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욕을 할까?
아이들이 욕을 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 것들
<장면 1> 쉬는 시간.
4학년 아이 서너 명이 컴퍼스를 꺼내 서로 크기가 다른 원을 그리며 놀고 있다. 그중 한 아이의 컴퍼스 조임쇠가 풀렸는지 연필이 빠진다. 아이가 다시 연필을 끼우고 조임쇠를 조여보지만 잠시 후 또 빠진다. 그러자 옆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런데 옆 친구 대신 뒷자리 아이가 줘 봐, 내가 고쳐줄게,라고 말하며 컴퍼스를 낚아챈다. 컴퍼스 주인 아이는 불편한 표정을 하며, 그러나 부드러운 말투로 어서 돌려달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는 돌려주지 않는다. 컴퍼스 주인이 컴퍼스를 가져다려고 손을 뻗자 이번엔 몸을 돌려 막아서며 말한다. 아, 진짜! 내가 고쳐준다니까! 마음이 급했는지 아이 손이 빨라진다. 그게 탈이었을까, 컴퍼스 조임쇠가 덜컥, 빠지고 만다. 다시 끼워보지만 구멍이 더 헐거워져 아예 연필이 고정되지 않는다.
컴퍼스 주인 : 야, 내 컴퍼스 망가졌잖아!
아이 : 아니야. 원래 빠갈나(부서져) 있었어.
컴퍼스 주인 : 헐. 니가 지금 내 거 망가뜨렸으면서.
아이 : 야, 내가 언제 그랬냐? 지가 빠갈난 거 가져왔으면서.
컴퍼스 주인 : 아니거든. 니가 뺏기 전에는 완전 망가지진 않았거든. (주변 아이들에게) 야, 너네도 봤지?
아이 : (주변 아이들이 뺏긴 아이 편을 들자) 웃기시네. 내가 언제 뺏었냐? (아이들을 노려 보며) 야, 니들 시발 개뻥치지마라. 우리 엄마한테 처맞기 싫으면.
아이들이 담임에게 이르고 담임교사는 방과 후에 아이를 남겨 상담한다.
나 : 선생님이 널 왜 남으라고 했는지 아니?
아이 : 아, 됐고요. 저 학원 가야 된단 말이에요. 빨리 가야 되는데. 진짜예요.
나 : 학원에 늦으면 안 되나 보구나?
아이 : 안되죠. 제가 학원에 들어가면 엄마 핸드폰에 알림이 딱! 떠요. 늦으면 안 돼요. (울먹거리며) 제가 늦게 가면 혼난단 말이에요.
나 : 학원에 늦게 가면 혼날까 봐 걱정되니?
아이 : 네, 늦으면 터져요. (자기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죽음이죠.
나 : 그럼 빨리 생각해야겠네. 널 왜 남으라고 했는지.
아이 : (반항을 포기한 듯) 알아요. 제가 컴퍼스를 고쳐주지 말아야 되는데 괜히 나대서요. 이제 가도 되죠?
나 : 잠깐만. 나대는 게 어떤 거야?
아이 : 가만있어야 되는데 막 제 맘대로 하는 거요.
나 : 오늘은 가만있으려고 했는데 잘 안됐니?
아이 : 네. 근데 오늘은 제가 걔한테 해줄 차례거든요.
나 : 해줄 차례?
아이 : 걔가 지난번에 과자 사줬으니까요. 근데 전 돈이 없거든요. 그래서 컴퍼스를 고쳐줄라 그랬죠.
두 아이는 평소 단짝이다. 하지만 화가 나면 폭발하는 아이로 인해 둘의 관계는 피로감이 쌓여가고 있다. 친구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서 컴퍼스를 고쳐주고 싶었다는 아이의 마음은 진심일 것이다. 그러나 분노가 조절되지 않는 한, 선의라 해도 받아들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의도대로 컴퍼스가 잘 고쳐졌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둘의 관계는 더 돈독해질 수 있었을 것이나 아이들의 세계 또한 성인의 그것과 같아 마음대로 안 되는 게 많다. 고쳐주고 싶은 열정만큼 고치지 못했을 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낼 용기도 있었다면. 아이는 어쩌다 열정만 키우고 사과할 용기는 키우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대로 자라도 괜찮을까.
<장면 2>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아이들 서너 명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아이들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고 각자 적당히 떨어쳐 차례대로 공을 패스한다. 공을 잘 받는 친구에겐 박수도 쳐주고 아쉽게 놓쳐도 서로 주워다 주며 즐거워한다. 잠시 뒤, 한 아이가 와서 자기도 같이 하자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끼워주기 싫은지 선뜻 응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아이가 갑자기 공을 낚아채더니 운동장 밖으로 뻥 차버린다. 아이들은 당장 공을 주워오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아이는 무시하며 교실로 들어가 버린다. 아이들이 재차 붙잡으며 공 주워오라고 말하자 그 아이는 거칠게 뿌리치며 욕을 한다. 아이들은 교실로 달려가 담임에게 이른다.
공 주인 : 선생님, 여준이가 제 공 뺏었어요. 그런데 운동장 밖으로 뻥 차 버렸단 말이에요. 주워오지도 않잖아요.
나 : 헉. 그런 일이 있었어?
뻥 찬 아이 : 야, 니들이 나만 못 놀게 하고 따돌리니까 그렇지. 선생님, 따돌리는 것도 학교폭력이죠?
나 : 친구들이 따돌렸니?
다른 아이 : 아니에요. 야, 그게 무슨 따돌리기냐? 니가 맨날 나대니까 그렇지.
여준 : 뻥치시네. 넌 빠져라. 병신 같은 게.
다른 아이 : 선생님, 쟤 욕해요.. 쟤 아까 운동장에서도 욕했어요. 병신 새끼 꺼지라고.
여준 : (벌컥 화를 내며) 그래, 욕했다, 시발 새꺄. 어쩔래! 니네가 나 안 껴줬잖아! (억울해하며) 선생님, 안 껴주는 것도 따돌린 거 맞죠?
다른 아이 : 쟤 좀 봐요. 지가 불리하면 꼭 저러잖아요. 지가 잘못했으면서 엄마한테 이르고.
여준 : (그 아이를 쏘아보며) 쟤네들이 저 보고만 뭐라 뭐라 그러잖아요. 짜증 나게!
나 : 근데 공을 찬 건 너 맞니?
여준 : 네. 근데 잘 못 차서 그런 거예요. 운동장 밖이 아니라 하늘 쪽으로 찬 건데.
나 :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알겠니?
여준 : 네, 알아요.
나 : 그래? (아이의 손을 잡으며) 그럼 선생님과 공 찾으러 가자.
여준 : (손을 잡아 빼며) 제가 왜 가요? 내 공도 아닌데? 공 주인더러 찾으라 그래요.
나 : (다시 손을 잡으며) 선생님은 너랑 갈 거야.
여준 : (주변 아이들을 의식하며) 아야! 손 놔요. 손목 아프단 말이에요.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나 : (손목에 아무런 상처도 없는걸 보여주고 다시 잡으며) 아프게 잡았다면 미안해. 그래도 선생님은 너랑 둘이 갈 거야.
아이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짓지만 할 수 없이 따라나선다. 교실에 있을 때 기세등등하던 아이는 교사와 단둘이 되자 제법 누그러진 표정이다. 교사가 아이에게 묻는다.
나 : 선생님이 왜 너랑 공을 찾으러 가는지 알겠니?
여준 : (여전히 기분 나쁜 표정으로) 저야 모르죠.
나 : 아이고, 어떡하지? 그 이유를 말해야 널 집에 보내줄 건데.
여준 : 네? 저 오늘 학원에 빨리 가야 된단 말이에요.
나 : 그래? 그럼 이유를 빨리 생각해야겠구나.
여준 : (잠시 뒤, 풀 죽은 표정으로) 이유 알아요. 제가 애들 공을 뻥 차서요.
나 :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되니?
여준 : 애들이 저는 안 껴주고 자기들끼리만 놀잖아요.
나 : 그래서 화가 났니?
여준 : (갑자기 흐느끼며) 따돌림받으면 화가 나죠. 걔네가 먼저 잘못했어요. 따돌리는 거 학교폭력이잖아요.
나 : 친구들은 네가 공을 뺏어서 운동장 밖으로 차 버렸다고 하던데?
여준 : 지들이 먼저 저를 따돌리니까 그렇죠. 걔네가 잘못했는데 왜 저한테만 뭐라 그래요?
나 :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걔네가 너를 껴주면 너도 잘 해주려 그랬구나?
여준 : 네.
나 : 친구들이 먼저 놀고 있을 때 네가 허락 없이 끼어들어 화났대. 친구들이 화 안 내게 하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여준 : 같이 놀자고 말해야죠. 근데 걔네가 안 껴주잖아요. 지들끼리만 놀고. 따돌림이잖아요.
나 : 그랬는데 만약 친구들이 싫다고 하면... 싸워서라도 같이 노는 게 좋을까, 다른 친구를 찾아보는 게 좋을까?
여준 : 다른 친구를 찾아야죠. 근데 친구를 따돌리는 애들은 나쁜 친구잖아요. 친구 자격도 없는 애들이래요.
나 : 누구한테 들었어?
여준 : 엄마요. 그런 애들이랑 놀지 말랬어요.
나 : 엄마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여준 : 걔네랑 놀면 자꾸 싸우니까요. 싸우면 걔네 엄마가 우리 엄마한테 전화하잖아요. 그럼 엄마는 아빠한테 이르거든요.
나 : 아빠는 어떻게 하시니?
여준 : 때리죠.
나 : 아이고, 그런데 어쩌나? 오늘 싸웠잖아.
여준 : 싸운 거 아니에요. 그냥 공 좀 뻥 찬 거죠. 그런데 애들이 저한테 주워오라 그러잖아요.
나 : 그게 싸우는 거야.
여준 : 아니죠. 때리지도 않았잖아요.
나 : 너와 친구들 모두 화나서 말도 안 하잖아. 그게 싸우는 거야.
여준 : 아니라니까요. 왜 선생님 마음대로 싸웠다 그래요.
나 : 그런 걸 싸웠다고 할지 안 싸웠다고 할지를 결정하는 사람이 우리 교실에 딱 한 명이 있어. (자신을 가리키며) 그 사람이 누굴까?
여준 : 선생님?
나 : 맞아. 그리고 선생님이 생각하는 너의 잘못이 하나 더 있어.
여준 :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 또 뭔데요?
나 : 고운 말 안 쓰고 욕한 거.
여준 : 욕 안 했어요.
나 : 했어.
여준 : (화를 내며) 언제 그랬다고 그래요? 아, 짜증 나!
나 : 욕을 하는 사람과 들은 사람 중에 누가 더 기분이 나쁠까?
여준 : 들은 사람이 더 기분 나쁘겠죠.
나 : 욕을 듣고 기분이 나쁜 기억은 금세 잊힐까, 잘 안 잊힐까?
여준 : 잘 안 잊히겠죠.
나 : 그럼 교실에 가서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알겠네. 친구들은 네 욕을 아직 기억할 거야.
여준 : (당황하며) 아, 안돼요. 싫어요! 제가 그걸 왜 물어봐야 되는데요?
나 : 어떤 욕을 했는지도 말하고 그게 잘 한 건지, 잘못한 건지도 말해야 갈 수 있으니까.
여준 : 아, 생각났어요. 그러니까 지금 선생님한테 말하면 되는 거죠?
나 : 아니, 교실에 가서 친구들에게 먼저 물어 보고 말해.
여준 : (울먹거리면서) 생각났다니까요. 여기서 말하면 되잖아요.
나 : 안돼. 친구들에게 먼저 물어보고 말해.
여준 : 그걸 왜 선생님 마음대로 정하냐고요!
나 :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이 (자신을 가리키며) 선생님이야.
여준 :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며) 싫어요, 교실 안 갈래요.
나 : (울음이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어서 교실로 가자.
여준 : 싫어요!
나 : 선생님이 셋을 셀 거야. (전화를 꺼내며) 그다음엔 네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네가 선생님 말을 안 들어서 그러는데 너를 번쩍 안아서 교실로 데려가도 되나요? 하고 여쭌 다음에 그렇게 할 거야. 하나, 둘...
(내가 주소록에서 엄마 번호를 찾자 아이는 재빨리 일어선다. 교사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준 뒤 손을 잡고 교실로 향한다.)
교사 : 궁금해서 그러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니?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여준 : 뭔데요?
교사 : 음... 선생님이 엄마한테 전화한다고 하니까 갑자기 말을 잘 듣는 것 같아서. 보통은 엄마가 무서우면 그런다는데...
여준 : (훌쩍이며) 네, 혼날까 봐요.
교사 : 엄마가... 무섭니?
여준 : 우리 엄마 짱 무서워요.
교사 : 아이고, 그렇구나. 선생님은 몰랐어. 하마터면 선생님 때문에 여준이 혼날 뻔했다. 미안해. 그런데 걱정 마. 선생님은 비밀을 꼭 지키니까.
여준 : 네.
(아이는 순순히 따라가서 친구들에게 자기가 어떤 욕을 했는지 묻고 교사 앞에서 친구들에게 사과한다.)
친구의 컴퍼스를 고쳐주려다 망가뜨린 아이와 공을 멀리 차 버린 아이는 같은 아이다. 여준이는 구석에 몰린다 싶을 때마다 느닷없이 분노를 뿜어내는데 한 번 시작되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작년에 여준이와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은 여준이 근처에 가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정작 여준이는 친구들의 마음을 모르나 보다. 친구들과 놀고 싶었는데 거부당하자 화가 났겠지. 그래서 공도 멀리 차버리고 욕도 했을 것이다.
저학년 때까지는 오직 자신만을 향해 있던 아이들의 관심은 성장하면서 점점 또래를 향하기 시작한다. 국어, 수학, 즐생, 슬생, 바생이면 충분하던 저학년과 달리 3학년부터는 도덕, 사회, 과학이나 음악, 미술, 체육뿐 아니라 영어까지 추가되는 것도 이런 발달에 따른 것이다. 이 시기 아이들의 정신은 교과뿐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향해 촉수를 뻗는데 친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직 친구 마음을 얻는 기술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크고 작은 갈등이 생기게 마련인데 아이들은 대체로 이 상황을 두려워한다. 갈등에 휘말리면 신경 쓸게 많고 자칫하면 싸움이 나거나 미움을 받는 등 마음고생을 하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나를 좋아할지 확신할 수 없어 특히 말 조심, 행동 조심을 하며 서로 눈치를 본다. 하지만 간혹 여준이처럼 세게 나가는 아이도 있다. 떠오르는 대로 거침없이 행동하고 순간마다 느끼는 감정을 욕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거칠게 나가면 다른 아이들은 멈칫한다. 여준이 눈엔 아이들이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걸 파고든다. 겁을 먹는 아이들에게 더 센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아이 주변에 모여드는 아이들도 있다. 센 아이를 중심으로 강한 결속을 유지하고 싶은 아이들인데 대체로 여준이와 비슷한 성향이거나 여준이를 롤 모델로 삼은 경우다. 자기도 센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여준이 근처를 맴돌며 행동을 닮고 흉내 낸다. 여준이의 보호를 받고 싶어서 모여드는 아이도 있다. 이들은 여준이의 싸움 능력이나 거침없이 욕을 하는 패기를 선망하며 칭송한다. 아울러 자신은 차마 하지 못하는 일탈행동을 대신 해주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일탈의 정도가 클수록 멋있다고 생각하며 자기도 언젠가 그렇게 멋지게 싸우거나 욕을 하는 상황을 상상하며 들뜬다. 보통 스무 명의 아이들이 있는 교실에서 이런 아이들은 네댓 명 정도다. 수가 적다 보니 결속력도 강하다. 결속의 속 사정엔 자기들이 하는 행동이 떳떳하지 않다는 열등감도 있다. 좋은 목적이라면 굳이 똘똘 뭉치면서까지 방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친구에게 험악한 표정을 짓거나 욕하는 행동은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다는 걸 안다. 그걸 부정하자면 혼자보다 여럿이 쉽다. 서로의 행동을 격려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더욱 결속한다. 결속하는 수단은 흔히 말하는 의리에 대한 칭송과 배신에 대한 처벌이다. 그럼 점에서 어른 조폭 문화와 같은데 아이들의 문화가 그대로 어른 조폭 문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친구들 편에 서는 것은 무조건 '의리'이며 무리에서 빠져나가는 건 '배신'이다.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이유나 무리에 속한 아이를 밖으로 꺼내오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하지만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한다. 같이 어울리기엔 뭔가 불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선생님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고 친구들도 피하는 걸 보니 일단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한편 자신은 함부로 못하는 욕을 쉽게 하는 여준이의 배짱이 멋지다는 생각도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준이의 행동은 어딘가 위험해 보여서 거부감이 드는 것일 뿐 나쁘다는 판단은 잘 못한다.
때문에 직접 나서서 여준이를 나무라거나 간섭하지 않는다. 여준이가 행패를 부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사에게 말하자니 여준이와의 관계가 불안해진다. 그래서 자기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그냥 모른 척한다. 하지만 여준이는 자기가 이미 교실에서 제일 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변 아이들이 왜 자신을 슬슬 피하려 하는지 알아볼 필요는 안 느낀다. 반대로 아이들이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센 모습으로 확실하게 군림해버리려고 한다. 싸울 상황을 만들어 싸움 실력을 보여주거나 욕하는 모습을 노출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군림하는 단계를 넘어서면 다음 대상은 교사다. 이런 아이가 교사에게 대드는 건 교사를 시비를 걸려는 목적보다는 자신의 배짱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려는 의도가 크다. '너희들이 무서워하는 선생님과 맞짱 뜰 수 있는 존재'라고 알리고 싶은 것이다. 맞짱이 불가능하다면 반항이라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일부러 교사의 지시를 못 들은 척하거나 깐죽거린다.
<예시 상황 1 - 주어진 과제를 안 해오는 아이>
교사 : 어제 내 준 숙제 어딨니?
아이 : 안 가져왔는데요?
교사 : 그래? 그럼 이따 남아서 하고 가렴.
아이 : 했다니까요. 까먹고 안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왜 또 해야 되죠?
교사 : 네가 숙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선생님이 어떻게 아니?
아이 : 왜 사람을 못 믿으세요? 속고만 사셨어요?(다른 아이들이 재미있다는 듯 웃는다)
교사 : (체험한 듯) 알았다. 그럼 내일 꼭 가져오거라.
아이 : (장난스럽게) 네, 네, 선생님! (친구들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아싸, 내가 이겼다!
<예시 상황 2 - 수업 태도가 나쁜 아이>
교사 : 너는 왜 수학 책이 없니?
아이 : 못 가져왔어요. 복사해 주세요.
교사 : 이미 수업을 시작했는데 어떻게 복사를 해오니?
아이 : 작년 선생님은 복사해 주셨는데 선생님은 왜 안 해주세요? 복사해 주셔야 공부를 하죠.
교사 : 책을 안 가져왔으면 미안해하는 게 먼저 아닐까?
아이 : 제가 일부러 안 가져온 것도 아니잖아요. 깜박한 것뿐인데 왜 저만 미워하세요? 그거 차별 아닌가요?
교사 : (체험한 듯) 알았다. 복사해다 주마.
아이 : 샘, 땡큐~ (친구들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아싸, 내가 이겼다!
<예시 상황 3 - 친구관계가 안 좋은 아이>
교사 : 네가 ㅇㅇ에게 욕한 게 사실이니?
아이 : 제가요? 아닌데요? ㅇㅇ가 뻥친 거예요.
교사 : 네가 욕하는 걸 들었다는 아이도 있는데?
아이 : 누가요? 증거 있대요? 증거 없으면 선생님이 책임 지실 거죠?
교사 : 정말 욕을 한 적이 없니?
아이 : 그렇다니까요. (유행어를 흉내 내며) 저~ 좀~ 믿어 주세요!(아이들이 재미있다고 낄낄거린다)
교사 : (체험한 듯) 알았다. 아무튼 욕은 하면 안 돼. 알았지?
아이 : (장난스럽게) 네, 네, 선생님! (친구들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아싸, 내가 이겼다!
아이가 이렇게 나온다면 교사는 훈육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준이는 개의치 않는다. 교사의 훈육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말로 설득하는 수준일 뿐, 그 이상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설령 교사에게 훈육 이상의 혼이 나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럴수록 친구들은 여준이를 더 센 아이로 인정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선망이 강할수록 여준이의 위상은 올라갈 것이다. 결국 여준이의 인격은 친구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폭력이 다른 사람을 통제하는 데 얼마나 매력적인 수단인지를 안 아이가 그걸 포기하긴 쉽지 않다. 사리 판단이 어려운 어린 시기에 이런 경험을 한 아이는 어떤 어른이 될까.
여준이를 훈육하려면 지금껏 교실에서 유지해 왔던 드세고 거친 모습을 찾아 제거해야 한다. 그러면 친구들의 우두머리라는 정체성은 저절로 무효화될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면 원래 순수했던 여준이가 남을 것이다. 여준이는 어쩌다 거친 아이가 되었을까. 성장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부모님을 상담해보면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여준 엄마 : 어릴 때부터 머리 좋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말은 잘 안 들었어요. 야단도 많이 쳤는데 굴복을 안 하고 버티더라고요. 기가... 센 것 같아요.
나 : 어린아이 입장에서 어른에게 반항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보통 어린아이들은 싫어도 엄마 말을 따르거든요. 그런데 여준인 안 그랬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여준이가 굴복하지 않는 기질이어서 그럴 수도 있고 반대로 엄마가 만만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여준 엄마 : 제가 좀 단호하게 야단을 못 치는 편이긴 해요. 저에게 야단맞으면 세 살 터울 동생에게 화풀이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야단치는 걸 망설이게 되었죠.
나 : 동생과의 관계는 어떤가요?
여준 엄마 : 동생이 꼼짝 못 해요. (한숨을 쉬며) 동생이 그나마 순하니까 다행이죠.
나 : 오빠가 무서워서 순한 척하는지도 모르겠어요. 1학년 아이가 오빠한테 순한 경우는 없거든요. 둘이 다툴 때 어떻게 중재하시나요?
여준 엄마 : 둘 다 야단치죠. 여준이가 동생한테 화를 내면 제가 동생을 데리고 따로 있기도 하고요.
나 : 여준이가 엄마에 대한 공격성을 동생에게 드러내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훈육하실 때 여준이의 태도는 어떤가요?
여준 엄마 : 아이고, 제 말은 잘 안 들어요. 꼬박꼬박 말대꾸하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면서 저를 화나게 하죠.
나 : 혹시 엄마한테 반항하는 과정에서 욕을 하기도 하나요?
여준 엄마 : (한숨을 쉬며) 네. 가끔요. 일부러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게임을 못 하게 하거나 아빠한테 이른다고 할 때요.
나 : 습관적으로 욕을 한다기보다는 구석에 몰린다고 느낄 때 욕이 나오나 봐요. 잘못된 점이긴 하지만 여준이 나름대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안간힘이겠네요. 여준이의 훈육은 그럼 아빠가 하시겠군요? 아빠 말은 잘 듣나요?
여준 엄마 : 네. 아빠가 야단칠 땐 무섭게 야단치거든요.
나 : 아빠의 훈육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준 엄마 : 효과는 있어요. 말 안 들으면 때리니까요. 맞으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거든요.
나 : 효과는 있어 보이네요. 하지만 아빠의 방식은 훈육이라기보다는 폭력을 학습시키는 효과가 날까 봐 걱정입니다. 양육과 돌봄은 주로 엄마가 하시는데... 엄마와 생활하며 생긴 문제로 아빠에게 혼난다면 여준이가 혼란스러울 것 같아요.
여준 엄마 : 네, 그래서 더 저한테 대드는 것 같아요. 근데 제 말은 안 들으니 방법이 없네요.(한숨)
나 : 여준이에 대해서도 신경 쓰셔야겠지만, 이와 함께 동생도 잘 살피셔야 합니다. 형제간의 갈등에서 주로 때리는 쪽 보다 맞는 아이가 더 상처에 민감하고 위축되거든요.
엄마 : 그래도 다행히 동생이 순해서...
나 : 순해서 오빠의 폭력을 참는 건지, 무서워서 참는 건지 살펴보시는 게 좋겠어요. 1학년은 무서움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거든요.
여준이뿐 아니라 폭력 성향을 띠는 대부분의 아이들은(특히 남자아이들) 가정에서 엄마의 훈육이 통하지 않는다. 엄마와 상담을 해 보면 아이를 힘겨워하는 게 보인다. 아이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적 기준점을 잃고 아이에 끌려다닌다. 아이 요구를 끝없이 들어주다 보니 잘못을 바로잡을 훈육 시점도 놓친다. 때문에 아이는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을 구별하는 경험, 상대의 기분을 살펴 당장 하고 싶은 행동의 선택을 유보하거나 양보할 때 받는 칭찬과 인정, 당장은 참아야 하지만 나중에 더 크게 다가오는 보람과 즐거움을 배우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기적인 존재라서 엄마가 어떨 때 약해지는지 본능적으로 안다. 애원해서 안되면 떼쓰고 그래도 안되면 동생을 괴롭히거나, 심지어 욕을 내뱉으면 엄마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안다. 어떻게든 약점을 잡고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아이를 비난할 수는 없다. 이 시기의 아이는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엄마가 힘들 거라는 걸 모른다. 걱정스러운 건 여준이에게 엄마는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만난 사회적 대상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 관계 맺은 사람과 경험했던 방식대로 다음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간다. 양육에서 애매한 태도를 지닌 엄마와 밀고 당기면서 자신의 요구를 실현하는 연습을 한 여준이는 동생이나 유치원 친구들 또한 그렇게 대한다. 더 나아가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이런 식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다. 여준이를 이렇게 만든 건 엄마의 양육방식이었던 것이다. 결국 엄마는 아빠에게 훈육을 의존하기 시작했다. 아빠와 상담이 필요해진 것이다.
여준 아빠 : (여준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서) 여준이가 엄마랑 티격태격하는 건 알았는데... 욕까지 한 줄은 몰랐습니다.
나 : 엄마에게 욕을 하는 정도라면 단순히 엄마에게 반항하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이가 욕을 하면 부모님 입장에서 놀라지요. 그래서 더 심하게 야단치게 되셨겠군요?
여준 아빠 : (한숨을 쉬며) 욕을 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보통은 떼를 쓰다 말지 않나요? 하... 무슨 애가 엄마한테 욕을...
나 : 아버님께서 놀라시는 걸 보니 여준이가 엄마에게 욕 한 일은 아버님께 말씀하시지 않으셨나 봐요.
여준 엄마 : 말을 하면 아빠가 심하게 야단을 치니까... 제가 대신 야단치려고 했어요.
여준 아빠 : (한숨을 쉬며) 애 엄마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그래도 자꾸 애들 감싸기만 하니 교육이 안 되죠.
나 : 이 시기 아이들의 욕은 어른의 욕과는 좀 다릅니다. 툭 뱉은 것일 수도 있는데 부모님이 놀라시니까 아이는 나름, 이 방법이 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욕을 하고자 하는 속마음을 알아채는 겁니다.
여준 아빠 : 애 엄마가 오냐오냐하니까 여준이가 더 말을 안 듣는 것 같아요. 엄마가 좀 딱 부러지게 대처하면 좋겠는데 잘 안되네요.
나 : 그래서 야단칠 때는 더 세게 야단치시게 되겠군요?
여준 아빠 : 네, 저라도 안 잡아주면 더 나빠질까 봐...
여준 엄마 : (아빠 눈치를 보며) 제 말을 안 들을 땐 아빠한테 말해서 혼 좀 내주라고 하다가도 아빠한테 혼나는 걸 보면 저는 또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더 감싸게 되고...
여준 아빠 : (엄마 말을 끊으며) 당신이 그게 문제야. 아빠가 야단칠 땐 엄마가 아빠 편을 들어야지. 여준이 편을 드니까...
여준 엄마 : (억울하다는 듯) 당신은 그럼 여준이를 앉혀 놓고 차근차근 타이르면 되잖아. 다짜고짜 소리 지르고 때리고 애를 울리면 그게 훈육이 돼?
나 : (두 분 이야기를 듣고 나서) 두 분이 여준이를 이렇게 걱정하시는데 아직 어린 여준이는 이런 마음을 이해할지 모르겠습니다. 여준이는 아빠가 자기 말도 안 들어주고 때리는 사람, 엄마는 자기를 아빠께 이르는 사람이라고 말하던데요. 둘 다 자기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요.
부모의 양육태도가 서로 다를 때 의견 대립이 생긴다. 우리나라 양육환경에서 비난받는 쪽은 주로 엄마 쪽이다. 너무 물렁해서 아이 하나도 못 이긴다는 게 이유다. 그래서 아이 버릇이 없어지고 자기밖에 모르는 요즘 아이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과정을 온몸으로 해내면서 맺고 끊어야 할 시점을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여기에 아이의 폭력 기질이 더해지면, 엄마는 더 힘들어진다. 아빠의 시각에서는 엄마가 좀 더 단호하면 아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엄마를 나무란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교육적이지 않다. 아빠에게 무시당하는 엄마를 보는 아이는 자기라도 엄마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엄마는 무시당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 아이의 정체성을 만든다. 더 늦기 전에 아이의 생각을 바꿔주어야 하는 이유다.
여준이 부모님과 함께 몇 가지 약속을 정해보았다. 아빠는 여준이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로 했다. 그러려면 엄마의 말만 듣고 여준이를 야단치던 관행을 바꿔야 한다. 또 야단칠 일이 생기면 사전에 설명하고 해명도 충분히 들은 다음 수정할 기회를 줘야한다. 분명한 어조로 야단 치되 평소엔 여준이의 취향에 맞는 놀이를 먼저 준비해서 놀아주기로 했다. 그러면 여준이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아빠에게 해명하는 경험을 통해 속에 쌓였던 불만을 해소하는 한편, 아빠가 자기 때문에 어떤 걱정을 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또 자신과 놀아주기 위해 애쓰는 마음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아빠에 비해 양육 비율이 높은 엄마는 좀 더 구체적인 약속을 정했다. 현재 여준이를 대하는 엄마의 태도가 일관적이지 않고 애매해서 여준이에게 분명히 전달되지 않고 반항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훈육을 하되 훈육이 시작되면 중간에 흐지부지 끝나지 말고 여준이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결심할 때까지 끌고가기로 했다. 여준이가 욕을 하거나 반항을 하는 건 엄마의 집중을 분산시키고 야단치려는 논점을 흐릴려는 의도이므로 모른 척하기로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여준이는 엄마의 훈육 의지를 알고 반항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여준이가 동생을 괴롭힐 때에도 애매하게 야단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잘못을 따져 여준이의 의도를 드러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한편, 동생 입장을 대변해서 오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동생의 아픔을을 여준이가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동시에 동생과 오빠가 함께 즐거울 일을 기획하고 여준이로 하여금 오빠 노릇을 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해서 동생을 보호하게 하고 이를 칭찬해서 뿌듯함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결국 오누이의 친밀함은 가족공동체라는 연대감에서 온다. 연대감을 경험한 아이는 연대가 깨지지 않도록 지키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된다. 정체성은 그 축에 이어져 있다. 여준이가 친구들과 싸우면서 지키고 싶었던 것이 자신만의 존재감이었다면 앞으로는 가족의 연대감, 더 나아가 친구들과의 연대감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