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 효은이야. 내가 너네한테 그네 못 타게 막고 욕해서 미안해. 나는 너네랑 놀고 싶어. 나랑 같이 놀아줄래? 제발... 같이 놀 거면 나한테 말해줘.>
* 너네가 나랑 놀아주면 앞으로 화를 '절대로' 안 낼게. 그리고 빠지라면 빠지고 심판 하라면 심판도 할게.>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이 들어온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는지 싱글벙글 아까 놀던 이야기 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고 말하며 효은이 편지를 TV에 띄운다. 아이들이 하던 걸 멈추고 읽는다. 다 읽고 나서 효은이를 바라본다. 효은이는 조금 긴장된 얼굴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한 채 외면하고 있다. 한 아이가 약간 인상을 쓰며 말한다.
“선생님, 효은이랑 꼭 놀아야 되는 건 아니죠?”
“응. 누구랑 놀지는 각자 자기가 결정하는 거야.”
“선생님이 뭐라 그럴까 봐 그러죠.”
“뭐라고 안 할 거야. 누구랑 놀지는 각자 결정하는 거니까.”
“에이, 어제도 일기 안 썼다고 뭐라 그랬잖아요.”
“공부는 선생님이 시키면 싫어도 해야 하지만 친구랑 노는 건 네가 결정하는 거야.”
“그럼 난 효은이랑 안 놀래요.”
“응. 알았어.”
그 다음에 나서는 아이는 아빠 돌아가신 일로 효은이의 위로를 받았던 연우다. 그런데 연우는 효은이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내게 와 귓속말을 한다.
“그니깐요. 효은이가 미안하다 그랬으니깐 난 이제 효은이랑 놀고 싶은데 친구들이 뭐라 그럴까 봐요.”
“너는 놀고 싶은데 친구들 때문에 눈치가 보이는 거지?”
“네. 뭐라 그럴까 봐.”
“아이고, 고민되겠네. 근데 효은이랑 놀지 안 놀지 결정할 사람은 너야.”
“뭐라 그러면요?”
“그래도 네가 결정해야 해. 친구들이 뭐라 그래도 효은이 사과를 받아주고 같이 놀지, 친구들이 뭐라 그럴까 봐 효은이랑 노는 걸 포기할지.”
“그니깐요.”
“놀고 싶어?”
“네.”
“그럼 효은이에게 말해. 그리고 놀면 되지.”
“근데 애들이...”
“애들이 뭐라 그러는 게 걱정되면 안 놀아도 돼.”
“그럼 효은이가 불쌍하잖아요.”
“불쌍하지. 그래도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 노는 사람은 너니까.”
“음...(잠시 고민을 하더니) 그럼 애들한테 먼저 물어볼게요.”
“알았어. 애들한테 말해 줘. 효은이랑 안 노는 건 자기 마음이지만 여럿이 안 놀기로 약속하는 건 규칙에 어긋나는 거라고. 그건 따돌림이거든.”
연우가 친구들과 의논하는 사이에 난 효은이에게 간다.
“친구들이 화가 많이 났나 봐. 지난번 네가 그네 못 타게 해서 친구들이 너랑 못 놀겠나 봐.”
“그래서 미안하다 썼잖아요.”
“응. 근데 그래도 친구들 화가 안 풀려서 너랑 안 놀고 싶을 수도 있어.”
“(울상이 되며) 아, 씨...! 미안하다 그랬는데...”
“너무 화가 나면 미안하다는 말 들어도 화가 안 풀릴 수 있거든.”
“(훌쩍거리며) 그럼 어떡해요...”
“네가 미안하다고 한 건 잘했어. 하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이 이제부터 친구들에게 너랑 놀라고 시킬 수는 없는 거야.”
"선생님이 시키라니깐요. 선생님이 애들한테 딱 말하면 되잖아요."
"그건 불법이야."
"그래도 시키면 되죠. 선생님이 시키면 애들이 말 들을거잖아요."
"규칙을 지키라는 건 시킬 수 있지만 누구랑 놀지는 친구들이 결정하는 거야."
"...(눈물이 맺힌다)"
“너는 그래도 친구들과 놀고 싶니?”
“...(울기 시작한다)”
“지난 번에 그네 못 타게 안 했으면 좋았겠지?”
“...”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해볼래?”
“...”
“선생님, 교무실에 갔다 올 테니 그사이에 생각해 봐.”
나는 교무실 가는 척하며 잠시 교실 밖에 나가 있는다. 아이들은 효은이와 놀지를 의논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린다.
“야, 효은이랑 놀 사람 손!”
두 아이가 손을 들었다가 안 든 아이들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재빨리 내린다. 그러자 연우가 손을 안 든 아이들을 채근한다.
“야, 너네도 빨리 들어. 효은이랑 놀자, 제발.”
“야, 효은이랑 안 놀기로 약속했잖아. 연우 니가 먼저 약속하자 그러구선 배신 때리냐?”
“야, 우리가 약속하고 안 노는 건 불법이래. 왕따시키는 거니깐. 선생님이 그랬어. 그니깐 그냥 놀자, 좀!”
“선생님이 놀지 말지 내가 결정하는 거랬어. 난 싫어.”
“으이구, 난 모르겠다. 그냥 효은이랑 좀 놀면 안 되냐?”
아이들이 의논하는 걸 한쪽에서 듣던 효은이의 훌쩍임이 더 커진다. 잠시 뒤, 나는 교실에 들어가서 효은이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 얼굴을 닦아 준다. 그리고 다시 교실에 돌아와 TV 화면을 끄고 국어책을 펴라고 말한다.
“선생님, 공부할라고요? 지금 공부를 하면 어떡해요.”
“응. 지금이 국어 시간이라서...”
“아, 뭐예요. 우리 노는 시간 아니었어요?”
“아, 그건 아까 1교시였고... 지금은 2교시라서...”
“헐. 그런 게 어딨어요. 우리 하나도 못 놀았다구요!”
“그래? 근데 어차피 놀이는 못했을 걸.”
“네? 우리가 왜 못 놀아요?”
“원래 1교시 하려고 했던 게 2인 3각 경기였거든.”
나는 아이들이 잘 볼 수 있게 칠판에 쓴다.
<즐거운 마음을 모아 2인 3각 경기하기>
“헉. 2인 3각? 그거 다리 묶고 달리는 거죠? 운동회 때 엄마들이 하는 거. 헐. 쩐다! 야, 저거 내가 교회에서 해봤는데 엄청 재미있어! 선생님 그거 진짜 하는 거 맞죠? 뻥 치는 거 아니죠?”
“그러엄. 선생님이 오늘 이거 하려고 며칠 전부터 기다렸거든.”
“엇! 재미있겠네요? 야, 재미있겠는 사람 손!”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표정도 빠르게 들뜬다. 이 분위기를 틈타 내가 말한다.
“재미는 모르겠고... 다음에 2학년 형님들하고 시합도 하기로 했는데... 에이, 1학년은 포기해야지, 뭐.”
“(흥분해서) 억. 포기? 포기를 왜해요. 하면 되잖아요!”
“(귀찮은 표정으로) 우린 지금 이거 할 분위기도 아니고... 얘들아, 너네 혹시 선생님 속상할까 봐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돼. 난 괜찮으니까. 2학년 선생님한테 조금 창피하지만... (쓸쓸한 표정으로) 휴... 할 수 없지 뭐.”
“(아부하는 목소리로) 에이, 선생님. 그러지 말고 이번 시간에 해요. 네? 우리가 잘 할게요. 연습을 빨리 해야 형아들 이기죠. 빨리요!”
“(모르는 척하며) 그럴까? 원래 오늘 하기로 했으니까 하긴 해야하는데...”
“(적극적으로) 그냥 하면 되죠. 지금 빨리해야 된다니깐요, 네?”
“그럴까? (효정을 바꿔서) 아, 근데 안 돼.”
“아, 또 왜요?”
“(칠판을 가리키며) 여기 봐. ‘즐거운 마음을 모아’서 하라고 되어 있는데 (훌쩍거리는 효은이를 보며) 솔직히 우리가 지금 즐거운 마음은 아니잖아.”
“그럼 효은이랑 놀면 되죠. 그냥 우리 놀게요. 됐죠?”
역시나. 아직은 놀이 하나에 언제든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일학년 아이들이라니. 모두 효은이에게 달려가 같이 놀겠다고 말한다. 특히 연우는 효은이 어깨를 잡아 번쩍 일으키며 끌어안는다. 그러자 효은이도 이제야 안심이 되는지 표정이 살아난다. 아이고, 저 녀석. 오늘 많이 힘들었겠네. 내가 신호를 하자 아이들이 효은이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나간다. 난 책상 서랍을 열고 2인 3각 경기에서 다리를 묶을 끈을, 일부러 하나만 갖고 나간다. 운동장에서는 이미 아이들끼리 짝을 지어 어깨동무하고 발이 묶인 흉내를 내며 놀고 있다. 효은이도 연우와 짝이 되어 깔깔거린다. 나는 아이들과 간단히 준비운동을 한 뒤 둘씩 짝을 지으라고 말한다. 그러자 한 아이가 묻는다.
“근데요, 선생님. 2인 3각 경기하려면 둘씩 짝이 맞아야 하잖아요.”
“그래야지.”
“근데 우린 일곱 명이잖아요.”
“그게 왜?”
“일곱 명은 7인데 7은 홀수잖아요. 짝이 맞으려면 짝수라야 되는데.”
“아, 맞아. 이거 큰 일이네. 그럼 오늘 2인 3각 못하겠다.”
“헐. 그럼 안 되죠. 선생님이 한다 그랬음 해야죠. 선생님이 약속을 안 지키면 어떡해요.”
“그러게. 2학년 선생님께도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거 큰 일이네...”
“그니깐요. 둘씩 짝을 해야되니깐 한 명은 빠져야 되잖아요.”
“그러게. 근데 빠지면 기분 나쁘잖아. 그럼 슬프지. 슬프면 눈물이 나. 눈물이 많이 나면 눈물 바다가 되고. 바다엔 물고기가 살겠지? 그럼 선생님은 낚시를 할 테닷, 음하하하!”
“아오, 선생님, 그런 얘기 하지 말구요. 빨리 생각을 해보세요. 포기하면 선생님 기분 좋아요?”
아이들이 일제히 효은이를 바라본다. 연우와 짝이 될 기대에 부풀어 어깨동무를 하고 있던 효은이 표정이 빠르게 가라앉는다. 나는 효은이에게 친구들이 빠지라고 하면 정말 빠지겠느냐고 묻는다. 효은이는 망설인다. 난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말한다.
“너네가 빠지라 그랬을 때 빠질지 안 빠질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이곳에 딱 한 사람 있어. 누굴까?”
“효은이요.”
“맞아. 효은이가 빠지고 친구들 다리에 끈을 묶어 주는 역할을 할지, 거절할 지는 효은이가 스스로 결정해야 해.”
친구들이 빠지라고 하면 빠지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치자 효은이도 선뜻 결정을 못 한다. 지금껏 효은이는 이런 포기를 받아들인 적이 없다. 승부욕 강한 성격에 쉽게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효은이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나는 아이들이 효은이 얼굴을 못 보게 살짝 옆으로 불러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만약에 네가 심판을 하면 친구들 끈을 네가 묶어 주면 좋겠어. 끈이 하나밖에 없어서 여러 번 묶었다 풀었다 해야 하는 아주 어려운 미션 임파서블(효은이가 자주 쓰는 말)이야. 묶는 방법은 선생님이 가르쳐 줄 건데... 효은이가 미션 임파서블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내 말이 승부욕을 자극했을까, 효은이가 입술을 야무지게 오므리며 하겠다고 말한다. 그럼 친구들에게 직접 말하라고 하자 아이들에게 말한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효은이 어깨를 토닥이며 양보해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연우는 효은이 팔을 높이 치켜올리기까지 한다. 다시 효은이 표정이 밝아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달리기 연습을 하고 있으라고 말한 뒤, 효은이에게 끈 묶는 방법을 알려준다.
“친구들이 너 빠지라 그랬을 때 화나지 않았어?”
“... 근데 제가 빠진다 그랬으니깐요.”
“그래서 친구들 말을 듣기로 했어?”
“네...”
“효은아, 너 오늘 좀 멋있는 것 같아. 그런 결정 하기 어렵거든. 선생님도 예전에 친구들이 빠지라 그랬을 때 막 울면서 화냈는데.”
“그래서 어땠는데요?”
“애들이 나랑 안 놀았지. 그래서 외로웠어.”
“선생님도 화내지 말지 그랬어요. 친구들이랑 놀라면요.”
잠시 후, 각자 한쪽 발목을 묶은 두 명의 아이 세 쌍이 반환점을 뛰어 돌아오는 놀이가 시작된다. 효은이는 아이들 발목을 묶고 풀어주느라 바쁘다. 친구들에게 거절당할까 봐 걱정했는데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했는지 효은이도 열심히 묶었다 풀었다를 반복한다. 정작 달리는 아이들보다 효은이가 더 많은 땀을 흘린 시간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효은이를 따로 부른다.
"잘했어. 근데 끈을 더 빨리 풀고 묶어야 해. 빨리 풀려면 리본 매듭 미션임파서블을 배워야 하는데..."
"그게 뭔데요?"
"너무 어려워서 난 몰라. 2학년 선생님은 아신다던데..."
"그럼 제가 이따 물어볼까요?"
역시. 승부욕 강한 아이다운 답이다.
"안 가르쳐주실 거야. 2학년 편이시잖아."
"(한탄하며) 아..."
"너네 엄마께 여쭤 봐."
"우리 엄마요? 엄마 못할 걸요?"
"그래도 여쭤 봐. 혹시 아시면 배워오고."
"모를 거 같은데... 우리 엄마 그런 거 몰라요."
확인도 안 해보고 엄마는 무조건 모를 거라고 답하는 효은이. 가정에서 엄마가 어떤 존재로 이해되는지 알 수 있는 대답이다. 효은이에 대한 엄마의 존재감을 어떻게 세워드려야 할까. 아이들이 돌아간 뒤 효은이 엄마께 전화를 걸어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따로 부탁을 하나 드린다.
"효은이가 리본 매듭 아냐고 물어볼 겁니다. 연습시켜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근데 공짜로 알려주지는 마시고 이 기회에 어머니도 조건을 하나 걸어보세요."
"어떤 게 좋을까요?"
"예를 들어 3일 동안 '누나한테 덤비거나 욕하지 않기'라든가. '동생 챙기기'라든가 이런 게 어떨까요? 아니면... 엄마한테 말대답 하지 않기처럼 엄마에 대한 태도에 변화를 주는 미션도 좋을 것 같은데... 이건 어머니의 의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네, 그런데 효은이가 제 말을 들을지..."
"효은이가 엄마 말을 순순히 듣게 하는게 목표입니다."
"네, 그러면 저도 좋은데..."
"엄마와 약속 한 걸 선생님한테도 알릴 거라고 하세요. 그러면 받아들일 것 같아요. 만약 효은이가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거나 저항해도 조건을 양보하지는 마세요. 그럼 엄마를 우습게 볼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아빠가 힘으로 누르셔도 안 됩니다. 그냥... 아직 때가 안 된 거니까 더 기다려야 합니다. 강요는하지 마시고 저에게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