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십시오
19일 비를 맞으며 입성한 메싸롱을 떠난다.
8박 9일이다.
모닝 마켓은 결국 못 갔다.
뭐. 상관없다. 어디든 있으니까.
매일 먹고 자고 절에 가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렇게 실컷 쉬었다.
맑은 공기와 물.
눈을 두는 모든 곳에 터질 듯 타오르는 초록들!
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해서 안개가 온 마을을 뒤덮을 때는
그것대로 또 좋았다.
(단 뽀송뽀송한 방에 있는다는 전제하에)
마지막 밤에는 오래간만에 날이 개어 밤하늘 가득 뚝뚝 돋아다는 별도 보았고
남자 친구가 실어 날러주어 메싸롱 동서남북 모든 곳을 다 가보았다.
매일 아침 먹었던 돼지고기 바질 볶음밥과
힘들게 718계단을 오르내린 뒤 먹은 망고 셰이크와 노랑 카레 치킨 볶음밥.
밤에 출출할 때 오르막길을 올라 세븐일레븐에서 사 먹었던 야식.
노릇노릇하게 구운 속이 야들야들한 군만두는 한 접시에 30밧.
오며 가며 남자 친구에게 십 밧씩 구걸하던 길거리의 소년도
길가 어디에든 어슬렁 거리던 개와 겁대가리 없는 닭들과 어미닭 뒤를 쫓는 병아리와
매일 낮잠으로 소일하는 고양이와
동물들보다 더 한갓진 마을 사람들과
밭에서 차를 수확하는 아주머니들 모두 모두 두고
나는 떠난다.
마지막 선물인가.
500밧에서 하루 100밧씩 할인해주는 조건으로 묵었던 숙소.
계산할 때 300밧으로 또다시 할인.
할인이 아닐 수도 있었다.
실수 일수도 아니면 원래 그 가격일 수도 있다.
우리가 유일한 손님이었고 단 하루 태국인들이 잠깐 묵었다 갔었다.
다른 방은 공사 중이고
허구한 날 인터넷이 끊기고 시트 한번 갈아주지 않았다.
쓰레기도 직접 내 다 버리고 수건도 직접 받아오고
바닥 청소 한번 해주지 않았으니
뭐 비긴 거다.
(하지만 잠깐 10초간 양심에 많이 찔렸다.
나 또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남자 친구에게 물어보니 예의하는 말
- 잘 모르겠어.
나한테 바통을 넘기시고 나는 고민 고민하다가 그냥 돈을 먹기로...
한두 푼이 아니고 700밧이나 하니까 그냥 고이 접어 날르기로 결심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조금 찔린다.)
힘들게 짐을 이고 지고 신센 게스트하우스까지 땀을 쪽 빼주고 도착해
음료 한잔 하니 초록색 썽태우가 온다.
우리 둘 딱 태우고 신나게 달리던 썽태우는
마을 초입의 체크포인트에 갑자기 서버리고
그사이에 어제 기념품을 사줬던 고산족 할머니가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날름 썽태우에 오른다.
쫙 펼쳐놓고 종양으로 부어오른 손바닥을 가리키며
구구절절 하소연을 늘어놓고 끈질기게 강매를 하는데
눈치 없는 남자 친구 놈은 그 종양을 만져보고 관심을 계속 보이다가
끝내 코끼리 열쇠고리를 사버렸다.
원래 이런 거 절대 안 사는 인간인데...
그런데도 할머니는 계속 싸구려 팔찌와 발찌들을 내 온몸에 대보고 눈앞에 흔들고
두 개에 100밧이라며 강매를 하고
곤란해진 나는 정말 필요 없다고 거절하고
이런 실랑이가 아름답게 계속 반복 되던 가운데
참다못한 남자친구가 발찌 하나를 사줬다.
덕분에 탄력받은 할머님께서 또다시 시작하려던 찰나
드디어 운전사님이 나타나 우리는 다시 메짠으로 향했다.
메싸롱에서 치앙라이에 가기 위해서는
메싸롱 -메짠 -치앙라이로 두 번 갈아타야 하는데
(하지만 메짠 가기 전에 한번 더 휴게소에서 1시간가량을 기다려야 했다.
아무래도 우리 둘만 딸랑 탔기 때문에 다른 손님을 더 태우기 위해서인 듯)
메싸롱 - 메짠 60밧, 메짠 치앙라이 20밧으로 총 4시간 (휴게소 대기 1시간) 걸렸다.
메싸롱은 첩첩산중이다 보니 첫 번째 휴게소까지 나오는데
길이 참으로.. 험난하였다.
단 한 번도 직선 길을 간 적이 없이 아주 구불구불,
거기다 바람을 타고 썽태우 앞 배기구에서 싸구려 가솔린 태운 연기가 날아오고
아침에 먹은 카레가 목구멍에서 울렁울렁 춤을 추며 막 소환되려던 찰나
겨우 휴게소에 도착했다.
1시간 기다린 게 아까웠지만 멀미를 진정시켜준 효과도 있었다.
그사이 치앙라이 지역 특산품인 리치를 한 봉다리 30밧에 사고
(어디서든 무엇이든 쇼핑거리를 찾아내는 나는 쇼퍼홀릭이다)
진한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리치를 까먹으며 산을 내려왔다.
얼마 안 가 메짠에 도착했다.
같이 온 사람들은 메싸이에 간다며 똑같은 썽태우에 올라탔고
나와 남자 친구만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갔다.
시간표 하나 없이 달랑 버스 표지판 하나 서있는 곳에
짐을 주르륵 내려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했던 찰나.
남자 친구가 화장실이 급한지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그 잠깐 사이에
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남자 친구를 부르고 운전사를 부르고 차창을 불렀다.
다행히 버스는 섰고 볼일도 못 보고 달려온 남자 친구는 가방을 던지듯 버스에 우겨놓고
우리는 치앙라이로 향했다.
중간에 검문소에서 경찰들이 우르르 올라타며 신분증을 검사했는데
(메싸롱에서 나올 때도 검문소가 있었다)
얼굴에 다나카를 곱게 바른 작은 미얀마 아가씨에게 유난히 많은 질문을 던졌다.
알고 보니 예전 마약 재배지로 유명했던 이 지역에서
한몫 당기려고 마약을 운반하는 사람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태국 왕의 노력으로 마약 대신 커피와 차를 재배하지만 말이다.
드디어 치앙라이!
도시 초입부터 교통체증과 칼칼한 매연으로 신고식을 치르고
도착한 치앙라이다!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이곳을 다녀갔던 남자 친구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무엇이 다르냐고, 치앙마이와 치앙라이는.
-직접 가보면 알아
무뚝뚝하게 대답하던 남자 친구의 속뜻을 정말인지 직접 와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치앙마이는 오래된 한정식집이다.
잘 정돈된 도시.
기품 있고 아름다운 사찰.
학교 병원 쇼핑몰 등 발에 차이게 많은 생활 편의 시설과
오랫동안 세월을 지켜온 란나 스타일의 태국 가옥들.
밤에는 뺑 강을 배경으로 수없이 반짝 거리는 노점상과 레스토랑이 있고
나이트 마켓 뒤편에는 유흥업소에 아가씨들이 넘쳐난다.
지루할 틈이 없다.
돈만 두둑이 있다면!
그에 반해 치앙라이는 아직은 소박한 시골밥상에
어울리지 않게 올라온 파스타와 피클 같았다.
도시다.
타톤과 메싸롱을 거쳐와서 만난 첫 번째 도시였다.
그런데도 뭔가 번잡하고 어설펐다.
곳곳에 외국인을 위한 맨션들이 올라가고
(은퇴도시로 유명하단다)
병원 학교 사찰 시장 그리고 로빈슨 쇼핑몰등 있을건 다 있다.
왓 쁘라 배우와 왓 쁘라씽 같은 오래된 (세월을 알 수 없다는) 사찰은 분명
고고하게 아름다웠고 그로써 좋았다.
새하얗게 눈부시던 왓렁쿤도 좋았고
남자친구와 외곽을 돌며 오토바이로 달렸던 시골길
그 초록의 싱그러움도 온천도 모두 좋았는데
뭔가 빠져버린 이 기분은 뭘까.
자꾸만 치앙마이와 비교되면서 한수 아래로 보이는 치앙라이.
차라리 이곳을 먼저 왔더라면 그 소박한 매력에 담뿍 빠졌으련만.
그래. 이곳 도시는 아직은 과도기다!
버스 정류장에서 일인당 30밧에 탄 썽태우는 단 5분 만에 숙소에 도착했다.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던 탓이다.
숙소는 이름도 바뀌고 주인도 바뀌었다.
그걸 모르고 계속 헤매다 먼길을 돌아왔다.
데본훗에서 샤먼으로.
숙소 이름처럼 주인도 드레드 머리를 하고 티셔츠를 절대 입지 않는
히피 스타일의 남자였다.
씻고 밥을 먹고 나이트마켓에 들려 눈요기를 하고
마사지를 받고 돌아오니 11시.
다시 도시로 돌아온 나는 메싸롱의 초록이 그리워졌다.
(메싸롱에 있을 땐 도시의 분주함을 그리워하고. 암튼 나란 인간은!)
이런 첩첩산중은 하루이틀....... 이면 충분 하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