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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Apr 11. 2021

혐오의 시대에서 화합을 이야기할 때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 단평

※ 본 리뷰에는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 대한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디즈니에서 처음으로 동남아시아 주인공을 다루는 애니메이션이다. 서양에서는 불길한 것으로 여겨지는 '용'을 동양의 시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서구 문화를 중점적으로 다루던 디즈니가 그들 문화에서는 비주류로 취급되던 동남아시아 문화를 처음으로 그려낸다는 점에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색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물론 이 영화가 다루는 동남아시아의 문화가 완벽하지 고증이 아닌 상상력이 더해진 것이지만, 서구에서 변두리에 있는 동남아시아 문화를 메인으로 하고, 특히 그 주인공을 여성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이 시사하는 바는 상당히 크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인간과 용이 공존하던 쿠만드라 왕국에서 모든 생명을 삼켜버리는 드룬이 나타나자 용들은 인간들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힘을 짜내 스스로를 희생시키고 전설 속으로 사라진다. 용들이 사라진 사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던 쿠만드라 왕국은 다섯 개로 분열되었고, 용의 힘이 담긴 드래곤 젬을 지키던 라야는 마지막 남은 용인 시수를 찾고 부서진 드래곤 젬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모험을 떠나기 시작한다.


간단한 스토리만큼이나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간결한 것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각자 자신의 나라만을 지키기 위해 적대심을 보이고 유대관계를 깨뜨렸던 다섯 개의 나라들. 처음에 라야는 자신과 다른 이들을 무조건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고 하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믿으려고 하는 시수를 막아서고 그 행동을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부서진 드래곤 젬을 찾기 위해 각각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라야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세상이 훨씬 넓으며, 드룬의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자신이 유일한 피해자가 아닌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꽉 막혀있던 왕국을 개방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을 초대했을 때, 그는 마음을 열었던 친구인 나마리에게 배신을 당했고 그로 인해 자신의 나라는 멸망하고,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겨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친구인 툭툭을 제외하고 아무도 믿을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게 된 것이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은 무조건적으로 화합을 해야 한다고 밀어붙이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서로를 진심으로 믿을 때만이 진정한 화합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여러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낸다. 이러한 주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은 시수가 나마리가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드룬이 송곳니 부족의 영역을 침투하여 모든 이들이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이다. 자신이 나마리를 믿지 못하고 라야를 죽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라야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다른 용들이 시수에게 각각의 힘을 주고 떠난 것처럼 나마리에게 먼저 자신의 드래곤 젬의 주고 돌이 먼저 된다. 라야의 행동을 본 동료들은 나마리에게 자신들의 드래곤 젬을 주고 라야 옆으로 모여 돌이 되고 나마리는 그들이 준 조각으로 드래곤 젬을 완성하고 스스로 돌이 된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이 부분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무모한 순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평생 적이었던 사이가 한순간에 화합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무조건 남을 헌신하고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악으로 가득 찬 이 세계 속에서도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믿었을 때, 진심으로 화합할 수 있다는 어떻게 보면 다소 심오한 메시지인 것이다.


이러한 희생이 이뤄진 이후 죽었던 시수와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던 용들이 되돌아오고 쿠만드라 왕국은 다시 평화를 찾고 영화는 끝이 난다. 다만, 영화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여운이 남는 것은 지금 이 시기에 당도한 영화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주는 울림이 무엇보다도 크기 때문인 것 같다. 코로나가 도래한 지 벌써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고 그 속에서 나와 다른 이에 대한 혐오가 아무렇지도 않게 발산하는 지금의 시대. '우한 폐렴'이라는 단어에서부터 시작해 서양에 뿌리 깊게 내려버린 아시아 인종 차별까지. 혼란의 시대 속에서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가 서구의 문화에서 개봉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물했던 디즈니가 제작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화합을 이루자고 말하는 동시에 자국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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