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남았다.

<라라걸> 단평

by 송희운

※ 본 리뷰는 <라라걸> 사전 시사회를 통해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 본 리뷰에는 주관적인 의견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r18_0_1563_870_w1200_h678_fmax.jpg


영화를 보고 났을 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내게 오래 기억될 수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영화의 '엔딩'이다. 영화의 시작이 아무리 좋아도, 말 그대로 용두사미 격 엔딩이 되어버린다면 그 영화는 내게 오래 기억되지 못할 것이고, 영화의 시작이 그저 그러했더라도 엔딩 하나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된다면 그 영화는 내게 오래도록 기억될 영화가 되고는 했다. '페미니즘'이 모든 문화 속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지금 당도한 <라라걸>은 바로 후자에 해당하는 영화였다.


<라라걸>의 주인공은 2015년 멜버른 컵 우승자인 '미셸 페인'이다.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을 들은 순간, 사람들은 이 영화의 스토리텔링을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세상의 수많은 편견, 고난과 끝없이 싸워서 결국에는 자신의 승리를 쟁취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 물론 <라라걸>은 이 사람들의 예측에서 한치의 오차도 벗어나지 않는다. 단, <라라걸>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주인공'이라는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를 살아냈어야만 했던 '여성'의 이야기를 최대한 보편적으로 전달하려 애쓴다. 주인공은 모든 것이 완벽한 '영웅'이 아닌, 결국에는 승리를 거머쥐지만 그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길목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실수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을 받는 우리와 비슷한 한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영화는 영화 속 이야기와 관객들 사이 간의 거리감을 최대한 좁히려고 애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미셸 페인은 멜버른 컵 역사상 처음으로 우승한 '여성'이 되기 위해서, 무수한 고난과 시련을 거쳐야만 했다. 자신을 아직 어리다고 생각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만 했고, 아무도 자신을 기수로 써주려고 하지 않는 곳에서 남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하는 성희롱을 감수해야만 했다. 자신이 경기 중 확실하게 기회를 잡아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뒤에 벌어진 사고를 그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그는 단지, 말 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자신의 꿈으로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를 둘러싼 수없이 많은 세상은 그가 '여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자신의 꿈을 꾸게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했고, 그를 자꾸만 절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빠뜨리려고만 했다.


쉽게 예측 가능한 스토리는 영화 초반부터 중반까지 미셸 페인이라는 캐릭터에게 생각보다 깊게 이입되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없이 도전하고 좌절하는 순간들을 보여주면서 등장한 자막으로 순식간에 이 캐릭터에 동화되게 만든다. 영화는 처음 시작부터 이 영화가 실화임을 밝히며, 오프닝에서는 미셸 페인을 연기한 테레사 팔머가 아닌 미셸 페인의 실제 어린 시절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기에 관객은 이 영화가 실화라는 것은 머릿속에서 인식하고 있는데, 테레사 팔머가 연기한 미셸 페인이 좌절에서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는 순간 실제 미셸 페인이 갖고 있는 수치들(3,200번의 출전 / 16번 골절 / 7번 낙마)이 자막으로 뜨면서 이것이 실제 이야기라는 '사실'은 영화 속에서 강력한 힘을 얻는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마주하는 그의 고통은 찰나이지만, 자막으로 보이는 실제 수치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쳐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이뤄낸 그의 족적이자 그가 실제로 겪었던 삶의 생생한 무게이다. 특히 이 장면은 Sia의 Alive 가사와 어우러지면서 이 모든 그의 삶이 단순히 남성을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닌, 노래 속 'I'm alive.'라는 가사처럼 미셸 페인의 모든 삶 자체가 자기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투쟁임을 드러내며 전율케 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다가갈수록 관객들은 미셸 페인이 지나온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며 점점 그녀의 삶으려 빨려 들어간다. 영화의 엔딩에 다다러서 미셸 페인이 자신과 최고의 호흡을 이뤘던 프린스 오브 펜젠스와 함께 레이스를 마치고 결승선에 들어오는 순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것은 잔잔하게 다가오던 미셸 페인의 삶과 그 순간 완전히 동화되어서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단 한 번도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했던 여성이 끝까지 자신을 믿고 나아갔기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으로부터 오는 벅찬 감동일 것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던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려 돌아온다."는 말처럼 미셸 페인은 자신을 계속 짓밟으려고만 했던 세상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 틀에 박힌 세계를 부셔버리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제 '여성'답다는 것은 더 이상 '가녀리고 연약하다'는 고정관념을 뜻하는 것이 아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 통용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의 원제인 'Ride Like a Girl'이 전하고자 하는 바처럼 말이다.


덧 +) 이렇게 좋은 뜻을 가진 <Ride like a Girl>이라는 제목을 두고, 왜 하필 <라라걸>이라는 의문스러운 제목으로 개봉을 했는지는 참으로 미스터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