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다섯, 태국 도망기 5

걷고 있습니다

by Chiang khong

68.9kg!


세븐 일레븐 1밧 체중계는 아슬아슬하게 깜박였다.

아! 500g 빠졌다!


한 달 동안 600g 감량한 나는 어제 야식을 줄이고

물을 디립다 퍼마신 끝에 500g 감량에 성공한 것이다.

남자 친구는 69kg 이라며 속을 긁어댔지만 깡그리 무시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섰다.


오늘부터 하루 두 끼!

점심 12시 저녁 6시

그 외에는 일체 아무것도 먹지 말기!

그리고 운동 운동 운동!


점심은 돼지고기 생강 볶음과 밥 한 덩이 그리고 메싸롱 차.

먹고 나니 잠이 소록소록 왔다.

템플에 가기로 했으나

비가 오려나 날이 영 꾸물꾸물하고

남자 친구는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니

어쩔 수 없이 718계단 템플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정말 아쉬웠다! 정말!!

ㅎㅎㅎ


숙소로 돌아오니 예의 비가 후드득후드득

내심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늘어져 쉬고 있으니

금세 그쳐버린다.


남자 친구에게 질질 끌려나와 향한 곳은 새로운 마을 투어!

처음엔 가볍게 조금 걷다가 돌아오려 했건만

눈 오는 날 개 뛰어다니듯 신이 나서

펄펄 날아다니는 남자 친구 때문에

죽도록 걷게 생겼다.


마을은 몹시도 고요했다.

개마저도 조용하니 꼬리를 흔들며 따라다녔다.

모두들 차 밭에 일하러 나갔는지

노인들만 대나무 의자에 앉아 소일하고 있었다.


확실히 숙소 근처 튼튼해 보이는 벽돌집은 눈에 안 띄고

대부분이 함석판을 지붕으로 대나무나 흙으로

대강 엮어 만든 집들이 었다.

아주 소박한 집들 사이로

약간은 으리으리해 보이는 교회 건물이 눈에 띄었다.


마을 끄트머리를 지나자

개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짖어댔다.

동시에 마치 참기라도 한 듯

온 동네 개가 떼로 짖어 댔다.


서둘러 마을을 떠나자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무덤들이 보였다.

무덤 사이로는 애차 로워 보이는 분홍색 꽃들이 무더기무더기 피어 있었다.


오솔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거대한 차밭은 시원하게 펼쳐졌다.

군데군데 일꾼들이 불을 지르고 약을 치며

새로운 차밭을 만들고 있었다.

사방이 초록이다.

머리 위에 이고 있는 하늘만 빼고

눈을 돌리는 모든 곳이 초록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테라스에서 매일 보던 저 멀리 아득히 자리 잡은 절 에 도착했다.


아!

그곳은 절이 아닌 거대한 차 주전자와

벽면 가득 노란 옥수수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중국식 3층 석조 건물

(그마저도 짓다 말았다)

그리고 커다라 사자 두 마리와 금색 아기 사자 한 마리가 있는

리조트였다.

몽골식 텐트가 여러 개 있었는데 오래 방치된 듯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떨어져 있었다.


돈 꽤나 들여서 조성해놓은 듯한데

주인은 어디 가고 이렇듯 썰렁하게 버려진 걸까.


그네도 하나 있어 남자친구는 한바탕 타 주시고

난 대나무 의자에 앉아 숨을 돌리고는

다시 걸었다.


그토록 다짐했건만

다리가 후들거려 오렌지 주스를 하나 마시고 아이스크림을 막 먹어버렸다.

먹고 나니 설탕님들이 혈관을 돌며 에너지를 담뿍담뿍 보내주시니

머리가 반짝 반짝 힘이 불끈불끈 살맛이 났다.

더불어 드는 죄책감과 자기 합리화...


동네 개들 한 번씩 다 쓰다듬어 주고 걷고 걸어 집에 도착하니

4시 30분.

2시쯤 집을 나섰으니 거의 2시간 30분을 걸었다.


씻고 저녁으로 노란 카레 치킨 볶음밥과 망고 셰이크를 흡수하고

오늘의 두 번째 무게를 재니

보란 듯이 69.4........


내일부터는 밥 먹기 전에 재기로 했다.


남자 친구는 간식으로 세븐일레븐에서 우유사탕이며 초콜릿 우유며

이것저것 사고 소고기,돼지고기 호빵까지 바리바리 사는데


난 돈이 있어도 못 산다.

못 먹으니 괜히 화가 나서

남자 친구한테 투덜대고

홧김에 슈퍼 들어가서 사탕이라도 집으려 했건만


오늘 종아리 찢어져라

오르막길을 미친 듯이 걸었던걸 생각하면서

고이 손을 거두었다.


운동이 부족하다고 남자 친구는 말한다.

하루 굶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남자 친구는 말한다.


하루 굶으면 다음날 더 폭식하게 된다고 나는 말한다.


사실 다이어트는 과묵한 남자 친구와 나의 공통된 화제이다.

심지어 우리는 2주 3kg 감량을 내기로 300밧을 걸었다.

틈만 나면 서로에게 300밧을 준비하라고 하는데

이제는 돈문제가 아닌 자존심 문제다.


좋은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

매번 포기하고 아기처럼 징징대는 여자친구가 아니라

뭔가 해낼 수 있는 여자친구가 되고 싶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어, 다이어트!!!


sticker sticker




왠지 다이어트 여행이 되어 버린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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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엄마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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