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기어이 김장을 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그야말로 맨몸으로 부딪친 첫 김장. 시작 전엔 그럴듯하게 해낼 것처럼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눈앞에 배추 스무 포기가 줄지어 서 있는 걸 본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생각보다 많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무 많았다.
그제야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남편이 텃밭에서 누가 우리 배추를 몰래 뽑아갔다고 투덜대던 날. 그때는 도둑님을 원망했는데, 오늘은 왠지 조용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졌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스무 포기 대신 서른 포기와 마주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배추 옆에 놓인 무는 또 어찌나 귀여운지. 잎만 무성하고 몸통은 손가락만 했다. ‘이걸 어디다 쓰나’ 싶은 미니 무들. 그래도 나는 자신만만했다. 기갈나게 담글 거라느니, 올해 김치는 내가 책임진다느니… 이놈의 입초사만 좀 줄였으면 좋았을 텐데.
큰 대야가 없어 동네 다이소에서 대왕 사이즈 빨간 고무 대야를 사 들고 나오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웃겼다.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된 것만 같아서. 절이는 법은 유튜브마다 다르고, 동네 김치 장인들은 모두 다른 비법을 말해 더 헷갈렸지만, 오십 년 엄마와 시어머니를 보조했던 손맛을 믿기로 했다.
겉잎을 떼고 쪼개고 소금물에 담그는 일, 그 와중에 쪽파를 다듬고 무를 채 썰고 생새우를 손질하는 일들… 김장은 참 할 일이 많았다. 배추가 적당히 절여졌다고 믿었건만, 막상 속 넣는 순간 배추는 도리어 더 날아오를 것처럼 춤을 췄다. 양념도 넉넉하다 싶었는데 금방 바닥이 훤히 드러났고, 결국 조금은 희멀건 김치도 탄생했다. 자랑스럽고 민망한 감정이 묘하게 뒤섞였다.
2주 후, 드디어 첫 포기를 꺼내 먹어보았다. 좀 쌩쌩해 보이긴 했지만, 의외로 맛있었다. 속이 덜 들어가 허연 김치가 시원하고 슴슴했다. 아이들도 맛있다며 먹어줬다. 김치란 게 꼭 붉어야만 맛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김장 김치라고 오래 숙성해야만 깊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이번에 처음 배웠다. 어쩌면 ‘내 손으로 담갔다’라는 사실이 이런 해석을 부풀렸는지도 모르지만.
김치를 버무리면서 엄마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친정엄마는 배추 백 포기를 너끈히 해내던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다듬고 절이고 씻고 무치고… 그 긴 시간과 손의 고단함을 나는 이제야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엄마의 김치 맛도, 그 오랜 시간이 만든 단단함도 유난히 그리워졌다.
요조 작가는 “그립다는 말은 내뱉고 보면 언제나 볼품없어 보이기 때문에 그립다는 말을 되도록 참는다”라고 썼다. 나 역시 그렇다. ‘엄마 김치가 그립다’라는 말 대신, 올해는 내가 직접 김장하며 그리움을 오롯이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 마음이 더 선명해졌다.
요즘은 김치를 주문·배달로 쉽게 받아먹는 시대이지만, 김장에는 여전히 ‘시간’과 ‘손’과 ‘정성’이 들어간다. 지난 6년간 엄마의 김치를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던 나에게, 매년 한 통씩 건네준 이웃들의 마음이 올해 따라 더 크게 다가왔다.
올해 김장을 끝내고 나니 스스로 대견했다. 올해, 제 손으로 김장을 해냈다.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또 그다음 해에는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 아직은 물렁한 초보 손맛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내 아이들에게 단단한 맛을 내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제목은 ‘암튼 김장’이다. 맛이 어땠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배추를 키운 남편, 그 배추로 김장을 한 나, 그리고 또 담가보고 싶은 마음. 그 모든 마음이 담겨 있으니, 이것이면 충분하다.
언젠가 아이들이 각자 살아가는 어느 겨울, 이렇게 말할 날이 오길 바란다.
“김치 담가놨다. 와서들 가져가라.”
그때쯤이면 내 김치에도, 엄마로서의 단단함이 조금 더 익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