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성경의 역사]에 대한 짧은 단상
※ 웹툰 [성경의 역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 웹툰 [성경의 역사]라는 제목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다루길래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이 떠오르는 제목을 지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보게 되었으나 한 화, 한 화가 전개될수록 빠져들어 미리보기까지 결제를 하게 되면서 이 내용은 내가 생각했던 종류의 그런 것들이 아닌 전혀 다른 종류의 웹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경의 역사]는 말 그대로 '성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캐릭터라 살아온 시간들을 보여준다. 이 성경이가 살아온 시간들은 고통스럽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한 경험들만 가득하다. 지방 입시 학원과 연계해 서울에 있는 애니메이션 학원에 등록해 입시를 준비하던 성경은 자신을 잘 챙겨주던 선생님인 주상대와 친해지지만, 주상대는 사실 성경이에게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하던 파렴치한 인간일 뿐이었다. 자신을 거절하자 밤길에 찾아와 자신을 해코지하려던 주상대로 인해 깊은 트라우마를 갖게 된 성경은 자신이 원하던 대학교에는 합격하지만, 머리도 짧게 자르고 옷도 보이시하게 입으면서 다른 이들 사이에서 숨죽여 지내며 조용하게 대학 생활을 보내려 한다. 그렇지만 성경의 대학 생활은 그녀가 원하는 것처럼 결코 조용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화이트 데이 때 모여서 서로 다른 여자들에게 사탕을 줄 거라고 회의하던(?) 남자 동기들은 정작 화이트데이 날에는 성경의 자취방 앞에서 마주치고 서로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던 중 주먹다짐까지 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성경이의 말을 다르게 전한 남자 동기로 인해 화이트데이 때 사탕을 주려던 한 명은 성경이를 갑자기 찾아가 손목을 거칠게 잡으면서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다른 여자랑 사귀던 어떤 남자 동기는 계속 성경이에게 집적거리다가 자취방에서 다 같이 술을 마시던 중 성경이를 따라 나가 위압적으로 굴면서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는 헛소리를 시전 한다.
여기까지만 봐도 충분히 고통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성경의 수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히 성경의 주변을 둘러싼 남자들만 그에게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주변 인물 중 어느 누구도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같이 다니던 무리 중 한 여자 동기는 항상 성경의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거나 앞에서 대놓고 성경이에게 전형적인 ㅆㄴ스타일이라고 말하며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다른 여자 동기는 자신과 썸을 타던 남자가 성경에게 집적거리는 것을 보고 머리로는 성경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해도, 자신의 분노로 인해 냉정하게 그를 외면하고 떠나버린다.
성경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에 누군가는 이 웹툰에 대해 '불행 포르노'와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 속 유일하게 성경의 편을 들어주는 남자 동기가 딱 한 명 있지만, 그는 이 이야기 내에서 구원자라기보다는 그나마 꽉 막힌 세상 속에서 성경이가 숨을 틀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존재에 가깝다. 계속 보는 것도 고통스럽기만 한 이 이야기는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남성들에 대한 혐오? 혹은 그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 캐릭터?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이야기는 소문을 통해 사람들의 민낯을 거침없이 폭로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이를 둘러싼 많은 이들을 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실체는 확인하지 않은 채 접근한다. 그들은 성경이란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고, 그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 각자가 갖고 있는 고정된 프레임 내에서 그를 보기만을 원했고, 그를 자신들의 프레임에 끼워 맞추고 제멋대로 재단했다. 그가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는 순간, 그의 의견을 묵살하며 아무런 말 조차 하지 못하게 했고, 자신들의 생각 속에서 성경이를 끼워 맞추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프레임에 성경이를 가두기 위해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하나의 큰 사회 속에서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야지만 자신의 존재가 불완전하지 않다는 느낌은 단순히 학교에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들도 느끼는 불안감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도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어린 시절 할머니가 그에게 했던 '참는 게 이긴다'는 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 주변을 둘러싼 환경들은 성경이가 더욱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게 했지만, 때로는 오히려 성경이에게 더더욱 무언가라도 해야 한다는 압박감만을 심어주었다. 성경이 이런 상황들로 인해 위축되고 소외될수록 그를 둘러싼 소문은 무성하게 더욱 불어나기만 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아주 뻔하지만 너무나 맞는 말을 담고 있는 속담처럼 성경을 둘러싼 소문은 에타 즉 인터넷 커뮤니티를 타고 더욱 빠르게 퍼져나갔다. 실체가 없는 소문은 여론을 주동하던 성경의 동기 하나에 의해 더욱 크게 부풀려졌고, 성경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를 남긴 주상대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더 악화일로를 걷게 된다. 더 이상 성경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야기 속 성경은 여기서 주저 않지 않았고, 단순히 고통받기 위해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님을 증명해 나간다. 계속해서 자신의 곁에서 의견을 말하라고 하는 주용과 '참을게 아니라면 참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 덕분에 성경은 자신을 둘러싼 소문을 향해 하나씩 맞서기 시작한다.
성경을 둘러싼 수많은 빌런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지만 [성경의 역사]는 변하지 않는 태도를 갖고 있는 인물들만을 그리지 않는다. 소문만 듣고 성경을 안 좋게 생각하고 그에게 못되게 굴었던 조교는 자신이 들었던 소문과 다른 성경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고 그에게 직접 사과한다. 성경이 때문에 남자 친구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동기 미영은 학교 축제에서 성경과의 하루 데이트를 두고 경매를 벌이는 상황에서 주상대가 최종 낙찰될 위기에 처하자 거금을 불러 그를 구해준다. 성경이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미영은 종강하기 전 성경이에게 같이 술 한잔 하자고 말하면서 헤어진다. 사실 이들이 처음에 보이는 반응은 '소문'을 대한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어떤 집단 내에서 이미 사실과 다를 바 없이 뿌리 깊게 형성된 소문에 대해 과연 누가 쉽게 반기를 들 수 있을까? 아무리 깨어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성경의 역사]는 단순히 성경의 불행함만을 나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소문을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소문이라는 관성에 젖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강조해서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 내에서 한 학생의 죽음이 벌어지면서 [성경의 역사]는 이 '소문'이라는 주제에 대해 더더욱 클라이맥스를 향해 다가가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 무료 공개분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 그 이후 이야기를 정확하게 쓰기는 어려우나, 소문에 대해서 광기 어리게 몰려들었다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면서 드러나는 "아님 말고"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주변인에게 혹은 나와 완전히 인연이 없는 연예인, 유명인에게까지 이 무서운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으면서 그들에게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을까? 아니, 그전에 먼저 나는 그런 적이 없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역사'는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어둡고 음습한 '개인의 역사'가 아닌, 우리가 꼭 마주 보고 깨우쳐야 할 '우리의 역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