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때 게으름뱅이가 되겠다는 아이의 이유 있는 당당함
오늘, 겨울 방학을 하는 날이다.
방학날이면 으레 하게 마려인 이런저런 잔소리를 늘어놓고나서
니네 방학하면 뭐 하고 싶은지 써 보라 그랬더니 아니나다를까.
이렇게 써 놓고 내가 보려고 하니 극구 못 보게 가리고 킬킬대며 앙탈이다.
방학하면 저는 게으름뱅이가 될 거예요. 왜냐하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쉬고 싶거든요.
아이고, 이 녀석.
얼마나 쉬고 싶으면 게으름뱅이가 되겠다고 할까.
또래들보다 좀 늦는다 싶어 갓 입학해서부터 질질 끌다시피 몰아쳐 가르쳤는데 아이에겐 꽤나 힘들었나보다.
그래서 나 보라고 일부러 쓴 것 같아 미안해진다.
싫은 공부 억지로 하다 떼가 나 연필 내 던지고 집에 가겠다고 울기도 여러 번, 하는 짓마다 개구져서 혼나기도 여러 번.
나 역시 이 녀석과의 한 해는 길게 느껴졌다.
1학년이 다 끝나가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비뚤배뚤한 글씨,
쥐 갉아 먹은 옥수수처럼 빼먹은 어휘들을 보면
공부를 해도 한참 더 해야 할 것 같은데도 녀석은 무슨 배짱인지 공부 많이 했다고 말한다.
아직 친구들에 비해 글씨가 좀 모자란 현실에도 기죽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해 온 노력의 당당함을 안다.
여덟 살, 1학년을 보내면서 이 아이는 글씨를 배우는 일보다 더 힘든 걸 스스로 터득한 것 같다.
그 배포를 보니 어디가도 굶지는 않겠구나 싶어 내 마음도 왠지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