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인생 2라운드

찬란하고 치열했던 20대

by 손송민

나는 전공을 정할 때 이미 자신이 없었다.


성적에 맞춰 억지로 고른 기계공학과.


‘똑똑한 애들 틈에서 버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늘 있었다.


그래서 키 167cm인 나는 1학년 때부터 승무원을 준비했다.


공대생이지만 마음속엔 늘 하늘을 향한 꿈이 있었다.


그러다 2학년 봄, 조울증이 발병했고 나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폐쇄병동에 입원하고 휴학했다가, 한 학기를 쉬고 복학했다.


23살, 정신과 환자라는 사실을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 학교에 돌아왔다.


얼마 전, 20년 만에 그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털어놓았더니


“전혀 몰랐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된 비밀의 무게가 비로소 내려앉았다.









다시 시작, 그리고 자신감의 상실


리튬 부작용으로 15kg이 쪘다.


68kg에서 필사적으로 다이어트를 해 58kg까지는 뺐지만


1학년 때의 52kg엔 닿지 못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몸무게를 부러워하지만,


그 시절의 나는 “뚱뚱하다”라고 여겼다.


그만큼 자신감은 무너져 있었다.


약 때문에 수업 중엔 늘 졸음이 쏟아졌다.


기계과의 ‘4대 역학’은 아무리 집중해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같이 밥 먹던 친구들은 어학연수를 가거나 군대에 가 있었다.


나는 혼자였고, 매일의 하루가 버거웠다.


그 학기 성적은 간신히 학사경고를 면한 2점대.


집으로 돌아와 울며 자퇴를 선언했다.


그때, 큰 이모가 내 손을 잡았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만 다닌 이모는 말했다.








“학교 다니는 게 부러워.


학점 걱정 말고, 그냥 친구 만들고 놀면서 다녀.”


그 말이 내 마음의 끈을 붙잡았다.


그렇게 다시 학교에 남기로 했다.










다시 일어서기


가을이 되자 약도 줄고 몸도 가벼워졌다.


역학 스터디에 들어가 저녁 9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함께 공부하던 오빠들과의 대화가 즐거웠고,


다시 학교가 좋아졌다.


체중은 54kg으로 줄었고, 예전의 활기가 조금씩 돌아왔다.


그 무렵, 같은 과의 한 남학생이 나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1학년 때부터 나를 짝사랑했다는 그 말이


믿기지 않게 따뜻했다.


그는 똑똑했고, 다정했다.


나의 자존감을 조금씩 일으켜 세워준 사람이다.


전공 공부도, 영어 공부도 함께하며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었다.









스물네 살의 현실


나는 여전히 꿈이 많았다.


승무원이 되어 세계를 여행하고,


3년만 일하고 결혼해 주부가 되는 삶을 상상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가장 평범하고 행복한 인생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승무원 면접에서 질문 하나 받지 못하고 탈락했다.


이제 전공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스무 통 넘게 이력서를 냈지만, 대부분 광탈이었다.


학점 3.01, 토익 790점. 스펙은 초라했고 자신감은 또 흔들렸다.


스터디 친구들은 하나둘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축하해 주면서도 부러웠다.









그리고 찾아온 기회


그러던 중 GM Korea에서 2년 만에 신입사원 공채가 열렸다.


우리 과와 산업협력 관계가 있어,


기본 조건만 맞으면 면접 기회를 준다는 소식이었다.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면접 전날, 동아리 선배가 예상 질문과 답변 팁을 알려줬다.


그리고 다음날, 같은 조에 있던 과 친구와 함께 합격했다.


그 순간의 감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이제 됐다. 드디어 나도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다.”








승무원은 아니었지만,


외국계 기업 GM Korea는 내게 인생 2순위의 꿈이었다.


회사 위치도 인천이라 더할 나위 없었다.


그날 밤, 처음으로 깊이 잠들었다.









찬란하고 치열했던 20대의 끝


입사 후 3개월은 행복했다.


여행동아리 선배와 함께 점심을 먹고,


팀 선배들과 커피를 마시며 웃던 날들.


하지만 세 달이 지나자 현실이 밀려왔다.


업무는 어렵고, 꾸지람이 이어졌다.


자존심이 세서 울진 않았지만,


화장실에서 몰래 우는 동기들이 많았다.


그 와중에 회사 동기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는 다른 팀 부장님의 아들이었고,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서로의 미래는 달랐다.


나는 ‘3년 후 주부’, 그는 ‘맞벌이 부부’를 원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그 후 또 다른 동기의 고백을 정중히 거절했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팀 사람들은 다정했다.


결혼식에 초대하지 못한 게


12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21살부터 29살까지,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눈물도 많았지만, 꿈도 많았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찬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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