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물두 살은 찬란하게 빛났고, 처참하게 무너졌다.
첫사랑의 짧은 100일.
그리고 그의 군 입대로,
나는 갑작스레 깊은 절망 속으로 떨어졌다.
쿨하게 보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의 스물두 살은 그렇게 단단하지 못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듯 하루하루 흔들렸다.
그리고 100일 휴가 때,
그는 나를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시키러
부모님과 함께 동행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 안.
나는 성시경의 〈거리에서〉를 무한 반복하며 들었다.
그 노래는 내 슬픔의 배경음악이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청춘의 테마곡이었다.
“네가 없는 거리에는 내가 할 일이 없어서
마냥 걷다 걷다 보면 추억을 가끔 마주치지…”
그 가사를 들으며,
그와의 짧고 뜨거웠던 순간들을
하나씩 되새겼다.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억이
조용히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그해 5월, 내게 조울증이 찾아왔다.
예쁜 스물두 살의 나이에
정신병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달라붙었다.
약물 부작용으로 몸무게는
52kg에서 68kg으로 불어났다.
100일 휴가 동안 나를 보고 싶어 했던
그의 기대는 무너졌다.
그는 예쁜 여자친구 대신,
뚱뚱하고 낯선 눈빛의 환자를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특별한 휴가 대신,
그는 나를 병원에 입원시키며 돌아갔다.
그래도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의 회복을 기도해 주었다.
나 역시 그리움을 손 편지로 쏟아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사랑의 감정은 희미하지만,
그 시절의 슬픔의 결은 아직도 기억난다.
조울증은 깊은 우울의 끝에
현실감이 사라지는 조증의 시기를 동반한다.
나는 입퇴원을 반복하며
스물두 살을 병원 안에서 보냈다.
의사 선생님께는 “제발 저를 고쳐주세요”라고 했고,
엄마에게는 “폐쇄병동에서 평생 살까 봐 무서워요”라며
눈물로 퇴원을 부탁했다.
이제 스무 해가 흘러, 마흔한 살이 된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은
참으로 찬란했고, 동시에 처절했다.
지금의 남편은 나의 평생 반려자다.
그는 내게 마음의 안정과
삶의 균형을 선물해 준 하늘의 보석 같은 사람이다.
가끔, 그 순수한 남편에게
내가 여러 연애를 했다는 과거가 미안해진다.
또 한편으로는 첫사랑에게도 미안하다.
그의 찬란한 스물두 살이
나로 인해 상처로 남지 않았기를 바란다.
그 친구와 나는 정말 자주 싸웠다.
성격도, 방식도 맞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과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만약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해도,
나는 그를 만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 무모한 사랑에 온 마음을 걸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