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함께 웃고 운, 우리 둘의 7년
아이를 워낙 좋아하던 나는 결혼 초부터 아이를 낳을 계획을 세웠다.
“신혼 2년 정도만 즐기고, 그다음엔 아이를.”
하지만 그건 오만한 계획이었다.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던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그 약은 계획되지 않은 임신 시 거의 100% 태아에게 장애를 일으키는 위험한 약이었다.
그래서 약을 끊어야만 했다.
하지만 약을 끊으면 조울증이 재발했다.
입원하고, 회복하고, 다시 실패하고.
그 과정을 7년 동안 반복했다.
불임이 아니었지만, **‘건강한 아이’**를 갖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은 늘 따뜻한 분이셨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고 한다.
“이제는 아이를 포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결혼 5년 차,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다.
건강검진 결과, 내 뇌하수체에 이상이 있다는 통보였다.
의사는 “뇌종양일 수도 있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드라마 ‘가을동화’의 은서가 떠올랐다.
“오빠, 나 드라마 여주인공이 됐나 봐.”
나는 그렇게 농담처럼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회복에는 6개월이 걸렸다.
언어와 운동을 담당하는 부분을 건드려서,
처음엔 “네”라는 한 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숟가락도 잡지 못했고, 걷다가 넘어지곤 했다.
기억이 점점 사라지고, 아이처럼 되어갔다.
구구단도 외우지 못했다.
웃다가 갑자기 울었고,
웃으면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선망’ 상태였다.
몸과 마음이 모두 부서져버린 순간이었다.
3~4주 동안 나는 잠을 자지 않았다.
끝나지 않는 꿈 속에서 살았다.
그 꿈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눈으로 보는 게 현실이 아니라,
내 상상과 뒤섞여 환상 속을 헤매는 시간이었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꿈속에서
지옥의 악마를 많이 보았다.
천국이라 믿은 곳이 지옥으로 변하기도 했고,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기도 했다.
이야기를 다 풀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남편은 늘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나와 결혼하면서
정신병원, 폐쇄병동, 뇌종양 수술이라는
파란만장한 현실을 함께 겪었다.
그는 단 한 번도 나를 탓하지 않았다.
“괜찮아. 우리니까 괜찮아.”
그 말 한마디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그는 내 인생의 동반자이자,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가장 큰 선물이었다.
우리는 7년 만에 아이를 품었다.
그전까지의 시간은 소꿉놀이처럼 지나갔다.
여행도 다니고, 데이트도 하고,
나는 플로리스트를 배우며 꽃으로 마음을 치유했다.
재테크 공부도 하며,
우리만의 삶을 조금씩 다듬었다.
그 7년은 길었지만,
돌아보면 연인에서 진짜 가족으로 자라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부동산 재테크에도 성공했다.
입지와 매매 시기를 내가 결정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남편은 “주부지만 공로는 크다”며 내게 웃었다.
그 말에 나는 세상 누구보다 뿌듯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건강과 아이 빼고 모든 복을 주셨다.
하지만 아이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던 그 시기에
우리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