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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27. 2015

엄마의 힘

1학년 아이들에게 엄마란...

나의 꿈 말하기.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

글자의 짜임을 배우는 국어시간에 나의 꿈에 대해 쓰라니 얼핏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요즘 아이들의 모든 교과에는 진로교육이 깊이 녹아 있다.

축구선수, 소방관, 선생님...

아이들이 각자 자기 희망을 쓰는데

한 아이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엄마가 되고 싶다고 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가 핀잔을 준다. 야, 넌 남잔데 어떻게 엄마가 되냐.

그 옆 아이도 거든다. 야, 너는 아빠라고 써야지.

다른 아이도 거든다. 으이구, 엄마는 어른 되면 그냥 되는 거야. 딴 걸 써.

아이가 나와 눈이 닿았다. 내가 '엄마가 너무 좋아서 썼어?' 그러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선뜻 말한다. 나도 엄마가 되고 싶은데...

결국 모두 같은 마음인 것이다.


태어난 지 겨우 5년. 아직 엄마와 더 있고 싶을 나이인데

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에 오면서 엄마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었나 보다.

우리 반 아이들은 학교 공부가 끝나고 바로 집에 가지 않는다.

일부는 학교 돌봄교실로 가고, 나머지는 지역 아동센터에 간다. 집에는 저녁 무렵에 간다.

학교 돌봄교실이나 아동센터에서는 따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한다.

체험도 있고 만들기도 있고, 부족한 학교 공부를 하거나 숙제를 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것들이지만, 결국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하루 종일 뭔가를 배우기 위해 남아 있는 셈이다.


이런 아이들 삶의 이면에는 일을 해야 하는 부모님들의 사정이 있다.

언제부턴가 엄마, 아빠 모두 일을 하는 사회가 되면서 아이들은 가정으로부터 떨어지게 되었다.

국가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대신 맡아 줄 곳을 마련한다.

하지만 학교든 어디든 아이들을 부모 대신 맡아 주는 곳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을 가졌다 해도,

그곳에서 먹는 간식이 유기농, 친환경에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 해도,

마음껏 안기고 매달리고 떼 쓸 수 있는 엄마의 품보다 더 나은 복지가 어디 있을까.


학교든 어디든, 아이를 맡아 돌보는 곳에서 아이들은 그저 교육을 해야 할 대상이지 아들 딸같은 자식은 아니다.

무엇을 해야하고, 하면 안 되는지를 아이가 이해하고 실천할 때까지 가르치는 곳이다.

이런 잔소리와 규칙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없다. 하지만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잔소리를 들으며 지내야 한다. 그래서 가엽다.

교사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어도 교사는 엄마가 아니다. 그저 남인 것이다.

뭘 해도 내 새끼가 예뻐 보이는 엄마와, 가르치는 사람일 뿐인 교사라는 존재는,  따뜻함에 있어 전혀 다르다.


아이들은 가끔 투정하듯 말한다. 아,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싶다.

난 그럴 때, 엄마에게 연락해서 아이를 데려다 꼭 안아 재워주시라 하고 싶지만,

한참 밖에서 일하고 있을 아이의 엄마를 떠올리면 그렇게 못한다.

대신 돌봄교실에 가서, 아이가 힘들어하니 이따가 한 잠 재우면 어떻겠느냐고 말해 준다.

절대 엄마가 될 수 없는, 그저 교사일 뿐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아이들이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면 모든 엄마들이 활짝 팔 벌려 맞아 줄 그런 세상은 언제쯤 올까.

학교가 끝나 집에 가면 항상 엄마가 밭에 있던 농촌에서 자란 나는, 엄마와 떨어진 채 종일 집 밖에 머물며 자라야 하는 저 아이들의 결핍을 이해하지 못한다.

난 학교에서 엄마가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잠시 후 집에 가면 만날 테니까.

책가방 던져 놓고 마당 끝에 서서 엄마를 부르면 집 근처 밭에서 일하던 엄마가 허리를 펴고 일어나 나를 보고 웃을 테니까.

결핍이 일상이던 과거에, 그것도 지금의 아이들보다 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내가,

요즘 아이들보다 오히려 더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는 역설이, 요즘 아이들을 더 애잔하게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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