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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Feb 02. 2016

개학을 하다.

개학날, 아이들이 서먹한 이유

개학을 했다.

37일의 방학이 지나 아이들이 학교에 다시 왔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 보니 이미 세 명의 아이들이 와 있다.

요 녀석들, 방학 동안 부쩍 큰 게 한 눈에 보인다.

1년 전 말랑말랑하던 젖살들은 가신 것 같다.

방학 전 같으면 보자마자 서로 들고뛰었을 아이들이 오늘은 뭔가 어정쩡하게 겉돈다.

서로 말도 건네지 않고 데면데면하다. 오랜만에 만나 그런가 보다.


방학처럼 긴 시간 동안 떨어져 있다가 만나면 아이들은 자기를 좋아해주던 그 친구가 여전히 나를 좋아해줄까 확신이 안 선다.

내성적인 아이들이 더하다.

그래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상대가 와 주기를 기다린다.

이럴 때 외향적인 아이가 먼저 말을 해 주면 분위기가 금세 예전으로 돌아갈 텐데.

아이들은 그 아이가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아이들끼리  서먹해하는 것과 달리 담임인 나에겐 제법 붙임성을 보인다.

교사와의 관계는 친구들과의 그것과 뭔가 결이 다르다는 걸 아는 것이다.

내밀함을 서로 나누며 끼리끼리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친구관계와 달리

교사와는 적당히 사교적인 관계만으로도 유지가 된다는 걸 아이들은 안다.


친구에게는 작은 일로도 아주 미묘한 틀어짐이 생기고 그래서 친소관계가 수시로 바뀌지만

교사는 엄마와 비슷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를 미워하지 않으리라는 걸 안다.

지혜로운 아이들은 교사와의 관계보다 친구 관계에 더 신경을 쓴다.


하지만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고 교사에게 집착하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는 친구들을 교사에게 자주 이른다.

친구의 잘못을 교사에게 알려주면 교사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

대신 친구는 싫어할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친구에게 사랑받기보다 교사에게  사랑받기를 택한다.

이런 아이들에게 친구의 잘못을 이르면 왜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는지 설명해 주는 게 담임의 역할인데, 쉽지 않다.

자기는 선생님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믿고 학교에 들어왔는데 선생님은 왜 친구에게 더 잘 보이라고 하는가.

1학년 아이에게 이런 문제는 어렵다.


설명을 해 줘도 계속 이르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는 정말 교사가 좋아서 그런다기 보다는

교사를 통해 친구들과 사귀고 싶어 친구들을 사귀는 과정에서 교사를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자기가 친구의 마음을 혼자 얻지 못하니 선생님이 친구들에게 자기랑 놀라고 시키라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불특정 다수의 아이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같이 어울리는 단짝 친구를 주로 이른다.

그 아이의 잘못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 아이와 더 가까워지고 싶은데 잘 안 되니 도와 달라는 뜻이다.

친구의 마음을 얻으려면 헌신과 사랑으로 대해야 할 텐데, 이 아이는 친구를 통제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지나친 통제를 받으며 성장한 아이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기가 통제와 복종으로 주변과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양보와 배려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가엽게도.





한 아이가 내게 와 보호대에 갇힌 자기 팔을 보여준다. 선생님 이 팔 좀 봐요. 오늘 이 팔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갖구 있어야 돼요.

난 놀라는 표정을 하며 묻는다. 아니, 이거 누가 그런 거야? 혹시 예성이가 그랬어? 걱정 마, 내가 복수해 줄게. 음...(칼을 뽑는 척을 하며) 예성이는 내 칼을 받아랏.

난 예성이한테 달려가 번쩍 안아 들고  이리저리 흔든다.

그러자 그 아이가 손을 내 저으며 말한다. 아유, 참. 예성이가 그런 거 아니라구요. 그게 아니구 그저께 공지천에 갔단 말이에요. 거기서...

아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다른 아이 쪽을 째려보며 말한다. 뭐라? 그럼 진선이가 공지천에서 그랬다고? 음...(역시 칼을 뽑는 척을 하며) 너도 내 칼을 받아랏.

나에게 들린 아이들은 꺅꺅 소리를 지르고 팔을 다친 아이도 목소리를 높인다. 아니, 그게 아니라니깐요. 공지천에서 스케이트 타다가 팍 자빠졌다니깐요.

그 말에 난 또 흥분한 척 말한다. 뭐라? 스케이트가 그랬다고? 스케이트, 너도 내 칼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셋이 외친다. 스케이트는 사람이 아니라 타는 거라구요. 으이구. 선생님은 스케이트도 못 타봤어요?

작은 소동에 아이들은 다시 예전의 왁자지껄함을 되찾는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오기 싫었던 사람 손 들어보라고 하니 절 반이 손을 든다.

그 까닭을 물어보았다.


- 엄마가 학교 가면 친구들이랑 놀아서 좋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나니깐 머리가 아펐단 말이에요. 그래서 엄마가 벌써 잠바를 들고 빨리 밥 먹으라 그랬단 말이에요. 그래서 아이쿠, 또 학교 가야 되구나 그랬죠.


- 우리 개가 강아지를 낳았단 말이에요. 여덟 마리. 그런데 두 마리가 죽었잖아요. 그리고 두 마리는 삼촌네가 갖구 간다 그랬단 말이에요. 아빠한테 그럼 내 강아지는 몇 마리냐고 물어봤단 말이에요. 아빠가 너 강아지 너무 이뻐하지 말라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하필이면 왜 지금 학교 오라 그러냐구요.


- 우리 집에서 오댕을 먹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학교에서 급식으로 먹는 오댕도 맛있단 말이에요. 학교는 맨날 맛있는 걸 먹으니깐 오고 싶었죠.


어떤 아이는 바뀐 리듬에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아이는 집에 두고 온 강아지들을 더 보고 싶어 개학이 싫었다고 한다.

반대로 급식을 먹고 싶어서 학교에 오고 싶었다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공부가 하고 싶어서 학교에 오고 싶었다는 아이는 없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어떤 것을 중히 여기는지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선생님이 보고 싶었다는 아이가 나올까봐 은근히 걱정을 했다.

그 좋은 방학 내내, 어차피 개학이면 만나게 되어 있는 선생님을 그리워하느라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아이는 아이가 아니다.

저 아이들은 방학 동안 철저하게 자기의 본성과 욕망을 즐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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