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내 남편은 어떤 사람인가

나를 끝까지 지켜준 단 한 사람

by 손송민

그는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성품이 곧고, 말보다 행동으로 마음을 보여주는 사람.


우리는 대학교 동기이자 그의 회사 동기에게 소개받아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다.


그날 그가 입고 온 베이지색 바지와 푸른 와이셔츠, 그리고 팔을 걷어 올린 단정한 모습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첫 데이트는 연극이었다. 흔한 영화관 데이트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게다가 그가 내 고등학교 과외 선생님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기에 묘한 호감이 생겼다.


두 번째 데이트는 수목원이었다.


그의 오래된 차는 조금 초라했지만, 그 차 안에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편했다.


남이섬으로 가서 먹은 닭갈비는 유난히 맛있었고,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그는 나중에 말했다.


“그때 이성의 끈을 붙잡느라 힘들었어.”


그 말에 나는 웃었다.


세 번째 데이트는 영화였다.


그런데 하필 교사가 학생을 성폭행하는, 너무나 어두운 내용이었다.


그 무렵 회사생활에 지쳐 있던 나는 그 영화를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그가 “할 말이 있다”라고 했다.


연애 경험이 있던 나는 직감했다. ‘이건 고백이구나.’


하지만 내 기분이 너무 가라앉아 있어서, 그는 말을 미뤘다.


그럴 줄 알고 나는 말했다.


“술 마시러 가요. 오늘 말해요.”


나는 술을 거의 못하지만, 그날만큼은 용기를 냈다.


결국 그는 조심스레 말했다.


“우리... 만나볼래요?”


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직 좋아한다는 감정보단,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래서 “그냥 더 만나보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단호했다.


“아니요, 사귀어요.”


그렇게 우리의 연애가 시작됐다.









나는 천주교 신자다.


26살 때부터 ‘배우자 기도’를 했고, 10가지 조건을 적어 놓았다.


그중 세 가지는 외모였지만, 나머지 일곱은 성품과 가치관, 인간관계, 돈에 대한 태도 같은 내면의 조건이었다.


그는 외모 조건엔 전혀 맞지 않았지만, 연애를 하면서 하나씩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이 내 이상형이구나.’


그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우리는 1년 반 동안 연애를 하고 6개월간 결혼 준비를 거쳐 2년 만에 결혼했다.


그는 수원, 나는 인천에 살았기에 늘 장거리 연애였다.


회사에서 힘든 날이면 그는 주저 없이 인천까지 달려왔다.


그의 그 마음이, 그 진심이 나를 버티게 했다.









그 시절 나는 조울증의 우울삽화가 심했다.


아침에 눈뜨기가 싫을 만큼 지쳐 있었다.


병원에서는 가족에게 “지금 자살 위험이 있으니 혼자 두지 말라”라고 말했다.


나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회사에 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외국계 회사의 빠른 템포 속에서,


신입사원이던 나는 차장급이 들어가는 미팅의 담당이 되어 있었다.


CEO가 주재하는 회의에 참석해야 했고,


그 부담감은 매일 내 목을 조였다.


잠들 수 없는 밤이 이어졌다.


결국 나는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었다.


그때 부모님은 반대하셨지만,


남자친구였던 그는 단 한 사람,


“그만둬요. 당신이 먼저예요.”


라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그 한마디가 나를 살렸다.









휴직 후 결혼 준비를 했다.


29살,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하와이 여행도 다녀오고, 요가도 배우며 마음을 추슬렀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했지만,


속은 여전히 무너져 있었다.


그럼에도 완벽한 결혼을 꿈꾸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복직 후 다시 무너졌고,


결국 2개월을 채우지 못한 채 퇴사했다.


결혼식 두 주 전이었다.


회사 사람 중 아무도 초대하지 못했다.


그들과 함께했던 3년이 부끄러웠다.


결혼식은 결국 나의 절친 몇 명과


학교·회사 동기 몇 명만이 함께했다.


결혼식 전, 절친 H가 내게 말했다.


“너 친구 많이 필요해? 우리면 됐잖아.”


그 한마디에 마음이 놓였다.


많은 사람 대신,


진짜 내 편 몇 명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미국 서부로 신혼여행을 갔다.


가방조차 챙길 힘이 없었지만,


그는 묵묵히 내 짐을 싸고 챙겼다.


그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힐링이었다.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나 맞벌이 안 할래. 대신 오빠가 두 배로 벌어와.”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약속은 현실이 되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고


그는 평범한 사람보다 몇 배는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해,


내가 힘들 땐 미련 없이 퇴근하던 사람.


그런 그를 나는 존경한다.









그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나와 달리


감정선이 늘 일정하다.


과묵하지만, 배려 깊다.


남의 기분을 살피고,


한 번도 내게 상처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나와 있을 땐 수다쟁이가 된다.


그런 그와의 결혼생활은 평온했다.


하지만 나는 또 한 번 입원을 했다.


그때 그는 약물 복용의 중요성을 몰랐다.


약을 챙겨주다 말다 해서 결국 균형이 무너졌다.


퇴원 후 그는 달라졌다.


하루도 빠짐없이 내 약을 챙겼다.


입원 중 퇴원을 원했지만,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가 동의하지 않자 나는 소리쳤다.


“너 내 남편 아니야! 보호자 아니야!”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그는 나를 지키고 있었을 뿐인데.









이제야 안다.


그는 나의 남편이기 전에,


내 인생을 구해준 단 한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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