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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희운 Aug 25. 2021

재난을 대처하는 무난한 자세

<싱크홀> 단평

※ 본 리뷰에는 <씽크홀>의 결말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싱크홀>은 국내에서 쉽게 제작되지 않는 재난 영화이다. 특히 <싱크홀>의 소재는 해외에서도 쉽게 찾아보지 못했던 '싱크홀'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재 자체가 갖고 있는 독특함이 돋보인다. <싱크홀>은 이런 독창적인 소재 내에서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넣어 다양함을 추구했으나,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방향성에 있어서는 최대한 안전성을 추구하고자 하였다.


몇십 년 만에 서울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동균. 새로 이사 간 곳에서 사사건건 부딪히는 이웃 만수를 만나지만, 동균은 최대한 그를 신경 쓰려하지 않는다. 동균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만, 애써 그 부분을 무시하고 직장 동료들을 초대하여 즐겁게 집들이를 한다. 집들이의 행복한 순간도 잠시, 갑자기 빌라 전체가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동균을 비롯해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기 시작한다. 


<싱크홀>의 스토리는 재난 영화가 갖고 있는 기본 플롯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갑작스럽게 큰 재난 상황이 닥치고 그 재난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습. 재난을 대처하는 사람들의 상이한 태도로 인해 서로 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그것이 위기를 불러오지만 결국에는 사람들이 모두의 생존을 위해 힘을 합쳐 재난 상황을 빠져나오는 것. 세세한 내용은 상이할 수 있지만 재난 영화가 갖고 있는 이야기의 흐름은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싱크홀>은 이런 흐름에서 큰 변화를 추구하려고 하지 않고 클라이맥스를 향해 안정적으로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그렇기에 <싱크홀>은 관객들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크게 거부감을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으나, (최종적으로 탈출하는 부분만 제외하고...) 문제는 너무 많은 것들을 영화 속에서 담으려고 하다 보니 이야기의 집중도가 떨어지고 전개가 늘어진다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엑시트>에서는 2030 두 주인공을 내세워서 관객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게 만들었다. 재난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다 보니 캐릭터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관객들이 몰입감 있게 이입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싱크홀>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다. 하우스푸어, 직장인이어도 집을 구할 수 없고 심지어 정규직으로 전환되기도 어려운 요즘 시대 청년들, 아이를 맡아줄 사람이 없어 아이를 홀로 두고 출근해야 하는 워킹맘, 치매를 갖고 있는 독거노인 등등등 빌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점을 하나씩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싱크홀>에서는 동원, 만수, 김대리, 은주 등 네 명의 캐릭터가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요 캐릭터이지만,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계속해서 뻗어나가려고 하다 보니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주요 인물들의 이야기는 깊게 다뤄지지 못하고 단편적으로만 흘러가게 된다. 여기에 재난에 처한 인물들이 아닌 재난밖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평이하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애쓰는 구조대원들의 이야기는 긴장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더 이상 큰 위험이 없도록 가라앉은 곳 옆에 있는 빌라 주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의 이기주의는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 밖에 되지 않아 왜 등장했는지 의아한 정도이다. 


사실 <싱크홀>은 볼만한 영화였지만, 여러모로 아쉬운 지점들이 많이 남는다. 어떤 면에서는 <엑시트>보다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간절하게 잘 그려지기도 했고, 특히 소재 자체가 지닌 독특성과 각 캐릭터들의 열망이 좀 더 잘 어우러졌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닥 밑으로 가라앉은 '싱크홀'이라는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느끼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와 묘하게 겹쳐진다. 즉, 영화 속 캐릭터들은 생존을 위해 위로 올라가려고 하지만 사실 그 '위'라는 곳은 더욱더 높은 곳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그저 남들과 비슷하게라도 살아가고 싶은 열망에 가까운 것이다. 그렇기에 동원, 만수, 김대리, 은주가 서로의 힘을 하나로 모아 지상으로 가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는 공감에서 비롯되는 어떤 짠한 느낌과 동시에 숭고함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재 자체에서 오는 신선함은 분명히 있었으나 이를 조금 더 장점으로 발전시키지는 못한 무난한 완성도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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