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 위해 태어난 돼구피
"애들이 나만 보면 미친듯이 달려드는데? 배고픈가봐."
"원래 걔들은 24시간 배고파!"
오빠와의 대화후 나는 숟가락 가득 퍼담은 사료를 도로 사료통에 집어 넣었다.
그렇다.
돼지구피(이하 돼구피)들은 정말 정말 나처럼 먹기 위해 태어난 아이들이다.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하다. 이리쿵 저리쿵 작디 작은 어항에 매일 보는 얼굴에 시커먼 여과기에
조그만 풀떼기 몇개에...... 사는게 얼마나 지루하겠는가.
그러니 먹는 낙이 전부인 것이다. 먹고 기다란 똥을 달고 다니며 또 먹고.
오빠와 나는 건강하고 발색이 좋은 구피들을 만들기 위해 여러 유명 회사의 사료들을 사 모았다.
그로비타. 히카리. 테트라....
누구는 뽕잎이나 시금치가 아이들 빛깔을 더 눈부시게 해준다고 해서 그걸 주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주면 물이 깨지면서 병에 걸릴 수도 있으므로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주는데
문제는 자꾸만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잘 지내나 싶어서 다가가면 어항에 내 큰얼굴이 비치자 마자 미친듯이 달려든다.
마치 어항의 유리벽을 뚫을듯이 서로 머리로 밀친다. 어항밖으로 튀어 나올것만 같은 기세다. 그걸 보면 얼마나 배고파 저러누 싶어 짠한 마음이 일고 그래서 아침, 저녁 두번 배식의 룰을 어기게 된다.
"그래. 내가 환수를 더 열심히 해주면 되지. 우리 돼구피들 먹는 낙이라도 있어야지....."
그래서 환수를 3일에 한번씩 해주고 똥이 보이면 굵고 큰 스포이드로 쭉쭉 빼주었다.
돼구피들은 스포이드로 뽑아 올리는 똥조차도 먹이인줄 알고 스포이드를 쪼쪼 쪼아댔다.
그 모습을 보면 또 가슴이 미어졌다.
하지만 아기 구피인 치어들을 낳고 바로 먹어 버릴때는 정나미가 떨어졌다.
특히 부화통에 넣어둔 어미 구피가 뽀얀 오렌지 빛깔의 난황을 통통하게 달고 있는 아기구피를
뿅 낳고 나서 바로 돌아서서 오물오물 먹어댈 때는 막 엉덩이를 때려주고 싶었다. 그때는 아무리 스포이드로
물을 쏘아대도 꿋꿋이 아기구피를 쫒아서 먹어 버렸다.
원래는 위에서 낳으면 아래에 뚫린 작은 틈 사이로 쏙 빠지는 장치가 있건만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 구피들은 영 힘이 없어서 그 구멍 사이로 빠져나가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를 못참고 어미가 냉큼 먹어 버리는 것이다.
가끔 밤 사이 도둑 출산을 할때는 (부화통에 넣기도 전에 낳는것) 모든 구피들이 아기 구피의 난황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추적자가 되어 먹어 버리기도 한다. 다음날 아침에 새까만 검은 똥을 모두가 줄줄이 달고 다니는건 아기 구피를 먹었다는 뜻이다. 아아. 이놈들아!
누가 냉동 브레인 (브라인 쉬림프를 작은 사각형으로 얼린것. 풍년새우와 비슷하며 물고기들에게 먹이면 통통해지고 성장에도 좋은 생먹이)이 좋다고 해서 100개들이 한판을 18,000원이나 주고 사서 먹이기도 했다.
장난감같은 급여통은 밑바닥이 미세한 구멍이 뚫린 망으로 되어 있는데 5000원이나 했다. 하지만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돼구피들은 급여통아래에서 돌아가며 쪼쪼 쪼아대면서 먹기도 하고 성격 급한 녀석은 급여통 속으로 들어가 먹기도 했다. 특히 어항의 일인자 쭙쭙이 안시는 그 커다랗고 샛노란 몸으로 급여통 밑바닥에 철썩 달라 붙어서 절대 안비키며 모조리 먹어 치우기도 했다. 무서운 녀석...^^;
그러나 돼구피들이 못먹는게 하나 있다.
그건 2주마다 넣어주는 네오 v라는 비타민 이다.
이 비타민은 흐르는 젤리처럼 되어 있는데 움직이는건 모조리 먹어치우려는 돼구피 조차 입에 툭 댔다가 퉤 하고 뱉으며 두번 다시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 들이 싼 똥도 먹지 않는다. (당연한건가...)
물론 먹이 인줄 알고 입에 넣기는 한다. 그러나 잠시후,
"먹이가 아니군!"
하며 퉤 뱉고 그게 아래로 내려가면 다음 돼구피가 또 입에 넣은후
"먹이가 아니군!" 하며 뱉는다.
그걸 보고 있으면 아아 하는 절망적인 마음과 함께 안쓰럽고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서
"이 바보같은 돼구피들아!" 하며 스포이드로 똥을 빼준다.
질산염 제거에 좋다고 해서 넣은 고구마 뿌리마저도 먹고, 스킨답서스의 뿌리까지도 쪼아댄다.
같이 사는 달팽이인 애플 스네일의 연하고 부드러운 살도 먹고 장식용 바위 위나 여과기 위에 있는 이끼까지도 먹는다.
가끔은 너무 먹어서 배가 터진다는 구피도 있다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먹이 양을 조절하고는 있다.
어찌 이런것 까지도 날 닳아서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