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까지 걷나요.
6/4/토
치앙샌에 가기로 했다.
숙소를 나서면 큰 길가에 항상 버스가 다니는데
메싸이 아니면 치앙샌이었다.
아침 일찍 10시에 나섰지만
평소엔 그렇게 잘 다니던 버스가 눈에 안 띈다.
기다리다 지치니까 남친이 혹시 이곳이 아닌 시내에서 타야 할지도 모른다며
시내로 가잖다.
가는 길에 망고 셰이크 한잔 마시고
버스 정류장 앞 고산족 기념품 가게에서 봤던 물건 또 보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도 역시 버스는 안 온다.
그때.
배에서 들려오는 부르심!
마켓은 어딜 가도 항상 화장실이 있기에
마켓에 가자고 꼬드겼다.
버스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하는 남자 친구에게
어차피 나 없으면 못 가잖아
하고는 억지로 끌고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5밧이라고 쓰여있길래
돈을 내려니까 아저씨가 태국말로 뭐라 뭐라 계속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얼른 돈 내고 내 님을 만나고 싶은데...
남자 친구는 버스가 이미 지나갔네 어쩌네 짜증내고 있고
속이 타들어 갔다.
싸바이 싸바이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어찌어찌 아저씨의 하나도 이해 안 되는 태국어를 듣고 나서
볼일을 무사히 마치고 5밧을 드렸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5밧을 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하셨나.
계속해서 버스를 기다리니 버스가 한대 오긴 온다.
메싸이 행.
내가 이거라도 타고 메싸이를 갈까?
했더니 남자 친구는 무조건 치앙샌 가야 한다며
일 헌 지하에 거절했다.
30분이 흘렀다.
남자 친구의 마음이 서서히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번에 오는 버스 메싸이든 어디든 무조건 타자고.
진작 그랬으면 이렇게 안기다려도 되는데
투덜대는 마음에 막 입이 뾰족뾰족 해질 때쯤
저 멀리서 파란색 버스가 털털 거리며 다가온다.
치앙샌!
열 댓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 차창이 경쾌하게 말한다.
문 바로 앞에 좌석에 앉아 작은 마을들을 지나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한 시간여 달리자
치앙샌이다!
(차비 28밧)
치앙샌은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에 온 이유는 나는 왓 파삭이 보고 싶어서
남자 친구는 골든 트라이 앵글이 가고 싶어서였다.
어차피 강물 흐르고 그러는 거 골든 트라이 앵글이나
여기나 마찬가지 아니냐고
내가 가기 싫다고 생떼를 부리자
그럼 넌 여기 남아 있거라.
하며 쿨하게 골든 트라이 앵글 가는 썽태우를 찾아 나선다.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매 20분마다 20밧을 내면 골든 트라이앵글로 실어다 준다.
40분을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차분한 관광지였다.
커다란 부다상과 힌두교 신들이 있고
갈색 메콩강이 흐르고
삼각주를 둘러싸고 왼쪽은 미얀마 오른쪽은 라오스
그리고 내가 서있는 곳은 태국.
예전에 아편 재배로 악명 높았던 곳으로
지금도 태국을 제외한 미얀마와 라오스는
고산족이 여전히 양귀비 밭에서 아편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내 눈에는 그냥 흙탕물이 흐르고
그 위로 보트를 타고 관광객들이 지나가고
건너편에는 중국어로 뭐라 쓰여있는 게 전부였다.
허나 두눈을 반짝이며 이곳저곳 신나게 뛰어다니는
남자 친구의 체면을 살려줄 겸
정말 좋다고 안 오면 후회할 뻔했다고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고 흥미 있는 척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근처에는 아편 박물관이 있었는데
월~금 까지만 운영이 되기 때문에 보진 못했다.
슬슬 배도 고프고
너무 더워서 짜증도 나고
두리번거리다가 식당을 하나 찾아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하시는 식당인데
가격도 40~50밧 정도로 무난한 편이었다.
우선은 예의시키는 대로
새우가 들어간 팟타이 꿍과 생 수박을 갈아 넣은 땡모 반.
남자 친구는 늘 오믈렛과 레몬쉐이크.
오랜 기다림 끝에 나온 건 화학 색소가 아주 잔뜩 첨가된 수박 즙과
돼지고기가 들어간 팟타이.
아... 싸바이 싸바이.
늘 이런 식이였다.
일부러 새우가 태국어로 꿍이라서
내가 꿍꿍꿍 하고 할아버지도 꿍꿍꿍 해서
꿍꿍꿍 팟타이 꿍이 나오길 그토록 기대했건만!!!!!!!
그래도 일단은 배고파서 먹었다.
남자 친구는 일본인이라서 매운걸 잘 못 먹는다.
매운 걸 먹으면 항상 배탈이 난다.
한국에 왔을 때도 떡볶이도 잘 못 먹길래
내가 떡볶이도 못 먹는다고 막 놀렸더니
억지로 씩씩하게 먹다가
그날 밤새도록 설사할 정도였다.
그런데 태국 고추가 그렇게 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발 고추는 넣지 말아주세요!
남자 친구가 고추를 넣지 말아주세요를 태국어로 외워서 계속 말했건만
알았다고 흐뭇하게 끄덕이는 할아버지가 가시고 난 뒤 나온 음식들엔
새빨간 고추, 파란 고추가 색색이 마구 섞여 있었다.....
겨우겨우 빼고 먹었건만 계속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오늘 밤에는 매운 똥을 쌀 것 같다고 키득대며
다시 썽태우를 타고 치앙샌으로 와서
머물 숙소를 찾아 나섰다.
나는 당일 치기로 계획하고 왔지만
남자 친구가 미얀마에 다녀올 동안 있을 곳 중 한 곳으로 치앙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미리 숙소를 찾아 놓기로 한 것이다.
치앙샌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가 미인 대회 출신인가
방 곳곳에 젊은 시절 한가락했던 사진들이 마치 전시회를 방불케 하듯 걸려 있었다.
아주머니가 안내해 준 곳은 어제 막 페인트를 칠해서 마르고 있는 듯한
쾌쾌한 구석진 방.
이 방이 250밧.
다른 집은 400밧.
99밧 하는곳은 문이 닫혔다.
나는 이쯤에서 포기하고 왓파삭이나 가자고 투덜 대고
남자 친구는 또 예의 그럼 넌 기다려라, 내가 알아볼 테니 하고 끝끝내 포기를 안 하고
40도 넘어 이글이글 타 죽을 것만 같은 양지바른 곳을 30분 걸었나?
눈앞에 별안간 키티 랜드가 나타났다!
키티를 테마로 한 수영장이었다.
옆에 호텔은 아직 짓고 있는듯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래도 수영장은 제법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는데
모두들 키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신나게 미끄럼틀을 타거나 수영을 했다.
세면대며 수영장이며 온통 핑크 핑크 하고 키티 키티 해서 (?)
나는 놀고 가고 싶은 마음에 가격을 물어보니 60밧.
남자 친구는 이런곳에 결코 돈을 쓰지 않는다.
자기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일 밧 하나 쓰지 않는다.
냉정히 돌아서고 계속 걷는다.
숙소가 나타날 때까지!!!!!!!!!!!!!!!
나는 여기서 포기.
세븐일레븐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는
한 30분 지났을까 저 멀리서 녹차 버블티를 들고 남자 친구가 온다.
숙소 없단다. 그래서 그냥 걸었단다.
버블티는 놀랍게도 태국에선 겨우 30밧.
천원이 될까 말까 한데 설탕을 막 때려 집어넣어서 엄청 달다.
버블티 한잔에 풀어진 나의 마음.
참으로 단순하다.
드디어 치앙샌의 하이라이트 왓 파삭을 보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걸은 뒤라 기운이 쏙 빠져 버렸다.
그래도 겨우겨우 다리를 끌며 가다가
복권집을 발견했다.
아!
2장에 80밧이었는데
추첨일은 6월 16일.
바로 전날 엄청난 꿈을 꿔서 꼭 복권을 사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로또를 사고
태국에서도 가끔 복권을 사지만 태국 복권은 밥 두 끼 가격이니 좀 비싼 편이다.
남자 친구는 한국에 왔을 때 내게 로또를 가끔 사줬지만
매번 5천 원 한 장 당첨 안되었던 터라
태국까지 와서 복권 타령하는 나를 못마땅한 듯 쳐다봤다.
더구나 당장 현금이 없어서
돈까지 빌리자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며
복권을 여기서 사면 당첨되면 여기로 다시 와야 하는 거냐.
복권이 당첨되었는지 어떻게 아냐고 폭풍 질문을 해댔다.
나는 어젯밤에 내가 꾼 꿈이 보통 꿈이 아니었다
이건 정부 복권이기 때문에 어디서 사도 똑같다
복권 사이트가 있어서 조회해 보면 안다
하고 차분히 말해줬다.
그랬더니 슬쩍 관심을 보이며
무슨 꿈을 꾸었냐고 꼬치꼬치 캐묻길래
한국에서는 좋은 꿈을 꿨는데 그걸 말하면 복이 날아간다고 하며 딱. 잘라 말했다.
걷다 보니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곳이 나타났다.
이곳이 왓 파삭인가.
그런데 입장료가 50밧이다.
겉에서도 다 보이는데 그냥 오래된 돌 무더기가 쌓인 사원 같았다.
들어가지 않았다.
숲만 열심히 헤집다가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메짠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매운 똥을 힘겹게 싸고 (?)
텔레비전을 틀자 남자 친구가 슬쩍 등 뒤로 다가와
복권이 당첨되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지 묻는 거다.
요런 앙큼 쟁이!
흐흐.
내가 복권 뒤에 있는 금액을 말해주었다.
1등이 3,000,000밧.
한국돈으로 99.000.000원쯤 되니까 1억?
우선은 집 한 채를 구입해서 게스트 하우스를 차리고
남은 돈으로 평생 놀고 먹기로 했다.
남자 친구도 대 찬성!
이런 건 정말 잘 통한다니까.
내 보기엔 그저 흙탕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