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태국 도망기 18

길고도 짧은 날.

by Chiang khong

6.23. 목


아침.


9시쯤 하루 100밧 (보험료 50밧 따로 청구) 오토바이를 타고 향한 곳은
치앙마이 게이트 근처 일본 빵집 반 베이커리였다.


20~30밧이면 근사한 블루베리나

체리 페스츄리를 먹을 수 있어
작년에 줄기차게 드나들었던 곳이다.
이번해에도 오자마자 여러 번 가봤으나 갈 때마다 닫혀 있어
아마도 5월 일본 골든위크 때문인가 했더니...

오늘 가니 완전히 닫혀 있었다.

텅 비어있었다.


고소한 빵과 달콤한 초콜릿 그리고 신선한 야채와 햄으로 만들어진 샌드위치
친절한 일본 여주인도 없다.

하는 수 없이 그 근처 중고 샵에 가서 원피스나 하나 사기로 했다.


중고 샵도 주인은 바뀌고 가격은 올랐다.
작년에 비해 뭔가가 자꾸만 비싸지는 것 같다.


이도 저도 안돼서 센트럴 페스티벌 지하에 있는 빵집에 가기로 했다.
이른 시각인지 지하매장만 제외하고는 모두 닫혀있었다.

쇼핑몰 앞에는 고객을 위한 오토바이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그저 앞사람만 줄기차게 따라가다가 아득히 멀리 있는 직원용 주차장에 주차하고는
한참을 걸어왔다.

슈퍼마켓을 빼고는 푸드코트도 하루 장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일단은 슈퍼를 돌아봤는데 과연 치앙마이의 10%가 외국인 이라더니
매장 가득히 일본, 한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등 외국 식재료들이 가득했다.
돈만 많다면 열대과일에 마사지에 고국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이래서 돈 많은 할아버지들 (고국으로부터 따박따박 연금을 수령받는)이 치앙마이에 많나 보다.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슈퍼 구경을 하다가
빵집에서 16밧짜리 고구마 빵을 두 개 사서 허겁지겁 먹고는
음식을 하나 주문했다.


바질 돼지고기 덮밥.
고추는 빼 달라는 말을 다행히 찰떡같이 알아들어 맵지는 않았다.
늘 긴장하곤 한다.
태국 고추는 잘 못 먹으면 밤새 매운 똥을 싸니까.


배도 채웠겠다 슬슬 매장들도 문을 열어 나라야를 거쳐 구경만 하며 올라가니
4층쯤에 푸드 코트가 하나 더 있었다.
남자 친구는 미얀마에 다녀온 뒤로 계속 복통에 시달리는 지라
배를 부여잡고 화장실부터 찾아갔다.

디저트 거리가 있나 살펴보니 모두 값이 꽤 나가서 그냥 15밧짜리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그동안 못 먹은 한을 풀듯 남자 친구가 돌아온 뒤로는 아주 잘 먹고 잘 자서 1kg가 도로 쪘지만
저녁 1시간 걷기 운동을 하므로 괜찮다.
ㅎㅎ.


남자 친구는 푸드코트를 몇 바퀴 돌더니 먹을 만한 게 없다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아 앓는 소리를 해댔다.
서둘러 아이스크림을 퍼먹고 남자 친구의 요청에 따라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다.
마침 프로모션이라 치킨 버거를 38밧에 먹을 수 있었다.


한입거리였다.
역시나 였다.
그래도 둘이서 나눠 먹고 에어컨 바람을 허파에 넣은 채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정말인지 한참을 걸어 오토바이를 타고 간 곳은
근처 중고샵.

무게에 따라 헌 옷을 파는 곳이었는데
면으로 된 아삭아삭한 꽃가라 원피스가 딱. 눈에 들어왔다.


남자 친구는 내가 옷을 사는걸 싫어라 한다.
남자 친구는 미니멀 리스트다.
최소한 정말 필요한 것 외에는 소유를 거부한다.


나는 맥시멀 리스트.
다람쥐 도토리 모으듯 부지런히 모으고 내 둘레에 차곡차곡 쌓아놓고는
아주 흐뭇하고 행복해한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우리 둘은 천생연분!


원피스를 사고 향한 곳은 와로롯 시장!

남자 친구가 드림캐쳐를 만들고 싶다고 해서
와로롯 할인매장인 플라스틱 치앙마이에 가기로 한 것이다.


정말 제일 싸다.
치앙마이에서 단연코 싸다.
온갖 잡동사니들을 다 파는데 상호명대로 플라스틱이 제일 많다.

싸구려라 쉽게 망가지긴 하지만.

그곳에서 조그마한 무지개 플라스틱 링 12개를 12밧에 사고는
몽족 마켓으로 향했다.


남자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부엉이 인형 열쇠고리를 하나엔 15밧 10개엔 10밧에 팔고 있었다.
웬일인지 이런 건 때려 죽어도 안 사는 남자 친구가 눈이 뒤집혀 6개나 사고
나는 딱 4개만 샀다.

도대체 이런 걸 누가 만들길래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인형이

하나에 겨우 330원 밖에 안 하는 걸까.
그 옛날 나와 엄마가 집안 가득 쌓아놓고는

먼지를 마시며 만들었던 인형, 크리스마스 카드, 양말 포장처럼
누군가는 고단한 몸으로 부업 삼아 만들겠지.
아마도 산에 산다는 태국 국적도 없어서 제대로 취업도 못하고 도시로 나오지도 못하는
타이 아이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신나는 마음이 되어 근처 화장품 가게에서 9밧짜리 비누도 산 뒤
쇼핑을 끝마치고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 남자 친구가 예의상 묻는다.
-어디 더 가고 싶은 곳 없어?

그래서 우리는 남자 친구가 지겹게 보고 나는 더 많이 보고 싶어 하는 템플
왓 쨋린에 가기로 했다.


그곳은 올드시티 안의 유명한 템플 왓 째디 루앙 근처에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비둘기와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생선들의 서식처였다.

가기 전 20밧에 사료를 포대기로 사 갔는데
손에 먹이가 있으면 비둘기가 3마리나 달라붙어먹고
호수에 뿌려대면 족히 1m 는 됨직한 거대 생선 수억 마리가 아귀다툼을 하며 먹어대는 곳이다.
(생선들 등쌀에 밀리는 거북이도 댓 마리 된다)


템플에서는 따로 10밧짜리 먹이를 봉투에 담아 팔지만 택도 없다.
우리는 늘 20밧짜리 먹이를 사 간다.

이렇듯 실컷 유희를 즐기고 난 뒤 온갖 비둘기들의 먼지를 뒤집어쓴 채 돌아오자마자
오랜 시간 샤워를 하고 옷들을 빨았다.


요사이 비가 안 와서 보일러를 안틀어도 물은 펄펄 끓었다.

한숨 자고 나니 아직도 4시다.
빈둥빈둥 대다 내일 먹을 샐러드나 사자 싶어 오토바이를 타고
(오토바이 렌트 후 절대 걷지 않는다 )
근처 탄닌 마켓에 갔다.


무게를 재서 파는 샐러드 바에서 무거운 과일은 안 사고
가벼운 야채 위주로 담았더니 봉지 가득 22밧.


좋다. 정말 좋다.
과일이든 야채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태국이 정말 좋다.


신이 나서 돌아와 카오만 삥 (찹쌀에 고구마를 넣고 바나나 잎에 싸서 구운 태국 간식)과
라자밧 대학 앞에서 파는 감자튀김을 정신없이 먹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자 친구는 운동한다고 허수아비 같은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데
나는 가만히 있기 멋쩍어 오랜만에 청소를 하기로 했다.


남자 친구의 머리카락이 전지현 씨만큼 길고 사다코만큼 부스스 한데
오늘 갑자기 빗질을 해대서 방안 가득 머리카락들이 무섭게 꼬물대고 있었다.

한참을 치워 허리를 펴니
그제야 슬그머니 이어폰을 빼고는 남자 친구가 말한다.


-도와 줄까?


먼지 나게 한바탕 두들겨주고는 운동을 나가기로 한다.


집에서 걸어 5분 거리에는 스테디움이 있는데

커다란 운동장에 러닝 트랙도 있고
자그마한 헬스장, 농구장, 스케이트 보드장, 요가, 태권도나 무에타이를 배울 수 있는 곳이나
사격장, 배드민턴장, 풋살장과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탁구장 등

운동에 관한 모든 것과 모든 곳이 있다.
저녁나절에는 무료로 에어로빅도 가르쳐주고 아이들 놀이터며 주차공간도 넉넉하고
간간히 간식거리나 음료수를 마실 수 도 있다.


단.
5밧짜리 하얀 플라스틱 통에 든 물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저번에 한참을 걷고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있었는데
슈퍼 아주머니가 노란색 쓰레기통을 뒤져 통들을 수거하는 걸 보았다.

그 뒤로는 다시는 마시지 않는다.


오늘따라 사람이 버글버글 하다.
사람 많은걸 싫어라 하는 남자 친구를 꼬드겨
그럼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걷는 게 어떻겠냐고 해서 로터스에 데려갔다.


많다. 많다. 죄다 물건 천지다!
세븐일레븐에서 하나에 7밧 하는 물도 12개들이 49밧이다.
반값이다.


작은 봉지 팟타이도 마감 세일이라 7밧.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과일주스도 세븐일레븐보다 15밧이나 싸다.
그 외에 내가 좋아하는 생선 포며 껌이며 조금 담은 뒤 계산대로 가니
세상에나!

공휴일 놀이공원만큼이나 길게 줄 서 있는 것이다.

남자 친구를 세워두고 혹시나 놓친 파격 할인가가 없나 체크한 뒤 돌아오니
제자리다.


남자 친구가 선 줄 앞에 하얀 옷을 곱게 차려입으신 할머니 한분이 물건을 어마어마하게 산데다
계산원 마저 오늘 처음 일을 하는지 실수를 한 듯

다시 계산하고 설명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도 옆 계산대 줄에 섰는데 내 줄은 빨리빨리 줄어들었다.


우리 차례.
몇 개 안 되는 물건의 바코드를 찍다가 뭐가 잘 못되었나
생선포가 안 찍혔다.


뭐 안 먹고 말지.
괜찮아.
어서 집으로 돌아가자.


그래 집에 돌아오니 여전히 밤 9시 30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돌아다녔더니 하루가 길다.
초저녁 잠까지 잤으니 밤새 잠도 안 올 터다.


남자 친구가 7밧짜리 팟타이에 인스턴트 된장찌개를 먹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당연히 좋아 좋아!

며칠 전 산 249밧짜리 전기 포트에 물을 붓고는 된장찌개를 냉큼 만들어냈다.

7밧짜리 팟타이는 훌륭했고 된장찌개는 좀 짰지만 먹을만했다.


남자 친구는 낮에 샀던 10밧짜리 생강차에 꿀을 타서 맵다고 난리를 치며 마셨다.

저렇게 끊임없이 먹어대는데 왜 살이 안 찌는 걸까.
정말 부럽다.
본인은 불만이 많지만.


요사이 너무 많이 먹어대서 체중 재기가 두렵다.
이번 달 목표가 4kg 감량이었는데 아무리 운동을 해도 아까처럼 튀김 도넛 하나 먹으면 땡이거늘.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
다행히 야채를 아침저녁으로 먹고 물도 한 푸대 사 왔으니
기름진 것만 안 먹으면 될 듯 싶다.


오늘도 길지만 썩 괜찮은 하루였다.

하루의 마무리는 남자 친구가 해주는 코코넛 풋 마사지.
(하지만 나도 똑같이 해줘야 한다. 남자 친구가 좋아라 하는 풋 마사지와 헤드 마사지를....)



냠냠
-야채,도조과자,쥬스
-고구마 빵, 돼지고기 볶음 덮밥, 햄버거 조금, 초코 아이스크림 소 하나
-주스, 레몬 허니 티
-카오만 삥 반, 돼지고기 산적 한입, 기름 빵 하나, 옥수수 하나, 팟타이 조금
된장찌개, 감자튀김, 야채



-빵 2개 32, 물 7, 덮밥 40, 아이스크림 15
-원피스 61, 레몬 허니 티 25, 인형 40, 비누 9
-샐러드 22, 카오만 삥 10, 피쉬볼 5, 빵 10, 물 45, 세탁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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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계약해본 맨션. 에어컨은 아주 가끔씩 켜요.

전기세가 1유닛당 10밧인데 에어컨 켜면 마구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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