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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Nov 30. 2015

할머니의 힘

1학년 아이들이 바라보는 할머니라는 존재


아이의 글에 나오는 할머니를 뵌 적은 없지만, 그분에 대해 조금 안다.
아이가 자주 할머니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직장 나가는 아이 부모를 대신해 아이를 키우고 있다.
평소 아이의 말대로라면, 할머니는 욕을 잘 한다. 아이의 등짝도 툭하면 때린다.
노인정에 갈 땔 전화기를 잘 안 갖고 간다. 그래서 비 오는 날, 아이가 우산 갖다 달라는 전화를 못 받는다.
그런 할머니가 쌀쌀한 오늘, 작은 옷을 그냥 입고 가라고 했나 보다.
그래서 아침에 할머니한테 화를 내고 집에서 나오긴 했는데, 막상 추운 날씨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나 보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문장에 잘 녹아든 글이다.

아이들에게 겉만 번지르르한 글쓰기, 상을 받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살아 있는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사들이 꽤 있다.
나는  그중 이오덕 선생을 특히 존경한다.
아이들이 글을 쓰며 쌓인 슬픔을 풀어내고 옳은 가치를 더 굳게 다져야 바른 어른으로 성장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글을 쓸 때 그 어떤 굴레도 씌워선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읽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고운 마음을 꺼내게 하는 글쓰기야 말로 아이의 힘을 기른다고,
선생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애들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는 끝까지 평교사로 사시면서 살아 있는 글쓰기를 연구하셨다.
나는 선생이 되고 나서야 소신을 유지하는 평교사로 사는 일이 힘들걸 알게 되었다.
그분도 나만큼 애들한테 치이며 사셨고, 나만큼 허덕이셨을 텐데. 어쩌면 그토록 훌륭하셨을까.


할머니

오늘 내가 입고 온 옷은 너무 작았다.
그래도 할머니가 입으래서 입었다.
그때만큼은 할머니가 미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께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저 아이가 어쩌다 할머니와 살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동네에 헌 옷 모으는 통이 있단말이에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거기서 옷을 막 꺼내 온만 말이에요.
그 옷들은 원래 어떤 아저씨들이 갖구 가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막 꺼내 온다니깐요.
그 옷들이 어떤 건 크고 어떤 건 작단 말이에요.
그래도 할머니가 입으라고 하면 입어야 된 단말이에요.
내가 할머니한테 내 옷은 새로 사 주고 할머니 옷이나 주워오지 그러면
할머니들 옷은 사람들이 잘 안 버려서 주워 올 게 없대요.
우리 할머니는 옷을 안 버리는데도 옷 잘 버리는 집 보다 우리가 더 못 살아요.

그 말을 듣고 한 아이가 동조한다. 헐. 니네 할머니도 그러냐? 우리 할머니도 그러는데. 전번에 우리 엄마가 이모랑  전화할 때 우리 노인네라 그랬어.
아이들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근검절약을 하는지 안다.
하지만 할머니의 그런 행동이 며느리인 아이 엄마에게는 '노인네' 같은 모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안다.
아이들은 이럴 때 굳이 누구 편을 들지 않는다. 다만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우리 할머니는 왜 그러냐고 내게 묻는다.
나 역시 같은 말을 해 준다.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어.

몇 년만 지나면, 아이는 할머니의 그 '노인네'스러움 덕분에 자기가 편히 자란 걸 알게 될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엄마와 할머니의 간격을 멀어지게 한 '가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 가난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지 않고 국가가 나서는 날까지 엄마와 할머니가 아이 옆에 건강히 계셨으면.

저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교육이란 결국 시간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아이가 저렇게 글을 쓰면서 엄마와 할머니의 삶을 알아가는 일. 시간의 힘이다.
할머니와 같이 사는 저 아이에게는, 그 힘의 밀도가 더 단단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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