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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Aug 09. 2021

웃지 않는 여자, 아신

<킹덤: 아신전> 단평

※ 본 리뷰에는 <킹덤: 아신전>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킹덤: 아신전>은 총 시즌 2로 구성되어 있는 드라마 <킹덤>의 스핀오프 작품이다. <킹덤> 시즌 2의 마지막 장면에서 등장한 아신(전지현)을 주인공으로 한 <킹덤: 아신전>은 <킹덤>의 다음 시즌도 궁금하게 만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영화 속에서 등장한 '아신'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킹덤: 아신전>은 조선의 북방, 출입이 금지된 폐사군의 숲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폐사군에는 생사초라는 식물이 있었고, 그 식물은 먹으면 죽은 사람도 되살릴 수 있다는 비밀을 가진 식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폐사군에서 여진족의 전사 집단인 파저위의 죽은 시체가 대량으로 발견되고 고위 관료가 죽인 파저위로 인해 조선과 여진족 간의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을 두려워한 조선 관료는 이 책임을 숲 속에 있는 호랑이로 돌려 호랑이를 잡으려는 대대적인 움직임을 벌인다. 거기서 호랑이를 뒤쫓던 파저위를 만난 조선 관료는 호랑이가 사람들을 죽인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파저위가 알게 되자 그 책임을 조선 북방 내에 살고 있는 성저여인들에게 책임을 돌린다. 파저위는 성저여인들의 부락을 침략하여 그곳에 있던 모든 일족을 멸망시키고 그중에서 아픈 어머니에게 먹일 생사초를 구하기 위해 몰래 폐사군으로 갔던 어린 아신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아신은 자신의 아버지와 긴밀하게 연을 맺고 있던 조선 관료를 찾아가 자신 대신 복수를 해달라며, 그 대신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킹덤: 아신전>은 아신이라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해 어린 아신이 겪었어야만 했던 초반 배경을 꽤나 상세하게 풀어놓는다. 시즌 2와의 연결성을 위해 생사초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아신이 어떻게 생사초를 갖게 되었는지 자세히 이야기를 풀어내다 보니 <킹덤: 아신전>은 초반에 조금 지루한 감이 없잖아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지루함은 엔딩으로 다다를수록 카타르시스로 바뀌는데, 그 순간은 아신이 자신의 가족을 죽인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파저위가 아니라 자신이 복수를 해달라고 찾아갔던 조선 관료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신은 자신이 있던 추파진을 말 그대로 '몰살'시킨다. 밤마다 한 군인이 자신을 강간하는 것을 아는데도 그를 제대로 막지 않고 그저 임무만 주었던 다른 군인. 자신을 가장 천한 것으로 취급하여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군인들. 결정적으로 자신의 가족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원인을 제공했던 조선인에 대한 분노는 아신이 추파진을 피바다로 물들기에 충분했다. 어린 아신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성인 아신으로 넘어가기까지의 과정은 꽤나 길었지만, 이 과정의 끝에 분노에 휩싸여 모든 것을 몰살시켜버리는 여성 캐릭터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 여성 캐릭터는 하층민으로 가장 천대받는 인물이었다 보니 그가 일으키는 복수전은 말 그대로 영화 속에서 드러난 모든 체계를 뒤집어버리는 '전복'이었다. 이러한 지점이 가장 잘 드러는 부분이 추파진의 한 건물 옥상 위로 올라가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군인의 손을 활로 쏴버리고 그의 비명을 듣고 몰려드는 좀비들을 향해 기름을 뿌려 불붙은 화살을 쏘아버리는 장면이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피의 복수를 자행하는 여성 캐릭터를 보는 자체로서도 쾌감이 있었지만, 이 캐릭터를 다른 누구도 아닌 전지현이 맡았다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웠다. 최근 들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맡으면서 변화를 추구하고 있지만, 그전까지는 그의 메가 히트작인 <엽기적인 그녀>의 캐릭터가 가진 이미지가 굉장히 강했다. 출중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픔을 가진 그 캐릭터는 전지현이라는 배우와 너무나 합이 잘 맞아떨어졌고, 그렇기에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다른 연기를 하는 것은 쉽사리 상상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도둑들>, <암살>에서 조금씩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한 전지현 배우가 자신의 커리어에서 가장 정점을 찍은 작품이 바로 <킹덤: 아신전>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밝고 상큼하고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갖고 있는 그의 모습을 <킹덤: 아신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말 그대로 아신은 복수심에 휩싸인 캐릭터로 그는 이 영화에서 단 한 번도 웃음을 짓지 않는다. 복수심에 불타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가 웃지 않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 캐릭터를 항상 웃는 얼굴로 기억되는 전지현이라는 배우가 맡았다는 것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수많은 작품 속에서 고정되어왔던 연기의 틀을 넘어 냉철한 복수자로서의 모습을 새롭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웃지 않는 여자'의 얼굴이 이제는 대중영화 속에서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자신을 강간했던 군인을 좀비가 되어버린 가족들의 먹이로 주면서 조선과 여진족을 모두 몰살시켜버리고 자신도 가족들 곁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아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하여 <킹덤: 아신전>은 마무리된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군인들을 몰살시켜버리는 아신의 냉철한 얼굴을 보며 다음 시즌에서 그가 어떤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줄지 더욱 기대되고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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