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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Apr 20. 2022

008. 자급자족 미국 생활 - 셀프이발성공기

이미용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시어머니는 미국 생활을 한마디로 ‘자급자족’이라고 하셨다. 말인즉슨,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든지 직접 손으로 하게 된다는 뜻 같다. 제일 가까운 한국 상회도 왕복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콩나물이나 갓, 마늘 같은 간단한 농작물도 길러서 드시고, (물론 살 수도 있으나 보다 고유한 맛과 멋을 위하여) 된장과 고추장도 직접 담그시고 김치도 배추만 한국식 나파 Napa를 사다가 직접 담그신다. 떡도 국수도, 최근에는 크림치즈도 간단하게 직접 만드시고는 베이글에 발라주시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미국에 와서 외식보다는 직접 해 먹는 음식의 비중이 늘어난 것 같다. 한국처럼 배달 잘되는 대도시 사는 것도 아니고, 나가서 사 먹는 음식들도 다들 몸무게 늘리기 제격인 것들이 대다수다. 여행을 가도 계속 그런 음식만 먹을 것이 예상돼서 별로 가고 싶지 않을 정도다. 이곳의 집밥이 나는 제일 좋다.


사실 오늘은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발’이다. 이 자급자족 정신에 따라 미국에 와서 2번 남편 머리를 이발기로 깎아줬다. 남편은 여기서 머리를 이발하려면 예약을 해서 차로 20~30분 정도를 달려가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깔끔하기는 한 이발 비용으로 30달러를 지불한다고 한다.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3주 전에 계속 나보고 한 번 깎아 보겠냐고 물어봤는데, 나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했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아서. 나보고 유튜브 봤냐고 몇 번을 물어봐서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여러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어느 귀농한 아주머니가 동네 아저씨들 머리를 깔끔하게 깎아주시는 영상을 2번 정도 봤다. 영상만 보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준비가 된 것 같다고 하자 어머니가 방에서 이발기 세트를 갖고 나오셨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이전부터 형부와 오빠 그리고 오빠 조카 머리를 이발기로 직접 깎아주고 계셨다. 간단하게 어떻게 이발기로 머리를 깎으면 되는지 소개를 해주셨고, 처음 깎은 머리는 어머니가 많이 도와주셔서 완성되었다. 깎고 나서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렇게 하면 30달러가 아까운 기분이 들겠더라.

가족의 이민 역사와 함께 한 이발 셋트


그렇게 첫 번째 이발이 끝나고 3주가 지났다. 남편은 직모에 뻣뻣하고 강한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라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차를 타고 가다 조수석에서 남편을 보니 어느덧 자란 머리들이 귀 옆을 덮고 있었다. 지난번에 앞머리는 많이 자르지 못해서 이마도 답답해 보였다. 그래서 두 번째 이발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어머니 도움 없이 혼자서 해봤다. 바닥에 머리카락을 모을 종이를 깔고, 지난번에 배운 데로 이발기 치수를 맞춰 뒷머리부터 밀었다. 내가 빠른 속도로 밀자 남편이 조금 당황했는지 천천히 하라고 했다. 하지만 뭔가 이발기를 들고 머리를 깎으니 조심스러운 와중에도 우수수 떨어지는 머리카락에 야릇한 쾌감이 느껴졌다. ㅋㅋ 이번에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머리 위쪽이었다. 너무 숱이 많아 보였고 길어져서 일단 길이를 과감하게 쳤다. 그리고 많아 보이는 느낌은 숱가위를 계속 돌려가며 자르고 또 잘랐다. 계속 가위로 앞에서 균형을 보며 여기저기를 잘라 보았는데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 판단이 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얼추 된 것 같은 느낌에 제일 마지막으로 귀 옆과 구레나룻을 이발기로 밀어주고 가위로 조심스럽게 귀 옆을 다듬어 주었다. 옆머리가 생각보다 빨리 자라 당분간 신경 쓰지 않도록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중에 남편이 아! 하며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오른쪽 귀 위 옆 살을 살짝 가위가 집었다. 아무 말 없이 눈에 살짝 고인 눈물 사이로 나를 바라보는 눈에, 뱉어내지 못한 고요한 욕이 서려있었다. 너무 미안했다. 반대편은 실수하지 않으리라. 더 조심했다. 그러나 곧 다시 아! 하는 짧은 비명소리. 야주 살짝이지만 나는 2번의 피를 두 번째 이발에서 보고야 말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짧게 자른 뒤통수를 보니 너무 빠른 속도로 머리를 잡아당기며 해서 그런지 두피가 부분 부분 빨갛게 변해있었다. 자극이 되었나 보다. 초보 이발사가 그러면 그렇지… 더 이상 어디를 건드려야 할지 몰라 다 한 것 같은데 괜찮은지 자신이 나지 않았다.


얼추 비슷한 폼새가 나오지 않았는가? ㅋ


남편은 항상 이야기한다. 완벽하려 하지 말고 모든 일을 대충 시작하고 대충 하라고. 시작하고 해 보는 것이 중요하지 결과에는 신경을 쓰지 말라고 말하며 날 격려한다. 다음번에 또 잘라달란 말로 들린다. 한국에 가면 8천 원을 주고 블루클럽에 가서 머리를 깎는다. 이제부터는 스마트폰 보지 말고 베테랑 이발사님께서 하시는 이발기 놀림을 유심히 관찰해봐야겠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생각인데, 공짜로 이미용 기술 알려주는 데 있으면 찾아가 배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해외봉사 이제는 기술 배워 이발 단원으로 가는 건가? 재밌을 것 같다. 오래간만에 배워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발기로 남자 머리 깎기 

(참고로 했던 동영상을 소개한다. 댓글에 이거 보고 성공했다는 분들 이야기가 많아서 선택했다! ㅎㅎㅎ)

https://youtu.be/juumJt_Lu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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