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전 생각이 납니다.
드디어!
오토바이를 빌렸다
신센 게스트하우스에서 파란색의 110cc쯤 되어 보이는 작은 스쿠터를
200밧에 24시간 빌리기로 한 것이다.
저 작은 스쿠터가 내 육중한 무게를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되었다.
남자 친구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피자와 초밥을 배달했고
오토바이로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닐 정도로 오래 오토바이를 탔다.
스스로도 오토바이 탈 때 제일 행복하다고 할 정도!
그런 남자 친구를 믿고 나는 그에게 내 목숨을 맡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단은 헬멧 없이는 죽어도 타지 않는다.
기왕이면 오토바이에도 안전벨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조막만 한 조약돌 때문에 내 몸이 1cm 라도 오토바이 몸체와 분리되는 일이 생기면
지랄 발광을 하신다.
앞에서 운전하는 사람 탓을 마구 해댄다.
조금만 빨리 달려도 난리.
옆에 오토바이가 추월해도 무섭다고 쌩 난리.
아주 까다롭고 (지랄 맞은) 승객이 되겠다.
그런 나의 모든 것을 단지 여자친구라는 이름 하에
묵묵히 묵언 수행으로 모두 참아내시는 우리 남자 친구님께 경배!
해서 나는 항상 크게 허리를 숙이며
칭찬으로 살살 고래의 등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다.
남자는 칭찬에 약하기에.
또 남들 앞에서 우리 남자 친구는 오토바이를 아주 안전하게 잘 몰아.
하며 슬슬 띄어 주는 것이다.
남자는 또 그런 거에 약하기에...
흐흐.
이런 이유 때문인지 그동안 별 탈 없이 동반해서 타 왔건만
어제는 약간의 문제스럽지 않은 문제가 뾰록. 생겨버렸다.
신난다!
그동안 땀을 삐질거리며 걸어왔던 거리도 스쿠터로 단박에 슝슝!
중국 추모관도 1시간 넘게 걸었는데 스쿠터로는 5분도 안되어 도착했다.
거기까진 참 좋았는데...
신이 나서 난도 산도~ 새를 찾아 노닥거리는 내게
슬슬 새 주인님께서 접근해 오는 것이다.
표 값!
추모관의 썰렁한 전시 사진들을 둘러 보며
무료니까 뭐. 괜찮아.
했건만 입장료가 떠억!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무려 20밧!
그럼 얘기가 달라지지!
사실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는데 20밧이나 내야 하다니
그 돈이 실로 200밧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20밧이면 안 봤다!
나는 저번 일이니까 하며 뒷걸음질 치며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우리 남자 친구가 아주머니의 중국 태국식 혼합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먹고 얼른 내자고
눈치 없이 난리를 쳐대는 것이다.
남에게 피해 끼치는걸 극도로 싫어하고
규칙을 참으로 준수하는 우리 일본인 남자 친구께서
지갑에서 돈까지 꺼내 눈을 부릅뜨며 나를 쳐다보는데
어쩔 수 없지.
난도 산도 새 보는 값이다
하며 나도 내버렸다.
속이 상한다.
별것도 아닌 돈, 일 같지도 않은 일이지만
작은 일에 아. 우린 좀 다른 부분이 있구나
이런 게 느껴질 때마다 속이 상한다.
내 기운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남자 친구는
절이라면 무조건 들어가 보는 불교신자인 나를 데리고
산 위에 중국식 절에 데려간다.
그곳에서 고양이 모녀와 부둥켜안고
물고 빨고 한 뒤에야 마음이 스르르 풀려 버렸다.
신나게 달려 평소엔 감히 시도도 하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오르막길 도로에 도전했다.
경사로가 그냥 70도는 우습게 찍어버릴 도로들을
우리의 가여운 파랑 스쿠터는 견뎌내질 못했다.
결국 내가 내리고
남자 친구는 스쿠터를 몰고 저 위에서 기다리고.
다시 올라타면 또 이어지는 오르막길.
내리고 올라타고 내리고.
이게 반복되니까
짜증의 거대한 폭발이 올라올 때쯤
심상치 않던 하늘에서 미친듯한 소나기가 퍼부어 내렸다!
비에 쫄딱! 젖어 부랴부랴
공사 중이던 정자에 몸을 피했다.
첩첩산중 메싸롱에는 비구름이 몰렸다 하면
온 세상이 새하얗게 포장되어 버린다.
안 보인다.
코 앞은 겨우 보이지만 한 5m 앞은 오리무중인 것이다.
천천히 의자에 앉아 생각을 다듬는다.
급한 커브길에 작고 힘없는 스쿠터.
성질 더럽고 예민한 여자친구.
남자 친구는 얼마나 힘들까.
싶어 남자 친구 머리를 쓰담쓰담해준다.
가여워라.
우리 남자 친구.
비가 그친 뒤 천천히 내려가다 비가 내리면 나무 아래 숨었다가
그렇게 한 시간을 산 위에서 헤매다 내려오니 둘 다 몸에 한기가 배여
달달달 떨어댔다.
식당에서 뜨끈한 국물요리를 뱃속에 조르륵 흘러 넣은 뒤에야
겨우 숨이 돌아왔다.
비는 메롱메롱 메싸롱 하듯 오락가락
마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듯 말 듯 변덕 부리는 귀찮은 손님처럼
약을 올리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200밧이다!
본전을 뽑아야 한다!
우리는 달렸다.
메싸롱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도로가 있으면 어디든 달렸다.
저 멀리 하얀 탑 끄트머리만 보이던 곳도 일단 달려가고 보았다.
새로 짓고 있던 째디(불탑) 안에는 채 마르지도 않은 벽화들이
정말 눈이 멀게 아름다웠다.
예술 애호가인 나는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고 또 찍어댔는데
어느 결엔가 남자 친구는 슥. 나가버렸다.
계단에 옹그리고 앉아있는 남자 친구.
오늘 하루 종일 내 짜증 투덜거림 항의에 내리는 비와 후달리는 스쿠터에
시달린 그의 힘없는 등껍질을 보자
거북이처럼 쏙. 숨어버리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이 느껴져 막 등을 감싸주고 싶어 졌다.
고맙다고 오늘 하루 고생해줘서 고맙다고
또 허리를 꺾어가며 감사를 표했다.
남자 친구 없으면 나는 이런 구경 꿈에도 못 꾼다.
구불구불 뱀 같은 이 급커브길을 어찌 오토바이에 의지하여 달린단 말인가!
그래 힘을 얻은 남자 친구는 이제 그만 집에 가서 발 닦고 쉬고 싶은 나의 마음을
외면한 채 더 달리기로 마음먹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우리는 평소에 가던 산꼭대기 파랑 탑을 오토바이로 가기 위해
산을 한없이 돌아다녔다.
이길도 저길도 그 어떤 길도 탑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심지어 사람도 다니기 벅찬 작은 오솔길을 오토바이로 가자고
고집을 부리는 남자 친구 때문에 혼났다.
(나중에 알아본 바로는 비 때문에 포기했던 경사 70도 도로를 타고
아주 멀리 멀리 휘돌아가면 나온단다.
718계단만 오르면 금방인 길을...)
그래도 끝내 포기를 모르는 고집쟁이 남자 친구는
산을 휘둘러 끝도 없이 이어져 고산족 마을을 통과하는 길을 가열차게 달리며
한 가지 일화를 들려주었다.
때는 바야흐로 3년 전.
남자 친구는 태국 남쪽 섬에서 친구 모군과 오토바이를 몰다
문득 이 오토바이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가 궁금해졌단다.
차고 넘치는 젊음의 피를 주체 못 한 그들은
모든 태국 사람들이 고개를 저어 말리는데도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가린 채
달리고 또 달렸다.
심지어는 오토바이가 갈 수 없는 길도
오토바이를 질질 끌고 끝끝내 갔다.
길가던 트럭을 멈춰 세우고 히치하이킹까지 했다!
섬 건너편이 그리도 궁금해 미치겠더란다.
그리하여 도착한 곳엔 오래된 리조트 두 덩이가 떡.
고것뿐.
문제는 빌린 오토바이니 가지고 돌아가야 한다는 것.
친구의 오토바이는 이미 험한 길에 혼수상태에 빠지고
설사가상 가솔린마저 떨어졌다.
순식간에 거대한 짐덩이가 되어버린 오토바이들.
돌아오던 트럭 기사는 2천 밧을 불렀고 비싸다고 생각해서 정중히 거절했더니
때마침 나타난 뱃사공(?)님은 5천 밧을 부르신다.
설왕설래 오고 가는 흥정 속에 싸게 2천 밧에 (?) 가기로 합의 보고
오토바이와 그들은 세상으로 귀환했다.
친구는 부서진 오토바이 값으로 8천 밧을 냈단다.
그 무용담을 신나게 늘어놓는 남자 친구를 보자
정말 겁대가리가 없구나 하는 마음에 덜컥. 겁이 났다.
마을은 서서히 저녁밥 짓는 냄새가 풍기고
그 마을마저도 뒤로 한채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은
컴컴한 아가리를 벌린 채 끝도 없이 이어졌다.
우리의 파랑 스쿠터는 라이트마저 고장 나 있었다.
산은 어둠이 빨리 찾아온다.
이렇게 가다가는....
나는 남자 친구를 진정시키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의 서운한 마음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설득시키자
다행히 잘 이해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한바탕 먹고 씻고 새하얀 침대 위에 몸을 눕히자
이제야 마음이 푹. 놓여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남자 친구의 말.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더 돌아다니잖다.
다행이다.
남자 친구는 아침잠이 많다.
11시까지 아주 푹 재워야겠다.
ᄒᅠ ᄒᅠ ᄒᅠ

걷고 걸어 도착했던 산건너 캠프장.
뒤에 있던 조각상이 참 섹시했건만 내 얼굴로 다 가려버렸네요.
눈썹 밀다가 반 날리고 얼굴엔 천연 썬크림인 다나카 바르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