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사수와 중고신입 EP 5

EP 5 : 도움은 필요할 때 주는 것

by 쏭나

5. 도움은 필요할 때 주는 것


하지만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여기서 문제는 김쌤도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것. 이무기씨와 관계가 서먹한 와중에 나까지 손을 떼버리니 김쌤은 이무기씨를 챙길 여유도 그럴 기분도 들지 않았다고 한다.


김쌤은 접수수납직원이면서 수학에 약했다. 본인 업무에 실수가 잦아 해결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데스크에는 대리님이 있는 시간이 잦아졌다.


나는 일을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나 민원 응대가 어려울 때 이무기씨가 스스로 내게 찾아오기를 바랐지만 그는 대리님이 없을 때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내 일과 중 첫 번째는 데스크에서 만든 일일수납일지를 검토하는 것이었다. 병원비를 제대로 보고 계산했는지 단말기 집계와 영수증 합계가 맞는지 금액을 검토하고 미수자들과 병원비 납부자들을 정리하는 업무였는데 내가 손을 대는 일이 점점 늘어갔다.


예를 들어 96,600원을 69,600원으로 받지를 않나 전달 미수금이 있는 환자를 이번 달 거만 받지를 않나. 수납을 정리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짜증 나는 일들 투성이었다.


실수는 당연히 할 수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실수를 했을 때 해결해 보려고 노력을 해봤는가 그리고 상사에게 바로 알렸는가와 묵인하려고 했다가 나중에 들키는 것은 천지차이다. 뭔가 이상해서 물어보면 이무기씨가 '알아서' 처리한 일들이었다.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 당연한 건데 자존심을 부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입사 초기에는 부딪히고 혼나면서 스스로의 일에 책임을 지게 되며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김부장이 이무기 씨를 감싸돌고 있으니 온실 속 화초가 될 수밖에. 멋대로 일을 해도 커버해 줄 사람이 있으니 진행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아침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보호자에게 수납오류로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하다며 굽신거리는 건 내 몫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잔소리를 했고, 이미 내게 빈정이 상한 이무기씨는 말을 듣지 않았다. 김쌤은 이무기씨가 협조를 안 하니 더욱 업무가 과중이 되어 퇴사를 하네마네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대리님은 김부장의 비서처럼 모든 일을 떠맡아 처리하는 중이었다. 우리의 김부장은 열심히 인스타 릴스를 봤다.


이대로 가다가는 화병이 나서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대리님께 지금 상황에 대해 보고 드렸더니 대리님은 신경 못 써줘서 미안하다며 나를 다독이셨다. 내 선에서 다 수정을 하고 보고를 드리니 수납은 신경을 안 쓰고 있었다고. 그리고 뒤에 붙이는 말이. 이무기씨마저 없어지면 나 혼자 독박 쓸 것 같다며 인증 때까지만 버티자고 하셨다.


인증 때까지만 버티자. 그놈의 인증. 인증이 뭐길래. 이무기씨는 틈만 나면 퇴사를 하려고 했고 김 부장은 절대 허락을 해주지 않았다. 김쌤은 스트레스가 과중해 보였다. 업무 스트레스와 낮아진 자존감으로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더 손해 보더라도, 정말 싫어도 굽히고 들어갈 걸 그랬나. 이 삐걱거림을 돌리려면 이무기씨와의 관계를 호전적으로 바꿔야겠다 생각을 했다.


화해의 의미로 짧게 대화를 하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직장인을 위한 실무 엑셀이라는 책을 보냈다. 정말 기본적인 ctrl+c, v도 모르길래 사무직을 계속하려면 필요하겠다 싶어 심사숙고해서 골랐는데. 그런데. 이무기씨는 마음만 받겠다며 선물을 거절했다. 나라면 필요 없어도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일단 받아뒀을 것이다. 기가 차서 웃음이 다 나왔다. 도저히 예뻐할 수가 없었다.


그때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이무기씨와의 관계에 대하여 깊은 상담을 했었는데 구남자친구는 내게 이런 조언을 했다.



"도움은 필요할 때 주는 거야. 필요 없는데 주는 건 오지랖이고. 네가 굳이 저자세로 나갈 필요가 없어. 굽히고 들어가니까 당연한 줄 알잖아."



머리가 띵 했다. 내가 여태까지 한 건 을질이었구나. 스스로 을을 자처해 3대 독자처럼 오냐오냐했구나.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무기씨와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무기씨 본인의 업무역량에 대한 부족함을 스스로 인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내게는 완벽주의를 꺼뜨릴 용기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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