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바쁜 오늘.
잠을 설쳤다.
새로운 곳에 가면 늘 반복되는 일이다.
메 쌀롱에서 들고 온 산 자두와 리치가 다소곳이 놓여있다.
남자친구는 맛없다고 한두 개 먹고 말았다.
다 내 몫이다.
리치야 워낙 달달하니 금방 먹겠는데 산자두는 새콤한 것이
이가 얼얼할 지경이다.
먹는 둥 마는 둥 해서 조금씩 썩어가고 있다.
남자친구 보기 전에 조용히 처리해 버려야겠다.
안 그래도 살 때 너무 많이 산다고 눈치가 좀 그랬는데...
(산자두는 20밧, 리치는 30밧. 그런데 너무 많이 줌)
20밧짜리 세탁기에서 옷 좀 찾아오라고 시켰더니 이쁘게도 오토바이까지
빌려왔다.
오늘 하루 치앙라이를 샅샅이 훑어내리기로 작정하고 길을 나섰다.
깔깔한 매연을 마시며 도착한 곳은 왓렁쿤.
부잣집 도련님이자 태국 유명한 건축가인 피판이 설계하고 1997년부터
짓기 시작해서 현재도 계속 건설 중이다.
산에서 살다가 도시로 내려오니 아스팔트가 이글거려
머리도 아프고 짜증이 솟구쳤다.
그토록 이나 보고 싶었던 왓 렁쿤인데...
새하얀 사원에 신기루처럼 반짝 거리는 작은 거울들에 눈이 부셔
꿈인 듯 생신인 듯 거닐고 싶었건만
마침 점심시간이라 빨리 나오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한 2분 거닐다 나왔다.
남자친구나 나나 완전 더위에 지쳐 왓렁쿤보다 더 화려한
금색 찬란 화장실에서 기념사진 몇 방 찍고 서둘러 나왔다.
온천에 가자고 나선길에 남자 친구가 발견했다는 거대한 불상이 있는
사원으로 향했다.
콕 강을 끼고 한참을 지나니 시원한 시골마을이 나타나고
저 멀리 빌딩 한채만큼이나 큰 하얀 불상이 나타났다.
불상 옆에는 층층이 쌓아 올린 오색깔의 거대한 석탑이 있었는데
끝까지 올라가자 저 멀리 태국 시골의 소박한 평원이 한눈에
들어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사원을 나와 배고프다고 징징 대는 남자 친구와 시장에 가서
15밧짜리 수박 셰이크와 사과 셰이크를 사 마시며 간 곳은
동굴 안에 절이었다.
동굴 안에는 스님 두 분과 옹기종기 불상들이 모여 있었는데
어디선가 박쥐 소리와 함께 참기 힘든 지린내가 났다.
겨우 숨을 참아가며 절을 하고 보시를 한 뒤 서둘러 나오는데
갑자기 스님께서 불러 부적을 주시는 것이다!
금박 종이를 작은 비닐 캡에 돌돌 말아 넣은 것들을
여러 개 묶어 주셨는데 느닷없는 선물에 당황하여
이거 탐분 (보시)을 더 해야 하는 건가 망설여졌다.
남자친구와 상의 끝에 남자 친구 손에 100밧을 들려 드렸더니
단호박 거절하셨다.
대부분의 태국 스님들이 보시를 좋아하셨는데
이분의 단호한 -노 머니!- 에 놀라면서도
신선했다.
동굴 절을 나와 계속 달리다가
커다란 나무에 코끼리 한 마리가 묶여 풀을 뜯어먹는걸 발견했다!
근처에 코끼리 농장이 있었다!
(나중에 알아본 바 루암밋 이란다)
10마리 가까이 되는 코끼리들이 우글대길래
밥 먹는다고 식당에 자리 잡은 남자 친구를 버려두고
바나나를 사들고 다가갔다.
20밧 바나나가 10초도 안되어 다 사라졌다.
남자친구한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식당에 갔더니
아아...
이번에도 주문하지 않은 내 몫의 음식이 나와 있었다....
이런 경우가 솔직히 많다.
새우 팟타이에 그냥 팟타이 두 개를 주문하면
모두 새우 팟타이가 나온다던지
주문하지도 않은 음식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버린다.
그것도 내가 싫어하는 생선 냄새나는 빨간 소스가 잔뜩 얹히고
절대 먹지 않는 족발 썰어놓은 고기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고기까지...
일단 고기는 남자 친구를 덜어주다가 젓이 퉁퉁 불은 어미개 한 마리가
슬렁슬렁 다가오길래 한 조각 던져주니 덥석!
잘도 먹는다.
신나게 던져주다가 남자 친구 꺼까지 빼앗아서 주니 남자 친구가 눈을 부라리며
이제 그만! 한다.
밥에도 빨간 소스가 잔뜩 묻어서 마치 피에 절은 밥알 갱이 같아
차마 손도 못 대고 있었는데 이번엔 닭들이 떼로 몰려와
삐약 대길래 한 번 확 뿌렸더니
정신없이 쪼아댄다!
저 멀리서 수탉이 이리 오라고 아무리 꼬꼬댁 대도
암탉과 병아리들은 서로 부리를 쪼아가며 싸우고
먼저 먹겠다고 난리가 났다.
그렇게 밥을 해결하고 남자 친구를 코끼리에게 데려가 바나나 한 덩이를 먹인 뒤
다시 달렸다.
드디어!
온천에 도착!
뜨거운 물을 싫어하는 나를 위해
(그럼 온천엔 왜 갔는지...)
남자 친구는 저 좋아라 하는 뜨거운 물과 찬 물을 반씩 섞어 미적지근한 물을 만들었다.
개인 욕실에 두 명이 함께 들어가면 80밧.
서로 등도 밀어주고
물장구도 치고 남자 친구 머리 마사지도 해주고
그렇게 해맑은 시간을 보내다 음료수 한잔씩 하고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우리의 공통점 중 하나.
마사지를 참으로 좋아라 한다!
돈만 많으면 매일 받고 싶다!
1시간에 150밧 우리나라 돈으로 5000원이 조금 안된다.
운이 좋으면 정말 정성을 다하는 마사지사를 만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저냥 손만 갖다 대고 시간만 때우는 게으른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뭐 그렇다.
마사지도 다 받고 시골길을 달려 달려
토요 마켓이 열린다는 황금 시계탑 근처에 왔다!
나는 먼저 가서 보고 남자 친구는 오토바이를 집에 두고 걸어서 온단다.
내 보기엔 그냥 마켓 근처에 세워두고 돌아갈 때 타고 가면 될 텐데
주차할 곳도 없고 걷고 싶다나.
암튼 나는 가자마자 코코넛 음료수에 감자튀김을 정신없이 먹어댔다.
치앙마이에도 토요 마켓과 일요 마켓
(왓 판온 사원에서 소규모로 열리는 금요 마켓과 갓 쑤언 깨우 마켓, 이슬람 마켓 등등
여러 마켓들이 상시로 열린다)
이 있는데 그 규모가 어마 무시하고
치앙마이 거주 외국인들 하며 치앙마이에 관광 온 외국인들까지
그동안 소식 끊긴 사람들을 모두 마켓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누구든지 다 온다.
작년 7개월 동안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 딱 한 번만 빼고 항상 갔었다.
이게 사실 맨날 그 밥에 그 나물이라 항상 오는 사람이 와서 똑같은 물건을 팔고
똑같은 사람이 거리 공연을 하는데도
왠지 안 가면 알 수 없는 서운함이 몰려와 꾸역꾸역 가게 되는 것이다.
치앙마이에 비하면 토요 마켓은 규모가 작다고 해서
별로 기대도 안 했는데 오오! 끝이 없다!
그리고 외국인은 아주 뜨문뜨문 가뭄에 콩 나듯 있고
거의가 태국인이다.
치앙라이 주민이며 근교 마을 주민까지 끝도 없는 사람들의 행렬!
치앙마이가 명동이나 이태원, 인사동이나 남대문처럼
관광객 위주의 상품들.
즉 실생활에서는 쓸모없는 드림캐쳐나 오색등, 조명장치, 나무 조각 등의
여러 수공예 품을 판다면
이곳 치앙라이는 생필품을 판다.
그리고 태반이 먹거리다.
남자 친구와 합류한 나는 초밥, 하와이안 피자, 돼지고기 꼬치를 먹고도 모자라
큰 타이티 봉지를 들고 다니며 쪽쪽 마셔댔다.
치앙마이보다 훨 씬! 큰 먹거리 골목은 거대한 인간들을 살찌우고
흥겨운 태국 음악이 들려오는 공터에서는
온동네 주민들이 집단 댄스를 추고 있었다!
신 들린 몸놀림의 남자가 무대에서 추는 춤을 따라서
최면에라도 걸린 듯 추는 사람들이 너무나 신기해
나도 슬쩍 껴보려다가 도저히 부끄러워 그만 포기했다.
먹고 먹고 걷고 걷고 하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아. 오늘 하루 정말 많이도 싸돌아 다녔다는 게 시커먼 발바닥과 뻐근한 다리를 통해
절절히 느껴졌다.
하루가 참으로 길고도 알찼다.
참 사진 찍기 좋게 해놓음.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