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트라우마로 남은 퇴사

버티지 못했던 시간, 나를 놓아주다.

by 손송민

12년이 지났지만, 나에게 지엠(GM Korea) 퇴사는 여전히 트라우마다.


그때 나는 심한 우울삽화로,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22살부터 41살까지 조울증을 앓았지만, 무엇이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의지도 강했고, 욕심도 많았다.


그러나 그 시절엔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을 만큼 무너져 있었다.


의지할 팀원도 없었고, 회사는 늘 내 능력 이상을 요구했다.


하루하루가 내 무능함을 증명하는 시간 같았다.


결국 3년을 채우지 못하고, 마지막 5개월은 휴직으로 마무리됐다.


그 무렵 나는 한 달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감고 누워도 머릿속은 멈추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들렸고, 생각은 쏟아졌다.


당시 우리 팀은 전기차용 배터리 하우징을 막 설계하기 시작했다.


미국 본사와 함께 진행하는 핵심 프로젝트였고,

영어에 능숙한 팀원들은 모두 그쪽으로 배정됐다.


나는 홀로 내수차량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회의 때마다 “진행 상황이 왜 없냐”는 재촉이 이어졌지만, 간단한 일조차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메일을 열어도 영어가 하나도 읽히지 않았다.


그때 병원에서 “아침에 눈뜨기가 싫다”라고 말했다.


눈을 뜨면 회사를 가야 하니까.


의사는 그것이 자살 징조라고 했다.


나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천주교 신자로서, 자살은 곧 지옥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있는 1분 1초가 지옥 같았다.


밝던 나는 웃음을 잃었고, 점심도 혼자 먹었다.


결국 조용히 퇴사를 준비했다.


퇴사 절차는 한 달이 걸렸다.


나는 부장님께 “일주일 안에 퇴사하고 싶다”라고 부탁드렸다.


상무님과 부장님은 오히려 나를 말리셨다.



“너무 아깝다. 지금까지 잘해왔다.”



결국 휴직을 권유받았고, 나는 받아들였다.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나는


“1년 쉬고 복직하겠다”라고 했지만


부장님은 “3개월만 쉬어보자”라고 하셨다.


병원에는 조울증 대신 ‘우울증’ 진단서를 부탁드렸다.


3개월 동안 하와이 여행, 요가, 피부관리, 결혼 준비를 하며 나름의 회복을 시도했다.


하지만 복직 후 일주일 만에 다시 무너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너무 힘들어서 여성 리더 전무님의 강연회에 찾아가

“힘들 땐 어떻게 이겨내셨나요?”라고 물었다.


그 한마디가 일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인사팀이 개입했고, 내 상사들은 질책을 받았다.


그 일로 부장님은 나에게 말했다.


“송민 씨 때문에 회사 다니기 힘들다.”


그 말이 나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노조에서도 접근해 왔다.


“여성 최초로 노조에 가입하면 어떻겠냐”라고.


하지만 나는 이미 산산조각 난 상태였다.


결국 승인 절차도 끝나기 전에 퇴사일만 입력하고 잠수를 탔다.


그런 마무리는 나답지 않았다.


회사는 결혼식 때 웨딩카를 빌려주는 전통이 있었다.


운전해 주기로 했던 후임 오빠도 초대하지 못했다.


친했던 팀원들에게 청첩장 한 장 건네지 못했다.


그게 지금까지 마음에 남았다.


가끔 남편에게 묻는다.


“그때 내가 버티고 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남편은 웃으며 말한다.


“이러다 할머니 돼서도 그 얘기하겠네.”


회사 생활은 즐거웠지만, 동시에 너무나 괴로웠다.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도 같은 과에 다녔던 친구는 여전히 그 회사에 다닌다.


39살에 부장이 된 능력자다.


그녀는 힘들다고 말하지만, 내 눈엔 늘 멋지다.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할지도 모른다.


“일 안 하고 남편 돈으로 사는 팔자 좋은 여자.”


하지만 나도 그들이 부럽다.


경제적으로 자립한 그녀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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