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오 마이갓! 연구소가 아니고 정신병원이라고?

낯선 벽 안에서 다시 숨을 배우다.

by 손송민

거기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나는 스스로의 발로 그곳에 들어갔다.


‘국가 연구소일 거야. 나 같은 천재를 보호하기 위한 곳일 거야.’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었다.


흥분 상태였던 나는 말을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사람들은 내 말을 알아듣기 어려워했다.


결국 주사를 맞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밤낮없이 돌아가던 내 뇌가 그제야 멈췄다.


며칠 동안 나는 먹고 자는 일을 반복했다.


조금씩 잠이 안정되자, 여전히 망상 속을 헤맸다.


복도를 걷는 사람들은 천재 연구원들이었고,


의사들은 아침마다 회진을 도는 박사님들이었다.


나는 그 속에서 신이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여긴 연구소가 아니라 병원이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모두 환자였다.





강제입원된 우리들


그제야 무섭기 시작했다.


내가 스스로 들어왔다는 사실은 잊은 채


“나는 강제로 잡혀온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뒤덮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건 다 망상이에요. 잊으세요.”라고 했다.


하지만 쉽게 잊히지 않았다.


하루 한 번 가족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 전화 시간에 나는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제발 퇴원시켜 줘. 가만히 있을게. 아무것도 안 할게.”






그 말이 내 유일한 현실 같았다.





아픔을 겪는 20대


병원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고등학생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다른 이유로 아파 있었다.


밤 9시가 되어도 잠이 오지 않아 병실과 복도를 서성이다가


결국 복도 끝, 보호사 근처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나처럼 잠 못 이루는 젊은 환자들이 있었다.


우리는 밤마다 속삭이듯 대화했다.






“너는 왜 들어왔어?”


“나? 그냥 좀… 버텨보려고.”






대부분 20대 초반의 아이들이었다.


연예인을 꿈꾸던 아이, 작가를 꿈꾸던 아이.


우리의 공통점은 ‘꿈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것뿐이었다.


약물치료로 살이 급격히 불었다.


리튬 부작용으로 식욕이 폭발했고,


하루 1.5리터 콜라와 햄버거, 과자 몇 봉지를 먹고서야 잠시 마음이 안정됐다.


단 한 달 만에 15kg이 쪘다.


그때부터 나는 평생의 다이어터가 되었다.





다시 세상으로, 그리고 또다시 병원으로


재수를 한 번 했던 나는 휴학 상태였다.


그런데 항공사 입사에는 나이 제한이 있었다.


‘지금 병원에 있으면 모든 게 늦어질 거야.’


엄마도, 나도 퇴원을 원했다.


결국 의사 계획보다 일찍 퇴원했다.


하지만 회복은 끝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나는 또다시 옷을 차려입고 번화가로 나섰다.


예전 남자친구에게 책을 돌려준다는 핑계였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그날 나는 망상 속에서,


그와 내가 헤어진 이란성쌍둥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곧 다시 입원했다.





두 번째 병원, 그리고 잠시의 평화


이번엔 한적한 지방의 가톨릭 병원이었다.


대학병원과 달리 마당이 있고, 작은 성당도 있었다.


주말마다 미사에 참석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진짜 신’을 붙잡았다.


그때만큼 간절히 기도했던 적이 없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 머무른 사람도 있었다.


20년째 병원에 있다는 이의 이야기를 듣고는 두려워졌다.


‘나도 평생 이 안에서 살게 되는 건 아닐까.’


아빠는 나를 더 두고 싶어 했다.


“밖에 나가면 또 아플까 봐…”


하지만 엄마는 매일 울며 기도했다.


“우리 딸, 다시 평범한 세상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


한 번은 면회 후, 휴게소에서 밥을 먹다


화장실에 간다며 몰래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만큼 숨이 막혔다.


결국 엄마의 간절한 요청으로 다시 조기 퇴원했다.


그때 나는 이미 목표도 잃고, 의욕도 사라졌다.


“길거리에서 떡볶이 장사라도 좋으니 나가고 싶어요.”


그게 스물두 살의 내 진심이었다.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퇴원 후 나는 무기력한 채로 낮에도, 밤에도 잤다.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식단을 공부해 내게 맞는 밥상을 차려주고,


매일 밤 함께 공원을 걸었다.


그 덕분에 조금씩 몸과 마음이 돌아왔다.


68kg이던 몸무게는 58kg으로 줄었고,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통원치료를 받으며 의사에게 들은 말.






“이제는 복학해도 괜찮아요.”






그 말에 나는 울었다.


그 울음은 기쁨이자 두려움이었다.


다시 평범해지고 싶었다.


그 평범함이 얼마나 값진 건지,


그때 비로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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