놀면 재밌겠는데?”


“싫어요. 왕따 시키는 애들이랑 안 놀아요. 엄마가 나쁜 친구랑 놀지 말랬으니깐.”


“아이고, 그럼 심심할 텐데?”


“안 심심해요. 하나도. 근데 이따 애들 들어오면 혼내줄 거죠?"


"혼내?"


"저 왕따 시켰으니깐요. 사이좋게 놀아야 하는데 지내들끼리만 재미있는 놀이 하고. 저만 빼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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