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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ng khong May 27. 2022

태국 이야기

요가 선생 미카

어쩜 이리 말랐누.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의 이름은 미카.

프랑스인 어머니와 스페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 잘생긴 총각은 늘 하얀색옷만 입고 다녔다.

굵직굵직한 눈과 코와 야무진 작은 입매.

말랐지만 딴딴히 잘 잡힌 아름다운 근육질의 몸.


딱 내가 원하는  몸이었다.

렬하게 저 몸이 되어 보고 싶.

저런 몸을 가지면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찌겠지.

나는 늘 욕망에 이글이글 대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우리는 태국 치앙마이의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다.

그는 런던에서 패션 관련일을 했는데 화려하지만 텅 비어버린 세계에 진절머리가 나서 요가 선생이 되었다고 했다.


역시 그랬구나. 그래서 사랑이니 세계평화니 욕망의 자유니 하는 말을 늘 달고 살았나.


"인도에 다녀왔다고?"

2년반이나 인도를 헤매고 다녔다는 내 얘기를 듣자 미카는 반색하고 되물었다. 곧 그의 남인도 요가 수련이야기가 줄줄  흘러나왔다.


"요가는 정말인지... 하아...."

촉촉하게 젖은 커다란 눈을 들 그가 감격에 목이 매어 말을 잊지 못했다.

"미키.(그는 내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 편한대로 미키라고 불렀다)  요가배운적 있어? 인도에 오래 살았잖아. 나는 요가란 어쩌구 저쩌구 라고 생각해.  요가는 어쩔시구 저쩔시구~"

(현란한 프랑스식 영어발음이라 잘 이해못함.^^;)


사실 나도 어줍잖게 요가를 배워본적이 있었다.

털이 부숭부숭난 인도 요가 선생님부터 인도로 요가 수련을 온 사람들한테서. 그러나 요가만 하면 어찌된 일인지 없던 두통과 현기증이 몰려오고 여기저기 몸이 쑤시고 막 방귀도 뽕뽕 뀌고 싶고 해서 몇번 하다 그만 둔 터였다.


"나...나도 요가 좀 배웠어."

잘생긴 미카의 호감이 얻고 싶어 나는 뻥을 쳤다.

"어디서? 바라나시? 리시케쉬?"

"어.... 뭐 오다가다 조금씩"

그러자 그가 대뜸,

" 그럼 우리 매일 같이 요가할까? 저기 부아학 공원에서?"

같이 하고 싶었다,격렬하게.

하지만 난 5분만 지나도 대자로 누워 버리는 아주 망할놈의 저질체력에 무쇠다리 무쇠팔을 가진 삐걱삐걱 고장난 로봇 몸뚱이였다. 같이 하면 그는 분명 내게 실망할거야. 지금도 요가요가 노래를 부르며 찬양하는 판에 내 요가 실력을 본다면......


"사실 옛날에 배워서 다 까먹었어. 그리고 난 요가랑 잘 안맞아. 사실 요가를 왜 그렇게들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솔직하게 털어놓은 내말이 그의 승부욕에 불을 질렀다.

그는 요가가 얼마나 아름답고 숭고한 운동인지 내게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바로 요가 강습이 시작되었다.

"미키. 날 잘 봐봐. 내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줄게."

바보야! 나는 요가보단 니 얼굴이 하루종일 보고 싶단 말이, 이 얼굴 천재야!

내 마음도 몰라주는 미카가 물구나무 자세를 하던 순간, 그의 길고 긴 다리에 그만 게스트하우스 시계가 걸려버렸고 그리고 툭. 떨어졌다.


시계는 와장창 깨졌고 멈췄으며 그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매니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미카와 나는 잠깐 일시정지된 상태 있다가 시계를 소생시켜보려고 분주히 건전지를 넣었다 빼보는둥 난리를 쳤지 소용 없었다.


그길로 우리는 매니져의 오토바이를 빌려타고 와로롯 시장에 갔다. 최대한 똑같고 싼 시계를 고르느라 시장을 몇바퀴나 돌았다. 내게 요가를 가르쳐주려다 박살이 난 만큼 나도 일정부분 책임이 있으므로 조금 보태겠다고 했지만 그는 칼같이 거절했다. 예의 그 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우아하게 목을 세우며 한껏 눈부신 미소를 지며 말했다.


"너에 아무런 잘못이 없는걸. 이 내 책임이야."


아....... 란 남자 어쩌면 좋니.......


나는 그에게 그럼 같이 선데이 마켓에 가서 밥이라도 한끼 먹자고 했다. 일요일마다 치앙마이는 거대한 수공품 야시장으로 변하는데 그곳은 또한 거대한 먹거리 천국이기도 했다.


우리는 매니져의 매같은 눈으로 검사를 받은 시계를 벽에 걸었다. 그리고 선데이 마켓에 가서 그가 사랑하는 인도음식과 내가 사랑하는 새우 팟타이를 식탁에 올려 두고 먹기 시작했다. 감미로운 태국 북부식 전통 음악이 달콤하게 들려왔다. 들뜨고 흥분된 사람들이 물결처럼 떠밀리듯 지나갔다. 음식은 맛있었고 같이 마시는 땡모반(수박쥬스) 와 태국식 밀크티는 시원했다. 그리고 그가 그 섹시하고도 작은 입술을 열며 말했다.


"미키. 요가는 말야."


아......

우리는 그 벽을 넘을 수 없구나.

그 요가라는 벽을 말이야.


미카는 지금도 전세계를 돌며 요가 선생으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잘생긴 그의 폐북에 나오는 요가 수강생들은 어찌된 일인지 대부분이 여자이고 또 대부분이 카메라가 아닌 미카를 바라보고 있다.


요즘도 하얀색 옷을 입을때면 문득 미카가 해줬던 말이 생각난다.

"미키! 너 하얀색 옷을 입으니 천사같아!"

천사라니. 그런말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나는 천사라는 그의 말에 과장되게 팔을 위아래로 흔들며 날아다니는 흉내를 냈었다. 그의 마음속으로 날아가고 싶었는데.....


우리에겐 요가라는 벽이 있었지.


미카.

나는 아주 가끔 요가를 해.

니가 말한 사랑과 평화는 못 느끼지만

그래도 그때보단 많이 유연해졌어.

언젠가 내가 다시 인도를 여행하고

만약 리시케쉬나 바라나시에 간다면

쇼핑이나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때우는 대신

요가를 배워볼게.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천사라는 말도 진짜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

진심 기뻤다, 누나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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