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일학년담임 Oct 24. 2023

"우리 TV에는 뉴스가 안 나와요."

아이들에게 시사교육이 힘든 이유

한글날 연휴를 마치고 등교한 1학년 교실. 한 아이가 급히 오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한다.


"선생님, 큰 일 났어요! 전쟁 났대잖아요. 이스라엘에서. 모르시죠?"


"전쟁?"


"네. 선생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걸요. 우리 학교도 전쟁 날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조심할게."


"(팔짱을 끼며)근데 이스라엘이라 나라 아시죠? 지난번 과테말라는 몰랐잖아요."


"(민망한 표정으로) 이스라? 그게 무슨 나라더라...?"


"으이구, 선생님이 그것도 모르면 어떡할라 그래요. 지금 전쟁이 났는데!"


"아이고, 빨리 알아봐야겠네."


"근데 걱정 마세요. 우리나라랑 좀 멀리 있는 나라니깐요. (갑자기 긴박한 표정으로) 만약에 우리나라랑 가까웠으면 어쩔 뻔했냐고요, 진짜!"


"헉. 그러게. 근데 전쟁이 왜 났대?"


"하마스요."


"하마스?"


"네, 설마 하마스도 모르는 건 아니죠?"


"(당황하는 표정으로) 하마... 뭐라고?"


"(내 말을 자르며) 으이구, 내 이럴 줄 알았잖아요. (친구들을 향해) 야, 우리 선생님 하마스도 모른다. 나는 아는데!"


"(그러자 한 아이가 나서며) 야, 이건우! 너 또 잘난 척하냐? 우리 선생님이 하마스 모르실 수도 있지. 너 왜 선생님 창피하게 크게 말해. 싸가지 없이. 엉?"


"야, 선생님이 하마스도 모르니까 그렇지! 넌 아냐?"


"나도 모른다. 어쩔래?"


"헐. 지도 모르면서."


"야, 1학년이 하마스 모를 수도 있지. 너는 이 세상에 있는 거 다 아냐? (나를 향해) 선생님, 하마스 아시죠? 알면 빨리 말하세요. 쟤 또 잘난 척하잖아요."


"아, 생각났다. 하마스! (멍한 표정으로) 하마가 많아서 하마스겠지?"


"헐. 그건 아니죠! 설마 하마가 많다고 하마스겠어요? 아, 웃겨! 2반 선생님한테 그런 말하지 마세요. 창피하니깐."


"그래? 걱정해 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2반 선생님한테 창피할 뻔했네."


"(다른 아이가 나를 토닥이며) 선생님, 괜찮아요. 나중에 알아보세요."


"응, 위로해 줘서 고마워. 꼭 알아볼게."


"인터넷에 '하마스' 치면 나와요. 제가 선생님 컴퓨터로 해드릴까요?"


"아, 그럴래? 고마워."


"(교사용 컴퓨터를 검색해서 보여주며) 여기 있네요. 하마스, 이스라엘과 전쟁 난 거 맞나 봐요."


"그래? 건우 말이 맞는구나."


"(건우가) 거 봐요. 뉴스에서 봤다니까요! 그러니까 선생님도 뉴스 좀 보세요. 맨날 스마트폰만 보지 마시고. 그러다 우리 형아처럼 중독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알려줘서 고마워. 하마터면 중독될 뻔했네."


"네, 이제 애들한테 하마스 안다고 말하세요. 안 창피하시게요."


"응. 그럴게. 도와줘서 고마워."


내가 미적거리자 건우가 아이들을 향해 외친다.


"야, 선생님도 이제 하마스 아셔. 내가 알려줬으니깐."


"(다른 아이가) 정말? 선생님, 하마스 아세요?"


"응. 건우가 도와줬거든."


"흐음... 그럼 말해보세요. 하마스가 뭔데요?"


"하마스가 뭐냐면... 하마가 많아서 하마스는 아닌데... 이스라엘이랑 전쟁이 나긴 났는데... (멍한 표정으로) 근데 하마 때문에 전쟁이 났나?"


"(건우가) 땡! 아니거든요!"


"아이고, 또 아니야?"


"하마 때문이 아니고요. 뉴스에 나왔다니까요! 우리 할아버지랑 봤어요!"


"아, 뉴스!"


"그니깐 선생님도 뉴스를 보시라니깐요. 맨날 스마트폰말 보시지 말구. 진짜 우리 형아처럼 된다니깐요."



      



같은 1학년이라도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의 시사에 대한 파악 정도가 다르다. 우리 반 아이들의 현재 상황은 이러하다.(전체 19명)


* 집에서 뉴스를 보나요?

- 매일 봐요 : 7명(아빠가 매일 뉴스를 틀어요.)

-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봐요 : 8명(부모님 있을 때는 보고 없으면 안 봐요.)

- 뉴스 본 적 없어요. 4명(우리 집 TV에는 뉴스 안 나오고 '아는 형님' 같은 거만 나와요.)


* 뉴스를 볼 때 잘 모르는 게 나오면 어떻게 하나요?

- 어른들께 여쭤봐요 : 4명(그럼 설명을 잘해줘요.)

- 그냥 봐요. (이 닦으면서 봐요. 자면서 봐요)


* 뉴스를 주로 누구랑 보나요?

- 어른(할아버지, 부모님)과 봐요 : 6명


* 뉴스를 보지 않는 경우는 왜 안 보나요?

- 우리 집 TV는 뉴스 안 나와요. : 2명

- 언제 나오는지 몰라요. : 2명

- 볼 시간이 없어요. : 8명(잘 시간이 되어서, 숙제하느라)

- 유튜브에서 어린이뉴스를 봐요.


* 여러분은 요즘 뉴스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생각하나요?

- 이스라엘 - 하마스 전쟁 : 7명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11명

- 티르키에, 아프가니스탄 지진 : 4명

- 설악산 케이블카 : 10명




*


다음 날, 건우가 학교에 오자마자 내게 달려온다.


"선생님, 뉴스 보셨죠?"


"뉴스?"


"제가 어제 뉴스 보라 그랬잖아요. 설마 우리 형아처럼 스마트폰이나 들여다 보신 건 아니죠?"


"형아가 스마트폰 봤어?"


"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등짝스매싱 했죠. '으이구, 내 못 살아.' 이러면서."


"아이고, 그랬구나."


"전쟁이 났는데 뉴스 안 보고 스마트폰이나 보니깐요."


"아, 그래?"


"(다른 아이가) 나도 뉴스 봤는데. 우리 아빠 스마트폰으로."


"그래?"


"네. 이스라엘이랑 하마스랑 왜 전쟁하는지 알았잖아요."


"오, 그래?"


"네. 이스라엘이랑 하마스랑 옛날부터 사이가 안 좋대요."


"아, 그랬대?"


"네, 원래 하마스가 살던 땅에...(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스라엘이 갑자기 들어가서 하마스 사람을 내쫓았대잖아요, 글쎄."


"아이고, 내쫓았어?"


"네. 근데 또 원래는 그게 이스라엘 땅인가 하마스 땅인가 그랬대요. (고개를 갸웃하며)


"아, 그랬구나."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그런데 원래는 영국이 잘못한 거예요. 영국이 뭐라뭐라 그랬거든요."


"영국이?"


"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랑 하마스가 싸우는 거예요."


"(다른 아이가) 야, 그러면 하마스가 영국이랑 전쟁해야지 왜 이스라엘이랑 전쟁하냐?"


"야, 영국이랑도 싸우겠지. (나를 향해) 진짜예요. 뉴스에서 봤어요."


"아, 뉴스에서 봤어?"


"(다른 아이가) 네. 저도 봤어요. 막 미사일 날아가는 뉴스 나왔는데."


"야, 그거 미사일 아니거든. 로케트지. 우리 아빠가 그랬어. 하마스에 미사일 없다고."


"아니야. 텔레비전에 분명히 미사일이라고 글자 나왔어. 내가 봤다니까."


"야, 미사일 아니야. 우리 아빠한테 미사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 그랬다니까!"


"야, 니네 아빠가 어떻게 아냐?"


"야, 우리 아빠가 군인이니까 알지."


"야, 군인이면 다 아냐? 하마스에 가 보지도 않았을 거면서."


"야, 너 로켓이면 어떡할래. 엉? (나를 보며) 선생님, 로켓 맞죠?"


"로켓인가 바켓인가... 그거 빵 이름이지?"


"(다른 아이가) 헐. 빵 아니에요. 피융하면서 불꽃 나가는 게 로켓이잖아요. 선생님이 그것도 모르면 어떡할라 그래요. 아, 웃겨."



내가 자꾸 엉뚱한 말을 하자 아이들이 점점 가세한다. 전쟁이라는 소재 때문인지 남자아이들의 관심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친구들이 관심을 보이자 건우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한다. 그러자 아는 게 금세 동났는지 오늘 집에 가서 할아버지랑 뉴스를 다시 보고 와서 내일 알려주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그동안 관심이 없던 아이들이 자기들도 집에 가서 뉴스를 보겠다고 말한다. 나는 학부모님 밴드를 통해 아이들이 뉴스에 관심을 보이면 보여주시고 설명도 해주시라고 안내했다.

         





다음 날, 중동에서 일어난 뉴스에 대해 아이들의 대화가 더욱 풍성해졌다.


"선생님, 로켓 맞아요.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하마스에는 미사일이 없대요."


"아, 그래?"


"근데 하마스가 너무했잖아요."


"아, 그래?"


"하마스가 애들도 막 잡아갔대요."


"아이고, 그랬대?"


"네. 제가 뉴스에서 봤어요."


"(다른 아이가) 야, 그건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가자 지구로 내쫓아내서 그래. 물이랑 전기도 안 주고."


"야, 그렇다고 사람을 막 잡아가면 되냐?"


"야, 탱크로 막 쏘니까 그렇지. 내가 TV(다큐멘터리를 본 듯)에서 다 봤거든. 선생님도 보셨죠?"


"응. 전부터 땅 때문에 사이가 안 좋았나 봐."


"거 봐. 하마스가 참다 참다 못 참겠으니까 공격한 거야."


"야, 그래도 애들을 막 잡아가면 되냐? 말로 해야지."


"야, 미사일을 막 쏘니까 그렇지. 너 같으면 참냐?"


"뭐래냐? 애들이 미사일 쐈냐? 어른이 쐈지. 미사일이 얼마나 무거운데!"


아이들이 아는 정보가 한정되어 대화 주제가 옆으로 새기도 했지만, 아이들 각자 아는 만큼 이야기했다. 간혹 서로의 이해가 다르면 나에게 확인 차 물어왔는데 그럴 때마다 난 모르는 척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집에 가서 다시 물어보고 올 테니 내일 보자고 말했다. 과연 그다음 날에는 전보다 풍성한 대화가 이어졌다. 어떤 아이는 신문에서 지도를 오려오기도 했고 어떤 아이는 두 나라 상황을 설명한 유튜브 영상 주소를 보내오기도 했다. 학부모님들 그저 만화 영화나 게임만 아는 줄 알았던 아이들을 보고 감탄했다. 더 나아가 정기적으로 아이와 시사 뉴스를 보기로 한 가정도 있었고 어린이 신문이나 잡지를 구독한 분도 있었다.


시사에 밝은 아이는 대체로 책을 좋아하며 수업 이해를 잘한다. 나라 이름도 많이 알아서 친구들에게 똑똑하다는 말도 듣는다. 자연스럽게 친구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늘어나고 친구들의 인정도 받아 뿌듯해하는 모습을 본다. 친구들을 이끄는 위치에 오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시사에 밝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밥 먹으면서 부모님께 시사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결국 부모님과 식사를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아이가 똑똑한 아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님과 식사를 늘 함께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아빠는 늦게 퇴근하시고 엄마는 아이의 질문에 응대해 줄 시간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시사교육을 할 방법은 없을지 우리 반 학부모 단톡방에 질문을 올려보았다. 그랬더니 한 분이 이런 답글을 달았다.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학습은 학원에 돈 주고 맡기면 되지만 시사는 부모가 끼고 함께 대화하며 가르쳐야 하니까요. 요즘 부모님들이 그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또 모르죠. 시사가 공부에 중요하다고 소문이 나면 시사를 가르치는 학원이 생길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대놓고 자랑질(아, 나의 뻔뻔함은 어디가 끝인가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