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지 않아> 단평
※ <해치지 않아>에 대한 엔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온 손재곤 감독의 신작 <해치지 않아>는 감독의 전작인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과 같이 영화를 본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강력한 힘을 가진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해치지 않아>는 결말과 그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까지 윤리적으로 올바름을 잃지 않는다. 동물부터 사람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내버려 두지 않는 <해치지 않아>의 엔딩은 비단 주인공만이 아닌 영화 속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들을 결말에서 끌어안으며 보듬어 안아준다.
그런 의미에서 <해치지 않아>의 제목은 상당히 중의적이다. 우리 속에 있는 동물들이 동물의 탈을 쓴 사람들이라 동물원 관람객을 아무도 해치지 않는다는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갇혀 정형 행동을 하는 동물도 해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해치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준다. 이러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해서 영화는 동물원 속에 있는 동물들의 모습과 동물원 밖에 있는 사람들을 같은 자리에 위치시킨다. 동물원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를 동물과 유사한 모습으로 만들던 사람들이 우리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순간에는 이를 강조하지 않지만, 주인공 태수가 자신이 기껏 살린 동물원을 팔아넘기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이에 대한 보상으로 회사로부터 한 자리를 얻은 순간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회사가 준비한 근사한 자리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고층 빌딩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는 태수. 그는 높은 건물 위에서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정작 카메라에 비친 그의 자리는 마치 나무로 된 우리 안에 갇힌 동물원 우리와도 같다. 그가 영화 초반 쟁취하기 위해 애쓰던 권력을 가졌지만, 그가 가진 권력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그를 더 좁은 세상 속에 가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악당을 제외하고) 동물들부터 사람들까지 모든 이들이 행복해진 <해치지 않아>의 엔딩은 어떻게 보면 쉽게 이뤄진 행복한 엔딩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순한 해피 엔딩만은 아닌 것 같다. <해치지 않아>의 엔딩은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 즉 이 사회에게 우리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렇게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결국에는 이 사회가 아무도 해치지 않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