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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0. 2022

007. 미국에서 한국 재택근무하기

코로나로 인해 얻은 것

20년 봄,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부터 내가 다니는 회사는 바쁘게 상황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계획했던 프로젝트들은 규모를 줄이고 가능한 만큼 한계를 설정하면서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업무도 마찬가지였는데 정부 지침에 따라 재택근무가 권장되면서 회사도 함께 움직였다. 특별하다고 생각되었던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었다. 내 경우는 주 20시간 용역 계약자 조건으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주중 회사를 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아져서 좋았다(대신 그만큼 덜 번다 ㅎㅎㅎ). 더군다가 같은 해부터 결혼, 시댁 방문, 임신, 영주권 등 다양한 건으로 미국과 한국을 오고 가거나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들이 펼쳐졌는데 그럴 때마다 끊김 없이 근무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와서 재택근무를 2달째 이어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내가 있는 곳의 시차는 16시간이다. 미국 시간이 16시간 느리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한국이 수요일 새벽에 취해있을 때, 이곳은 화요일 아침에 깨어난다. 서머타임이 적용되기 이전인 3월 2주 전까지는 17시간이었는데 한 시간이 당겨졌다. 한 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려 처음에는 적응이 잘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괜찮다. 아침과 점심 이후에 이곳에서 일상을 보내다가 이곳 시간으로 오후 6시가 되면 한국시간 오전 10시, 회사의 줌(ZOOM) 체크인 시간이 되어 아주 짧게나마 회사 사람들과의 안부를 확인한다.

재택을 하고 있는 나의 일상을 조금만 더 자세히 이야기해보면 이렇다. 아침에 9시 전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반려견 밥과 물 그리고 화장실을 챙겨주고, 관공서나 병원 혹은 큰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날에는 그중 중요한 일들을 순차적으로 처리하고, 점심을 준비해서 12시 정각 즈음에 점심을 식구들과 가게에서 먹는다. 먹고 나면 설거지를 하고 오후에 잡힌 일정들을 다시 우선순위를 두어 처리하거나 남편, 반려견과 함께 가까운 공원에 가서 걷는다. 그러다 보면 오후 3시~4시 정도가 되는데, 한국 시간보다는 1~2시간 일찍 업무를 스스로 시작한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업무들은 크게 서류 작업이나 내용을 정리해서 보고하고 중간 상황들을 진행하는 것과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운영, 관리하는 일 이렇게 나뉘는 것 같다. 서류나 메일을 작성하는 일은 다른 팀원들 없이도 혼자 하는 일이기에 무리가 없다. 아침 일찍 메일이나 톡을 보내야 하는 경우에는 미리 글을 써두었다가 한국 시간으로 9시가 넘으면 복붙 해서 보낸다.


회사 전체 오전 미팅은 10시에 진행된다. 오후 체크아웃 미팅은 퇴근 시간 10분 전인 오후 5시 50분에 있는데, 그 시간이 현지 미국 시간으로 새벽 1시 50분이기 때문에 상황을 배려받아 체크아웃 시간에는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작년에 미국에 4주 정도 있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 똑같이 체크인 아웃에 참석했다. 괜히 따로 떨어져 있다고 특혜처럼 여겨지는 것이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홀 몸도 아니고, 실제로 잠도 많아졌기 때문에 밤 12시까지(한국 시간으로 오후 4시) 일하고 그 이후에는 잠을 잔다. 이렇게 진행해보니 오히려 이 방법이 일의 능률면에서 훨씬 낫다 싶다. 너무 늦은 시간에 깨어있으면 종종 정신이 흐려져 업무 처리하는 속도나 질이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다음번에도 이렇게 오게 되면 지금의 이 일정을 고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배려받는 또 하나의 상황은 대부분의 팀 미팅을 오전 일찍이나 점심 이후에 진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종종 한국 시간으로 주어진 점심시간(1시간 20분 정도)을 짧게 저녁 먹는데 쓰고 필요한 일들을 처리한다. 미국 식구들도 내가 재택 하는 날이면 일정을 다 이해해 주셔서 따로 식사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 정리하자면, 이곳에서 오후 4시부터는 컴퓨터 앞에서 일 모드를 가동시킨다는 것!


집 한 구석에 마련 된 나의 작은 사무실. 마이크 헤드셋은 필수다


원활한 업무 진행을 위해 따로 로밍 서비스도 해왔다. SKT 바로로밍은 참 좋다. 미주 지역은 데이터 3GB에 와이파이가 터지는 곳에서는 한국에서 처럼 전화를 쓸 수 있다. 비용은 가장 저렴한 서비스가 1달에 3만 3천 원이다. 물론 많은 소통을 카카오톡 대화창이나 줌 회의실을 통해 하고 있지만 직접 전화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바로로밍은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너무 좋은 서비스인 것 같다. 2달까지는 신청이 가능한데, 상담원 말로는 2달이 최대라고 해서 현지에서 더 필요하면 로밍센터로 전화해 기간을 늘리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업무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전화로도 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출국하는 날까지 서비스를 신청해서 사용할 것 같다.

만약 오후 4시 이후에 필요한 이야기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 내용을 톡으로 남겨놓는다. 그러면 그 다음날 시간에 맞춰서 필요한 답을 한다. 어떻게 보면 미국에서 시간이 풀로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오전에는 개인 시간, 재택근무가 있는 오후에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 그리고 12시 이후에는 휴식에 집중하는 시간 이렇게 말이다. 그래서 오전에 공식적인 일이 많았던 날에는 오후 근무가 좀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몸이 멀어진 상황에서도 적게나마 내가 하는 일에 함께 하고 급여도 받고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무엇보다 이런 상황이 가능한 이유는 함께 일하는 분들 덕분이다. 오기 전에 관련하여 업무 조정과 인수인계를 마쳤고 그 결과 지금 내 근무 조건에서 가능한 만큼을 설정하여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6월부터 출산에 들어가 당분간 신생아 엄마의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 같은데 산부인과 선생님이 내가 노산이라 1주 일찍 39주째에 유도분만을 하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하셔서 어쩌면 조금 일찍 출산 준비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이 사라지고 어려워졌지만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분명 얻은 것도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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