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은이, 친구들에게 한발 더 나아가다.
효은이가 아이들과 놀아보겠다고 말했다. 처음이었다. 5월에 전학와 지금이 9월이니 다섯 달만이다. 방과 후, 효은이 엄마께 바로 문자를 보냈다.
<기쁜 소식이네요~ 효은이가 드디어 친구들과 놀아보겠다고 합니다. 이제 시작하려나 봐요!>
바로 전화가 왔다. 얼마나 반가워하시는지 목소리에 울음이 섞여 있었다. 그럴 만했다. 효은이의 사회성은 엄마의 오랜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효은이는 우리 학교로 전학 오기 전에도 친구들과 적응 문제를 겪었다고 했다. 엄마가 교무실에서 전입 서류를 작성하는 동안, 효은이는 주머니에 두 손을 단단히 넣은 채 불안한 표정으로 이 사람, 저 사람을 쳐다보았다. 다른 교사들이 웃으며 어느 학교에서 왔니, 너는 무슨 동물을 좋아하니 물었을 때, 시선을 피할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보통 아이들이 조금은 겁먹은 표정으로 엄마 옆에 얌전히 앉아 최대한 또박또박 대답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저 녀석, 보통 아니겠는데요, 라고 옆반 교사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절차가 끝나고 효은이 엄마가 내게 따로 면담 요청을 했다. 듣고 보니 딱한 아이였다. 이전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다 화를 못 이기고 친구를 팔을 물었는데 상처가 나 피해보상을 한 일, 그 일로 아파트 단지에 소문이 나 놀이터에 나가도 놀 상대가 없어 일년 가까이를 엄마와 둘이 있었던 일, 교실에서 다툼이 잦아 급기야는 같은 반 학부모들이 담임을 상대로 진정을 낸 일을 말하며 효은이 엄마는 내내 미안한 표정을 했다. 분노 조절이 어렵고 지는 걸 싫어하는 데다 화가 나면 엄마에게도 화풀이해서 키우기 힘들었다고 했다. 이야기하는 내내 얼마나 간절한 표정인지 오히려 내가 위로를 건네야 할 정도였다.
"아이고, 효은이 키우시느라 어머니가 힘드셨겠네. 이 학교로 전학 오기까지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래?"
"좀 힘들더라고요. 왜 효은이만 유난히 저러나 싶기도 하고요..."
"아이고, 그러게요. 근데 효은이도 쉽지 않았겠어요. 우리 어른이야 화나면 술도 마시고 풀지만... 애들은 그냥 혼나기만 하잖아요."
"네, 선생님. 우리 효은이도 불쌍해요. 자꾸 야단만 치게 되고..."
"그러게요. 효은이는 온 세상이 자기를 미워하는줄 알겠어요. 아이고, 저 녀석, 불쌍해서 어째... 혹시 야단칠 때 때리시나요?"
"네, 때리면 무서운 줄 알거든요."
"주로 누가 때리시나요?"
"아빠가... 저는 아주 가끔..."
"아이고, 엄마 아빠가 다 무서우면 효은이 편은 누가하나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편들어 주세요. 근데 너무 감싸셔서..."
"아이고, 아무튼 다행이네요. 할아버지 역할은 나중에 또 의논하기로 하고... 이왕 전학 왔으니 뭔가 효은이에게도 의미있는 변화가 느껴져야 하잖아요. 오늘부터는 때리지 마세요. 아빠한테도 분명히 말씀해주세요. 야단은 반드시 말로만 치시라고."
"안 때리고 싶죠. 근데 그러면 말을 잘..."
"지금까지 때렸는데 효과가 별로 없었잖아요. 효은이로선 그동안 맞기만 하고 성장할 기회는 빼앗긴 셈이고요. 아이들이 혼날 때 반성하는 거 같지만 사실 안 그래요. 아프고 무서우니까 부모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앙심을 품어서 다음엔 더 극악스러워진대요. 앞으론 때릴 일이 있으면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때 그때 힌트를 드려 볼게요."
"공부는 바라지도 않고요. 친구들에게 제발 피해 안 끼치고 어울리면 좋겠어요."
"효은이네 가족이랑 제가 잘 키워봐야죠, 뭐. 우리 아이들이 착해서 잘 될 겁니다. 효은이는 뭘 잘하나요?"
"운동신경은 좋은 것 같아요. 달리기도 좋아하고 축구 클럽에 다녀요."
"네, 오늘 축구를 시켜보면서 관찰을 좀 해볼게요. 그리고 오후에 전화드릴게요."
효은이를 교실에 데리고 와 자기소개를 시켜보았다. 하지만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쭈뼛거리며 아이들을 살핀다. 사회성 낮은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나는 새 친구가 왔으니 기념으로 축구를 하겠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와, 하고 탄성을 지르며 운동장으로 나갔다. 나는 교무실에 가서 새 축구공을 꺼내 운동장으로 나갔다. 새 공을 보자 아이들이 다시 환호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아이들은 효은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효은아, (어깨 동무를 하며) 잘 왔어. 니가 와서 우리 선생님이 축구 시켜주잖아. 새 공으로.”
“...”
“효은아, 너 축구 잘하니? 나도 축구 쫌 하는데.”
“...”
아이들이 호의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오자 당황했는지 여전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치를 본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을 넘겨주고 옆에 가서 앉는다. 아이들은 서로 효은이를 자기 편에 데려가고 싶어 한다. 심지어 서로 자기 편에 데려가려고 다투기까지 한다. 그 상황이 마음에 들었는지 효은이도 손을 빼고 함께 어울린다. 과연 효은이 엄마 말씀대로 몸이 날쌔고 공도 잘 다룬다. 그러자 아이들은 더 효은이를 칭찬하며 치켜세운다. 아이들이 친근감을 드러내자 효은이 표정에 자신감이 인다. 하지만 여기까지. 채 십분이 지나기도 전에 아이들과 효은이가 삐걱거린다. 급기야 아이들이 화난 표정으로 내게 온다.
“선생님, 효은이 아무래도 다시 전학 가라 그래야 하겠어요.”
“전학?”
“네, (머리 옆에 손가락을 빙빙 돌리며) 쟤 좀 이상해요. 우리랑 좀 다른 것 같아요.”
“이상해?”
“네. 지가 축구공을 잘못 차서 도랑에 빠졌으면 지가 꺼내다 줘야 되잖아요. 근데 안 그런다니깐요. 글쎄. 허, 참. 뭐 저런 애가 다 있어.”
“아이고, 그랬어?”
“네. 한 번은 진수가 대신 주워왔단 말이에요. 근데 또 저러잖아요. 글쎄. 으이구.”
“(효은이를 향해) 효은이가 그랬어? 그렇다면... 효은이가 직접 친구들에게 말해야겠는데.”
“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요? 그냥 몰르고 찬 거예요.”
“야, 몰르고 찼어도 주워와야지! 니가 찼잖아. 자기 행동은 자기가 책임지는게 우리 학교 규칙이니깐. 맞죠, 선생님?”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얘들아, 너네 말은 맞아. 맞는데... (쭈뼛거리며) 효은이가 오늘 전학 왔잖아... 몰라서 그랬을 거 같은데... 한 번만 봐주면 안 될까?”
“헐. 선생님은 왜 효은이 편만 들을라 그래요. 그럼 안 되죠.”
“맞아요. 그래서 선생님 땜에 효은이 버르장머리 나빠지면 어떡할라 그래요? 으이구.”
“아니, 뭐... (머리를 긁적이며) 너네 말이 다 맞아. 그런데 효은이가 이제 겨우 1학년이라서 잘 모르니까...”
“헐. 모르긴 뭘 몰라요. 우리도 1학년인데. 다 알잖아요. 야, 이효은, 너 빨리 축구공 주워 와. 빨리! 너 땜에 우리도 축구 못하잖아.”
“야, 내가 몰르고 찼다니까!(화가 났는지 식식거린다)”
“(효은이 편을 들며) 아이고, 우리 반 무섭네. (과장해서 사정하는 말투로) 얘들아, 효은이가 이제 겨우 여덟 살이잖아. 여덟 살이 뭐 알겠니? 아직 너무 어려서 자기가 찬 공은 직접 주워다 다음 친구에게 주는 걸 몰랐을 거야. 어른스러운 너네가 좀 봐주면 되잖아. 선생님 봐서 한 번만 봐주라, 응?”
“에이, 그래도 그건 아니죠. 규칙을 지켜야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선생님이 그래놓구선. 안돼요.”
“그렇지. 규칙은 지켜야지. 근데 효은이가 아직 뭘 몰라서...”
“(내 말을 가로채며) 됐고요. 효은이가 당장 공 안 주워오면 우리 효은이랑 안 놀아요. 알았죠?”
“(화들짝 놀라며) 아, 진짜. 너네 뭐 그렇게 까다롭냐? 새 친구 기분 좋게 좀 해주지. 선생님이 이렇게 부탁할게. 응?”
“그니깐요. 규칙을 지켜야 기분 좋게 해주죠. (효은이를 향해) 야, 너 빨리 주워 올 거야, 안 주워 올 거야. 엉?”
“(내가 나서며) 아이고, 얘들아. 효은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랬는데 너네가 좀 봐 주지 으이구...”
“(단호하게) 안 돼요. 다음에 다른 거 봐줄 게요. 축구는 안 돼요. 우리도 엄청 기다렸단 말이에요.”
“맞아. 너네가 엄청 기다렸지...”
“거봐요. 그니깐 선생님도 계속 효은이 편 들지 마세요. 아셨죠?”
담임인 내가 비굴하게 사정해도 아이들이 끄떡 안 하는 걸 보자 효은이도 뭐라 말은 못하고 식식거리기만 한다. 그렇게 몇 분을 버텨도 아이들이 여전히 완강하자 꺽꺽 울기 시작한다. 나는 효은이 얼굴을 감싸 안으며 눈물을 닦아 준다. 그러자 효은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큰 소리로 운다. 서러운 목소리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마음이 약해졌는지 한 아이는 효은이 대신 도랑에서 공을 주워오겠다고 나서고, 다른 아이들은 효은이를 달래려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가만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며 한쪽 눈을 찡긋한다. 그제야 아이들도 알았다는 듯 소리 나지 않게 웃으며 돌아선다. 나는 효은이 손을 잡고 도랑으로 간다.
“아이고, 우리 효은이가... 많이 속상하신가?”
“(흐느끼며) 애들이 나한테만 뭐라 그러잖아요. 나 정말 몰르고 찼단 말이에요.”
"아, 그랬어?"
"네. 그리고 이전 학교에서는 몰르고 차도 내가 안 주워오고 다른 애가 주워왔단 말이에요."
“근데, 자기 찬 공이 도랑에 들어가면 자기가 꺼내 오는 게 우리 학교 규칙이거든. 우리 학교 규칙은 선생님도 꼭 지켜야 하거든. 봤지? 선생님이 네 편 들어주려고 하다가 아이들이 막 뭐라 그러는 거.”
"네."
"거봐. 우리 학교는 규칙을 꼭 지켜야 해. 너도 전학 왔으니까 지켜야 하고."
“저는 처음이라서 몰랐다니깐요. 그럼 봐 줘야죠.”
“친구들이 안 봐줘서 화났구나?”
“네. 엄마가 이 학교 애들 다 좋은 애들이라 그랬는데 하나도 안 좋잖아요.”
“좋은 애들 맞아. 그런데 친구들은 네가 규칙을 안 지켜서 화났나 봐.”
“몰랐으니깐 그랬죠.”
“이제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지키면 되겠네. 그럼 네가 직접 친구들한테 가서 앞으로는 규칙을 꼭 지키겠다고 말해야 해. 지금.”
효은이가 도랑에서 공을 주워오고 나는 아이들에게 효은이가 할 말이 있다고 한다. 효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쭈뼛거리며 다음엔 규칙을 지키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아이들이 손뼉을 친다. 나는 놀이 시작! 이라고 외치고 아이들은 다시 축구를 시작한다.
*
아이들과 놀고, 다투고, 화해하고 다투고, 울고, 또 울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와 상담을 했다.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쉽지 않은 기간이었다. 하지만 효은이 본인만큼 힘들었을까. 다섯 달을 혼자 보낸 효은이. 비로소 자기가 먼저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로 한 날, 등교하는 효은이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효은아, 오늘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말 사실이지?”
“네. 엄마가 놀아도 된대요.”
“좋아. 친구들은 좋겠네. 효은이랑 놀아서. 근데 효은이가 먼저 할 일이 있어.”
“뭔데요?”
“친구들에게 네가 직접 말해야 해. 너네랑 놀고 싶다고.”
“네? 그랬다가... 친구들이 싫다고 하면요?”
“그럼... 못 놀지.”
“그럼 전 어떡하는데요?”
“뭐... 혼자 놀든지, 그래야지.”
“(불안한 눈빛으로) 그럼 못 놀 가능성이 더 높잖아요. 애들이 싫다고 할 지도 모르니깐요. 그럼 선생님이 말해주든지요”
“선생님이 대신 말 못해. 너랑 놀지 안 놀지는 친구들이 결정하는 거거든.”
“선생님이 오늘 친구들이랑 놀라 그랬잖아요.”
“맞아. 하지만 친구들에게 너랑 놀아주겠냐고 부탁하는 건 네가 해야 해. 네가 노는 거니까.”
“싫다 그러면요?”
“아쉽지만... 오늘은 못 놀지. 그럼 내일 놀아도 되고.”
“우리 엄마가 친구들이랑 오늘 놀라 그랬어요.”
"엄마가 놀라고 해서 노는 거니? 너는 안 놀고 싶어?"
"(우물거리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친구들이랑 놀 지는 안 놀지는 엄마 말고 네가 결정하는 거야. 엄마는 여기 안 계시잖아."
"모르겠어요. (자기 입술을 가리키며) 이게 안 움직여요."
"그럼 선생님이 말해볼까? 친구들이랑 놀고 싶은데 싫다그럴까 봐 걱정되는 거지?"
"네."
“그럼 오늘 꼭 놀아야겠다, 그치? 그러니까 친구들에게 말 잘 해봐.”
효은이가 다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마음이 불안할 때 나오는 습관이다. 내가 계속 모른 척하자 안 되겠는지 부탁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선생님이 저 대신 말해주시면 안 돼요? 한 번 만요.”
“미안하지만 안 돼.”
“아, 왜요?”
“선생님이 부탁했다가 애들이 거절하면 선생님만 창피하잖아. 선생님은 놀지도 않고 심판만 봐야 하는데.”
“선생님이 말하면 애들이 잘 들을 거잖아요.”
“만약에 애들이 거절하면? 창피한 건 너나 나나 똑같은 거야.”
“(짜증으로내며) 아, 씨. 그럼 어떡하냐구요.”
“그러니까 네가 말을 잘 해야지.”
“제가 말을 잘해도 애들은 분명히 거절할 거라구요. 그럼 난 어떡해요.(흐느껴 운다.)”
“(잠시 울게 뒀다가) 그럼... 선생님이 도와줄까? 한 명 씩 말하지 말고 편지를 써서 붙이고 놀 사람은 너에게 말해 달라고 할까? 선생님이 편지 대신 써줄 수도 있는데.”
도와준다는 말에 효은이 표정이 조금 살아난다. 난 종이를 꺼내 쓸 준비를 한다.
“일단 친구들을 감동시키려면 친구들이 화난 일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써야 해. 미안한 게 뭐 있을까?”
“욕한 거요. 지난 번에 연우한테 시발놈이라 그런 거요. 그리고 애들 그네 못 타게 한 거랑.”
“(메모하며) 좋아. 친구들이 너랑 놀면 넌 어떻게 해 주고 싶어?”
“화도 안 내고, 친구들이 빠지라 그러면 빠지고... 심판하라 그러면 심판할라고요.”
“아이고, 빠지라 그러면 빠진다고? 그럼 속으로 엄청 화날 거 같은데?”
“그래도 참아야죠. 친구들이랑 또 놀아야 되니깐요.”
“심판? 이건 뭐야?”
“놀 때 짝이 안 맞으면 한 명은 심판 해야되거든요. 그거 제가 하죠, 뭐.”
“헐. 그럼 못 노는 거잖아? 엄청 화날 거 같은데?”
“할 수 없죠, 뭐...”
나는 컴퓨터를 켜고 편지를 입력한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안녕, 나 효은이야. 내가 너네한테 그네 못 타게 막고 욕해서 미안해. 나는 너네랑 놀고 싶어. 나랑 같이 놀아줄래? 제발... 같이 놀 거면 나한테 말해줘.>
* 너네가 나랑 놀아주면 앞으로 화를 '절대로' 안 낼게. 그리고 빠지라면 빠지고 심판 하라면 심판도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