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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zi May 05. 2022

021. 시골 소도시에서의 흔한 주말 오후

한적한 공간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

서울의 주말을 떠올려본다. 늦잠을 자며 집콕을 하거나 날씨가 마음에 들면 밖에 나와 거리를 걷는다. 집 바로 앞에 나 있는 산책로나 수변을 걸어도 좋고, 전철을 타고 어딘가를 찾아가도 좋다. 나와서 배가 고프면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식당을 찾고 밥을 먹는다. 분위기가 예쁘거나 호기심이 이는 카페를 보면 들어가 잠시 쉬기도 한다. 어딜 가나 개성 것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은 주말의 큰 즐거움이다. 몇 천만이 살고 있는 대도시의 주말은 참 다채롭다.


반면 미국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인구 몇 천 정도 되는 시골마을이다. 땅은 넓고 사람들은 적어 어딜 둘러보나 한적하다. 지평선이 사방에 펼쳐져 있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넓고 광활하다. 이 도시에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곳들은 농장과 공장이다. 농장에서는 양이나 소를 키우고 유채꽃이나 소의 먹이가 되는 헤이(Hay) 같은 작물들을 키우고 있다. 공장에서는 인근 나무들을 사용하기 좋게 가공하는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 트럭이 오고 가 나무들을 나른다. 가정집들은 대부분 형편에 맞는 마당을 가진 주택들이다.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키우기도 하고, 아이들이 있는 집에는 간단한 놀이기구가 설치되어 있기도 하다. 마을에는 슈퍼가 2개, 카페가 3개, 피자집 1개, 브루어리 및 주점이 2개, 타코 트럭이 1개 정도 있다. 우리나라의 다이소 같은 1달러 매장도 1개 있다. 더불어 시청,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 등도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한 동네를 이룬다. 너른 공간이 넉넉한 마음을 만들어 서로의 삶을 여유롭게 만들어 준다.

아무도 없는 길을 유유히 걷는다

한적한 시골 도시의 일요일 오후. 남편은 낮잠을, 다른 식구들은 교회를 가고 없었다. 홀로 산책에 나섰다. 4월이 되었지만 계속 비가 오고 추운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이 날은 열린 하늘 틈으로 햇살이 나와 봄기운이 만연했다. 집에만 있기에는 아까운 날씨. 누렁이를 데리고 나갈까 하다가 말았다. 이날만큼은 자유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싶었다. 길 위에는 거의 혼자다. 종종 개를 산책시키거나 조깅으로 자신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보기도 하지만 그것 마저도 드물다. 처음에는 겁이 나기도 했다. 머무른 시간이 몇 달 되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여전히 나가서 혹시 생길 돌발 상황들에 겁이 나지만 구석구석이 익숙해진 터라 두려움은 좀 줄어들었다.

걷다보면 동네에 양 떼를 키우는 농가도 만난다

홀로 걸었던 시간들이 참 많았다. 서울에서도 낯선 여행지에서도, 길고 짧은 길을 걸으며 나 자신과 부단히 만나왔다. 걸으며 나는 무슨 생각들을 했었지? 창피하고 부끄럽고,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노심초사했던 과거부터 이대로 가다간 잘못될까 싶어 마음 끓이던 미래까지, 현재를 그대로 놓아둔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방구석에서 머리, 가슴이 터지려고 했던 것들을 걸으며 날려버리려 했던 것 같다.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쩌다 지금, 몇 년 전에는 들어 보지도 못했던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만삭이 된 몸으로 이러고 있는 걸까? 초조하고 불안한 현실을 간신히 부여잡고 사는 건 매 한 가지인 것 같은데, 상황은 참 많이도 변했다. 하는 일도 바뀌고, 결혼도 했고, 새로운 가족도 생겼고, 타국에서의 삶이 생기고, 곧 날 엄마라고 부를 아이도 태어날 예정이다. 크게 보면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는데, 왜 그제와 어제, 그리고 오늘은 서로 참 많이 닮아 있는지. 삶에는 변화와 여전함이 이렇게 함께 한다.  


걸으며 한산한 길을 본다. 철 따라 핀 꽃들을 보고, 새 순, 새 잎 돋는 나무들을 본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시냇물도 본다. 어딜 가나 들리는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다. 그리고 오래 만에 제 색을 드러낸 하늘을 본다. 청향 한 바람에 살짝 돋아나려던 땀이 쉬이 마른다. 높은 건물과 자동차,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과는 달리, 이곳에는 자연이 있다. 참 다른 공간이 내 삶의 한 부분에 새롭게 펼쳐졌다. 도시에서는 그토록 자연이 보고프더니, 이제는 아련해진 대도시의 역동적이고 세련된 모습에 향수가 돋는다. 지금 여기를 누리면서도, 한 켠으론 저기를 그리워하는 삶. 서로 다른 공간의 모습은 내 삶을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한 시간 남짓 산책이 끝났다. 집에 도착하니 혼자 나갔다고 시무룩해 있던 누렁이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나를 맞는다. 어느새 깨어난 남편은 남은 하루를 그대로 보낼 수가 없다며 막 운동을 하러 나갔다.  그가 떠난 집에 나는 다시 홀로 남아 마른 목을 축이며 누렁이를 쓰다듬는다. 단조롭고 평화롭다. 곧 블라인드 사이로 붉은 햇살이 녹아 들어와 부엌 바닥을 흠뻑 적신다. 주말 오후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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